[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시 라이위안(淶源)현 라이위안진(淶源鎭) 슈이윈샹(水雲鄕)촌 파룬궁수련자 허우만윈(侯曼雲)은 단지 자신의 집에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네 글자를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사람에게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2026년 6월 12일 아침, 그녀는 라이위안현 공안국 소속 10여 명의 경찰에게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올 때 경찰은 여전히 그녀를 위협했다. “이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우리가 조사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거다.”
경찰의 강제 문 파손, 자물쇠 절단 위협, 담 넘어 침입, 열쇠 빼앗아 개문
6월 12일 아침 7시경, 라이위안 공안 10여 명이 허우만윈의 집 문 앞에 도착했는데, 그중 경찰복을 입은 4남 1녀와 검은 옷을 입은 7~8명이 있었다. 그들은 문밖에서 문을 열라고 요구하며 이른바 ‘소환장’을 꺼내 들고 그녀가 ‘사이비 종교 선전물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약 30분 동안 대치한 후, 경찰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시켜 길이 1미터 정도의 큰 가위를 가져오게 하고는 자물쇠를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허우만윈은 서둘러 집 안으로 물러나 두 번째 문을 잠갔다. 이어서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담을 넘어 마당으로 뛰어들어와 열쇠를 빼앗고 첫 번째 대문을 열어 모든 인원이 들어오게 했다. 경찰은 안마당, 바깥마당 및 집 안을 한 바퀴 뒤진 후 허우만윈을 강제로 끌고 갔으며, 대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져갔다.
가택수색, 서화 훼손 및 재물 강탈
허우만윈은 라이위안 공안청사 지하 2층 심문실로 끌려갔다. 그와 동시에 경찰은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와 수색했고, 춘련, 연화, 복(福)자 등을 찢고 벽화 6점, 컴퓨터, 프린터, 휴대폰 등 개인 재물을 빼앗아 갔다.
촌 관리 쑨리밍의 광적인 행동, ‘쩐싼런하오’만 보면 즉시 찢어버려
오전 9시경, 허우만윈의 큰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이 무리가 토비(土匪, 지방 도적떼)처럼 물건을 뒤지고 뺏는 것을 보았다. 특히 마을에 새로 부임한 촌 관리 쑨리밍(孫黎明, 쑨훙순의 아들, 50여 세)은 극도로 광분한 모습을 보였는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라는 글귀가 있는 물건만 보면 크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달려들어 찢어버렸다. 대법에 대한 그의 증오는 병적인 수준에 가까웠고, 심지어 거친 말로 미국을 공격하기까지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딸은 미국으로 시집가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남편의 유언이 ‘죄명’이 되다, 벽의 네 글자로 인해 장기 감시와 신고를 당해
20년 전, 허우만윈의 남편 왕푸순(王福順)이 살아있을 때, 집 문 안쪽 벽 타일에 ‘쩐싼런하오’라는 네 개를 새긴 적이 있다. 남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올해 집을 수리하면서 그녀는 이 네 글자를 붙였다. 오랫동안 그녀의 집을 감시하던 쑨리밍, 하오라오류(郝老六) 등은 즉시 사방에 악의적으로 신고했다.
불법 심문 중 관계자들은 뜻밖에도 “라이위안현에서 그 네 글자를 감히 붙인 사람은 당신뿐이야”라고 말했다. 그날 밤, 그들은 그녀를 바오딩 구치소로 보내 계속 감금하고 박해하려 했지만, 병원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수감이 거부됐다. 다음 날 오후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 경찰은 여전히 위협했다. “이 일은 안 끝났어. 집 안에 파룬궁 물건을 붙이는 건 허락하지 않아. 벽에 있는 ‘쩐싼런하오’는 종이로 가려놔. 우리는 조사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거다.”
풍비박산 난 20년, 남편의 요절, 언니의 피살, 본인도 수차례 고문 당해
허우만윈의 남편 왕푸순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됐다. 그는 생전에 장기간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받아 여러 차례 불법 감금, 구타, 벌금을 물었고, 심신이 심각하게 손상돼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언니 허우푸윈(侯福雲)도 바이스산진(白石山鎭, 샤베이터우) 파출소 소장 리구이(李貴)의 사주를 받은 경찰들에게 두 발이 잡힌 채 땅바닥에서 끌려다니다가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허우만윈 본인도 10여 차례 불법 감금돼 누적 기간이 5년에 달하며, 그 기간에 수차례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2015년 6월, 그녀는 원흉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하는 소장에 이렇게 썼다. “저를 박해하는 데 가담한 사람이 100명이 넘고, 63명이 저를 때렸습니다….” 그녀는 또 이렇게 썼다. “저의 언니 허우푸윈은 박해로 사망했고, 저의 남편 왕푸순은 수차례 납치되고 구타당했으며, 불법 감금과 갈취를 당했습니다. 20살 된 큰아들은 저와 남편이 불법 감금된 기간에 연루될까 두려워한 여자친구 부모가 강제로 그들을 갈라놓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5살 된 막내아들은 더 가엾습니다. 온종일 눈물로 지내며, 발가락이 드러나는 신발을 신은 채 고물 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며 팔 만한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아이는 2마오라도 받으면 내일 학교 갈 때 쓸 공책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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