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허난성 통신원) 허난성 옌링현 파룬궁수련자 셰후이젠(謝會建)은 2023년 고향에서 옌링현 경찰에 납치돼 사법 모함을 당했다. 최근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그는 이미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허난성 신미 감옥에 갇혀 박해받고 있다.
셰후이젠(남, 51)은 허난성 쉬창시 옌링현 장차오향 신둥촌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마음씨가 착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으며 남과 다투는 일이 적었다. 10대에서 20대 무렵에는 사찰에 가서 경건하게 불공을 드리고 법사가 들려주는 인과응보의 도리를 경청하곤 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고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길로 이끌어주는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대법이다. 셰후이젠은 대법을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을 준칙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은 파룬궁 박해 과정에서 단지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셰후이젠을 박해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수차례 중공 직원들에게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하고 여러 해 동안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또 불법 노동수용소 1년 6개월, 불법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총 6년 6개월을 갇혀 있었고, 이제 그는 다시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신미 감옥에서 박해받고 있다.
1. 유랑생활 중 모함당해
2000년 연말, 셰후이젠은 아버지 셰궈창(謝國强)과 함께 장차오향 경찰 왕젠후이(王建輝) 등에게 납치돼 옌링현 구치소에 갇혔다. 부자는 거짓말에 저항했고, 한 달 남짓 불법 구금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2001년 여름, 경찰의 박해를 피하고자 셰후이젠은 집을 떠나 유랑길에 올랐다.
2002년 겨울 어느 날, 셰후이젠이 장차오향 펑강촌을 지나다가 마침 경찰 왕젠후이를 만났다. 왕젠후이는 필사적으로 뒤쫓으며 전화로 경찰차까지 동원해 추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로 왕젠후이 등은 빈번하게 셰후이젠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가재도구를 뒤엎었으며, 심지어 한밤중에 담을 넘고 침입하는 등 마치 토박이 악질과 같았다.
2년 넘게 셰후이젠을 찾지 못하자 왕젠후이 등은 옌링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장 장후이차오(張會超), 쉬창시 공안국 국보 대대 부지도원 먀오중카이(苗中凱)와 공모해, 2003년 셰후이젠을 ‘살인광’과 강제로 연루시켜 그가 바로 소위 말하는 ‘살인광’이라고 모함했다. 경찰은 그의 사진을 들고 현 전체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표어를 붙였고, 방송 차량과 각 마을의 확성기를 이용해 그를 잡으면 거액의 보상금을 준다는 거짓말을 유포했다. 각 마을은 야간 순찰대를 조직했고 주변 시군 농촌도 마치 강적을 만난 듯 비상 상황이 됐다.
2003년 9월 2일, ‘저우커우일보’ 등 매체에서 진짜 ‘살인광’이 검거됐다고 보도하면서 진상이 밝혀졌다. 이로써 왕젠후이가 셰후이젠에게 씌운 모함은 저절로 깨졌다.
2. 불법 노동수용소와 고문 학대
2006년 1월 16일, 셰후이젠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위저우시에서 경찰에게 불법 체포된 후 옌링현 구치소로 압송돼 한 달 넘게 갇혔다. 이어 그는 불법 노동수용소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6년 4월 허난성 제3 노동수용소(쉬창시)로 끌려가 박해받았다.
2006년 말, 제3 노동수용소는 세뇌반을 운영했다. 셰후이젠과 다른 수련자 한 명은 박해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셰후이젠이 신앙을 견지하자 감옥경찰 선젠웨이(沈建偉)가 그를 고문했고, 이어 밀정 죄수들이 학대를 이어갔다. 수법으로는 잠 안 재우기, 벽 보고 서 있기, 군대식 부동자세 서기 등이 있었다. 감옥경찰은 또 혈기 앞에 대고 선서하라고 강요했으나 그는 협조하지 않았다.
감옥경찰 자오즈민(趙志民)은 “선서하지 않으면 같은 방 사람 전원을 재우지 않을 것이며, 반장과 밀정 죄수들의 감형 기간을 모두 삭감하겠다”라고 위협했다. 당시 마약범 양궈치(楊國旗)가 반장이었는데 감옥경찰에게 아부하며 한 번에 팔굽혀펴기 800개를 하라고 셰후이젠을 핍박했다.
자오즈민은 셰후이젠과 다른 50대 수련자에게 ‘상승’(上繩, 밧줄 묶기) 고문을 가했다. 그 수련자는 귀 뒤에 지난번 노동수용소 때 전기봉에 지져진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가 매우 확고하자 선젠웨이는 밧줄을 묶기 전 먼저 물에 적셔 밧줄이 더 팽팽하게 살을 파고들어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선젠웨이는 “밧줄 자국을 무덤까지 가져가게 해주겠다”라고 포효하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뺨을 세게 때렸다. 감옥경찰들은 대법제자의 신념을 꺾으려 했으며 육체적 고문은 그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3. 불법 징역 5년 선고
2008년 12월 21일, 셰후이젠이 위저우시 선허우진에서 일하던 중 위저우시 국보 경찰 샤위샤오(夏玉霄), 겅쑹타오(耿松濤), 자오나이청(趙乃成) 및 선허우 파출소 란쉐링(冉學領) 등에게 납치됐다. 동시에 현지 수련자 주젠니(朱簡妮), 왕훙창(王洪昌)도 함께 납치됐다. 이후 셰후이젠은 불법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허난성 신미 감옥에 투옥됐다.
2014년 1월 3일, 셰후이젠은 신미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2023년, 셰후이젠은 옌링현 장차오향에서 다시 중공 경찰에게 강제 납치돼 모함을 당했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그는 이미 불법 7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신미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고 있다. 내막을 아는 분들의 더 많은 제보를 호소한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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