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관현의 여성 파룬궁수련자 싱구이링(邢桂玲, 邢貴玲으로도 표기)이 2012년 경찰에 납치된 후 산둥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1년 후 출소할 당시 그녀는 이미 박해로 인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지금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싱구이링은 최근 정신이 조금 맑아졌을 때 노동수용소에서 약물 박해를 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산둥성 제1 여자 노동수용소는 산둥성 지난시 리샤구 장수이취안로 20호에 있었고 산둥성 제2 여자 노동수용소는 산둥성 쯔보시 저우춘구 왕춘진에 있었다. 현재 싱구이링이 어느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아는 이들의 제보를 바란다.
싱구이링과 남편 왕훙차오가 중공의 박해를 받은 사실 요약
싱구이링과 남편 왕훙차오(王洪朝)는 산둥성 관현 간관툰향 쉬촌에 살며 부부가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후 신념 포기를 거부한 왕훙차오는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2008년 7월 8일, 왕훙차오·싱구이링 부부는 린칭시의 집 앞에서 잠복하고 있던 관현 경찰 10여 명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왕훙차오 집의 전동스쿠터 두 대와 오토바이 한 대, DVD 플레이어 등 1만 위안 상당의 물품을 강탈했다. 동시에 경찰 세 명은 린칭시 제1중학교로 들이닥쳐 왕훙차오의 딸을 공갈 협박하며 어떤 서류(내용 불명)에 지장을 찍게 했다. 겁에 질린 딸은 그때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채 집에 머물게 됐다.
싱구이링은 나중에 석방됐으나 2008년 8월 하순 다시 경찰에 납치돼 관현 세뇌반에서 박해를 받았다. 남편 왕훙차오는 2009년 관현 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지난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상세 내용은 명혜망 보도 ‘관현 추이웨즈와 왕훙차오 부당하게 징역 8년 선고받아’ 참고)
선량한 농촌 여성인 싱구이링은 70세가 넘은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두 자녀를 키우며 남편 왕훙차오를 면회하기 위해 800리 길을 오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감옥경찰들의 무리한 거부와 불량배 같은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2010년 추석, 싱구이링은 남편을 면회하러 감옥에 가서 간곡히 기다렸지만 경찰은 끝내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싱구이링은 홀로 감옥 문밖 숲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깊은 밤 정적이 흐를 때 등 뒤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남자 두 명이 귀신 흉내를 내며 자신을 겁주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 장거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싱구이링은 검은 가죽 가방을 든 남자 두 명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어디 가느냐?”라고 묻자 싱구이링은 “성 감옥에 남편 면회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면회 같은 거 하지 마라. 보아하니 무척 고생하는 것 같은데 나를 따라오면 일자리를 주겠다. 아무 일도 안 해도 한 달에 1000여 위안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남자는 실실 웃으며 그녀를 희롱했다. 한 달 후 싱구이링이 다시 왕훙차오를 면회하러 갔을 때 감옥에서 그 남자들을 다시 보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사복 차림으로 그녀를 괴롭히던 감옥경찰들이었다.
2011년 4월 22일, 싱구이링은 다시 남편 면회를 하러 갔다. 감옥 마당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경찰은 여전히 면회를 시켜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사회 치안을 교란한다며 리청 파출소 경찰을 시켜 그녀를 납치하게 했다. 싱구이링이 경찰차에 타지 않자 경찰은 그녀의 얼굴에 코를 찌르는 약물을 뿌린 뒤 파출소로 끌고 가 불법 구류하려 했다. 싱구이링이 “내 남편을 보러 온 것이 무슨 잘못인가? 무슨 법을 어겼기에 나쁜 놈은 안 잡고 착한 사람만 잡느냐?”라고 따지자 경찰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싱구이링이 경찰들의 이름을 묻자 그들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싱구이링은 단식으로 불법 감금에 항의했고 이틀 뒤 집으로 돌아왔다.(상세 내용은 명혜망 보도 ‘농촌 여성 감옥으로 남편 면회 갔다가 경찰 불량배에 괴롭힘 당해’ 참고)
2012년 4월 10일경, 싱구이링은 관현 구치소에 갇힌 수련생을 구출하러 갔다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 신념 포기를 거부한 그녀는 산둥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1년 후 가족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박해로 인해 정신이상 상태였다.
그 후 수년간 싱구이링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타인과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거나 집을 나가 길을 잃기도 했다. 한번은 집을 나가 가족들이 며칠 동안 찾아 헤맸는데 다행히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25년 8~9월경, 싱구이링은 상태가 조금 좋아졌을 때 노동수용소에서 여러 명이 억지로 죽 같은 약물 반 사발을 먹인 뒤 며칠 만에 깨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또한 노동수용소에서 여러 명이 자신을 발로 차고 발을 때렸던 사실도 기억해 냈다.
싱구이링처럼 정직하고 선량한 농촌 여성이 단지 진선인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이토록 잔인한 박해를 당해 가족들에게도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다. 중공의 죄악은 반드시 청산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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