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난성 70대 노부인 인란잉 등 3명, 검찰원에 모함당해

[명혜망](후난성 통신원) 후난성 화이화(懷化)시 허청(鶴城)구 파룬궁수련자 인란잉(尹蘭英·76·여)은 2025년 12월 27일, 허청구 퇀제(團結) 파출소 인후이(尹輝) 등 경찰에게 납치돼 화이화시 즈장(芷江)현 검찰원으로 이송됐다. 이 외에도 파룬궁수련자 2명, 이루셴(易錄仙·72·여)과 70대 양(楊) 노부인도 검찰원에 모함당해 넘겨졌다. 소식에 따르면 이들 노인 3명이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감시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란잉은 2025년 4월 14일 오후에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신체 문제로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당일 허청구에서는 파룬궁수련자 여러 명이 경찰에게 납치됐다. 당시 인란잉은 친척에게 쌀을 가져다주고 청베이(城北)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경찰 7~8명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퇀제 파출소 옆의 이른바 ‘법제판(法制辦)’으로 납치됐는데, 그 안에는 이미 납치된 파룬궁수련자 10여 명이 감금돼 있었고 대부분 고령의 노부인이었다.

그날 밤 ‘법제판’에서 인란잉은 신체에 이상이 생겨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고 집으로 이송됐다. 이튿날, 퇀제 파출소 경찰은 인란잉을 다시 기차역(火車站) 지역사회로 끌고 가서 담당 경찰 인핑(尹萍)에게 넘겼다. 인핑이 “반년이면 해제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녀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결국 2025년 12월 27일, 인란잉은 퇀제 파출소 경찰에 의해 즈장현 검찰원에 모함당해 넘겨졌다. 인란잉 등 노부인 3명의 현재 상황은 조사 중이다.

파룬궁수련자가 바른 믿음[正信]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피해자로서 정의를 되찾는 것이며, 또한 사회 정의를 바로잡고 사회 양심을 수호하는 것으로 당연히 헌법과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중국 공검법(공안·검찰·법원) 인원이 중국공산당(중공)의 명령을 집행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것은 장래에 반드시 평생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며, 정의로운 법정의 심판을 받고 천벌과 응보를 받게 될 것이다.

인란잉이 중공에게 박해당한 사실

인란잉은 현재 76세로 후난성 화이화시 철도여객운송구간 은퇴 직원이며, 현재 화이화시 허청구 기차역 지역사회에 거주한다. 인란잉은 신장염, 신장하수, 폐결핵, 오십견, 심장병 등 고질병을 앓았고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1996년 9월, 인란잉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곧 온몸의 질병이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으며, 그녀는 무병(無病)으로 온몸이 가벼워지는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인란잉은 대법 수련을 견지하고 시민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중공 인원에게 여러 차례 납치, 감금당했으며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999년 7월 22일, 인란잉은 집에 침입한 화이톄(懷鐵) 공안처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몇 시간 동안 불법 심문을 받았다. 그 후 직장에서는 은퇴 간부 1명과 보위과 과장을 배치해 그녀를 감시하고 ‘전향’시키려 했으며, 거주위원회는 사람을 배치해 그녀 집 부근에서 감시했다. 당시 총공사 당위원회 서기 양수칭(陽樹淸)은 인란잉의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했으나, 법원에 몇 차례 갔음에도 성사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9년 9월, 인란잉은 베이징으로 청원을 하러 갔다가 광창(廣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징 둥청(東城)구 구치소에 7일간 불법 감금됐고, 이후 화이화시 주(駐)베이징 사무소에 감금됐다. 3일 후 화이화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인원은 그녀를 철도 구류소로 압송해 15일간 불법 구류했다.

2000년 5월 17일, 인란잉은 직장 인원에게 화이화 디좡(低莊)에 있는 화이톄 공안처 세뇌반으로 납치돼 10일간 ‘전향’ 박해를 당했다.

2000년 7월, 인란잉은 다시 화이화시 당위원회 당학교 세뇌반으로 납치돼 10일간 감금 박해를 당했다.

2000년 11월, 인란잉은 화이화시 허청구 610 인원에게 납치돼 15일간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1년 3월, 인란잉은 화이톄 공안처에 의해 10일간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1년 6월 어느 날 밤 9시경, 인란잉이 화이화시 청베이 보행자 거리 노가에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질주해 온 오토바이에 치여 20여 미터를 날아갔고, 관성으로 다시 5~6미터를 튕겨 나갔다. 인란잉이 땅에 주저앉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이톄 공안처의 왕젠(王健)이 후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즉시 따져 물었다. “왕젠, 당신은 왜 차로 날 치어 죽이려 하나요?” 당시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왕젠의 당시 행위는 완전히 고의였다.

2001년 6월 어느 날, 인란잉은 마양(麻陽)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마양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7일 후 그녀 신체에 생명 위험이 나타나자 직장에서 데려갔다.

2001년 9월, 마양현 공안국 만후이룽(滿薈龍) 등 경찰은 직장 퇴직관리판공실 간부 충(衝) 씨의 인솔하에 인란잉 집으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기절한 지 2시간이 넘은 인란잉을 납치해 주저우(株洲)시 바이마룽(白馬壟) 여자노동수용소로 끌고 가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시켰다. 노동수용소는 원래 인란잉 수용을 거부했으나, 화이톄 공안처 610 경찰이 인란잉의 직장에 강요해 노동수용소에 수천 위안을 주게 하고 “이 사람이 죽어도 당신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돈과 직장의 보증이 있자 노동수용소는 위법적으로 인란잉을 수용했다. 바이마룽 여자노동수용소에서 인란잉은 매일 마약사범 23명에게 감시당했고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아침 세수와 화장실 이용 시간은 10분뿐이었고, 화장실을 가거나 씻을 때도 똑같이 감시당했으며 문을 열어둬야 했다. 그녀는 장기간 작은 의자에 앉아 있도록 강요당해 자주 기절했고, 한번 쓰러지면 12시간 혹은 더 오랜 시간 쓰러져 있었다. 손에 힘이 완전히 없어 들어 올리지 못해 머리를 빗을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씻을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젓가락조차 들 수 없었고 통증으로 밤새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인란잉은 구사일생으로 노동수용소를 나왔다.

2008년 4월 15일 오전 9시경, 인란잉은 후톈(湖天) 개발구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후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16일 오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이후 경찰은 그녀 집에 쳐들어가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문을 뜯고 들어가 불법 가택수색을 했으며, 대법서적, 사부님 법상 등을 강탈하고 현금 500위안을 뺏어갔다. 인란잉의 동생이 나중에 경찰에게 돈을 누가 가져갔느냐고 묻자 파출소 경찰은 “돈 얘기를 다시 하면 당신을 잡아넣겠다”라고 말했다.

2008년 11월 27일, 인란잉과 여동생 인추양(尹秋陽)은 허청구 법원에서 각각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창사(長沙) 여자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당했다. 창사 여자감옥은 파룬궁수련자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는데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며, 말을 하지 못하게 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가족 접견을 금지했으며 물건도 직접 사지 못하게 하고 죄수가 대신 돈을 관리하게 했다. 인란잉은 당시 이미 60세였는데 매일 장시간 과부하 노동을 강요당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일 40~50kg에 달하는 화물을 4층까지 지고 오르내려야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면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때로는 새벽 2시까지 야근해야 했다. 그녀의 신체는 날로 악화됐고 2011년 감옥을 나올 때 인란잉은 이미 백발이 돼 있었다.

2017년 10월 9일, 화이화시 610, 공안국은 통일 행동을 벌여 파룬궁수련자 10여 명을 광적으로 납치했다. 인란잉은 당일 집을 나서자마자 허청분국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어 불법 가택수색(집에 사람이 없었음)을 당했다. 인란잉은 화이화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2018년 1월 11일 허청구 검찰원에 모함당해 넘겨졌다. 2018년 12월 17일 오전, 허청구 법원은 파룬궁수련자 인란잉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는데, 여동생이 선임한 인권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해 변호하지 못했다. 개정 전 허청구 법원은 인란잉의 여동생에게 파룬궁수련자, 변호사 및 친척을 입장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재판 후 즉시 석방하겠지만, 인권변호사를 해임하지 않으면 3년형을 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여동생은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 결국 재판이 끝난 후 법원은 즉시 석방하지 않고 인란잉을 다시 구치소로 끌고 가 한동안 계속 불법 감금했다.

인란잉은 오랫동안 지역사회 인원의 지시를 받은 사회 불량배들에게 미행당했다. 2024년 5월 이래 기차역 지역사회는 인란잉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했고, 심지어 사람을 보내 인란잉 집에서 감시(동반)하게 했는데 목적은 그녀가 외출해 대법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지역사회는 또 한 사람을 그녀 집 아래에 잠복시켰고, 늘 젊은이 3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정문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인란잉이 외출하면 미행했다. 어느 날 인란잉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 한 권을 건네주자 미행하던 사람이 손을 뻗어 뺏으려 했으나, 인란잉이 재빨리 자료를 다시 빼앗아왔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20여 년간 인란잉은 납치와 감금을 반복적으로 겪었고, 생사의 기로에 서는 박해를 여러 번 당했다. 인란잉의 모친은 딸이 2008년 불법 형을 선고받자 매일 눈물로 지내며 가슴 아파하다가 2009년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인란잉의 아들은 줄곧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이 우수해 2000년 면접 1위, 필기 2위의 우수한 성적으로 광둥(廣東)성 정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나, 모친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당국이 채용하지 않았으며, 몇 차례 출국 기회도 모친의 파룬궁 수련 때문에 무산됐다.

(인란잉 노인이 중공에게 박해당한 더 많은 사실은 명혜망 보도 ‘후난 화이화 인추양, 인란잉 불법 3년형 선고받아’를 참조)

퇀제 파출소:
주소: 후난성 화이화시 허청구 허저우베이로 80호, 우편번호 418099
전화: 0745-2233445, 0745-2786165
소장: 류톄쥔(劉鐵俊)
경찰 인후이(尹輝) 13707451948
즈장현 검찰원:
주소: 후난성 화이화시 즈장현 즈장진 카이쉬안로, 우편번호 419104
전화: 0745-6686479, 0745-6840961, 0745-6822000
팩스: 0745-6821897
검찰장: 샤오쭌치(肖尊啟)

원문발표: 2026년 1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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