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칭다오(靑島)시 청양(城陽)구 다저우(大周)촌 장애 여성 장징(江靜)은 단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중공) 현지 정부 인원과 경찰에게 지하 감방과 정신병원, 구류소와 구치소, 노동수용소 등지에 갇혀 참혹하고 비인도적인 고문을 당했다. 그녀는 악당의 장기적인 박해 중에 2024년 6월 1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향년 56세였다.
장징은 만 1세 때 불행히 소아마비를 앓았다. 부모님은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도처에서 병원을 찾고 약을 구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부 치료했고 돈도 다 썼지만 그녀의 다리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리 장애가 가져온 고통으로 그녀는 인간 세상의 쓴맛을 충분히 맛봤다. 장징은 줄곧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녀는 다리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각종 기공을 배웠고 돈을 적지 않게 썼지만 다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바로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장징에게 소개했고, 아주 짧은 시간에 그녀의 심신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그녀는 명랑하고 관대해졌고 일을 할 때 먼저 남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다리도 이전처럼 걷기 힘들지 않았고 또 점점 정상이 됐다.
바로 장징이 파룬따파 수련이 가져온 아름다움을 진실로 체득하고 있을 때인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장쩌민(江澤民)을 우두머리로 하는 사악한 깡패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미친 탄압을 시작했다. 조작과 무고, 그리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등 사악한 수단으로 진상을 모르는 모든 사람을 기만했다. 장징은 단지 합법적인 공민의 권리로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의 진실한 상황을 반영했을 뿐인데 칭다오시 청양진과 청양구 정부로부터 20여 년간 참혹하고 비인도적인 정신과 육체의 박해를 받았다.
장징은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을 했고 한 번 집에 돌아갔을 때 어머니가 울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얘야 빨리 떠나라. 엄마는 네가 집에 돌아와 함께 있길 바라지만 엄마는 너를 보호할 능력이 없구나!”
1. 신위안 여관 지하실에서의 박해
2000년 3월, 장징이 진상을 알리기 위해 베이징에 청원을 갔다가 청양진 정부에게 다시 한 번 불법 구금됐고 또 청쯔(城子) 신위안(鑫源) 여관 지하실에 반년이나 불법 구금돼 심신이 극도로 파괴됐다. 이 기간 그녀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그녀는 세 차례 단식단수를 20일이나 했지만 단 한 명도 묻지 않았다. 지하실 안은 어둡고 습기가 많았으며 이불과 침구가 없었다. 경찰은 상급의 지시를 받아 그녀에게 오직 쪼그리고만 있게 했고 앉지 못하게 했으니 이렇게 20일이나 됐다. 경찰이 옷을 강제로 빼앗았고 홑옷을 입은 장징은 오직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조금만 앉으면 경찰의 꾸짖음과 욕설을 초래했다. 매 끼니 단지 훠사오(火燒, 구운 빵의 일종) 하나와 피클 한 조각만 줬고 씻지 못하게 했으며, 대소변을 모두 실내에서 해결하게 했다.
친족이 방문하는 것도 영도(領導)의 지시를 거쳐야 했고 그 가족이 청양진 전 정법위 서기 왕젠(王健)에게 인권을 잔혹하게 짓밟는 불법 행위를 따져 묻자 왕젠은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중국은 인권을 말하지 않는다. 인권을 말하려면 미국에 가서 말하라!” 또 “생명 위험이 나타나면 너희 중 누가 책임지느냐?”라고 가족이 묻자 왕젠은 천인공노할 정도로 떠들어댔다. “죽어도 자살로 치며 구덩이를 파서 묻어도 법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욕을 견딜 수 없어 장징은 8월 지하실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장징은 외할머니 집(청양진 샤오자이쯔촌)으로 돌아가 전심으로 상점 안(그녀의 상점이 바로 외할머니의 집이었다)의 재고를 처리했다. 현지 정부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친척 집에 가서 수색하고 추적 조사했다. 10월 청양진에 새로 부임한 정법위 서기 신뤄밍(辛羅明)이 수하와 샤오자이쯔(小寨子) 촌위원회 일당을 사주해 어떤 법률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장징의 외할머니 집에 난입해 전체 앞뜰과 뒤뜰을 포위했다. 가련한 81세 노인이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지만 오히려 한 명도 이를 개의치 않았으며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누가 그녀더러 빠져나오라고 했나? 무릎을 꿇어도 소용없다!” (노인은 놀라고 분노해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장징은 폭도 4명에게 강제로 경찰차에 실렸고 파출소에서 하루 한 밤을 갇힌 후 또 청쯔 신위안 여관 지하실로 압송돼 다시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보증서 쓰기를 거부하자 한 달 후 이성을 상실한 정법위 서기 신뤄밍이 그녀의 가족 동의를 거치지 않고 강제로 장징을 라오산(嶗山) 중한(中韓) 정신병원으로 보내 한층 더 파괴했다. 또 떠들어댔다. “나는 그녀를 다스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녀가 전향하지 않으면 나올 생각도 하지 마라.” 그는 돌아서 또 그녀의 가족을 속여 안에서 주사를 맞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며 단지 정신 조리만 한다고 말했다.
2. 정신병원에서 받은 박해
정신병원에서 의료 인원의 정신 압박과 이성을 잃은 히스테리에 직면해 장징은 선심(善心)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했다. 그들에게 선악은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인과관계를 말했다. 하지만 원장과 딩(丁) 주임, 그리고 의료 인원은 전혀 그들의 직책과 정의, 양심을 돌보지 않았고 청양진 정부의 지시를 받아 장징이 복약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땅바닥에 쓰러뜨려 강제로 약물을 주사하며 말했다. “너는 정부가 보낸 사람인데 네가 편할 수 있겠느냐?”
약물이 몇 분 후 장징의 체내에서 발작했고 장징은 갑자기 몸이 불편함을 느꼈다. 마음이 불안해졌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으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초조해졌다. 이어서 입과 목이 말랐고 눈앞이 칠흑 같았다.(의료계 인사의 폭로에 따르면 이 약물은 국가 금지 품목에 속하고 오직 의사가 실습할 때 토끼에게 실험하며 맞혔는데 양이 많으면 토끼가 바로 죽었다.) 장징이 힘을 내 허약한 몸을 지탱하며 의료 인원에게 무슨 주사를 맞혔느냐고 질문하자 그들은 안정주사이고 그녀에게 잠을 자게 하는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이후 며칠 동안 장징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없었고 전혀 걸을 수 없었으며 몸이 극도로 허약했지만 한 명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 후 장징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또 연속 두 차례 강제로 약물을 주사당했는데 그중 한 의사가 약물을 주사하면서 말했다. “또 파룬궁을 연공할 거야? 다시 연공하면 널 끌고 가서 전기침을 맞히겠다.” 이 기간 청양진 종합관리사무소 주임 장중카이(張忠凱)가 정신병원에 가서 보증서 쓰기를 재촉했고 또 “다 쓰면 즉시 사람을 석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신과 육체상의 고문이 한 달 동안 지속됐고 마침내 한 번의 우연한 기회에 장징은 마굴에서 도망쳤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몸 상태가 줄곧 좋지 않았다. 정신병원은 당일 밤 또 집에 가서 사람을 찾았고 진(鎭) 정부도 사후 여러 차례 그녀의 집에 가서 위협하고 괴롭혔다.
3. 구치소와 파출소, 그리고 병원에서 받은 박해
2001년 7월, 장징이 불행히 또 사악한 무리에게 잡혀 지모(卽墨)시 전 차오하이(潮海) 파출소 경찰에게 직접 칭다오 다산(大山) 구치소로 보내졌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한 것이 반달이나 됐고 기간 중 여러 차례 사악한 무리에게 야만적으로 강제 주입을 당해 장징의 심장과 위장이 심각하게 손상됐으며, 몸에 여러 차례 쇼크와 경련이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이 자주 음식과 위액, 그리고 피로 가득했다.
장징이 진작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기에 빠르게 청양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조직이 신뤄밍을 우두머리로 하는 일행 수 명에게 현지로 잡혀가 청양 쓰숴(四所)에 불법 구금됐다. 그들은 장징의 손을 철창에 수갑을 채웠고 4명이 불법으로 감시했는데 청양진 정부 인원 2명[류잔(劉展)이 그중 한 명이었다]과 파출소 경찰 2명이었다. 장징이 극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사악한 무리 신뤄밍은 여전히 악한 말로 모욕했고 나중에 그녀는 다시 마굴에서 도망쳤다.
2001년 8월 장징이 다시 잡혔고 8월 26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4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골반이 심각하게 골절되고 어긋났으며 염증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사악한 무리는 오히려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녀를 단지 세 장의 판자밖에 없는 침대에 끌어올린 후 또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그중 한 사람이 차마 할 수 없어 그녀에게 무언가를 좀 깔아주자고 제의했다. 사악한 무리 신뤄밍이 후안무치하게 말했다. “필요 없다. 이렇게 해야 시원하다.” 사악한 무리 장중카이는 장징의 상처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녀를 폭행했고 장징은 얼굴과 이마가 모두 높게 부어올랐다.
사악한 무리는 9월 14일에 이르러서야 저녁에 몰래 그녀를 구(區) 병원으로 보냈다. 의사가 가족이 어디 있으며 왜 이렇게 중한 상처인데 이제야 보냈느냐고 물었다. 신뤄밍이 “안심하세요. 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청양구 불법 관리 저우(周) 주임이 또 “죽어도 헛되이 죽는 것이고 책임질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극력 소식을 봉쇄했고 또 의사에게 뇌물을 줘 가짜 병력을 쓰게 했다. 22일 후 그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또 5일에 한 번씩 강제로 주입했으며 그녀를 거의 죽을 때까지 고문한 후 또 칭다오 다산 제1 구치소로 보내 한층 더 박해했다.

구치소에서 장징의 몸은 꼽추 모양을 나타냈고 족쇄와 수갑이 함께 걸려 있어 허리를 펼 수 없게 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은 불법 구금된 파룬궁수련자의 도움 아래에서 진행됐다. 장징을 도와주었기에 자주 경찰의 꾸짖음과 마약 중독자들의 욕설을 초래했다. 이처럼 해도 경찰은 또 같은 방에 있는 마약 중독자와 살인범, 그리고 경제범 등 7~8명을 사주해 장징의 팔과 다리를 밟고 머리카락을 잡아 비틀어 장징의 입을 벌려 음식을 주입했다. 그들의 불법 행위에 협력하지 않아 그녀의 치아가 비틀려 망가졌고 입술이 비틀려 짓무러졌다. 머리카락과 옷에 자주 음식과 피가 가득했다. 장징의 몸이 갈수록 악화됐고 생명이 위급했다. 장기간 정신과 육체의 파괴로 장징이 온몸에 옴이 가득 생겼고 이런 상황을 본 칭다오 다산 구치소가 장징의 전신 피부병을 이유로 그녀를 현지 정부에게 떠넘겼다. 10여 일 후 장징이 수갑을 벗고 족쇄를 내려놓은 후 또 한 번 빠져나갔다.
4. 왕춘 노동수용소에서 생명이 위태롭게 고문당해
2003년 7월 20일, 장징이 천안문 광장에서 관광객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불법 체포됐고 다음 날 청양진 현지 정부가 기르는 폭력배 류잔 일당에게 베이징 주재 칭다오 사무소로 끌려갔다. 류잔이 줄곧 장징의 머리카락을 잡아 땅바닥에서 끌며 걸었고 또 손으로 끊임없이 장징의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장징의 얼굴이 경련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맞았으며 두 손이 줄곧 뒤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중 한 여직원이 차마 볼 수 없어 류잔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권유했지만 류잔은 오히려 이를 개의치 않았다. 방에 들어간 후 그들은 장징을 땅바닥에 내던졌고 류잔의 입에서 끊임없이 저속하고 더러운 욕설을 내뱉었다.
장징은 칭다오시 청양구 정양루(正陽路) 파출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하룻밤 불법 구금됐으며, 2003년 7월 23일 아침 쯔보(淄博)시 왕춘(王村)의 산둥성 제2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신체검사 결과 장징의 심장과 위장, 그리고 신장이 모두 문제가 있었고 노동수용소가 받지 않았다. 청양 현지 정부가 뇌물을 준 후 노동수용소가 다시 장징을 받았다. 그녀는 병원으로 끌려가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한 후 위관을 꽂고 두 손을 뒤로 수갑을 채운 채 4대대 대대장 왕후이잉(王慧英)과 대장 왕화(王華) 등이 강제로 그녀를 노동수용소로 들여보냈다. 다음 날 장징은 바로 엄관실(嚴管室)에 갇혔고 경찰은 이것이 엄관실의 첫 개장이라고 말했다.
장징이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갇힌 때부터 장징은 사오(邪悟, 그릇되게 깨달음)한 인원에게 매일 세 차례 침대에 눌려 수용소 내의 의사 3명인 마(馬, 여) 씨와 쉐(薛, 여) 씨, 그리고 린(林, 여) 씨가 번갈아 가며 음식을 주입했다. 그녀들은 사전에 사오한 인원에게 명령해 장징의 다리를 구속대로 침대에 고정하고 묶게 했다. 장징이 그들의 야만적 주입에 협력하지 않자 사오한 자가 강제로 그녀의 몸에 올라타 팔과 다리를 눌러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 외에도 4대대의 경찰들은 3일마다 또 장징을 성 젠바(建八, 산둥성 제8건축공사) 병원으로 끌고 가서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한 번씩 했다. 거의 매번 주입할 때 4대대는 모두 남자 경찰 한 명을 불러와 돕게 했는데 그중 왕쉐둥(王學東)이라는 자가 매우 잔혹했고 여러 차례 흉악하고 거칠게 장징의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당겨 끌었다. 장징은 자주 질식을 느끼고 숨이 찼다.
엄관실에서 위관이 줄곧 위 안에 꽂혀 있었기에 장징은 한때 정신이 희미했다. 진한 위액이 가래와 피가 섞여 자주 온몸에 흘렀고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그녀들은 줄곧 장징의 목에 더러운 종이로 가득 찬 비닐봉지를 걸어놓았다. 엄관실에서 단지 걷는 소리만 들려도 장징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고 대대장 왕후이잉이 넓은 접착테이프로 장징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경찰과 사오한 자를 사주해 매번 주입할 때 사전에 수건과 접착테이프를 준비해 장징의 입을 막고 봉하게 했으며 또 악독하게 말했다. “그녀가 외치면 너희는 그녀의 입을 막아라. 위관을 꽂아 주입하며 그녀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보자. 우리 노동수용소에는 사람이 많으니 한 무리가 가면 또 한 무리가 온다. 그녀를 다스릴 수 있는지 보자.”
장징은 매일 24시간 두 팔을 쭉 펴서 침대 머리 양쪽에 수갑으로 채워졌고 수갑이 깊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는데 그녀들은 오히려 장징이 자초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문 박해가 한 달 가까이 됐다. 나중에 장징은 또 경찰들에게 매일 24시간 몸을 대(大)자 형태로 침대에 묶여 수갑이 채워져 한 달 가까이 됐다. 매일 장징이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라고 외치기만 하면 경찰들이 직접 손을 대거나 사오한 자에게 명령해 수건으로 장징의 입을 막아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고 그녀의 입이 자주 문질러져 찢어지고 피가 나게 했다.
2003년 10월 9일 그날 부대대장 쑨화(孫華)가 밖에서 들어오며 “장징, 수갑을 열어줘 편하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장기간 침대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에 그녀의 팔이 이미 구부릴 수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픔을 참으며 위관을 뽑았다.
장징이 생명이 위태롭게 박해받자 경찰이 장징을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에서 강제로 주입을 당한 후 장징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심박동이 불규칙적이었으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짧았으며, 눈앞이 칠흑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산소를 주입받아 방으로 보내졌다. 바로 장징의 생명이 위독하고 온몸이 차가운 상황에서 경찰 장구이룽(張桂榮)이 또 일부러 장징이 덮은 이불을 자주 들추어 흔들었으며 악행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10월 13일, 장징이 생명이 거의 끊어질 상황에서 노동수용소가 청양구 현지 610 조직에게 떠넘겼고 ‘수용소 밖 집행’을 했다.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장징은 청양 현지의 장중카이를 우두머리로 한 정양루 파출소 지도원과 청양구 의료 인원 일행 7명에게 14일 새벽 청양구 다저우촌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망상하며 장징의 집에 들어가 감시하려 했지만 가족의 극력 반대로 정문 밖에서 장징을 감시했다.
610 사악한 자들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박해는 장징 가족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져왔고, 장징 가족의 원래 편안했던 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그녀의 노부친은 딸이 겪은 잔혹한 현실에 작은 손자를 안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장징은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을 했다.
5.장기간 지속된 박해
2017년 6월 말, 정양루 파출소 경찰 궈젠(郭健)과 또 다른 여성 경찰이 다저우촌 주민센터 파룬궁수련자 장징(江靜)의 집에 가서 장징의 부모를 탐문하며, 장징이 집에 있는지, 언제 퇴근하는지 묻고 외출하지 말라고 했다. 그 후 그들은 같은 촌의 파룬궁수련자 청페이샤오(程培曉)의 집에 가서 소란을 피우고, 그의 아내 왕루이전(王瑞珍)의 상황을 알아봤으며, 단지 와서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떠났다.
2019년 7월 1일 밤 8시경, 칭다오 청양구 다저우촌 주민센터 치안원 한 명이 경찰 4명을 이끌고 파룬궁수련자 장징 집의 문을 두드리며 세입자를 조사한다고 말했는데, 그중 한 경찰의 성은 청(程)이었다. 7월 2일 오후, 정양루 파출소 경찰 한 명이 경찰차를 몰고 와서 장징의 어머니를 탐문하며 장징이 집에 있는지, 저녁에 집에 오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봤다.
2020년 11월 16일, 청양구 순안(順安) 열전(熱電)의 가오(高) 성을 가진 관리자가 사오(邵) 성을 가진 인부(60세 정도)를 장징의 집에 보내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하게 했다. 어둑해질 무렵, 사오 성을 가진 인부가 업무복을 입은 다른 젊은이를 데리고 장징의 집에 왔고, 가족이 모르는 사이에 전원 스위치를 온도가 표시되는 정보 전송용 네트워크 스위치로 교체했다.
12월 7일, 장징이 순안 열전 회사에 가자 직원은 이런 스위치를 설치하려면 고객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이 가오에게 연락해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가오가 장징의 집에 가서 일을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저녁이 되도록 가오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양 파출소가 사람을 보내 비밀리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후, 장징이 매일 저녁 퇴근할 때면 늘 차량이 미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때로는 두 대였다. 친척이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늘 남녀 사복 경찰이 미행하며 촬영했다.
11월 30일 저녁, 장징의 어머니 장위전(張玉珍)이 스쿠터를 타고 고향에 가서 옷을 가져왔다. 단지로 돌아와 불편해서 옷을 땅바닥에 놓았다. 돌아보니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뒤에 멈춰서 가지 않았다. 갑자기 뒤에서 자전거를 탄 보안요원 한 명이 튀어나와 옷 보따리를 들어 올렸고, 장징의 어머니가 급히 옷이 자기 것이라고 소리치자 그제야 보안요원이 옷을 그녀에게 돌려줬다.
장징이 첸타오린(前桃林) 타오화위안(桃花源) 3차로 이사 온 이래, 이런 박해 수단은 끊이지 않았다. 2019년 봄, 장징 집의 복도에 안테나 같은 장비가 설치됐고, 장징의 휴대폰은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동으로 데이터에 연결됐다. 장징이 관리사무소와 여러 번 소통해 얻은 답변은 황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장징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떼어 냈다.
2022년 8월 20일, 주민위원회 인원이 장애인협회 명의로 전화를 걸어 장징의 업무 상황과 주택 문제를 물었다. 9월 21일, 주민위원회 인원이 또 장징이 일자리를 찾았는지 묻는다는 핑계로 다시 전화로 괴롭혔다. 10월 14일 저녁, 장징은 주민위원회에서 일하는 이웃의 전화를 받았는데, 잠시 후 집에 일이 있어 온다고 말했다. 이웃이 들어와 잠시 앉아 있다가 가족의 정보를 통계 내는데 스쿠터 번호판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장징이 작년에 구역 감시원이 집에 와서 통계 냈다고 말했다. 이웃은 새로 등록해야 하며 20차 당대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장징은 이웃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고, 이웃에게 이런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유했는데, 자신에게 좋은 점이 없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업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024년 6월 18일, 장징은 중공 악당의 정신적, 육체적 이중 괴롭힘 속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명혜망 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산둥성에서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에게 각종 수단으로 박해받은 것은 총 1166건이다. 그중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가 13명,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박해받은 이가 112명, 불법 재판을 받은 이가 73건, 사법 무고를 당한 이가 75건, 불법 납치를 당한 이가 332건, 불법 괴롭힘을 당한 이가 387건이며, 경제적 박해를 당한 이가 85건인데 약탈하고 갈취한 총 자금은 1,003,420.52위안을 초과하고, 기타 각종 박해가 89건이다. 중공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것은 모두 뒤에서 은폐하며 박해하는 데다, 중공의 정보 봉쇄와 고의적 은폐 그리고 기타 원인으로 인해 상술한 박해 통계는 단지 실제 박해의 일부 상황일 뿐이다.
장징이 받은 박해 상황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은 명혜망 문장 ‘장애 여성 장징이 받은 잔혹한 박해(사진)(1)’, ‘장애 여성 장징이 받은 잔혹한 박해(사진)(2)’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7/50255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7/50255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