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상하이 파룬궁수련자 왕취안디, 박해로 사망

—총 13년 6개월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로 체중이 19kg만 남아

[명혜망](상하이 통신원) 상하이시 훙커우구 파룬궁수련자 왕취안디(王全娣·여)는 1999년 7·20 이전 상하이 한 지역의 보도원이었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상하이 중공 당국에 의해 중점 박해 대상으로 지목되어 반복적으로 납치·감금됐으며, 불법 강제노동과 판결을 받아 총 13년 6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녀는 중공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2025년 5월 박해로 인해 사망했으며, 향년 77세였다.

다음은 왕취안디가 중공으로부터 받은 박해 사실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2000년 초, 왕취안디는 공원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하다가 납치되어 1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중공에 의해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은 첫 번째 파룬궁수련자였다.

2001년 2월, 왕취안디는 명혜망에 ‘엄정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줄곧 경찰과 가도사무소(주민센터) 직원들의 괴롭힘을 받았다.

2001년 4월 17일, 왕취안디는 집에 침입한 상하이시 훙커우 공안분국 경찰에 의해 납치됐고, 80세 노모를 혼자 집에 남겨뒀다. 왕취안디의 남동생이 소식을 듣고 공안국에 가서 왜 사람을 붙잡는지, 어떤 법률에 따라 붙잡는지, 체포영장이 있는지 질문했지만 경찰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왕취안디를 칭푸 세뇌반으로 끌고 가 강제 ‘전향(수련 포기)’ 박해를 가했으며, 한 달 넘게 석방하지 않았고 가족 면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2002년 12월 26일, 왕취안디는 경찰에 의해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설날 전까지 불법 감금됐다.

2003년 2월 11일, 왕취안디는 다시 칭푸 세뇌반(상하이시 법제학습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2005년 2월 7일, 왕취안디는 경찰에 의해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구류소로 끌려가 한 달 넘게 불법 감금됐다가 3월 10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노모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2007년 11월 2일 오후, 왕취안디는 집 문 앞에서 매복하고 있던 바오산구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과 티란차오 파출소 경찰에 의해 납치됐으며,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집에는 80여 세 노모만 남겨져 돌볼 사람이 없었다. 이로써 왕취안디는 중공 경찰에 의해 7번째로 납치됐다. 왕취안디는 먼저 바오산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된 후 훙커우구 구치소로 이송됐다. 한 달 후 불법 체포됐으며, 이 기간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2008년 3월 11일, 왕취안디는 불법 기소됐다. 이후 그녀는 중공 법원에 의해 3년형을 선고받고 상하이시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았다.

상하이시 여자감옥에서 왕취안디는 차례로 5대대, 3대대에 불법 감금됐다. 그녀는 대법 신앙을 굳게 지키며 죄수복 착용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감옥경찰의 잔혹한 박해를 받으며 장기간 독방에 감금됐다. 감옥경찰들은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형구인 ‘속박대’로 그녀를 묶었다. 이것은 몸을 조이는 동시에 양손을 앞뒤로 묶어 가슴과 등에 고정시키는 소가죽 띠로, 시간이 지나면 양손의 혈액순환이 차단되어 팔이 경직되고 위축된다. 또한 그녀가 잠잘 때도 풀어주지 않아, 잠을 잘 때 팔이 극도로 아프고 마비되어 감각을 잃게 했다. 감옥경찰들은 그녀가 죄수복을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가족들이 면회 갔을 때는 그곳에서 전화로만 통화할 수 있었다. 장기간의 박해로 인해 60세를 넘은 왕취안디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경찰들은 가족들이 그녀에게 식품을 사주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속박대로 그녀를 묶은 악랄한 경찰은 원 3대대 경찰 대대장 천위메이(陳玉妹)였다.

2014년 2월, 왕취안디의 90세가 넘은 노모가 세상을 떠났다. 왕취안디가 장례를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일 때, 누군가 그녀를 미행하고 감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직접 주민위원회와 파출소 경찰에게 물어봤지만, 그들은 모두 부인했다. 3월 19일은 티란차오 파출소 소장 접견일이었다. 왕취안디는 관련 서류를 들고 티란차오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에 의해 납치됐고, 다음 날 불법 형사구류 처분을 받았다. 오랫동안 외부에서는 그녀가 어디에 불법 감금됐는지 알 수 없었다.

2014년 7월 18일, 왕취안디는 훙커우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고 법정에서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다시 상하이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왕취안디는 진선인(眞·善·忍) 신앙 포기를 거부해 3.3㎡의 독방에 장기간 감금됐다. 감옥 측은 각종 핑계와 거짓말로 가족 면회를 장기간 거부했다. 2015년 3, 4월 기간 감옥에서는 파룬궁수련자들에게 강제 ‘전향’을 실시했다. 왕취안디 등 파룬궁수련자들이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하자 상황이 위급해져 상하이시 감옥총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녀는 감옥병원에 3년간 감금된 후 체중이 19kg만 남았다. 그러나 감옥 측은 여전히 왕취안디 가족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왕취안디는 2019년에 출소했다.

2020년 12월 24일, 왕취안디는 시민들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미행하던 불법요원들에게 다시 납치됐다. 그녀는 다시 불법적으로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다시 상하이 여자감옥으로 끌려갔다. 이번에도 그녀는 심각한 박해를 받았고, 악당들이 그녀를 매우 악랄하게 대했지만 그녀는 계속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박해로 인해 암에 걸렸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으며, 말기에 간으로 전이됐다. 감옥 측은 그녀가 거의 죽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밖으로 내보냈다. 왕취안디는 출소 한 달여 만인 2025년 5월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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