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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陝西)성 셴양시 공안분국 부국장, 칠순 수련자 박해

[명혜망](산시성 통신원)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시의 차이훙(彩虹) 공안분국 부국장 웨이광룽(魏光榮)이 칠순 파룬궁수련자 자오구이룽(趙桂榮)을 집요하게 박해하고 있다.

자오구이룽은 유랑생활을 하던 중에 지난 4월 8일 다시 납치됐다가 구치소, 유치장, 공안병원에서 모두 수용 거절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웨이광룽 부국장은 자오구이룽을 집요하게 모함하며 다시 그녀를 검찰로 납치하라고 경찰에게 명령했다. 8월 22일, 결국 친두(秦都)구 검찰원은 자오구이룽에게 기소장을 발부했다.

1952년 4월생인 자오구이룽은 셴양시 베이다제(北大街) 여관 직원으로 퇴직했다. 그녀는 1998년 8월 남편과 함께 파룬궁을 수련한 후,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도덕성 향상에 노력했고, 늘 남을 배려하고 모든 것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했다. 결국 수련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추증, 피부병, 편두통, 위염, 부인병 등이 저절로 완치됐고, 남편의 중증 경추증, 전립선염, 내외치질, 탈항 등 질병이 치료되어 직장과 국가에 대량의 의료비를 절약해줬다.

그러나 자오구이룽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에도 수련을 견지하고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이로움을 알렸다는 이유로, 20년이 넘도록 ‘610(파룬궁 박해기구)’과 공안, 검찰원, 법원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다섯 차례에 걸쳐 총 9년간 부당하게 노동수용소에 보내졌고, 고문으로 인해 스스로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자오구이룽은 당국의 모함을 피하려고 여러 해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자오구이룽은 2023년 4월 8일 셴양시 마좡(馬莊)진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좋은 점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공산당에 세뇌당한 사람의 신고로 마좡진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녀는 9일 저녁 7시쯤 셴양 구치소로 이송됐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절당했다. 저녁 9시가 넘어 마좡진 파출소 경찰 천하이타오(陳海濤)가 상급자에게 지시를 요청한 후 차이훙 공안분국으로 보내져 임시 감금됐고, 10일에 신체검사를 받은 후 저녁 5시에 친두 구치소로 보내졌으나, 과거 불법 감금 중에 단식했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절당했다. 차이훙 공안분국은 11일에 다시 셴양시 215 공안병원에 노인을 불법 감금하려 했다.(공안병원은 많은 나이와 며칠 동안의 단식을 했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음) 그들은 14일 아들에게 보증금 2천 위안을 내고 그녀를 데려가라고 통지했다.​

자오구이룽이 집으로 돌아온 후 차이훙 분국은 경찰을 파견해 노인 가정을 감시하면서 누구도 들락거리지 못하게 했고, 정법위원회, 파출소, 주민위원회는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했다.

4월 27일, 차이훙 공안분국 부국장 웨이광룽의 강경한 지시에 따라 경찰은 노인을 3층에서 끌어내 친두구 검찰원으로 보내 기소했지만, 사건을 처음 인수할 사람이 전근을 가는 바람에 접수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5월 12일 두 번째로 3층에서 끌어 내려져 친두구 검찰원으로 납치됐고, 제2검찰부의 황위안(黃媛)이라는 검사가 기록하고 사건을 수리했다. 그녀는 모든 대답을 거부했다. 6월 7일, 웨이광룽의 지시에 따라 경찰이 그녀를 다시 차이훙 공안분국으로 납치해 심문했다.

7월 18일, 친두구 검찰원에서 온 남녀 직원이 노인에게 통지서(소환장)를 전달했다. 8월 22일, 친두구 검찰원은 친두구 법원과 그녀에게 기소장을 발부했다. 그녀는 9월 14일 부당한 재판 박해를 앞두고 공안병원에서 강제 신체검사를 받았다.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훈계를 하고자 한다. 유심히 살피고 잘 생각해보라, 파룬궁 진상자료가 도대체 무엇인가? 왜 파룬궁은 세계 각지의 백여 개 국가와 지역으로 파룬궁이 확산됐는가? 파룬따파로 알려진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대법(大法)으로, 파룬궁 수련인은 부처 수련을 하는 사람이다. 수불(修佛), 수도(修道)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자는 하늘의 엄중한 징벌을 받는다. 고대인들은 “천 개 강의 물을 어지럽힐지언정 도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즉, 수련인을 박해한 죄업은 정말 너무나 크며, 심지어 생생세세에 모두 갚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거울로 삼자면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시영(柴榮)이 직접 큰 도끼로 보살상을 부수었다가 가슴에 악성 종기가 생겨 죽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39세였다. 또 예를 들면 문화혁명 전후로 중국공산당을 추종하며 사찰과 불상을 파괴한 사람 중 말로가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농촌 기성세대​는 그런 업보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파룬궁 박해는 천인공노의 중죄이며 정말로 자신을 해치는 행위다.

산시성 셴양시 공안국 차이훙 분국 부국장 웨이광룽의 휴대폰 번호: 13892061189

(역주: 박해 관련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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