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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하다 경찰에 납치된 남성 20년간 행방불명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후난성 보도) 후난성 출신 파룬궁(法輪功) 수련자가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중국 최남단 하이난성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9월 하이난에서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하다가 납치됐는데 가족은 물론 그 누구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당시 33세였던 그는 실종된 지 20년이 흘렀고, 가족이 계속 찾고 있지만 소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양아이진

후난(湖南)성 화이화(懷化)시 중팡현 양아이진은 파룬궁을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9세 때부터 앓고 있던 간질이 사라졌다. 1999년 7월 중공정권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도 양아이진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4회에 걸쳐 경찰에 납치당했으며, 그 후 수시로 경찰의 위협과 폭력에 시달렸는데 어떤 때는 심한 폭력으로 벽과 바닥에 피가 튈 정도로 구타당했고, 2001년 2월에는 감금되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 직전의 위급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괴롭힘, 납치 및 고문

1999년 박해가 시작된 지 2개월 후인 1999년 9월 어느 날 새벽 4시 향정부 관리 4명이 집에서 납치하여 중팡현 구치소에 15일간 감금한 기간에, 그는 고문 박해를 당하다가 간질이 재발했다.

1999년 11월 양아이진은 아버지 양춘시(楊春希), 어머니 양메이슈(楊美秀)와 그 외 다른 수련생 양만성(楊滿生), 딩샹롄(丁香連) 등 7명과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 무장경찰에게 10명 전원이 폭행당하며 납치됐다. 납치된 그들은 지역 경찰에 인계되어 중팡현 구치소에 감금됐다.

감금된 지 15일 후 양 씨와 그의 부모, 양만성, 딩샹롄은 향 정부로 이첩되었다. 향 관리들은, 믿음을 포기하고 다시는 청원하러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수련자 5명이 거부하자 10일 이상 더 감금한 뒤 석방조건으로 그동안 숙식 수용비 70위안(약 1만 3000원)을 지불하라고 강요했다.

중팡현 ‘610’ 사무실, 현 경찰서, 향 파출소는 합동으로 2000년 3월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가택을 침입해 양아이진을 납치하여 중팡현 구치소에 15일간 감금했다.

2000년 4월 12일 향 정부 4명의 관리는 양 씨, 그의 어머니와 그 외 양윈성(楊雲生), 양슈잉(楊秀英), 양만성, 딩샹롄 등 파룬궁 수련자 4명을 납치하여 세뇌반에 감금했다. 중공 관리들은 소위 민감한 날이라는 4월 25일을 기해 베이징의 청원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납치해 감금한 것이라고 했다. 감금된 수련자 6명은 박해 항의로 단식투쟁을 했고, 3일 후 풀려났다.

2000년 6월 6일 경찰 5명이 트랙터를 타고 양아이진의 집에 들이닥쳐 양 씨를 납치하려고 했다. 저항하자 바닥에 쓰러트린 뒤 다리를 잡아끌어 트랙터 쪽으로 갔다. 그 과정에서 옷이 찢어지고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낭자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웃집 사람이 경찰을 향해 “그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 그러다가 당신들은 그를 죽이겠다”고 소리쳤다. 한 경찰이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공식적으로 책임진다는 서류를 작성해 서명하라”고 대꾸했다.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경찰은 납치를 포기하고 가버렸지만, 다음 날 그들은 다시 와서 양 씨와 아버지를 납치해 25일 동안 감금했으며, 풀어줄 때 부자에게 숙식비 조로 147위안(약 2만 8000원)을 지불할 것을 강요했다.

2000년 11월 어느 날 아침 양 씨가 가족과 함께 집에서 연공하고 있을 때 향 파출소 경찰 9명이 침입한 후 양 씨를 부엌으로 끌고 가서 구타했고, 계속 밖으로 끌어내며 구타했다. 그때 이웃 사람들이 경찰의 구타와 납치를 막았다. 경찰은 그의 부모를 납치해 11일간 감금한 뒤, 3명의 다른 수련생과 함께 풀어주며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다.

2001년 2월 11일 양 씨는 사망한 남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공동묘지에 갔다가 미행하던 경찰에게 납치되어 작은 벽돌집에 감금됐는데, 경찰은 북경에 가지 못하게 한다는 핑계였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방안 화로에 석탄을 피워 두 사람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 아침 식사를 가져온 경찰이 중독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비명을 질렀다. 비명에 깨어난 양 씨의 옷이 불에 탔다. 경찰은 “양 씨가 명상하다가 기절해 몸에 불이 붙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양 씨, 어머니, 그리고 또 다른 수련생 양슈잉은 진상을 알리러 이웃 마을에 갔다가 마을 사람이 파룬궁 수련자 1인당 500위안(약 9만 4000원)의 포상금을 받기 위해 신고했다. 신고받은 완시(灣溪)향 경찰 10여 명이 출동해 그들 3명의 수련자를 납치해 중학교 농구 골대에 수갑을 채우고 1시간 동안 구타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 경찰은 양아이진과 양슈잉을 농구 골대에 수갑을 채워 매달은 뒤 의식을 잃을 때까지 구타하고 매달았고, 당일 밤 훙장(洪江)시 안장(安江)진 바이후나오(白虎腦) 구치소에 그 3명을 감금한 뒤 양 씨와 어머니를 풀어주는 대가로 1만 위안(약 188만 원)을 갈취했다. 양슈잉은 4개월 더 감금된 뒤 풀려났다. 그녀는 2001년 12월 후난성 주저우(株洲)시 바이마룽(白馬壟) 노동교양소(강제수용소)에 18개월간 감금당했다.

2002년 5월 향 정부 파출소 경찰은 지역 내 파룬궁수련자들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수색했는데, 양 씨가 기르던 소 2마리, 텔레비전, 라디오 2대, 부채 등을 강탈했다. 끊임없는 납치, 구타, 감금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나 1200km 떨어진 하이난(海南)성 바오팡(寶芳)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자 경찰은 또 그를 따라가서 양 씨를 납치해 바오팡향 경찰서로 끌고 갔다. 경찰은 2일에 한 번씩 생활 거주 상황을 보고하라고 한 후 계속 감시했다.

2002년 9월 6일 아침 양 씨는 집 옆 잔디밭에서 명상할 때 바오팡 경찰에게 납치되었고, 원창(文昌)시 경찰서 부국장 린밍췬(林明群)의 명령으로 보안과에 감금된 뒤 소식이 끊겼다. 경찰 측은 양 씨를 석방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후 양 씨의 행방을 알거나 본 사람이 없다. 완전히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2002년 9월 6일 양 씨를 체포한 바오팡 경찰서의 경찰관이 작성한 메모

양 씨 가족이 여러 차례 원창시 경찰서를 찾아가면, 린 부국장은 온갖 위협을 가하며 밀어냈다.

양 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못 본 채 사망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원창시 경찰청 민원실에 수십 통의 서신을 보냈다. 그는 2007년 10월 “상황이 복잡하다. 60일 이내에 회신하겠다”는 답장 한 통만 받았다. 그 후 가족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양아이진이 실종된 지 20년이 지났다. 가족은 계속 그를 찾고 있으며 그를 걱정하고 있다. 2006년 3월 중공 정권이 조직적으로 살아있는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들은 더욱 걱정하게 되었고, 슬픔도 커졌다.

지난 23년 동안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되어 강제노동수용소, 교도소, 구금, 정신병원에 갇혔고, 수많은 수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그 외 수련자들은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납치당했지만, 그 후 행방불명된 수련자가 많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파룬궁 수련자 실종 사례는 중국 30개 성, 시 당국, 자치구에 두루 걸쳐있다.

아래는 그의 체포에 관한 경찰 기록 내용이다

원창시 경찰서 사건보고

2002년 9월 6일(금) 오전 7시 30분, 우리 경찰서 우창(吴畅)이 양어장 사장 중아이진(鍾愛金)의 신고를 접수했다. 중아이진은 (만다린어를 하는) 남자가 근처 언덕에서 명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가 파룬궁 수련생으로 의심된다면서 경찰의 확인을 요구했다.​​

전화신고를 받은 즉시 우창은 상급자 푸루진(符儒進)에게 보고한 뒤 보안 책임자와 함께 윈창구이(雲昌貴)는 현장에서 그 남자를 연행했다. 신고자 중아이진과 그녀의 남편은 현장에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푸루진이 신고자 부부의 신고를 확인했다. 신고자 부부 말로는 그 남자가 베이징에서 왔다고 말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고 했다. 원창구이는 상급자 푸루진과 함께 이 남자를 바오팡(寶芳) 파출소로 연행해 신체수색을 통해 파룬궁 학습서를 발견했다. 내용은 손글씨로 쓴 것이었다. 그는 신분증이 없었다.

상급자 푸루진은 임시 거주자 및 반체제 인사등록 자료를 검색했지만, 그 남자의 진술과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그에게 계속 물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왔다고만 말했고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물을 주었지만 그는 마시기를 거부했고 그는 항상 침묵했다.

나는 원창시 경찰국 정치부서에 상황을 보고하고 린밍췬 부국장의 지시를 받았다. 린 국장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이 남성을 원창시 경찰서로 데려가 추가 조사를 요청했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 경관과 윈 경관을 보내 이 남성을 경찰서 민원실로 데려갔다. 원창시 경찰서 정치부서 관계자들과 연락을 취한 후 민원실에서 그 남성을 그들에게 인계했다.

사건보고자: 바오팡 경찰서 푸루진

 

원문발표: 2022년 5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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