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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해 분쇄성 골절 증상이 완쾌되고, 믿음을 견지해 10년 동안 감옥에 갇히다

산둥성 룽커우시 쿵판화가 거듭 중공에게 박해당한 경험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둥 보도) 쿵판화(孔繁華)는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 룽커우(龍口)시의 여성 파룬궁 수련생이다. 그녀는 2003년에 대법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산둥성 여자감옥에서 장기간 정체불명의 약물 박해를 당해 몸이 허약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반응을 조성했다. 쿵판화는 매일 강제로 10여 시간에서 20여 시간 강제 노역을 당하여 몇 번이나 지쳐서 기절했다.

쿵판화(孔繁華)

대법을 수련해 다리 부위의 분쇄성 골절 증상이 완쾌되다

1997년 봄, 41세인 쿵판화(孔繁華 혹은 孔凡華)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전 쿵판화는 올곧아서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공평한 일을 보면 잘 나서며, 성격이 급하여 일 처리가 빠르고, 성미가 불같아 쟁투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한 강인한 여인이었다. 승부욕이 강한 탓에 몸을 아끼지 않아, 30대에 온몸이 병투성이로 두통, 신경관능증(정신적 원인으로 인하여 장부 기능이 잠시 실조한 일종 질병의 총칭), 어지럼증, 기관지염, 코와 입 출혈 등의 고통에 시달렸다. 1997년 초봄 한 차례의 교통사고는 그녀의 생활과 일에 더 큰 재앙을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가망이 없는 가운데, 쿵판화는 직장 동료가 일찍이 그녀에게 파룬궁을 추천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또 병을 제거해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해 준 것이 생각나 쿵판화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쿵판화의 오른쪽 분쇄성 골절 증상은 매우 빨리 완쾌되었고, 각종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심성도 향상되었다. 이익상에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일에서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해 심신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친척과 친구, 직장 동료들은 그녀의 변화를 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하며 모두 칭찬했다.

여러 차례 중공에 의해 박해당하다

그러나 1999년 7월에 장쩌민(江澤民)은 개인적인 질투심에 사로잡혀 세계에 널리 퍼진 파룬궁에 대한 모함을 발동하여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했다. 쿵판화는 확고하게 수련하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은 이유로, 몇 차례 불법적인 구금, 세뇌, 형사 구류, 조리돌림(죄인을 사람이 많은 곳에 공개해 수치심을 주는 처벌 방식), 불법적인 판결을 선고받아 각종 박해를 당했다.

1999년 7월 20일, 룽커우시 정부,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은 장쩌민 정부 깡패집단을 따라 파룬궁 수련생을 대거 납치했다. 그리고 수련생을 룽커우시 둥장(東江)진 실험중학교 운동장 안에 가두어 세뇌, 전향하도록 핍박했다.

(1)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 납치되어 박해당하다

1999년 7월 21일, 당시 그녀는 근무하는 직장의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공장 보안과에 불법적으로 구금되어 1박 2일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익으로 유인해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시하도록 위협했고, 강제로 파룬궁 서적을 내놓도록 했다. 쿵판화는 협조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마음을 닦아 선한 사람이 되도록 지도한 대법 책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았다.

2000년 8월 3일,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쿵판화는 남편 수련생 충페이칭(叢培清)과 함께 베이징으로 갔다. 텐안먼(天安門)에서 그들은 가부좌하고 연공하여 대법을 실증했는데, 베이징 사복 경찰이 한 무리의 귀머거리와 벙어리 사람들을 거느리고 벌떼처럼 몰려들어 쿵판화 부부를 납치해 톈안먼 파출소로 이송했다.

그곳에서 쿵판화와 충페이칭은 경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주소와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차표에서 그들이 웨이팡(濰坊)으로 가는 것을 알아내 베이징 주재 웨이팡 사무소로 납치했다(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구임).

그곳에서 쿵판화와 충페이칭은 불법 경찰에 의해 폭언, 모욕, 구타를 당했다. 특히, 베이징 주재 웨이팡 사무소 주임(대략 2002년경 응보를 받아 48세에 암에 걸려 사망, 밍후이왕에서 보도했음)은 여경들에게 쿵판화의 온몸을 뒤지게 하여 최대한 인신 모욕을 주도록 했다. 그런 다음 구둣발로 쿵판화의 발등을 밟으며 짓밟았고, 주먹으로 머리와 얼굴을 때려 두 발에 멍들고 무감각하게 되어 걸을 수 없게 했다.

젊은 경찰은 충페이칭을 수갑을 채워 라디에이터에 매달았고 얼굴, 귀, 코, 머리를 좌우로 주먹으로 강타했다. 충페이칭은 구타를 당해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고, 치아가 흔들렸으며, 뺨이 시퍼렇게 멍들어 부어올랐다. 몇 시간 동안 폭력을 가하고, 경찰 왕(王) 씨는 쿵판화와 충페이칭을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말로 기만하여 그들을 베이징 주재 룽커우 사무실로 이송했으며, 직장에서 데려가게 했다.

쿵판화는 현금 만 3000위안(약 56만 4000원)을 갈취당했다. 남편 충페이칭은 하이다이(海岱) 파출소에 구금된 후 15일 동안 불법 구금되고 현금 3000위안을 갈취당했다. 박해에 참여한 책임자는 베이징 주재 룽커우시 경찰 마옌후이(馬延會), 하이다이 파출소 소장 쑨지톈(孫積田), 룽커우 공안국의 파룬궁 박해 책임자 두쥔(杜軍)이다.

(2) 세뇌반에서 박해당하다

2001년 4월 28일, 쿵판화는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갑자기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1박 하루 동안 구금된 후, 룽커우시 샤딩자(下丁家)진 세뇌반으로 납치돼 20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박해에 연루된 사람들은 왕청후이(王成會, 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 마다오탕(馬道堂), 치좡다(戚壯大), 류샤오리(劉曉利), 위융루(於永路) 등이다.

(3) 룽커우시 구치소에서 박해당하다

2001년 10월, 대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폭로하기 위해 쿵판화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스티커를 붙였다가, 룽커우 공안국 정보과의 리수창(李樹強), 왕치(王琪), 위리쥔(於立軍)에게 납치됐다.

경찰들은 집에 불법 침입하여 도적 떼처럼 집 안팎을 뒤지고, 냉장고와 식품 상자까지 놓치지 않고, 집안을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 놓으며 개인 물품을 강탈했으며, 쿵판화를 룽커우시로 납치했다. 정보과 과장 리수창은 손으로 얼굴을 때린 후 떠나갔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 재연: 호랑이 의자

왕치(王琪)와 쩌우린(鄒林)은 쿵판화를 호랑이 의자 위에 묶어 놓고, 머리를 쥐어 잡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한 후, 부드러운 고리버들 채찍으로 대단히 고통스럽게 세차게 후려쳤다. 쿵판화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구타당했고, 허리와 다리가 심하게 상처를 입어 여러 번 기절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단념하지 않고 쿵판화를 구치소 밖으로 끌고 가 철창에 수갑을 채우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잠시 눈을 감기만 하면 구타가 멈추지 않았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매우 추운 상황에서 그들은 쿵판화에게 홑옷을 입게 하여 추위에 떨게 했다.

그런 잔혹한 박해 속에서 쿵판화는 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매우 쇠약해져, 그들은 책임질 것이 두려워 직장 책임자에게 쿵판화를 취보후심(取保候審-공안기관이 보증인을 세우거나 또는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처분을 말함)하도록 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4) 재차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중형 10년을 선고당하다

쿵판화는 2001년 11월에 핍박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유랑생활을 하는 동안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밍후이주간’, 진상 소책자와 진상 스티커를 만들어 더 큰 규모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하고 대법을 실증했다. 룽커우시의 사악은 몹시 두려워 여러 차례 비밀리에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2003년 11월 6일 새벽 1시, 옌타이 공안국 과장 옌(嚴) 씨, 룽커우 공안국의 리수창, 왕치, 쩌우린, 왕런첸(王仁乾) 등 불법 경찰들이 연합해 쿵판화 친구의 농장 과수원에 침입해 쿵판화 부부와 마롄펑(麻蓮鳳)을 납치했고, 파룬궁 수련생의 법상, 대법책, 컴퓨터, 프린터, 복사기, 복합기, 복사 용지, 실크 스크린, 휴대 전화, 호출기, 가솔린 삼륜차, 가치가 4000 위안(약 75만 2000원)인 변압기 한 대, 현금 및 기타 개인 물품을 강탈하여 8만 위안(약 1510만 원) 이상의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켰다.

파룬궁을 박해하고 장쩌민의 사악한 집단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2003년 12월 말, 룽커우시의 ‘610’(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한 불법 조직), 공안국, 검찰, 법원이 연합하여 악을 행하여 쿵판화와 충페이칭, 마롄펑, 야오신런(姚新人, 10월에 납치됐음)을 오랏줄로 결박하여 수갑과 족쇄를 채워, 목에 ‘×교’(역주: 중공은 진정한 사교임)분자라는 팻말을 걸어, 악독한 경찰의 잔학한 압송 하에 룽커우 황청(黃城)을 돌며 오전 내내 조리돌림을 하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업신여김과 모욕을 극도에 달하게 했다.

中共整人手段:挂牌游街
중공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 팻말을 걸고 조리돌림하다

이후 쿵판화 등 4명은 중형을 선고받아 쿵판화 10년, 충페이칭 8년, 마롄펑 7년, 야오신런 4년 중형을 선고받았다. 중공 불법 요원은 룽커우 주민들이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2004년 4월 말에 재차 쿵판화 등에 대해 조리 돌림과 인신 모욕을 가했다.

2004년 5월 6일, 쿵판화와 마롄펑은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고, 충페이칭은 산둥성 남자 감옥(박해 사실은 ‘산둥 룽커우시 충페이칭이 당한 고문 박해를 자술’을 참조하시기 바람)으로 납치됐으며, 야오신런은 웨이팡 감옥으로 납치됐다.

산둥성 여자감옥에서 쿵판화는 장기간 독극물 박해를 당했다. 5감구역 감옥구역장 정민화(鄭閔華), 교도원 리옌리(李豔麗), 대장 우샤옌(吳香豔), 장쑤이(姜素藝)는 죄수를 조종하여 식품, 물컵, 밥과 반찬 속에 알 수 없는 약물을 넣어 쿵판화는 몸이 허약해져 정신이 혼미한 현상, 기억력 감퇴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반응을 조성했다. 그녀는 매일 강제로 10여 시간에서 20여 시간 노역을 당했는데, 몇 번이나 지쳐서 기절했다.

2013년 5월 하순에 쿵판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2016년 7월, 쿵판화는 대면하여 파룬따파하오 진상을 전파하다 무고를 당하여, 공안 분국으로 납치당한 적이 있으나 대법을 굳건히 믿어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역주: 관련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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