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명혜망](전편에 이어) 공교롭게도 4월 6일 이혼했는데 9일 최고검찰원에서 전근 비준이 내려왔습니다. 우리 이혼은 학교에 큰 파란을 일으켰고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며 학교의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여론은 다 제게 쏠렸습니다. 학장(나중에 퇴직함)은 루와 갈등이 컸는데, 루가 간다니 좀 편해지겠다 싶다가 못 가게 되자 화풀이를 제게 하며 나가서 일자리를 찾으라고, 학교에 저를 남겨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루도 제게 집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학장이 던져준 베이징 전화번호부를 들고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여러 곳을 다녀도 안 됐습니다. 대학생도 취업 못 하는데 누가 아이 딸리고 집 없고 이혼한 사람을 원하겠습니까? 집 구하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이상하게도 누가 도와줘도 집이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서 제가 깨닫지 못한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왜 사방이 막혔을까?’ 이 복잡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 처리가 좀 거꾸로 됐다고 느꼈습니다. ‘그가 이혼을 제기했고 이혼 후 나는 독립했으니 스스로 주재해야 하는데, 왜 여전히 그에게 끌려다니나? 나는 끌려다니면 안 된다.’ 그래서 학교 당위원회에 편지를 써서 제가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이혼 전에는 남편과 부부 관계라 그의 직장 이동이 제 거취를 결정하므로 따라가는 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르고 이혼 후 그와 아무 관계 없으니 따라갈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전근을 제기한 건 그이지 내가 아니며 지금 상황이 변했다.’ 저는 사실대로 학교 당위원회에 개인 의견과 신청을 냈습니다. 전근 가기 싫고 학교 교육을 위해 미력이나마 바치고 싶다고요. 학장과도 제 생각을 얘기했습니다.
학장은 화가 났지만 저에 대해 알아보고 교수들의 반응을 듣더니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고, 당위원회 연구 결과 저를 남기기로 동의했으며, 당위원회의 잔류 동의 서류를 다시 최고검찰원에 올려 비준받았습니다. 얼마 후 잔류 비준이 내려왔습니다. 학교 지도부가 면담하며 “지난 단계 전근하려던 기간에 삭감된 급여는 보전해주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안 주셔도 불만 없다고 했습니다. 루가 나가서 집을 찾으라는 문제에 대해 저는 루에게 “난 이사 안 가요, 안 나가요, 이 집 물건 중 당신이 갖고 싶은 거 다 가져가고 내겐 적게 남겨줄수록 좋아요”라고 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셋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말이 많았고 별별 소리가 다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집을 속여 뺏으려고 위장 이혼했다고 했고, 어떤 이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이혼했다고 했습니다. 루가 이혼 사유를 전부 제 탓으로 돌렸기에 당시 어떤 사람들은 루를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말하게 내버려 뒀습니다. 서서히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이혼이라는 고비를 저는 이렇게 뚫고 나왔습니다.
우리 이혼을 저는 별거 아니라고 느꼈지만 아버지와 동생들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화내고 상심하며 이 일이 정말 풍기 문란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리(李)가네가 원래 자손이 귀한데 이런 억울한 꼴을 당하니 참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동생들은 전화로 루와 싸웠고 동시에 제게도 화를 내며 “바보 큰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화가 나서 전화하시다가도, 전화기 너머로 슬프게 혼잣말하셨습니다. “만 명 중에도 너 같은 착한 사람 찾기 힘든데 어쩌다 이런 일을 당했니?”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리리야, 괜찮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우리 리씨 집안은 부끄럽지 않다.” 아버지는 루와 올케가 한 짓이 떳떳하지 못함을 말씀하신 겁니다.
루도 이때 여론의 압력을 느꼈고 저를 원망했습니다. “당신 가족이 나한테 이러고 있는데 당신은 한마디도 안 해? 당신이 그들한테 내 좋은 말을 한 번도 안 해서 이러는 거야.” 사실 저는 우리 사이 일을 좋든 나쁘든 가족에게 말한 적 없습니다. 루는 장기적으로 이렇게 사면초가 상태면 안 되겠다 싶어 저한테 공을 들이며, 제가 나서서 갈등을 중재해 주길 바랐습니다. 제 태도는 ‘어느 쪽도 관여 안 하고 말 안 하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잘하겠다’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지금 아주 잘 지낸다는 걸 느끼게 했고, 특히 가족들에게 제가 이혼 때문에 아무 상처도 안 입었고 오히려 더 좋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한동안 루와 제 동생들은 서로 원수 같았습니다. 루는 감당이 안 되어 제게 보호를 요청했고, 그와 올케 둘 다 제가 한마디, 즉 제가 주재해서 그들 결혼에 동의했다는 말을 해주길 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혼은 내 일이라 내 동의가 필요하지만, 결혼은 당신 일이라 부모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 관여해요?”
루는 우리집 근처에 집을 사서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그들 온 가족이 여전히 제게 와서 만두를 빚어달라고 했고, 저는 불평 없이 해줬습니다. 한번은 창춘 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이런 상황을 보고 말했습니다. “리리, 넌 수련이 너무 어렵다, 이건 너무 어려워.” 그녀는 제가 어렵다고 느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분명 인연 관계가 있을 것이고, 이번 생에 제가 괴롭고 그들이 제게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느끼지만, 제 역사를 들춰보면 제가 세세생생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를 일이고, 아마 더 나쁜 짓, 더 악한 짓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이 이미 제게서 그렇게 많은 업을 없애주셨고 저를 위해 무수한 고통을 감당하셨는데, 제 이 작은 어려움이 뭐 대수겠습니까? 루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부는 아니어도 친구는 될 수 있으니까요.
마음을 다 내려놓으니 남들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관계도 잘 처리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서서히 평온해졌습니다. 아버지와 동생들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게 됐고, 어쨌든 친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올케의 이모가 제 계모이고 전남편의 지금 딸이 제 조카딸이니, 어떻게 해도 친척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관계가 좋아진 후 루가 제게 많은 속마음을 얘기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대법 일을 해도 돼. 난 이제 당신을 관할할 수 없어. 딱 여기까지야. 앞으론 더 높은 사람이 당신을 관할할 거야.”
한번은 루의 가족과 함께 외식하러 갔는데 루가 말했습니다. “당신 알아? 주위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을 위한 거야. 사실 다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 우린 원래 부부 인연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인연으로 나타났어. 여전히 당신을 위해서야.” 그가 제 조카에게 물었습니다. “넌 누구한테 감사해야 해?” 조카가 “이 모든 건 큰고모한테 감사해야죠”라고 했습니다. 루가 말했습니다. “맞아, 네 큰고모가 없으면 너의 현재 모든 것도 없어.” 그의 말은 때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지난 세월 그가 제 가족으로서, 비록 그 본인은 진짜로 알지는 못했지만 줄곧 제 수련을 도와주었습니다. 루의 가족은 저한테 잘했고, 루의 아내(원래 제 올케)는 제 마음이 온통 수련에 있고 바르게 걷는다는 걸 알아 저를 존중했습니다.
루의 대법에 대한 태도는 비교적 좋았습니다. 1999년 ‘7·20’ 이후 그의 친구가 베이징 방송국 기자였는데 그를 인터뷰하여 우리 이혼 일을 가지고 대법이 나쁘다고 날조하고 모함하려 했지만, 루는 거절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그는 대법서적을 보관해줬고, 제가 나오자 웃으며 책을 돌려줬습니다. 저는 그의 선한 행동을 칭찬했습니다. 제가 박해로 유랑한 후 그 부부는 제 아들을 돌봐주었고 저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정신적 압력을 견뎠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대법에 대한 일념만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상편 끝. 하편은 아마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끝난 뒤 서술할 것 같습니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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