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각도를 바꿔 문제를 보다

글/ 스쟈좡(石家莊)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는 우리 지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으로 많은 수련생이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 부동한 환경에서 각자의 생각을 말한 적도 있다. 심지어 우리 지역 전자우편에도 직접 서술, 논평한 장문의 편지를 공개 발표한 적이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 지역에서 상업을 하는 모 수련자 부부가 장사에 투자하기 위해 최근 수련생 사이에 자금을 마련하고, 융자하고, 단기 대부를 했다. 그런데 개인 사업에 차질을 빚어 극도의 곤경에 빠져 대량의 자금을 갚을 수 없게 된 사건이다. 이 일은 현지 수련생 사이에 아주 큰 충격을 주었고 영향이 매우 큰데 현재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우선 인식을 좀 말하겠다. 수련인은 대법수련 환경에서 돈과 관련하여 수련생을 시장으로 간주하는 이 자체가 법을 위배한 것이고 사존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대법을 파괴하는 유전형식으로 법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존님의 설법 두 단락을 아래와 같이 삼가 인용한다. 첫 단락은 “파룬따파 의해 – 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에서 인용했다.

제자: 어떤 사람이 벽에 거는 달력을 찍어서 원가대로 수련생들에게 나눠주면서 한 푼도 벌지 않으려고 하는데 되는지요?

사부: 이런 일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이 수련생이 참으로 좋고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을 해주려고 한다면 원칙상 또 아무 것에도 위배(違背)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속에는 금전교환의 문제가 있기에 원가라 해도 돈을 만진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러한 일을 피하고 돈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당신이 돈을 만졌기에 시간이 길어져 자칫 잘못하면 마음속으로 평형을 잃을 수 있다. 늘 이러한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내 이건 밑지는 장사구나. 나의 교통비도 여기에서 뽑아야 하지 않는가, 내가 여기에서 손해를 좀 보았는데 마땅히 추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리하여 그것은 사람의 각종 마음을 조장할 수 있다. 점차적으로 이런 데서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왜 여러분에게 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석가모니는 이천오백 년 전에 그들이 돈과 재물을 만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거느리고 심산 수림에 가서 수련하였다. 오로지 동냥하는 사발 하나만 있었을 뿐인데, 또 이 동냥사발에 대해 한 차례 설법을 하였다. 동냥사발마저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잘못하면 사람을 심하게 교란할 수 있으며 사람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일에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 해 예수 역시 사람들을 거느리고 어디에 가면 어디에서 먹으면서 돈을 만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일을 말하면서 이 사례를 들 뿐이다. 당신들은 아마 이렇게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반드시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 나 역시 당신이 이렇게 하도록 가르칠 수 없다. 수많은 해가 지난 후에 사람들은 리훙쯔(李洪誌) 시기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법을 또 전해갈 수 있겠는가? 벌써 끝장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 끝장나고 만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갖고자 하는데 가지려면 당신 자신이 가서 찍고 당신 자신이 가서 사진을 뽑도록 하라. 하지만 우리는 되도록 수련생 내부에 한해서만 해야 한다. 장래에 이러한 것은 우리들이 아마 사회적으로 공개 발행할 것인데, 나의 달력마저 책 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장래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통일적으로 관리할 것이므로 절대 자기 나름대로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또 대법을 더럽힐 수도 있다.

어떻게 파는가, 원가대로 받아도 안 된다. 이 면에서 어떠한 마음이든 일지 말아야 하는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이 수련하여 제고하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데, 반드시 이런 형식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법을 얻게 하기 위해 법을 좀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낫다. 사람 心性(씬씽) 상의 제고는 외형적인 것에 비해 훨씬 더 낫다. 이런 것은 法輪功(파룬궁) 연구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총보도소, 분보도소, 보도소에서 모두 돈을 만져서는 안 된다. 우리 法輪功(파룬궁) 연구회는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나의 동의를 거쳐서 한다. 각종 명목으로 사사로이 한 것은 모두 안 되며 권리 침해이므로 사회의 법률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단락은 “각 지역 설법 5 –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에서 인용한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늘날 이 특수한 형세·특수한 환경 하에서, 또 박해를 받는 이 특수한 형식이 나타났기에, 나는 다시 이 일을 좀 말해 보겠다. 이러한 책은 속인 사회 중에서 보급할 수 있으며, 대법제자들도 대법제자가 하는 매체를 이용하여 광고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속인 사회 중에서 널리 보급할 수 있으며, 여러분은 협조하여 할 수 있다. 모두 좋은 일이다. 단지 대법제자들 속에서 파동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이후에 법회에서, 대법의 책을 제외하고, 법 자체가 아닌 어떠한 자료·녹음 녹화(音像)자료 등등은 모두 법회에서 팔지 말아야 한다. 법회와 수련생을 시장으로 여겨서는 더욱 안 되며, 대법제자를 상대로 하여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홍법과 진상을 알리는 등 자료를 사회에 보급해야 하는바, 바로 이러하다.

대법이 허락하지 않고 사존께서 허락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나 리훙쯔(李洪誌)가 걸어가는 매 한 걸음은 모두 후대 대법(大法)의 유전(流傳)을 위해 정한 불변불파(不變不破)의 형식이다. 이렇게 큰 법은 일시에 열조를 올리고 끝마칠 일이 아닌즉, 만세(萬世)토록 영원히 조금의 편차(偏差)도 생겨서는 안 된다.” (“정진요지 – 법정(法定)”)

나 개인적인 이해로는 대법은 돈을 움직이지 않고 수련생을 시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존께서 이에 대해 아주 똑똑히 논술하셨는데 이 단락에 대한 이해는 본 교류의 중점이 아니다.

내 생각에 절박하게 교류해야 할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수련 중에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만나는 형형색색의 사건과 교란과 기괴한 현상은, 사건 자체의 표현과 결과가 한 방면이고, 또 한 방면은 매 수련자 자신이 어떻게 대하는가, 어떤 사유(정념 또는 사람의 마음)로 대하는가 이것이야말로 더욱 주목해야 할 관건이다. 왜냐하면 수련 중에는 우연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 가지 일이 발생하여 이렇게 큰 영향이 있는 것은 필히 원인이 있고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드시 더욱 높은 위치에서 사고하고 법리로 가늠해야 한다.

나는 한 가지 현상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형식으로 해당 수련자 부부의 문제가 심각하고 표현이 너무 차(差)하고 법을 파괴하며 대법제자 중에서 돈을 사취했다고 엄숙하게 비평했다. 내 생각에 기본적인 표현 역시 이러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나를 말하고자 한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당초에 몇 만 위안, 몇 십 만 위안, 심지어 더욱 많은 돈을 해당 부부에게 빌려 주었을 때 그 가정의 남자 수련생(남편)과 익숙하지 않았다. 여성 수련생(아내)과는 비교적 익숙했다. 많은 사람이 여 수련생에 대해 인상이 괜찮았기에 여 수련생에 대한 신임에서 출발하여(수련을 괜찮게 했기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감히 투자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에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가족은 최근 몇 년간 장사가 줄곧 너무 엉망이고 어려움이 너무 많아 끊임없는 단기 대부로 “수혈”하고 있었지만, 갈수록 어려워져 빚이 산더미 같았는데 이것이 바로 실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여 여 수련생이 돈을 빌릴 때 솔직히 말하지 않은데 대해(또는 나쁜 처지의 실정을 숨겼다) 대단히 화가 나서(잠시 이 단어를 사용한다. 부동한 사람은 심태도 같지 않다) 여 수련생이 기만했다고, 사기쳤다고 잇따라 지적했다. 현재 여 수련생에 대한 비평은 심지어 가정에서 직접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남 수련생보다 높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고 사고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은폐된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가정한다면, 한 가지 가정은, 만약 애초에 여 수련생이 사람들에게 실제상황을 얘기하고 직접 장사를 잘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분칠하거나 은폐하지 않았다면, 또는 다른 한 가지 상황은, 실제로 장사가 그리 엉망이지 않고 당시 전망이 낙관적이었다면 많은 사람은 여 수련생이 “기만”했다고 질책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또는 여 수련생의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도 이렇게 큰 소리를 안 낼 수도 있었을까?

사실 내 생각에 여기의 “기만 했는가” 또는 “기만하지 않았는가”, “어느 정도까지 말했는가”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다. 여 수련생이 당시 진실을 말했는가 또는, 당시 그 가족의 장사가 실제적으로 어떠했는가에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법 중에서 돈을 움직이고 수련생 중에서 돈을 움직였으며 수련생을 시장(자금 조달 또는 투자시장)으로 간주한 자체가 바로 옳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사악에게 빈틈을 내주고 구세력에게 이용당하여 큰 실수를 저지른 이것이야말로 관건이다! 모두들 왜 이렇게 엄숙한 문제를 똑똑히 인식하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당사자, 주도자, 참여자, 내막을 아는 자, 모두 다 반성해야 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개인의 손실이 너무 크거나(또는 다른 사람의 손실을 동정하고 대법의 손실에 의분하여) 시선을 여 수련생이 “기만”한 문제에 집중했다. 다시 말하면 설사 여 수련생이 그 당시 “기만”하지 않았다 해도 돈을 움직이는 것은 법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필연코 사악에 심각한 박해를 당하는 결과를 개변하지 못할 것이다.

또 한 가지 가정을 하자면, 고층 공간에서 보니 현지의 이렇게 많은 수련인이 당시 여윳돈이 있고(또는 친척 친구가 여윳돈이 있다) 본인은 대법의 엄숙함과 돈을 움직이는 문제에서 인식이 똑똑하지 못하고, 마음에는 아직도 닦아 버리지 못한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이 있다.(수련생의 정, 이익에 대한 마음 등) 범위와 면적이 모두 작지 않은데 이는 구세력에게 매우 큰 구실과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구세력이 보고도 못 본 척 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 이 부부를 선택한 것은 그들 부부가 법리를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 마음이 너무 무거우며 주이스(主意識)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수련 중의 많고 많은 “현저한 착오”는 마침 구세력에게 선택되어 안배된 것이다. 일단 선택되면 그들 개인의 힘으로는 이미 물리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큰 환경이 없고 정체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구세력의 “판”도 짜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지역의 전반적인 수련이 이러한 층차와 수평을 이뤄 이 부부가 없어도 구세력은 다른 모모모를 선택해 그곳 수련생들에게 한 번은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본다. 즉, 그들 부부의 수련과 미래를 훼멸하고 그들이 법을 파괴하여 훼멸의 변두리에 처한 사실을 조성하고 동시에 모든 참여자, 내막을 아는 자에게 소위 고험과 검사를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보고 동시에 그 지역 대법자원에 중대한 손실을 조성한다.(자금 액수가 이렇게 크다)

여기까지 분석하자 나의 인지능력 범위 내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구세력은 정체에 존재하는 문제(법공부가 부족하고 사람의 마음이 너무 무겁다)를 이용하여 이런 대표를 선택하여 그들에게 법을 파괴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동시에 더욱 많은 사람 마음을 휘저어 거대한 경제적 손실도 조성했다.

내가 여기에서 진지하게 교류하고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반드시 구세력의 음모를 간파하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파괴를 부정하고, 매 사람이 철저히 귀정(歸正)하고 자신을 그 속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먼저 번 수련생들은 그들 부부를 호되게 비평했고, 그들이 법을 파괴하고도 잘못을 뉘우치는 게 부족하고, 자율적으로 엄격하게 노력하여 보상하려는 자세가 없다는 데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정법과 자신의 누락을 보는 각도에서 더욱 깊이 사고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정체적인 문제야말로 중점이고 관건이다. 만약 정체적으로 각자의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들 부부가 뼈저리게 뉘우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희망을 건다면, 전면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는 힘이 없을 것이다. 그들 부부는 구세력에게 단단히 통제당해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심지어 그들의 사업이 실패한 원인은 근근히 그들 개인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체적인 문제의 추진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 부부의 표현에 변화가 있는지의 여부가 난국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열쇠가 아니다. 기껏해야 많은 열쇠 중 비교적 주요한 하나의 열쇠일 뿐이다.

사존께서 “2007년 뉴욕법회 설법” 중에서 설법하셨다. “책임자가 문제가 있으면 틀림없이 책임이 큰데 이 점은 여러분이 알고 있다. 사부는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어 모두 관여하고 있는바 틀림없이 그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제고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나치게 그의 문제에 집착한다면 역시 이 일을 통해 당신의 문제를 폭로할 것이며, 당신으로 하여금 이 일을 통해 당신에게 자신의 문제를 보게 하여, 그의 문제를 아마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인해 잠시 해결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그럼 더욱 많은 사람을 이끌어 이 일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데, 좋다, 그럼 이 일을 통해 모든 문제들을 몽땅 폭로시켜 당신들로 하여금 보게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부의 법신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존께서 “2015년 뉴욕법회설법” 중에서 설법하셨다. “당신이 그에게 찬조해주고 자금을 대줄 때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당신은 반드시 알아야 하며,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비록 그에게 돈을 줬을 뿐이지만, 당신은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지지한 것과 같으므로 당신도 잘못했다. 따라서 구세력은 당신이 속아 넘어간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것은 당신이 한 무리이며 당신이 그를 지지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들에 대해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전면적인 구세력 부정이 급선무이며 마땅히 정확하게 사람마다 질책과 원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설사 모 부부가 정말로 법을 파괴하여 우리 정체에 거대한 손실을 조성했다 해도 오직 그들에게 여전히 인신(人身)이 있고 아직 생존한다면 잘못을 고치고 보완하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

내 생각에 잘못을 범한 수련인에 대한 이성적이고 자비로운 심태는, 그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기회를 주고 그를 구해야 한다. 어쩌면 사존님의 가호 하에 어느 날 그는 깨달을 것이고 잘못을 뉘우칠 것이며 바른 길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줄곧 깨닫지 못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훼멸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훼멸시킨 것은 자신이 분발하지 않은 것과 구세력(사악)이다. 우리는 사존님과 함께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에서 설법하셨다. “사부는 바로 사람을 구하고 있고, 누구를 처리하지 않는다.”

수련에서 생각한다.

1. 수련인의 질책과 원망은 다른 공간에서 거대한 간격과 중압을 형성하여 인위적으로 정법과 귀정의 난이도를 증가할 수 있다. 우리는 구세력이 그에 대한 안배와 이용을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력이 정법 수련인을 훼멸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비롭고 엄정한 마음으로 도와주어 그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2. 사람마다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한다. 또, 발정념을 많이 하여 자신의 문제와 요소를 해체하며 구세력이 붙잡고 놓지 않을 핑계와 작용점을 주지 않는다.

3. 매 사람이 인식하여 수련의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의 일면은 적은 관용과 지혜와 노력으로도 필히 손실을 되찾아 올 수 있다. 내가 알기로 모 부부도 잘못을 뉘우치고 결점을 보완하려는 소망이 있다. 그 본인의 문제를 폭로했는데 그들에게 일정한 관용과 지지와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개인 수련상태가 바뀌어 전반적으로 귀정한 후 최종적으로 우리의 경제적 손실 만회를 포함하여 반드시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결속 지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동시에 사악이 한 명의 수련생도 훼멸시키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한 명도 적어져서는 안 된다! 한 가지도 손실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사존께서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이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존께서 “각 지역 설법 4 –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중에서 설법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전히 그 한마디 말인데, 나는 한 사람도 빠뜨리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사부의 생각은 흔히 당신들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 어떤 때에 당신들이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은 제도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은 어떠어떠하다고 느낀다. 나는 당신들과 같은 생각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또 우리에게 주의를 주셨다. “당신들은 나를 위해서 함부로 한 사람도 내버려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어떠한 착오가 있고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막론하고 나는 모두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물론, 인류사회는 필경 한 무리의 이미 안 되는 그런 세인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들이 좋을 대로 하게 놔둬라. 내가 오늘 말하는 것은 주로 우리 대법제자가 더욱 잘해야 하고, 법을 얻은 사람 그를 소중히 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한 수련생에 대한 구원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그녀)가 아직 육신과 선념이 있다면 말이다. 구세력에게 자그마한 공간도 남겨주지 않아야 하는 바 우리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 2015년 12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 정법수련마당 > 이성인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31/3214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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