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네이멍구 대법제자
[명혜망]
1.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 밑바닥의 이기심을 비추다
올해 여름방학에 외조카가 우리집에 와서 제게 공부를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올해 조카의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제법 많았는데 작년 여름방학에는 숙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작년 방식대로 조카에게 숙제를 내주었고 결국 조카는 학교 숙제와 제가 낸 숙제를 모두 끝낸 후 새로운 진도를 나갈 시간이 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제가 수업하는 장소는 신도시였고 외조카는 구도심에 있는 우리집에 머물렀기에 저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야 조카의 공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물어볼 때마다 조카는 몹시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였고 이 때문에 저도 점차 묻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저한테 수업을 듣지 않게 하는 편이 더 낫고 저도 좀 편하겠다고 생각했으며 ‘인생의 길은 모두 안배된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변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이고 안일을 추구하며 남의 일이라 뒷짐 지고 방관하는 심리라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외조카가 돌아갈 날이 다가왔을 때 저는 어머니께 미리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조카 공부를 봐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저를 나무라기 시작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정말 공부를 봐줄 생각이었다면 신도시에 데려가서라도 봐줄 수 있었다고 하셨고, 제가 돈 버는 데 바빠서 조카 공부를 봐주는 건 돈이 안 되니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질책을 듣고 그 자리에서 폭발해 어머니와 곧바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어머니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따졌고 심지어 덕이 없다고 욕까지 했습니다.
며칠 전 친조카가 결혼해서 저는 고향에 돌아간 후 원래 어머니께 돈을 좀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조카 결혼에 축의금으로 1만 위안을 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또 트집을 잡으며 어머니가 너무 많이 주셨다고 불평했습니다. 원망심, 질투,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아버지는 큰언니에게 아파트 한 채를 혼수로 주셨습니다. 이후 옛집이 철거되면서 아파트 세 채가 나왔는데 그중 한 채는 당연히 부모님 몫이어야 했지만 부모님은 받지 않으셨고 집안의 여러 형제자매도 모두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 큰언니에게 주기로 결정하며 나중에 큰언니가 부모님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큰언니 아들이 둘째를 낳으면서 큰언니 부부가 외지에 아이를 돌보러 갔고 이 일로 인해 제 마음은 몹시 불공평하다고 느꼈습니다.
큰언니네가 집을 더 많이 받았으면서도 지금은 부모님을 돌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저는 이간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께 “무슨 일 있으시면 언니네더러 돌아오라고 하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련인은 입을 닦아야[修口]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큰형부를 깔보았기에 저는 한 번도 그를 형부라고 부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조카 결혼식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수련생인 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현지 수련생들은 아직 초등학생인 외조카를 우리집에 데려와 제가 키우기를 바랐습니다. 조카도 어린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집에 오면 계속해서 좋은 수련 환경을 가질 수 있고 수련생들도 조카를 돌보고 키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심리적 압박이 매우 컸고 온갖 사람 마음과 책임지기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이 아이를 우리집에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이기적이라고 말하자 저는 그때 그 수련생에게 원망심과 보복심이 일었고 몹시 예민해졌습니다. 때로는 수련생이 무심코 던진 말이 제 귀에 들어오면 저는 그 수련생이 저를 비웃고 있다고 느꼈고, 지금까지도 그 수련생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어난 한 가지 일로 저는 수련생이 당시 그런 말을 했을 때의 마음이 반드시 제가 생각했던 것과 같지는 않으며 제 의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은 저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입니다. 그날 제가 어떤 아이의 어머니에게 학교 방학 일정을 묻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 학부모는 반에서 공지된 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그 아이의 같은 반 친구도 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학부모가 이미 제게 학교 방학 일정을 알려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함부로 추측하며 이 어머니가 잔머리를 굴려 방학 동안 아이가 제게 수업을 듣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녁이 되자 그녀는 제게 답장을 보내 아이의 방학 일정을 알려주었고 아이가 수업에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은 제게 의심하는 마음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주관적인 상상에 기대어 결론을 내리는 자아의 강경함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요 몇 년간 가족과 함께 지낸 일들을 되돌아보니 저는 제 수련에 많은 문제가 존재함을 깊이 느낍니다. 예전에 수련생이 저를 이기적이라고 했을 때 저는 그로 인해 수련생과 틈이 생겼고 보통 사람의 대립하는 마음으로 수련생을 멀리하고 원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련생의 말은 정곡을 찌른 일깨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날들을 너무 진짜로 여겨 평화롭고 안일한 생활을 추구하려 했고 번거로움을 피하려 했으며 마음과 힘을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가족의 공부를 봐주는 일부터 크게는 외조카를 데려와 키우는 일까지 모두 사람의 생각으로 대했고 사심 없이 저 자신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사람 속의 생활은 연극에 불과하고 오직 대법만이 주요 줄거리라는 사실은 더더욱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가 내린 결정은 수련생들의 이해를 받지 못했고 가족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심지어 수련인으로서 친척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등 기본적인 수양조차 갖추지 못했으며 마음속에 저울을 하나 품고서 친정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무게를 달아보며 누가 약속을 저버렸는지, 누가 일은 안 하고 이득만 취했는지 따졌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니 자연히 도량이 좁고 편파적이었습니다. 이는 대법이 수련인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너무나도 거리가 멉니다.
제가 큰언니가 재산을 더 많이 차지하고도 부모님을 돌볼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질투할 때 저 자신은 생각해보았습니까? 저 역시 사존과 신성한 서약을 맺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법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중생구도이고 친척과 친구 또한 중생이며 심지어 우리와 더욱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들에게 이타적으로 선하게 대하지 못했고 가족 환경을 원만하게 조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당시 하늘의 뭇 신들 중 누구나 서약을 맺고 사부님을 따라 내려올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굳게 다짐하며 나서서 약속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부님께서는 인간 세상에 온 저를 위해 자비롭게 길을 닦아주시고 수련을 안배해주셨으며 제가 인연이 닿아 득법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모두와 서로 돕는 가운데 수련의 길을 잘 걷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 수련과 가정 갈등을 처리할 때 말 한마디에 폭발하고 이기적이며 억세고 물러서지 않는 성격을 드러냈고 때로는 전혀 수련인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 역시 수련의 자원을 차지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모습이 아닙니까? 큰언니 부부의 행동은 그들과 제 부모님 사이의 인연 관계 때문이며 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니 저는 제 자신을 신중하게 돌아보고 사심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사람 속에 미혹되어 이익에 교란받고 사람의 정에 얽매이며 득실을 걱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 딸의 일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속 집착을 드러내다
딸은 대학을 졸업한 후 순조롭게 어느 학교에 채용되어 교사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제 이익심도 점차 내려놓게 됐습니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취업이 매우 어렵기에 저는 늘 경제적 압박을 크게 느꼈고 딸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딸이 직장을 얻자 저는 돈을 쓰는 데 있어 예전처럼 깐깐하게 따지지 않게 됐고 마음가짐이 바뀐 후 제 보충수업반에 배우러 오는 학생은 오히려 늘어났으며 수년간 이어졌던 불안감도 마침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연이어 찾아왔습니다. 딸이 업무 스트레스가 커서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집으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딸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불평이 생겼고 매일 딸을 타일러야 해서 제 마음도 무척 피곤했습니다. 최근에야 저는 저 자신을 찾게 됐고 딸의 행동이 곧 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문제에 부딪히면 조급해했고 심지어 남편조차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딸이 당신이랑 똑같네.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따져? 인생은 다 연극이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제가 어찌 이 이치를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다 보면 여전히 인간 역할에 깊이 빠져들고 넋을 잃곤 합니다. 특히 딸이 일에 대해 불평하며 사직하려 할 때마다 저는 두려움이 일었고 딸이 정말 일을 그만둬서 안정적인 경제 수입원을 잃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또한 딸의 일이 순조롭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모두 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딸과 사이가 아주 좋은 한 선생님의 반에 유독 장난이 심한 아이가 있어서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퇴학시키고 싶어 할 지경이라고 딸이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반응은 그 아이가 기필코 퇴학당했으면 하는 것이었고 잠재의식 속에는 다른 선생님의 열악한 교육 환경과 대조되어 딸이 가르치는 반 학생들이 훨씬 관리하기 수월하다는 점이 부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지저분하게 남과 비교하는 마음과 명예욕이 숨어 있었습니다.
딸이 가르치는 학년은 1학년 어린아이들이라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딸은 아이들을 아주 엄격하게 통제했고 걸핏하면 큰 소리로 훈계했으며 심지어 다른 선생님들조차 딸이 교육 방식에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유아 교육을 잘 아는 남편은 딸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과 가혹하게 대하는 건 달라. 매번 반 전체에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의 유연성에 영향을 주고 발달에도 좋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말한 출발점은 딸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을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제 첫 반응은 딸이 이 학년을 다 가르치고 나면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날 텐데 가르칠 때 가혹하게 대했던 점이 딸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마음 씀씀이와 비교해 보면 참으로 수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오늘 아침 딸이 출근하며 나설 때 그저 “저 내려가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엄마라고 부르지조차 않았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다소 불편했고 아이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을 안으로 찾은 후 저 역시 아버님을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람 세상의 예절과 효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질투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집착까지 뒤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바쁘게 지내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은 매일 여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저는 줄곧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 딸이 변했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반을 관리하는 몇 가지 합리적인 조언을 해주며 칭찬과 격려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라고 해도 딸은 늘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공간장에도 고집스러운 영체가 존재하여 늘 자기 의견만 내세우고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떻게 변화하고 층차를 높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정념을 발하여 이 생명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딸과 소통하며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집중력은 5분 정도밖에 안 돼. 네가 아이들에게 40분 내내 계속 집중해서 수업을 듣게 하려는 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거야.”
뜻밖에도 이번에는 딸이 그 말을 귀담아들었고 반으로 돌아가 격려 방식의 교육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 정말 예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변화된 선생님에 대한 찬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지 다짜고짜 딸에게 사탕 한 알을 건넸습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후 모두 딸을 에워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거렸으며 딸은 뭇별이 달을 떠받들듯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유난히 행동이 바르고 착했습니다.
3.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심성을 닦다
저는 A 수련생과 줄곧 협력하여 직접 대면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처음 광장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해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알리기까지 약속된 날짜가 되면 춥든 덥든 굳건하게 나갔습니다. 방학 기간에는 제가 하루 종일 수업을 해야 했기에 진상을 알리러 가는 때가 되면 그 이틀 동안의 수업을 휴강했습니다. 우리 둘의 협력 방식은 기본적으로 제가 주도해서 말하고 A는 옆에서 정념을 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유난히 추워서 저는 둑 위에서 스쿠터를 타고 가다 손발이 거의 동상에 걸릴 뻔했습니다. 저는 멈춰 서서 입김으로 손을 녹인 뒤 다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스쿠터에 올라타서 조금 달리자 또다시 손발이 꽁꽁 얼어 움직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가는 내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고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온몸이 속부터 겉까지 꽁꽁 얼어붙었지만 구원받은 중생을 생각하니 마음만은 따뜻했습니다.
또 어느 해 겨울에는 폭설이 내렸는데 큰길에 행인이 한 명도 없어서 우리는 상가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의논했습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려 노면이 몹시 미끄러웠기에 우리 둘은 서로에게 지팡이가 되어주며 팔짱을 끼고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가 안으로 들어가서 A가 먼저 다가가 옷을 사겠다고 말을 걸면 저는 A와 호흡을 맞추며 점원에게 각지에서 일어난 뉴스 사건을 꺼냈습니다. 상대방이 맞장구를 치기만 하면 저는 바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진상을 명백히 알고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큰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우리는 학교, 유치원 입구와 공원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런 장소들을 웬만큼 돌아다닌 뒤에는 병원에 가서 알렸습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었고 주변 읍면이나 농촌에서 온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은 매우 순박했고 진상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마음속 장벽 하나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는 각종 환자들이 모여 있고 온갖 약 냄새가 섞여 있었기에 예전에 저는 병원에 가기만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구역질이 났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오히려 병이 난 것처럼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저는 A와 협력하며 매번 병원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점차 이 증세가 사라져서 병원에 가는 것이 다른 장소에 가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가장 큰 도전이 약 냄새가 아니라 담배 냄새였습니다. 특히 병원의 간병인들은 휴식할 때 복도의 특정 구역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것을 좋아했는데 매번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항상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말을 건네야 했습니다. 게다가 흡연자 코앞까지 다가가야 해서 온몸이 매연에 그을리고 불에 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와 A는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극복해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적은 정류장에서 한 중년 여성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녀는 현지에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작은 여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제가 진상을 다 알린 후 호신부(護身符)를 건네자 그녀는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 들었고 두 손으로 호신부를 받쳐 얼굴에 대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게 바로 제가 찾던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어디 사람인지 묻자 저와 고향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거리감이 부쩍 좁혀졌습니다. 저는 마을에 사람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댁과 친정 마을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며 그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진심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묵송하라고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진상을 알려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자 그녀는 꼭 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2년 전 어느 겨울 제가 병원에 진상을 알리러 갔을 때 한 여성이 병원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말씨와 옷차림을 보아하니 체제 내에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제가 대법 진상을 알려주자 그녀는 계속 듣다가 제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이미 58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두 살만 더 먹으면 60세인데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계속해서 이 말을 되풀이하길래 저는 제 몸 상태가 아주 좋고 아무런 병도 없으며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이렇게 젊은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마지막에는 제게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까지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수련 후 본체(本體)가 변하여 유난히 젊어 보이는 모습 덕분에 중생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그들이 훨씬 수월하게 삼퇴를 하게 된 사례들은 더 있지만 여기서는 다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진상을 알리러 나갈 때마다 반드시 정념을 발하여 인연 있는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진상을 듣고 구원받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진상을 알리러 나갈 때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회의 현주소와 악당 정권에 대해 중생들이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모습에서 저는 더 큰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강낭콩을 살 때 노점상과 올해 큰 재난이 닥쳤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제게 “집권자가 덕이 없으니 민중이 재앙을 겪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70대 노인 한 분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병원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베이징 병원에는 사람이 더 많아요. 외국은 안 그러는데 우리 중국만 이렇습니다. 중국은 곧 끝장날 겁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엔 다 농약과 화학비료가 들어가 있고 환경 오염도 심각한 데다 관리들은 죄다 탐오 부패를 저지르니 중국인이 중국인을 해치는 꼴이죠.”
이런 중생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공산당은 서양에서 온 유령이며 진화론과 무신론이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고 도덕을 중시하지 않으며 사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그들을 도태시키려 할 때 그들은 아주 쉽게 수용하고 인정하여 순조롭게 삼퇴를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할머니께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진심을 다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말해주자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즉시 소리를 내어 외웠습니다. 그 후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마주쳤는데 할머니가 자리를 떠나기 전 갑자기 제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입맞춤을 하며 “미인, 안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스스로 구원받은 사실에 기뻐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물론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마음속 깊이 숨겨진 집착과 사람 마음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일부러 A에게 신신당부하며 “판을 엎지 마세요. 신이 점찍은 일은 반드시 끝까지 가는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수련생이 저와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짝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며 이 말을 한 배후의 동기는 수련생을 책임지려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이었고 공산당 당문화(黨文化)로 사람을 겁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저에게는 과시심,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수량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어서 매번 진상을 듣고 탈퇴한 사람이 많을 때면 수련생이 묻지 않아도 제가 은연중에 알려주곤 했습니다. 지금 저는 원고를 쓰며 이러한 집착들을 똑바로 직시했고 이 지저분한 사람 생각들을 해체하여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하려 합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정법 시기에 반드시 대법에 비추어 저 자신을 닦고 착실히 수련하는 데 매진하며 사람을 구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6/51616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6/51616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