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고난 속에서 법을 붙잡고 수련하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다

—2008년 중공이 올림픽을 개최할 당시 감금됐던 기간의 수련 경험

글/ 중국 푸젠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여름, 중공 악당은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 대법제자들을 대대적으로 불법 납치했고, 저 역시 노동수용소로 납치됐습니다. 검은 소굴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곧바로 어떤 감방에 독방으로 감금됐습니다. 이 감방은 문과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실내에는 도청과 감시를 위한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으며, 노동수용소에서는 1~2명의 바오자(包夾, 수련생을 감시하는 수감자)를 배치해 실내에서 전담해 대법제자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1. 법을 스승으로 삼아 박해를 해체하다

노동수용소에는 ‘전담 관리팀’이 설치돼 있어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고 박해하는 일을 전담했는데, 불법적으로 잡혀 온 모든 파룬궁수련생은 전부 이곳에 집중적으로 갇혔습니다. 모든 감방에는 감시 설비가 설치돼 있었고 매일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노동수용소의 각 노동팀에서 수감자를 선발해 전담 관리팀으로 보냈고, 이들은 경찰의 훈련을 거친 후 경찰과 협력해 파룬궁수련생을 매일 24시간 동안 밀착 감시했습니다.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더 많이 전향시킬수록 더 많은 상금과 복지 혜택을 받고 승진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바오자는 경찰에게 더 잘 협조하고 파룬궁수련생에게 더 악랄하게 굴수록 형기를 감면받아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노동수용소의 경찰과 수감자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결탁해 공동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습니다.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며 전향을 거부하는 모든 수련생은 전부 독방 감방에 따로 갇혔고, 창문과 유리는 모두 두꺼운 종이로 빈틈없이 발려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24시간 실내에 갇혀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채 외부와 단절됐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는 반드시 같은 층의 십여 개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공공장소, 복도, 화장실, 욕실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비로소 바오자의 인솔하에 감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평소 구매해야 하는 일상생활 용품은 먼저 쪽지에 적어 바오자를 통해 경찰의 결재를 받아야 했으며(치약, 비누, 화장지만 살 수 있었고 매달 소비 금액은 최저 한도로 제한됐습니다), 그런 다음 특정 시간을 기다렸다가 외부 업무를 보는 수감자가 일괄적으로 매점에서 구매해 바오자에게 넘겨주면, 다시 바오자가 파룬궁수련생에게 전달했습니다.

전담 관리팀이 설치한 이런 ‘감옥 안의 감옥’은 파룬궁수련생의 모든 인신 자유를 최대한 박탈했고, 당연히 파룬궁수련생 가족의 면회 권리도 박탈했습니다. 전담 관리팀이 중점적으로 박해해 전향시키려는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A 감방에 독방으로 갇혔는데, 이곳의 바오자는 모두 선발된 억지스럽고 교활하며 독한 자들로 여러 번 노동수용소에 들어온 수감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노동수용소 검은 소굴에 들어가자마자 A 감방에 갇혔습니다. 바오자는 감옥경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주 고의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낮에 아무도 없을 때조차 문을 열어 제가 화장실에 가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일용품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고 처리해 주지 않았습니다. 세 끼 식사는 모두 외부 업무자가 문 앞까지 건네주면 바오자가 실내로 가져왔는데, 때로는 저를 먹지 못하게 하고 고의로 1인분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반대로 경찰에게는 제가 단식하며 먹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밤에는 자정까지 서 있는 벌을 받아 피곤하고 배가 고팠던 저는 끓인 물을 한 잔 따라 마셨습니다(당시에는 보온병에 약을 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용품인 화장지조차 미루면서 사지 못하게 하는데 인간성이라는 게 없습니까?” 경찰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성(黨性)을 중시하지 인간성은 따지지 않아.” 제가 말했습니다. “매일 24시간 실내에 갇혀 문밖으로 반걸음도 나갈 수 없으니 가장 기본적인 인신 자유조차 없습니다.” 경찰이 말했습니다. “여기엔 오직 독재하고 독재를 받는 관계만 있을 뿐 다른 관계는 없어.” 제가 말했습니다. “해외의 많은 국가에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찰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럼 네 엄마는 왜 널 외국에서 낳지 않았지?”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기 위해 그들은 어떤 수단이든 다 썼습니다.

저의 일언일행과 표정에서 만약 바오자가 ‘정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있으면, 그들은 즉시 경찰 사무실에 가서 보고했고, 경찰은 방에 들어와 저를 한바탕 훈계하고 욕설을 퍼부은 뒤 오랜 시간 똑바로 서 있는 벌을 주었으며 바오자는 곁에서 감시했습니다. 매일 TV를 켜두었는데, 중공 악당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 외에는 대법을 모독하고 비방하는 영상을 끊임없이 틀어댔습니다. 제가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 바오자는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녀가 아무리 떠들고 위협해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법을 외웠습니다. 이후 바오자는 저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와 제게 이른바 노동수용소 규정을 소리 내 외우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지도원이 들어와 저에게 오랫동안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 후로도 매일 아침 경찰이 제게 노동수용소 규정을 소리 내 외우라고 요구할 때마다 저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어떤 경찰이 제게 말했습니다. “넌 눈치 좀 챙겨라. 너 같은 녀석을 우리는 수없이 봤어.” 저는 마음속으로 일념을 확고히 했습니다. ‘나는 결코 내가 감당해선 안 될 고난을 감당하지 않겠다.’

2. 박해에 직면해 절대 묵인하지 않다.

박해에 직면해 만약 사상 속에서 강력하게 부정하지 않으면 사실상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무의식중에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한 것이 돼 사악은 박해를 진행할 핑계가 생기게 됩니다. 경찰이 제게 손을 대려 할 때마다 저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박해하면 나는 나간 후에 전 세계에 폭로하겠습니다.” 혹은 경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국제 사회가 조만간 청산하러 올 것입니다.” 이럴 때면 그들은 보통 묵묵히 물러났고, 옆에 있던 바오자는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경찰에게 감히 이렇게 못하는데.”

감방 안에서 파룬궁수련생의 일상용품, 옷, 신발 등 개인 물품은 전부 하나의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야 했고, 다른 곳에 흩어놓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갑자기 감방 안 주변과 플라스틱 상자 속 물건을 수색하곤 했는데, 종잇조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으며, 실내에 대법과 관련된 어떤 자료도 없도록 확실히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침대 옆 낮은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낯선 남자 경찰이 들이닥쳐 곧장 제 침대 쪽으로 와서는 돗자리를 홱 걷어내고 침대 널빤지 위와 바닥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수색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분통을 터뜨리며 가버렸습니다.

노동수용소에 새로 온 파룬궁수련생이 또 불법적으로 갇혔기 때문에 저는 다른 감방으로 옮겨졌습니다. 독방이 부족해 저녁 무렵 제가 있는 감방에 수련생 한 명과 바오자 한 명이 또 배정됐습니다. 한번은 바오자와 제가 화장실에 갈 준비를 할 때, 수련생이 제게 양치 컵을 건네며 세면대를 지날 때 마실 수돗물을 한 컵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여겨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보온병에 끓인 물이 있잖아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두 바오자가 말하는 틈을 타 작은 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경찰이 보온병에 약을 탔어요.”

저는 A 감방에 있을 때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바오자는 붉은색 보온병 하나를 가리키며 저는 이 병의 물만 마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보온병에 약을 탔으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물을 따라 마시러 갈 때 바오자가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제가 물을 따르는 것을 쳐다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대장이 감방을 순찰하다가 감방에 파룬궁수련생 한 명이 늘어난 것을 발견하자 안색이 변하더니 즉시 그 수련생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로 저는 다시는 보온병의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찰이 제게 말했습니다. “네가 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밥이나 국에 넣을 거다. 우리에겐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 저는 당시 마음이 매우 평온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한번은 제가 화장실에 있을 때(화장실 안에는 저 혼자였고 바오자는 화장실 밖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주 짙은 약 냄새가 퍼졌고, 지나가던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이고, 왜 이렇게 독한 약 냄새가 나지?”

어떤 경찰은 제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너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면 말해야 한다.” 저는 그때 그녀가 왜 갑자기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연이어 일어난 이 일들을 돌이켜보니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적지 않은 물을 마셨는데 왜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지 이상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는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 체내의 정체불명 약물과 좋지 않은 것들을 전부 배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시시각각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다

사악이 가득한 검은 소굴에서, 완전히 폐쇄된 고압적인 박해 속에서 수련인의 사상이 일단 법을 떠나면 순식간에 악한 파도에 집어삼켜질 것입니다. 저는 닫힌 상태에서 수련했는데, 1998년 말에 법을 얻은 때부터 지금까지 제 천목으로는 아무것도 본 적이 없으며, 오직 법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는 매일 마음속으로 법을 외웠고, 하루도 감히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법을 외울 때는 여러 교란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법을 외울 때 입술이 약간 움직였는데, 이를 본 경찰이 제 옷깃을 덥석 움켜쥐고는 있는 힘껏 저를 세게 벽으로 밀어붙였으며,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른 공간 사악의 교란임을 알았기에 경찰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바오자가 고의로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의 음량을 최대로 높였고, 밀폐된 방 안에서 고음량의 소리가 울려 사람을 짜증 나게 했으며, 바오자 자신도 이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노력해 저 자신의 마음을 평정했고, 소음에 시달려 한 단락의 법을 완전하게 이어서 외울 수 없을 때면 저는 ‘홍음’을 외웠습니다. 이후 주변 사람들이 이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항의를 제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침대에 누워 ‘논어’를 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저는 ‘논어’를 어디까지 외웠는지 열심히 떠올리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고, 저는 다시 처음부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우다 보니 몽롱해짐을 느꼈고, 저는 애써 눈을 떴는데, 꽉 끼는 검은 옷을 입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제 침대 곁에 서서 두 개의 검은 팔을 저를 향해 끊임없이 휘두르는 것을 보았고, 저는 의식이 흐려져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됐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등 부분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라 솜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제 등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그것은 식은땀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게을리하지 않고 여전히 법을 외웠습니다. 외부의 그 어떤 방법과 수단도 제가 매일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논어’, ‘홍음’을 외우며 저는 그 가장 힘들었던 밤낮을 보냈습니다.

저는 법을 외우는 것 외에는 정념을 발했는데, 정념을 발하는 것에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지만, 우선 반드시 매우 순수하게 정념을 발해야만 비로소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번은 바오자가 괴롭히며 제가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저는 평온하게 정념을 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온종일 저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고, 반면에 두 바오자는 평소보다 더 자주 화장실에 갔습니다. 두 사람은 조금 놀라워하며 소곤거렸습니다. “정말 이상하네.”

낮에는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가기만 해도 바오자가 이를 저지하고 손을 떼어냈으며 경찰에게 보고했으므로 저는 낮에 정념을 발할 때 손 자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 저는 이불 속에서 손바닥을 세우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감방에서는 시간을 볼 수 없었지만, 매일 밤 10시 정각이 되면 노동수용소에서는 음악 소리가 두 번 울렸습니다.

매일 밤 전 세계 0시 발정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낮에 어떤 TV 프로그램의 화면 오른쪽 아래에 시간이 표시되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시간을 보면서 저는 ‘논어’와 정해진 ‘홍음’ 몇 수를 속으로 외웠고, 16분에 한 번씩 외우도록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밤 두 번의 음악 소리를 들으면 저는 10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논어’와 ‘홍음’을 연속으로 7번 외우고 나면 거의 0시 발정념 시간이 됐습니다.

4. 정념을 지키고, 유도에 넘어가지 않으며, 대응하지 않다

전담 관리팀은 매일 밤 한 명의 경찰이 당직을 섰습니다. 지도원, 대장, 제 담당 경찰이 당직을 설 차례가 되면 그들은 저를 사무실로 불러 단독으로 대화를 나누며 저를 사상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을 했는데, 태도가 모두 아주 좋았습니다. 지도원은 저를 몇 마디 칭찬하기도 했고, 저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등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길길이 뛰며 저를 가리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든, 온화한 얼굴로 자신이 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듣기 좋은 말을 하든 저는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저를 전향시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저를 설득할 수 없음을 본 경찰은 나중에 말했습니다. “중공이 너희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거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중공은 파룬궁의 명예를 회복시킬 자격이 없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이후 저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전담 관리팀은 또한 때때로 이미 전향한 수련생들을 제 감방에 배치해 경찰을 도와 저를 전향시키게 했습니다. 저는 사오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황당하고 우스워 그녀에게 바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불렀고 그런 다음 가버렸습니다.

한번은 경찰들이 이미 전향한 수련생 몇 명을 제 감방에 배치했는데, 그들은 사람이 많으면 힘도 커져 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처음에 온 사람들은 다들 별로 말이 없었고 약간 난처해했습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을 보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네요.” 이후 누가 먼저 자신이 애초에 어떻게 천안문에 갔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치며 몇 마디를 보탰습니다. 점차 누군가는 자신이 어떻게 법을 얻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은 즐거운 교류회 같았습니다. 경찰은 감시카메라를 통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고는 즉시 서둘러 끝냈으며 곧바로 그들을 전부 불러냈습니다. 이때부터 경찰은 다시는 이미 전향한 수련생을 제 감방에 배치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네 명의 경찰이 찾아와 각자 손에 의자를 들고 저를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그중 한 명이 제 팔을 잡으며 저를 일으켜 자신들과 나란히 앉게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여전히 원래 앉아 있던 낮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묻든 저는 시종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켰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상대의 수에 넘어가지 않으며 오직 저 혼자 정념을 발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해진 것을 느꼈을 때, 바오자가 제게 소리쳤습니다. “야, 저 사람들 갔어!” 저녁 무렵 밀폐된 유리창 너머로 바오자가 복도에서 다른 바오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와, 나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경찰이 무슨 말을 하든 경찰이 아무리 고함을 쳐도, 그녀(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미동도 않더라.”

5. 오직 착실히 수련해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을 수 있다

저는 갑자기 철통처럼 밀폐된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감방에 홀로 갇혔고, 수련생 간의 만남과 교류도 없었으며, 사부님의 경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악으로 가득 찬 이러한 고압적인 박해하에서, 만약 평소 다져놓은 착실한 수련의 기초가 없었다면 걸어 지나오기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계산해 보면 저는 A 감방에 대략 백여 일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다른 독방 감방에 있을 때 대장이 또 경찰을 데리고 들어와 제게 말했습니다. “짐을 좀 챙겨서 A 감방으로 가라.” 저는 대장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절대 전향하지 않겠습니다!” 대장도 제가 전향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쟤는 원래 저런 화강암 같은 고집불통이라 우리도 방법이 없어.”

이후 그들은 저를 더 이상 감방에 홀로 가두지 않았고, 비록 여전히 바오자 한 명을 배치해 그림자처럼 제 곁을 바짝 따라다니게 했지만, 저는 자유롭게 감방을 드나들며 화장실에 가서 씻거나 용변을 볼 수 있었고, 일상생활 용품을 사는 것도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한번은 전향된 수련생 한 명이 제 앞으로 다가오더니, 제게 접근해 윗옷 자락을 걷어 올리며 마치 허리띠의 꽉 묶인 매듭을 풀어달라는 척했고, 저는 그녀를 도와 풀어주는 동작을 취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형기를 채워서 내일 아침이면 노동수용소를 떠나 집에 가요.” 그러면서 은밀히 제게 몇 가지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저도 뒤따라갔습니다. 그녀가 몸을 돌려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바오자가 아직 쫓아오지 못했을 때 서둘러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세요.”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맺음말

제가 노동수용소를 떠나기 전날 밤, 차례로 세 명의 경찰이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제가 돌아간 이후 현지 경찰의 강화된 감시를 마주하게 될 것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610’은 제가 전향하지 않았음을 파악했고, 본래는 계속 제 형기를 연장하거나 세뇌반으로 보낼 타산이었으나 나중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그래도 저를 집에 가게 해주었지만, 저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찰은 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표했는데, 이는 이 경찰들이 비록 박해에 참여했지만 양심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불법 강제노동을 당한 것 때문에 커다란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암을 앓고 계셨고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검은 소굴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끝내 견디지 못하시고 제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고, 저의 마지막 혈육도 이렇게 떠나셨습니다.

때때로 제 마음속에서는 너무나 큰 고통을 느끼고 수련이 몹시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줄곧 견지해 나갈 것이며, 저를 견지해 나갈 수 있게 한 것은 대법에 대한 저의 이성적인 인식입니다. 저 역시 수련의 엄숙함을 깊이 느끼며, 조금씩 조금씩 제 자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고, 대법을 꽉 쥐고 진정하게 수련하고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기만 하다면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타파할 수 있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길은 매우 좁고 몹시 험난하지만 지나가려 한다면 착실히 수련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9/51573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9/5157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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