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쓰촨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다행히 법을 얻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여성 대법제자이며 올해 70여 세입니다. 30년 수련 중에 각종 병업 고비와 시련을 겪었지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내내 보호해주신 덕분에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최근 오토바이에 치여 다친 고비는 이전의 고비들보다 돌파하기가 더 어렵고 길었습니다. 제23회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모집 기회를 빌려 이 수련 과정의 체득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갑작스럽게 겪은 교통사고
2025년 10월 8일 저녁 정념을 발하고 남편과 산책하러 나갔습니다(남편은 몸에 여러 만성질환이 있어 매일 함께 산책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길을 건널 때 남편은 이미 맞은편 길가로 넘어갔습니다. 오른쪽 멀리 교차로에 빨간불이 켜지고 차들이 멈춘 것을 보고 재빨리 길을 건넜습니다. 거의 다 건너갈 즈음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와 저를 들이받았습니다.
저는 멀리 튕겨 나갔다가 다시 도로 한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남편이 다급히 다가와 저를 부축해 길가로 옮겼습니다. 날이 이미 약간 어두워졌는데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두 사람도 차와 함께 넘어진 것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제가 넘어진 곳에서 4~5미터쯤 떨어진 오른쪽에서 그들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몸이 어떠냐고 물으며 그들을 찾아가려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 성가시게 하지 말아요, 그들도 아직 저녁을 못 먹어서 급히 집에 가고 싶었겠죠. 날이 어두워서 못 봤을 테고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 그냥 가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인연 있는 사람과 이렇게 만났는데 대법 진상을 알리지 못해 정말 아쉽다. 두 사람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해 평안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남편과 말할 때 입술 왼쪽이 부어서 발음이 뚜렷하지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일어서 보니 왼쪽 무릎이 이상했고 오른쪽 무릎에선 피가 나 바짓가랑이가 약간 젖어 있었으며 양손은 말을 듣지 않고 극심하게 아팠습니다. 넘어진 그 순간부터 계속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외우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남편이 제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공원 방향으로 계속 걸으며 산책에 동행하려 했습니다. 잠시 후 왼쪽 무릎은 정상을 회복했고 오른쪽 무릎도 피가 멎어 바지가 젖는 느낌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양 손목 등이 뼛속까지 아프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과 어지럼증이 동반됐습니다.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공원 가지 말고 집에 가자.”
교차로에 도착해 가로등이 밝아지자 남편은 제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심하게 다친 것을 직감해 부축하려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나 길 잘 보고 걸어요, 저는 환자가 아니니까 부축하지 말아요.” 속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다, 이건 고비를 넘는 중이고 내겐 사부님이 계신다.’ 가는 내내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며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시길, 집에 가야 한다고 청했습니다. 도중에 거의 쓰러질 뻔했지만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 시련 속에서 안으로 찾으며 매사에 남을 먼저 배려하다
그날 밤은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처음에는 양 손목이 너무 아파서 머리카락과 셔츠 등 부분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속으로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조금 진정된 후 옷을 갈아입고 씻으려 했는데 그제야 양손으로 옷장을 열거나 씻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컵을 들 수 없었고 심지어 휴지 한 장도 뽑을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려 해도 재생기 스위치를 켤 수 없었습니다. 연공하려 해도 동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시련은 수련과 생활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을 가져왔으며 동시에 저를 일깨웠습니다. 수련에 빈틈이 생겼으니 반드시 진지하게 안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제게 많은 집착심이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원망심,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물건을 아끼지 않는 마음(남편이 마트에서 할인하는 과일과 채소를 자주 샀는데 저는 상한 것을 발견하면 조금 나은 것을 골라내지도 않고 버리면서 남편을 탓했습니다) 등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남편이 휴대폰과 TV만 보고 집안일을 돕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심 때문에 구세력에게 박해받아 이렇게 큰 난관을 자초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께 다시 한번 구해주신 것에 무한히 감사드렸으며 평소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했습니다.
때로는 법공부 시간마저 집안일로 빼앗겼습니다. 매일 오전 남편이 물리치료를 받을 때 저는 장을 보며[그때 진상 지폐를 사용해 사람을 구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며 수련생과 만나는 등 일도 함] 제때 점심을 차려야 했습니다. 오후에 남편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휴대폰을 보거나 들을 때 저는 법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했습니다(가끔 집안일이 많으면 법공부 시간을 빼앗겨 밤에 하려 했습니다).
밤에 남편과 산책을 좀 오래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했습니다. 남편은 집에 오면 여전히 소파에 앉아 TV를 봤습니다.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를 마친 뒤 법공부를 하려고 앉으면 책만 들어도 졸음이 쏟아져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정념을 발하거나 정공을 연공할 때도 저도 모르게 잠들었습니다. 이런 올바르지 않은 상태가 고쳐지지 않아 남편이 빨래 걷기, 청소하기, 걸레질 등 집안일을 거들어주어 제가 기운과 시간을 내서 법공부하기를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집에서 상전 노릇을 하고 자신은 가정부 같다고 느껴져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원망심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수련은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데, 心性(씬씽)을 닦는다고 한다.”(전법륜)
저는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원망심을 원치 않고 고생하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원치 않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주십시오. 제 올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고 진정하게 수련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이때 저는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사부님께서 떼어내 주셨음을 느꼈습니다.
사실 남편은 선량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검소하게 생활해 낭비가 없고 제 수련을 반대하지 않으며 단지 집안일을 하는 습관이 없을 뿐입니다. 그의 모습은 제 수련 제고를 위해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므로 저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안으로 찾으며 제 마음을 닦자 마음이 평온해졌고 양손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습니다. 밤 11시가 다 돼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많이 좋아졌으니 안심하고 자요.” 남편은 TV를 끄고 침실로 돌아가 쉬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념을 발했는데 가부좌를 틀거나 손자세를 할 수 없어 몸을 바르게 세우고 했습니다. 먼저 다른 공간에서 제가 상처 입힌 적이 있는 생명들과 소통하며 사부님의 선해(善解)에 관한 법을 외우고 그들이 선해를 선택해 아름다운 미래를 갖기를 바랐습니다.
강력한 정념을 발했습니다. 다른 공간의 구세력, 흑수(黑手), 난귀(爛鬼)가 제 수련의 빈틈을 이용해 제 몸을 박해하려는 모든 사악한 안배를 제거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사부님의 안배만 따를 뿐 다른 어떤 안배도 원치 않는다. 수련의 빈틈은 법 속에서 바로잡을 것이니 누구도 날 시험하거나 박해할 자격이 없으며 누구든 이를 행하면 범죄를 짓는 것이다.’
이어서 동공(動功)을 연마했는데 손으로 할 수 없는 동작은 의념으로 했고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했습니다. 손으로 재생기를 켤 수 없고 대법서적을 들 수 없어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정공을 연마할 때 가부좌를 틀 수 없어 그냥 앉아서 했습니다. 정말 졸리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양손을 침대에 평평하게 놓고 머리를 파묻고 잠시 잤습니다. 밤새도록 이렇게 번갈아 가며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부어올랐던 입술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양손을 가슴 앞에 마주 안고 있지 않아도 됐습니다.
남편이 일어난 후 씻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그는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제게 함께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자고 했으며 길에서 아침을 사 먹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별로 아프지 않아요, 단지 일을 못 할 뿐이죠. 며칠만 시간을 줘요, 급하게 병원 가지 말고요. 병원은 보통 사람이 가는 곳이고 저는 수련인이니 사부님께서 돌봐주실 거예요.”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며칠이나 시간을 줘? 몇 시간도 못 줘! 이미 늦었어, 어젯밤에 당장 병원에 갔어야지 치고 간 놈들을 그냥 보내면 안 됐어. 안 가면 나도 당신 신경 안 쓸 거야. 지금 일상생활도 안 되는데 가서 검사라도 받고 어디 다쳤는지 확인하는 건 괜찮잖아?”
평소 집안일은 모두 남편이 결정했습니다. 저는 그의 결정이 고민 끝에 나온 것이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제가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그의 호의를 상하게 할 수 있었고 딸 등 다른 가족이 알게 돼도 그의 주장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는 제가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데 불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수련인의 마음과 일 처리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구하는 데 유리하도록, 제가 병원 검사를 거부해 그들이 대법에 오해를 갖지 않게 하려고 저는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갔습니다. 엑스레이 촬영 후 정형외과 의사는 양손 모두 분쇄골절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하지 않고 아무 약도 먹지 않겠다고 고집했기에 의사는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해준 뒤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3. 고비를 넘으며 사부님과 법을 믿고 가상에 교란받지 않다
양손에 깁스를 한 후 상처 부위가 부딪히지 않게 보호할 수는 있었지만 연공과 발정념 손자세를 하는 데는 더 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깁스가 꽤 무거워 포륜(抱輪)과 충관(沖灌)을 할 때 왼쪽 팔이 시큰거리고 아파서 오른손의 도움을 받아야만 잠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른손 손가락도 건드릴 수 없었고 심지어 책장을 넘기기도 어려워 전적으로 오른쪽 팔에 힘을 주고 깁스한 오른손 등으로 왼쪽 팔을 받쳐야 했습니다. 비록 힘들었지만 매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동작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사부님의 법인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와 홍음(洪吟) 중의 ‘마음고생’을 외웠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한다는 것을 알고 전화로 말했습니다. “양손 다 분쇄골절인데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푹 쉬셔야죠.” 이것은 저에 대한 관심이자 호의였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었습니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은 가상이고 다른 공간의 제 손은 다치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우리가 연공할 때 다른 공간의 신체가 작용을 일으킨다고 하셨습니다. 명혜망에도 수많은 수련생이 정념으로 고비를 돌파한 교류 문장이 실렸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제자이니 마땅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겪은 교통사고는 제 수련의 빈틈이기도 하고 과거에 진 빚 때문에 목숨을 빼앗으러 온 요소도 있을 텐데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대부분을 감당해주시고 아주 조금만 남아 저 스스로 감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매일 평소처럼 연공하고 정념을 발하며 법공부를 했습니다. 2주 후 정형외과 의사의 요구에 따라 재진을 갔는데 당직 의사(지난번 의사와 다른 사람)가 엑스레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지난번 깁스가 너무 짧으니 좀 길게 해야겠네요(팔꿈치 움직임에 지장이 없는 곳까지).” 깁스를 교체하고 다시 2주가 지났는데 양손 손가락이 끊임없이 떨렸습니다. 책상 위에 반듯이 올려놓아야만 떨리지 않았고 여전히 손등과 손바닥을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재진을 가서 촬영한 후 의사(또 다른 의사)는 양쪽 손목뼈가 심하게 어긋난 것(약 2cm)을 발견했습니다. 이전 사진을 확인한 의사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왜 제때 수술을 안 했습니까?” 제가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원치 않았습니다.” 의사는 제 팔뚝과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수술을 원치 않아 자칫하면 장애가 남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처음 왔을 때보다 수술 난도가 훨씬 높아졌으니 일단 다시 깁스하고 지켜보시죠.” 남편이 수술 비용을 물어보니 한 손당 2만여 위안이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제 양손이 불구가 돼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초조해하고 걱정했습니다. 다음 날(2025년 11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남편은 몹시 진지하게 저와 상의했습니다. “2만 위안쯤 준비해서 당신 오른손을 수술하자. 양손 다 불구 돼서 생활도 못 하면 어떡해.” 저는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었습니다. 의사의 말은 저와 맞지 않으며 저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돌봐주시니 제 손은 절대 불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남편의 감당 능력을 고려해 병원에 가기로 동의하면서 길을 돌아갔고 심성이 대법 수련자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의사 말 너무 믿지 말아요. 저는 예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투성이였고 매일 한약과 양약을 끊지 못해 돈도 많이 썼지만 어떤 의사나 병원도 제 병을 고치지 못했어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제 모든 병을 제거해주셔서 병 없이 몸이 가벼워졌잖아요. 30년 동안 병원 한 번 안 간 거 제가 직접 겪었고 당신이 두 눈으로 본 사실이잖아요. 이번엔 당신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시키는 대로 병원에 간 거예요. 한 달이 넘도록 돈 쓰고 신경만 썼는데 결과는 양손이 이렇게 돼서 가기 전 상태만도 못하잖아요. 저는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을 테니 제 손이 불구가 될 거란 걱정은 말아요. 의사가 한 말은 제게 소용없어요, 저에겐 사부님이 계시잖아요. 돈 좀 들여서 가사도우미를 불러 집안 청소 좀 시켜요. 그동안 당신 스스로 병원 가고 약 챙길 틈도 없이(남편은 신장 등 만성질환으로 매월 하순 정기적으로 재진을 받고 약을 처방받습니다) 집안일 다 떠맡고 저까지 돌보느라 충분히 힘들었으니 청소는 돈 주고 사람 시켜요.”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다시는 제게 수술하러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법공부를 하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고 양손으로 책 한 장을 넘기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가 올바르지 않고 계속 이어져선 안 되며 이는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므로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우리에게 시간을 연장해주신 것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라는 것인데 저는 고비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고 수련생들과 약속한 시간도 번번이 어겼습니다. 저는 몇몇 노년 수련생들과 전화 연락 없이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했는데 저희 집에서 꽤 멀었습니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도 할 수 없고 연공과 발정념 손자세도 할 수 없으며 생활도 혼자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은 구세력의 박해이므로 저는 원치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자의 뼈를 조리해주셔서 난관을 넘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생각할수록 두 눈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동시에 책상 위에 반듯이 놓인 두 손이 마치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손 안쪽이 콕콕 찌르듯 은근히 아프고 부어오르는 느낌이었으나 견딜 만했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어긋난 손목뼈를 맞춰주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제 눈물은 더욱 멈출 수 없었고 이는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드리는 제자의 눈물이었습니다.
어느덧 두 시간 넘게 지났고 남편이 저녁 식사를 차려놓고 밥 먹으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간신히 무거운 두 손을 옮겨 팔과 위팔로 힘을 주어 두 손을 서로 감싸 안고 식탁으로 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두 손을 식탁 위에 반듯이 올려놓았습니다. 평소에는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억지로 밥을 먹었는데 이때는 왼손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의아해하자 저는 말했습니다. “오후 3시 넘어서부터 지금까지 손이 굳은 것 같아요, 사부님께서 제 어긋난 뼈를 맞춰주고 계시는 중이에요.”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때 그가 저더러 정신병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그는 차분히 묵묵히 제게 밥과 반찬을 먹여 주었고 다 먹은 뒤에는 침실 책상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녁 6시 넘어 정념을 발하고 나니 양손이 마치 결박이 풀린 것처럼 단번에 홀가분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노트북을 열었고(다친 이후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다) 순조롭게 명혜망에 접속했습니다. 사부님의 사진을 뵈니 마치 오래 헤어졌던 혈육을 만난 듯 행복했습니다.
4. 시련을 겪은 후 심성이 높아지고 수련 환경이 개선되다
사부님께서 제 손뼈를 맞춰주신 후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명혜망에 접속하고 재생기를 켜고 끌 수 있었으며 연공 동작도 점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념을 발할 때 팔뚝은 평행을 이뤘으나 아직 손바닥이 세워지지 않았고 허스(合十)도 마찬가지여서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스스로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것부터 점차 제 일을 스스로 하게 돼 지금은 완전히 스스로 할 수 있게 됐고 남편을 자질구레한 일에서 서서히 해방해 주었습니다. 이번 시련을 거치며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우리에게 연장해주신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고 매일 법공부 시간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심성이 높아졌고 남편에 대한 원망심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은 볶거나 삶는 요리를 한 후 하루 종일 냄비를 씻지 않았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묵묵히 씻었습니다. 과거에 거의 이런 일을 안 해봤으니 밥과 반찬을 제대로 해내는 것만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남편은 채소를 볶을 때 마른고추를 넣고 돼지기름을 많이 쓰는 것을 좋아해 저는 좀 적게 넣으라고 제안했습니다. 그가 고치지 못하면 저는 그저 웃어넘겼고 그가 좋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먹기 힘들어 일부를 끓는 물에 씻어서 먹었습니다.
제 심성이 높아지고 원망심이 없어지자 남편의 모습도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장을 봐오면 못 본 척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굴었는데 지금은 정리를 도와줍니다. 과거에는 제가 아침에 정념을 발하고 나면 바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남편은 일어나 씻은 뒤 식사만 하면 됐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정념을 발하고 나오면 남편이 벌써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여 저는 그저 식사만 준비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제가 주방에서 일하다가 밖에서 비가 오는 소리를 듣고 남편에게 빨래를 걷으라고 하면 그는 대답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 하지만 지금은 비가 오면 알아서 빨래를 잘 걷어놓습니다.
수련 면에서도 그는 묵묵히 저를 지지해줬습니다. 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정공을 연공할 때 가부좌를 틀지 못하면 그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게 도와주었습니다. 재생기를 켜고 끄지도 못하고 충전도 못 할 때면 제때 도와줬습니다. 옷을 입고 벗기 힘들어 자지 않고 밤 12시 정념을 다 발한 후 자야 할 때면 그는 제가 정념을 다 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가 눕는 것을 도와준 뒤에야 자러 갔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안 친척과 친구들이 전화하면 저는 그 기회를 빌려 제 실제 상황을 알려주며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와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실증했습니다. 과거 남편은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제가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집에서 파출소 경찰이 저를 불법적으로 납치해 가두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후 그 두려움을 없애지 못해 제가 남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들으면 겁을 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병투성이가 됐기에 저는 되도록 그를 피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번에 저는 그의 눈앞에서 사람들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증명했는데 그는 저를 교란하지 않았습니다. 가정환경이 좋아진 것은 예전에는 바라도 이루지 못했던 일인데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1/5158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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