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에 여자아이라고는 저 하나뿐이라 어릴 때부터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곱게 자랐습니다. 게다가 외모, 몸매, 키까지 모두 남달랐기에 콧대가 높고 지기 싫어하며 안하무인인 성격이 형성됐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남편은 제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해줬고, 저를 더할 나위 없이 아끼고 보살펴 줬습니다.
1996년, 뜻밖의 홍수가 남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있었지만 친척들은 모두 도와줄 여력이 없었고, 저 역시 경제적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소개해 준 비교적 조건이 좋고 정상적인 독신 남성들은 모두 제 두 아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8살 아들과 생후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1년 넘게 떠돌며 온갖 시련을 겪다가, 어쩔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백 리 밖 진(鎭)의 임장(林場, 국유림 관리소)에 정식 직장이 있고 외모가 괜찮으며 나이도 비슷하지만 지능이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의 일거수일투족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변을 보고도 제대로 닦지 않는 일이 잦아 속옷은 늘 누렇게 돼 있었고, 세수도 손 씻기도 자주 거르는 데다 성미는 어찌나 급하고 불같은지 말을 듣지도 않고 남이 지적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래 유난히 깔끔한 편이고 성격도 불같고 성미도 아주 급한 사람이라, 갑자기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니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싸우자니 당해낼 수가 없고, 말로 하자니 통하지를 않아 도무지 살 수가 없어서 그만 떠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겪었던 막막함과 막다른 길, 심지어 절체절명의 상황을 떠올리니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몇 달 만에 저는 우울증에 걸렸고, 게다가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까지 초래했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일상생활조차 꾸릴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죽자니 두 아이가 걱정됐고, 살자니 정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그때, 1998년 4월의 어느 날 친척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법을 얻은 바로 그날 제 정신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고, 부체가 가져온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이튿날, 저는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얻었습니다. ‘전법륜’을 읽는 과정에서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기뻤고, 제가 기다려온 것이 바로 이 법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왜 이렇게 고생스러웠는지도 알게 됐는데,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에 지은 업력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에게 시집온 것은 제가 법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저는 ‘가장 어려울 때 이곳에 왔는데, 그에게는 우리를 먹여 살릴 월급이 있으니(그는 직장에서 가장 단순한 육체노동을 합니다) 그야말로 나와 아이들의 은인이다. 반드시 그를 잘 대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단체 법공부와 연공 속에서 제 오성(悟性)이 점차 제고됐고, 잇달아 ‘홍음’, ‘홍음 2’, ‘홍음 3’의 일부분을 외웠으며, ‘정진요지’도 모두 외웠습니다. 또한 ‘전법륜’을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대법과 수련 속에 용해돼 있으니, 대법을 얻은 그 행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후, 저는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하려 했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이 저를 구해주셨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알려주셨으며, 속인은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치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천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이 대법을 얻었으니 저는 너무나도 행운아였고, 이토록 좋으신 사부님과 이토록 좋은 대법이 먹칠당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렀을 때, 우리와 각지에서 온 수많은 수련생이 검문에 걸려 함께 기차에서 쫓겨났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몇 달 동안 저는 외웠던 법을 다시 능숙하게 외웠고, 두 번째로 ‘전법륜’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잇달아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는데, 11월에 원래 우리 세 수련생이 함께 베이징에 가기로 준비했으나, 그 두 수련생은 저에게 거리낌이 있을까 봐 걱정돼 이튿날 먼저 떠났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은 뒤, 사흘째 되는 날 5살 난 딸을 데리고 막 떠나려던 참에 방금 베이징에서 돌아온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아주 삼엄해요. 거기 가면 기관총이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기관총이 있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버스를 타고 베이징 청원길에 올랐습니다. 시내에 도착하니 야간 기차를 기다려야만 베이징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딸이 울고 보채며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역 안의 낯선 인파를 바라보며 문득 ‘아들은 어찌 됐을까? 바보 같은 남편이 아들을 어떻게 대할까? 이 가정이 온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음이 올라오자 심장이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고,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정진요지-퇴직하여 다시 연마)
저는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사악이 아들에 대한 제 정(情)을 이용해 법을 실증하러 가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속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며, 제 정념이 나왔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과 보호 아래 저는 한밤중에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고, 지혜롭게 삼엄한 불심검문을 피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후 저는 딸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다시 지하철을 탔고, 마침내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외지 수련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경찰에게 함께 붙잡혀 경찰차에 태워졌고, 구치소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저는 현지 경찰에게 인계돼 돌아왔고, 27일간 불법 구류됐으며 직장에서 9천 위안(당시에는 거액에 해당함)의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매달 500~600위안 되는 월급에서 다 공제될 때까지 절반씩 깎아 나갔습니다.
딸이 유치원 학령전 반에 들어가게 됐는데, 형편이 워낙 빠듯하다 보니 저는 공장에 취직해 출근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전부 육체노동이다 보니 매일 퇴근한 뒤 집안의 크고 작은 일과 살림을 마치고 나면 시간이 아주 늦었고, 시간도 체력도 모두 부족해서 단체 법공부에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혜주간’은 수련생이 갖다줘서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잊지 않았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진상 알리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끔 공장이 쉬는 날이면 수련생들과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나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직접 진상 탁상달력을 건넸습니다. 남는 것이 있으면 공장에 가져가 동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일할 때 머릿속에 여유가 있으면 법을 외웠습니다.
2016년, 시내에 있는 아이 집에 가는데 기차 안 좌석이 승무경찰실 바로 옆이었습니다. 저는 옆자리와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모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시켰습니다. 통로 건너편 좌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엎드려 있거나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리를 떠나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서, 유일하게 가장자리에 앉아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던 40대 여성에게도 삼퇴를 권해 탈퇴시켰습니다. 제가 막 자리로 돌아오자 키가 큰 남자 승무경찰이 휴대폰을 들고 걸어 나오더니, 문가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객실 안을 둘러봤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잠시 후 그는 몸을 돌려 가버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돌아올 때 시내 기차역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끝없이 펼쳐진 인파를 마주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이토록 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중공 악당에 세뇌되고 있으니 얼마나 가엾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지금 많은 사람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지만, 저는 ‘많이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은 놓칠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10여 명의 무장경찰이 앉아 있는 승객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과 몇 걸음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진상을 알려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반석처럼 굳건한 정념이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나의 사명이니 반드시 구해야 한다.’ 저는 양옆에 앉아 있던 50대 남녀 두 사람에게 몇 마디 건네 삼퇴시켰습니다.
2017년, 저는 한 차례 큰 소업(消業)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와 발열 가상이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온몸이 쑤시고 쉴 새 없이 기침이 나오는 바람에, 흉강이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숨이 막혔습니다. 사흘 만에 저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달했고, 나중에는 숨조차 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 년 내내 출근하느라 법공부 모임에 거의 갈 수 없었고, 혼자서도 법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심성과 오성이 좀처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공장이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이라 전부 성과급제였는데, 저도 속인처럼 이익에 집착해 돈을 더 벌려고 매일 필사적으로 일했고, 심각한 누락이 있는데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을 때 사람마음이 올라왔고,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바보 같은 남편과 아무런 외부의 도움도 없고 아직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한 두 남매는 어떡하나?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고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켜 외투를 입고 의원으로 갔습니다.
의사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열이 심해서 폐렴이 됐으니 최소한 일주일은 링거를 맞아야 합니다.” 저는 호흡은 좀 나아졌지만 기침이 끊이지 않았고 가슴 통증도 동반됐습니다. 당분간 출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휴가를 냈습니다. 제 수련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저녁에 법공부 모임에 가서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했습니다. 교류를 거치며 제 오성이 올라왔고, 이틀간 링거를 맞은 뒤에는 의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익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수련에서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는 수련생들과 단체 법공부를 하고, 낮에는 오토바이를 몰고(당시에는 저만 오토바이를 탈 줄 알았습니다) 수련생을 태워 각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진상 스티커를 붙여 사람을 구했습니다. 병업 가상이 좀처럼 낫지 않았지만 저는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에 매진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를 자주 외웠습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자신이 지금 ‘전법륜’을 외우고 있는데 이미 4쪽까지 외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명혜주간’을 볼 때면 수련생들이 ‘전법륜’을 외운다는 글을 자주 봤습니다. 저는 ‘비록 내 기억력이 나쁘지는 않지만, 이렇게 두꺼운 보서를 다 외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해낼 수도 없다. 게다가 출근하느라 시간도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꿈을 자주 꿨는데, 꿈에서 출근이나 등교에 지각하거나 오토바이를 찾지 못해 가지 못하는 꿈을 꿨고, 제 수련이 뒤처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련생이 법을 외운다고 말하자 제 정념이 일깨워졌고,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2017년 6월 1일부터 시작해 어떤 일로도 법 암기를 지체하지 않는 상황에서 2017년 11월 21일까지 ‘전법륜’을 한 번 외웠습니다. 제 병업 가상은 철저히 사라졌고 저는 다시 출근했습니다.
제가 바보 같은 남편에게 시집온 뒤로 지난 몇 년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제 앞에서 그에게 시집온 것이 ‘아깝다’고 말했고, 아이들이 크면 제가 틀림없이 떠날 것이라고들 알고 있었으며, 제가 그와 계속 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사택 아파트의 모든 사람이 제가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줄곧 그에게 이렇게 잘해주고, 그를 아주 깔끔하게 챙겨주는 것을 보고는 모두 제가 사람이 좋고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했습니다. 저와 수련생들은 모두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 떠나지 않을 거고, 그에게 잘해줄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떠났을 거고 도무지 함께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설령 떠나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분수를 지키며 살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웃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이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매일 남편의 비정상적인 언행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다른 고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 아들은 대학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가 나중에 헤어진 뒤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3년 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딸은 여러 차례 반항기를 겪으며 제 애간장을 다 녹였고, 집안에 금전적 손실도 일부 끼쳤습니다.
속인으로서는 정말 살기 힘들었겠지만 저는 수련인이기에 제가 그들 세 사람에게 빚진 것이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 감당하기 힘든 한계에 달하면 수련생들에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제 업력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남들보다 더 고생하고 더 시련을 겪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저에게 이런 것들을 배치해 준 것은 바로 제 수련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연공인(煉功人)의 각도에서 모든 일을 대해야 하고, 반드시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짜증 나는 마음이나 원망심이 올라오기도 했고 폭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법을 외웠고 그러면 모두 누그러졌습니다. 한계에 달했던 수많은 순간에도 저는 법을 외웠고, 곧잘 지나갔습니다.
2018년 어느 날 아침, 제가 연공하고 있는데 딸이 전화를 걸어와 온라인에서 10여만 위안(실제로는 20여만 위안이었는데 감히 한꺼번에 말하지 못함)을 대출받았는데, 지금 연체돼 혼자서는 갚을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금액도 너무나 막대해서 저는 자제력을 잃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딸에게 폭풍우처럼 거세게 고함을 지른 뒤, 저는 침대에 주저앉아 비 오듯 눈물을 흘렸고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거대한 고비와 시련이 어째서 이렇게 많은 걸까? 어째서 끝이 없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말 감당할 수가 없구나. 이게 다 무슨 인연 관계란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제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문제와 마주치는가? 모두 당신 자신이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미 당신에게서 무수하고도 무수한 몫을 없애주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약간의 것을 각개 층차 중에 나누어 놓았는데,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해 사람의 마음을 연마(魔煉)하고, 각종 집착심을 버리도록 설치한 일부 마난(魔難)이다. 이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난(難)으로서 우리는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데, 당신이 모두 넘을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오직 心性(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넘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지, 넘으려 하면 넘을 수 있다.”(전법륜)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알겠습니다.” 저는 천천히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눈물을 닦고 밥을 하러 갔습니다. 남편이 밥을 먹도록 챙겨주고 뒷정리를 마친 뒤, 저는 먹지도 않고 출근했습니다.
2019년 어느 날, 출근해서 판자를 가득 실어 무게가 500kg은 족히 넘는 수레를 끌다가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오른팔 어깨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속인 중에서 말하자면 힘줄이 다친 것인데, ‘힘줄이나 뼈를 다치면 백 일은 간다’고 하니 또 단기간에는 출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다시 매일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법공부 팀의 8~9명 수련생은 모두 퇴직연금이 있었고, 단 한 수련생만 퇴직연금이 없었지만 큰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자녀들도 모두 가정을 꾸렸고 형제자매 사이도 아주 화목했습니다. 반면 저는 월급도 없고 아이들도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며, 오빠와 남동생들 사이도 모두 불화해서 84세 된 아버지를 돌보지 못하거나 불효하는 형제들이 있어 제가 도맡아 챙겨야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몸이 편찮으시면 저에게 전화를 하셨고, 저는 자주 오토바이를 타고 왕복 100km 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며 아버지를 보살피거나 아버지가 입원하시면 간병하러 가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직 다 갚지 못한 온라인 대출도 그렇게나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끔 사람마음이 올라오면 정말 마음 깊은 곳까지 아파와서 수련생들과 함께 있고 싶지조차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심각한 질투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사악이 저와 수련생들 사이를 이간질해 저를 박해하려 한다는 것도 깨달았기에 결코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붙잡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출근하느라 진상 자료를 적게 배포했으니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 저는 오토바이에 한 수련생을 태우고 낮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며 진상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된 이후,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경문을 몰래 배포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중생들에게 직접 건네줘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중공 악당의 박해 앞에서 두려웠을까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대법도(大法徒)이며,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니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수련생들은 2명씩 조를 짜서 각 조가 몇 개 마을을 맡아, 반경 10km 안의 모든 마을을 다 돌 때까지 낮에 집집마다 찾아가 사람들에게 직접 전해줬습니다. 집집마다 마당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발정념을 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이 잠겨 있거나 사람이 없는 집, 혹은 빈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알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았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보호 아래 무사히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2023년에 남편이 퇴직했고, 제가 가입해 둔 개인 사회보험에서도 퇴직연금이 나오게 되자 남편은 제가 일하러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더욱 다그쳐 수련에 매진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줄곧 법을 지침으로 삼아 너무나 많은 고비와 시련을 돌파해 왔기에 머릿속에 법을 더 많이 담아야 했고, 수련생들에게도 자주 법을 외우라고 격려했습니다. 저는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등의 경문도 모두 외웠고, 각지 설법 중에서도 상황에 맞는 단락들을 일부 외웠습니다.
지금은 출근하지 않아 시간이 생겼으니, 우리 수련을 지도하는 이 보서 ‘전법륜’을 가장 마땅히 외워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부 다 암송할 수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외울 수 있는 만큼 외우자는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세 번째로 ‘전법륜’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명혜 편집부에서 사부님의 경문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를 외우라고 건의했기에, 저는 닷새 만에 능숙하게 외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초범적인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니, 이제 제 정념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저는 머릿속에 속인의 일이나 생각이 올라오기만 하면 법을 외우는데, 어느 단락이든 떠오르는 대로 외웁니다.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으니, 저는 반드시 모든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사부님과 법을 100% 믿고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도록 수련하여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층차가 제한돼 있어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4/51566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4/51566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