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영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2014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왔고, 이후 계속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영국에 있는 이 12년 동안 저는 아직 영국 법회 원고모집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이 숙제를 보충 제출하고자 지난 몇 년간 영국에서의 수련 경험을 글로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여러분과 함께 공동으로 정진하고 제고하려 합니다.
1. 낯선 도시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홍법 거점을 세우다
저는 2015년에 졸업한 이후 줄곧 런던에 살면서 런던의 홍법과 진상 알리기에 참여했습니다. 2017년에 첫 정규직 일자리를 구했고, 이로 인해 런던을 떠나 낯선 도시로 와서 독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제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주말 홍법 문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다른 대법제자가 없었고, 현지에 진상 거점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새로운 홍법 거점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도 우연이 아니며, 여기에 저와 인연 있는 중생이 있을 수 있으니 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갈수록 강렬해졌고, 저는 이것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있었고, ‘0’에서부터 시작해 진상 거점을 하나 세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줄 수련생 한 명을 배치해 주셨습니다. 이 수련생은 영국 정부, 현지 의원들과 여러 차례 접촉해 본 경험이 있었고, 어떻게 면담을 예약하고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전체 면담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으며, 우리는 아주 빨리 진상 거점을 운영할 허가를 받았습니다. 수련생의 도움 아래 마침내 우리는 이 도시에서 주말 진상 알리기 서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진상 거점에는 우리 둘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잘 운영됐고, 저는 우리가 계속 이렇게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수련생이 자기가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제게 엄청난 시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후로는 저 혼자서만 이 진상 거점을 지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에 없던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서서히 법공부와 수련 중에서 저는 이것이 저에 대한 일종의 시험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수련하고 진상을 알릴 수 있고, 아무도 없으면 스스로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내 의존심을 닦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결심을 내린 이후, 저는 자신에게 설령 혼자일지라도 굳건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해낼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확고부동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큰 전시판을 등에 메고 작은 손수레를 끌며 약 30분을 걸어 도심으로 갔고, 오후에 끝날 때면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매우 충실하게 보냈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아주 피곤했지만, 저는 ‘힘들고 고생스럽고 외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굳은 의지로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하자’라며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2. 수련생인 어머니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제고하다
2019년 12월, 저는 인생에서 하나의 큰 고비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중국에 계신 수련생인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현지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간 일이었습니다.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는 즉시 영국 불학회에 연락해 이 사실을 영국의 모든 수련생에게 알렸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저를 도와주었고, 제게 많은 조언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인 어머니를 구출하기 시작했고, 영국 정부, 현지 의원, 국제앰네스티에 편지를 써서 구출을 호소했으며, 서명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생각에는 늘 기복이 있어서, 잠시 정념이 생겼다가도 또 금세 희망이 아득하다고 느끼며 생각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저는 반드시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구세력과 사상업이 저를 소극적으로 만들려고 교란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구세력의 함정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서히 제 생각은 확고해졌고 마음가짐도 갈수록 평온해졌습니다.
구출 과정에서도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심성 시험이 많았습니다. 며칠 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게 변했습니다. 제가 수련생들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몇 번이나 수련생들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너무 집착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왜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 전화를 해주기만 기다리고 자신이 직접 중국 경찰에게 전화를 걸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어려움 속에 있던 저는 이런 말을 듣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머릿속에서 수련생들에 대한 원망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즉시 이 원망의 싹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붙잡아 없애버렸습니다. 저는 아무리 괴로워도 수련인의 각도에서 긍정적으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수련생을 원망하는 것은 사악이 보기에 가장 기뻐할 일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생각해 보니, 수련생들의 말투는 좋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확실히 제가 제고해야 할 부분을 짚어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어머니가 석방된다는 결과에 너무 집착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납치돼 간 이 사실을 잘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구출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어머니 자신의 수련 상태와 업력 등을 포함한 다방면의 요소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며, 저와 수련생인 어머니의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진상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수련생이 한 말에 대해서도 저는 이 문제를 깊이 반성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RTC 진상 전화팀 수련생들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저는 왜 하지 않았을까요? 그 속에는 의존심이 있었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악질 경찰을 마주하기 두려웠고, 진상을 잘 알리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기왕 제 문제를 인식했으니 저는 마땅히 용기를 내어 돌파해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진상 전화를 거는 면에서 돌파하려는 결심이 있음을 보시고는 경험이 풍부한 연세가 있으신 대법제자 한 분을 안배해 저를 돕게 하셨습니다. 이 수련생은 매우 인내심이 있었고, 저를 도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전화를 걸 줄 아는 다른 수련생 몇 명도 이 방에 추가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의 시간을 이용해 중국에서 어머니를 납치한 파출소, 공안국, 구치소에 함께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때는 보통 수련생들이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법공부하는 시간이었는데, 수련생들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저를 도와줄 수 있어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이 연세 지긋한 수련생도 늘 제게 더 많이 말해보라고 격려해 주셨고, 제가 말을 마치면 어디를 개선해야 할지 조언해 주셨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진상 전화를 거는 면에서도 큰 돌파를 이루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수련생들은 모두 각자 바쁜 일이 많아져 잇달아 아침 전화에 참여하지 못했고 저 혼자만 남게 됐습니다. 성탄절 기간에 저 혼자뿐이라 명절의 기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제게 주어지는 시험이며, 혼자인 상황에서도 굳건히 해나갈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반드시 이 고비를 잘 넘길 것이며 절대로 사부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아침 진상 전화를 거는 것을 줄곧 굳건히 해나갔습니다. 어머니가 불법적으로 감금된 지 20여 일이 지난 후, 마침내 제 전화가 사건 담당 경찰에게 연결됐습니다(그는 이른바 ‘증거’를 나열해 검찰원에 제출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사건 담당 경찰이었습니다). 그는 20여 분 동안 진상을 조용히 듣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는 바로 무죄로 석방됐습니다.
이번에 고비를 넘기면서 저는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전에 번거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시련을 두려워했으며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저는 수련인은 문제를 반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든 연공인의 각도에서 사고해야 함을 알게 됐고 정념정행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며 의존심도 닦아 버렸습니다.
3. 전염병 기간 법공부를 강화하고 여전히 홍법과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수련의 엄숙성을 더욱 인식하고 자신의 수련을 엄격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매일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강화해 한 시간짜리 포륜(抱輪)을 연마했고 법 암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법을 외우기 시작한 후 아주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바로 제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스스로 법을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비몽사몽하며 아직 맑게 깨어나지 않았을 때도 제 머릿속에서는 이미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제 수련 상태는 매우 좋아서, 밤에는 꿈에 제가 아주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극히 빠른 속도로 층층 공간을 돌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저는 약간 두려웠지만 흥분됨이 더 컸습니다. 저는 자주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고, 서로 다른 천국 세계로 날아가 장려한 천국의 성대한 광경을 보기도 했으며, 하늘에서 금빛 파룬이 회전하며 돌수록 커지는 꿈도 꾸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격리와 봉쇄에 직면했기에 토요일 도심 홍법 거점은 더 이상 계속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항목에 참여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문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저와 많은 수련생은 모두 RTC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거는 것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에포크타임스에서 전문적인 특별 신문을 내놓아 중공이 바이러스를 유출한 진상을 폭로했고, 저는 현지에서 집집마다 에포크타임스 신문과 생체 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 진상 전단지를 배포한 보급률은 거의 45%에 달했습니다. 이후에는 케임브리지 수련생이 저를 케임브리지 홍법에 초대했습니다. 케임브리지는 유명한 명승지로 매년 대량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션윈을 홍보하는 기간이 아닐 때는 저는 매주 토요일마다 케임브리지 진상 거점의 일선 진상 알리기 활동에 모두 참가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자비심의 위력과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한번은 중국에서 온 중년 남성이 생각납니다. 그는 얼굴에 살기를 띠고 팔을 휘저으며 제 앞을 걸어갔는데, 딱 봐도 건드리기 쉽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겁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아주 당당하게 인사를 건네고 진상자료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더니, 이어서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미소 짓자 그 사람 전체의 인상이 변하여 마치 온화하고 선량한 아저씨처럼 변했습니다. 이 일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우리가 속인의 겉모습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중국인은 중공 악당의 주입 속에서 얼굴 모습이 흉하게 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한 일념이 그들의 공간장에 도달할 때면 그들 공간장의 흉악한 기운과 선하지 않음을 녹여내 그들이 선량한 사람이 응당 지녀야 할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욕하는 사람을 자주 만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는 속인에게 영향을 주어 속인의 바르지 못한 사상과 행위를 바로잡아야지, 속인이 우리가 일을 하는 마음가짐에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 됩니다.
4. 션윈 항목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제고하다
저는 2019년부터 션윈 기념품 항목에 참여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매년 션윈 항목에 참여하기를 매우 고대하고 션윈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협력하여 션윈의 업무를 잘 완수할 수 있어서 저는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우 바쁘지만 저는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몸이 가뿐하고 상쾌하여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으며 며칠이 지나자 마치 신선 세계에 가서 한 바퀴 놀다 온 것 같아 모든 번뇌와 속인 중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잊었고 매일매일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션윈이 끝난 후에는 늘 아쉬워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점차 할 줄 모르던 것에서 갈수록 잘하게 됐고 갈수록 전문적으로 변했습니다. 예전에 션윈이 공연하는 도시는 많지 않았으나 점차 10여 개 도시로 발전하면서 필요한 일손도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책임자가 혼자서 모든 업무를 맡을 수 있었지만 도시가 증가함에 따라 책임자 혼자서는 바빠서 다 처리하지 못하게 됐고, 더 많은 사람이 일부 사무를 분담해서 도와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번거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책임자의 부탁을 마주할 때면 항상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저도 제고하고 책임감을 닦아내어 자신이 응당 맡아야 할 것을 맡아야 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하며, 일에 부딪히면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션윈 기념품의 한 판매대에서 현장 매니저 업무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들과 협력할 때 가끔 우리는 약간의 마찰이 있어서 제가 수련생에 대해 불만이 생기고 불만족스러웠으며 수련생이 책임감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끔 수련생과 소통하여 이 일을 터놓고 말하며 제 견해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종종 말해도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몹시 화가 났고, 비록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며 화를 내지 않았지만 얼굴 표정에서 저의 태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책임자에게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내년에는 특정 수련생들을 참여하지 못하게 합시다.” 하지만 이듬해에 이 수련생들은 여전히 초대를 받아 들어왔습니다.
이때 저는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는데, 분개하고 불평하는 마음은 이미 우주의 특성과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분명 제고해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선, 함부로 수련생을 이 항목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자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됐습니다. 누가 션윈 항목에 참여할 수 있는지는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입니다. 션윈 항목처럼 중요한 업무는 위덕을 세우는 얻기 힘든 기회이며 아무나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련생이 기왕 사부님께서 배치하셔서 온 것이라면 반드시 그들이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늘 다른 사람이 제 생각대로 일을 하길 원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이 제 기대에 부합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비난과 원망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더욱 이해하고 배려하며 원융해야 했습니다. 사람마다의 행위는 자기 경지의 표현이며, 매 수련생은 모두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고 수련 중에서 서서히 자신을 제고할 것입니다. 수련생들이 항목 속에서 수련하면 반드시 자신의 체득, 인식과 제고가 있을 것이며, 그들이 점차 경험을 축적하고 깨달음이 있으며 제고가 있을 때 그들은 자연스럽게 잘하게 될 것이지 저의 강요에 의해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포용하는 마음을 닦아내야 했고 남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어야 했습니다.
기왕 깨달았으면 해내야 합니다. 당시 저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목표를 정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션윈 항목에 참가할 때, 이 문제에서 제고가 있어야 하고 다시는 수련생에 대해 원망하거나 깔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어떤 표현을 하든 모두 받아들이고, 묵묵히 제가 발견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잘해야 했습니다. 이듬해 션윈이 됐을 때 이미 제 내면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비록 아직 약간의 원망심이 제거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이 개선됐고 내면도 많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올해 어느 도시에서 션윈 기념품을 판매할 때 제 판매대에는 저와 다른 수련생 한 명뿐이었는데, 이 수련생은 아직 업무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일말의 불만도 없이 묵묵히 모든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 혼자 일하는 것이 다른 판매대에서 여러 명이 일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전체 판매량도 작년에 비해 많이 증가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예전에 이른바 공평함에 너무 집착해 사람마다 모두 동등한 양의 일을 평균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의 능력에는 크고 작음이 있어 어떤 이는 이것에 능하고 어떤 이는 저것에 능하며, 어떤 이는 동작이 빠르고 어떤 이는 동작이 느립니다. 만약 우리 능력이 강하다면 마땅히 능력 있는 자가 수고를 더 많이 해야 하며 많이 분담한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불공평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본래 우리의 능력은 바로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능력과 장점을 마음껏 발휘해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맺음말
지난 몇 년간의 수련을 돌아보면 이 길에서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만났으나,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가지(加持) 아래 저는 비틀거리면서도 오늘까지 걸어왔고 수련이 쉽지 않음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5-2018년 워싱턴DC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당신들의 생명은 바로 이를 위해 왔음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정말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대법제자이다. 속인이라면, 그는 육도윤회하고 각계(各界)로 전생할 수 있으나, 당신들은 할 수 없는바, 당신들은 바로 대법 이 일이다. 그러므로 잘하지 못하면, 그럼 자기에게 남겨주는 그것은 곧 회한(悔恨)이다. 특히 그런 노(老) 대법제자들은 태만(懈怠)하지 말라. 당신들은 그처럼 어려운 세월 속에서 걸어지나와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얼마나 어려웠는가! 당신은 소중히 해야 함을 모른단 말인가? 나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신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그러므로 응당 스스로 더욱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저는 이 단락의 법을 읽을 때마다 모두 사부님의 고심하신 가르침, 간곡한 가르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단락의 법으로 자주 자신을 일깨우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하고 앞으로의 길을 더욱 진지하고 엄숙하게 대하며 정진하여 해이해지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2026년 유럽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8/51523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8/51523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