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덴마크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덴마크 대법제자입니다. 여러 해 동안 수련 상태에 기복이 있긴 했지만 대법을 시종일관 굳게 믿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수련 과정을 돌아보면 가정의 시련부터 션윈 홍보에 참여하기까지 거듭된 고비는 저에게 수련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더욱 체득하게 해주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더욱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1. 가정과 자신의 병업 시련 속에서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다
몇 년 전 우리집 가족은 오랫동안 고대하던 새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남편은 덴마크인으로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줄곧 제 신앙을 존중해주었고 가끔 대법 항목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두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고 저도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생활이 안정적이고 평온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일 때 남편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역시 우연한 상황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변고는 평온했던 삶을 깨뜨렸습니다.
처음 이 일들을 마주했을 때 제 마음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 의사의 요구에 따라 매일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을 주사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는 수련의 각도에서 이 일을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어떤 일도 우연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수련인이 마주하는 어떤 고비와 시련도 모두 수련의 각도에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인식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음식에 대해 기호가 많았고 안일심도 있었으며 스스로 수련을 늦춘 상황도 있었습니다. 속인의 의료 방식으로 의사가 저에게 제기한 요구가 수련인인 저의 관문을 넘는 기준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는 저에게 어떤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사실 그 음식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제 진짜 문제는 자신의 기호와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식습관을 조절했고 동시에 법공부와 연공을 더욱 중시했습니다. 점차 당뇨병 증상도 알게 모르게 절반 이상 사라졌습니다.
제 상태가 갓 안정됐을 때 남편의 병세가 오히려 급속히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도까지 진행됐습니다. 처음에 남편은 병원 응급실의 개방 병동에 입원했다가 이후 폐쇄 병동으로 옮겨졌고 마지막에는 장기 입원 병동에 배정돼 14차례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은 우리집에서 편도로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 시기 저는 낮에 일하고 퇴근 후 병원으로 달려가 남편을 병문안했으며 집에 돌아온 후에는 또 두 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저는 시종일관 법공부를 견지했습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 일깨웠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으니 넘지 못할 고비는 없다.’
치료를 받은 후 남편의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집에 돌아와 밤을 보낼 수 있게 됐고 이후 점차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병세는 여전히 좋았다가 나빴다를 반복했습니다. 가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남편의 동의하에 그와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 기간에 남편과 함께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 ‘파룬궁(法輪功)’과 각지 설법을 읽었습니다. 남편은 법공부할 때 병을 치료하거나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았고 그저 단순히 책을 읽고 연공을 시도했습니다. 연공할 때 남편은 몸의 에너지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질병의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업력과 각종 부정적인 요소의 교란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남편의 병세가 반복되는 동안 안으로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가족의 고통을 마주하며 자신에게 아직 가족에 대한 정이 매우 깊게 집착돼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남편의 상태가 좋았다가 나빠졌다 할 때 제 감정도 따라 요동쳤고 마음속에 조급함과 불안함이 생기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제가 법에 있어야만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고 속인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되며 정념으로 마주하고 자비와 선한 생각으로 갈등을 풀어야 함을 깊이 알았습니다.
가정, 일, 경제 및 신체적인 압박이 동시에 몰려올 때 참으로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수련인은 바로 이런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제고하고 의지를 단련하며 심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매일 여전히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고 제 능력껏 대법 항목에 참여했습니다. 갈등과 압박에 부딪힐 때마다 노력해 안으로 찾으며 자신에게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이 부족한지, 포용심이 모자란지, 정이 너무 무거운지 등의 문제가 존재하는지 반성했습니다. 비록 미혹 속에 있어 많은 일을 당시에는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시종 기억했습니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정진요지3-시카고 법회)
그러나 새로운 시련이 곧 다시 찾아왔습니다. 장기적인 가정의 압박과 시련으로 인해 제 감정 상태에 기복이 나타났고 심지어 제 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날 회사 상사가 저를 불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제 가정 형편을 이해하지만 이 기간 제 감정이 저조해 이미 고객의 기분에 영향을 미쳤다며 한 달 안에 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제 마음속에도 억울함과 압박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원망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노력해서 잘해내고 정념으로 눈앞의 모든 것을 마주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또 학교에 딸을 데리러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비록 차량은 심하게 파손됐지만 어른과 아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이때 저와 제 가족 모두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 있다는 것을 더욱 느꼈습니다. 반드시 잘 수련해 사부님의 고심을 저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엄준한 시련은 아직 뒤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의 병세가 통제 불능이 되어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고 저에게 위험한 행동을 했습니다. 갑자기 전깃줄로 제 목을 조른 것입니다. 당시 저는 한편으로 스스로 냉정함을 유지하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보호할 기회를 찾아 마침내 성공적으로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직 우리집에 도착하기 전에 남편은 대량의 약물을 복용했고 응급실로 이송됐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동안 심장이 두 번이나 멎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위급했습니다.
이 고비와 시련 속에서 저는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집착을 내려놓고 정념으로 시련을 마주했으며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품고 담담히 하나하나의 고비와 시련을 마주했습니다.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가정의 시련을 마주했을 때 내면도 점차 평온해졌고 사람의 생각이 적어지자 일도 종종 전환점이 나타났습니다. 비록 앞에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지만 대법 수련의 길을 확고하게 걷기만 한다면 반드시 하나하나의 시련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어느 날 밤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제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갔다, 지나갔다.” 깨어난 후 제 마음속은 감사함으로 충만했고 계속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이렇게 남편의 병세는 서서히 호전됐고 가정도 점차 가장 힘든 시기를 벗어났습니다.
그 세월을 돌아보면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대법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그 힘든 나날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임을 깊이 체득하게 됩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매번의 난관은 결국 모두 사부님의 보호 아래 지나왔습니다. 저를 지탱해 이 모든 시련을 넘게 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었음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매번 부딪힌 난관은 모두 시험 속에서 저를 제고하게 했고 이는 제가 대법의 인연과 대법 수련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했으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더욱 감사하게 했습니다.
2. 션윈 항목 속에서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을 닦아내다
2025년 말 우리는 사람을 몹시 흥분시키는 소식을 맞이했습니다. 션윈예술단이 마침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수년 동안 션윈은 덴마크의 제2, 제3의 도시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펼쳤고 현지 시민의 사랑과 환영을 받았으며 수도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션윈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하지만 중공이 현지 정부에 가한 경제적 협박과 압력 때문에 일찍이 2007년에 중공은 각종 수단을 통해 수도에서 이미 계획돼 있던 션윈 공연을 갑자기 취소시켰습니다. 그 후 2019년 중공의 초국가적인 탄압과 박해하에 우리는 줄곧 수도 극장의 난제를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말 코펜하겐에 새로 지은 한 극장에서 특별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 비할 데 없이 감격했고 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공연은 2026년 3월 말, 4월 초로 예정됐고 총 5회 공연에 1만 5000장 가까운 티켓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션윈을 홍보할 시간은 이미 꽤 제한적이었고 단시간 내에 션윈이 처음으로 공연되는 도시에서 션윈 홍보 작업을 잘해내야 했기에 수련생 인원수가 많지 않은 우리에게 이는 거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긴급히 행동에 나섰고 온 마음을 다해 션윈 홍보 항목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코펜하겐의 각 극장의 관객들이 기본적으로 주류사회 관객들이고 공연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전통 레퍼토리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극장의 관객들이 바로 우리가 션윈을 소개하고 홍보할 주요 대상층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진해서 매일 저녁 공연이 끝나고 흩어질 때 극장 문 앞에 가서 관객에게 션윈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맡았고 동시에 낮에는 각 시내 상가 거리에 가서 션윈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저는 내심 이 중요한 홍보 작업을 매우 소중히 여겼고 자신이 맡은 것이 중생구도의 중대한 임무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옷차림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저는 최대한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며 대법제자의 선량하고 진실한 풍모를 인연 있는 션윈의 미래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매일 저녁 극장으로 갈 때는 모두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야 했고 편도로 1시간 넘게 걸렸으며 때로는 한 극장의 자료를 다 배포한 후 가능한 한 빨리 다른 극장으로 서둘러 가서 계속 배포해야 했습니다. 극장에 추가적인 청소 작업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료 배포를 모두 극장 공연이 끝난 후로 선택했고 이렇게 하면 우리 자료를 받은 관객들이 자료를 극장에 남겨두지 않고 집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따라서 매번 자료 배포를 마치면 매우 늦은 시간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기본적으로 자정에 가까웠으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장기간 극장 앞에서 자료를 배포하다 보니 휴식 시간이 무척 적어졌습니다.
그런데 더 큰 시련은 덴마크의 올해 겨울이 몹시 추웠다는 점입니다. 올해 겨울은 마침 덴마크에서 수십 년 만에 보기 드문 혹한을 맞이해 뼈를 깎는 듯한 찬바람에 폭설이 섞여 체감 기온이 종종 영하 십몇 도에 달했습니다. 날씨가 열악해 폭설 날씨에 부딪힐 때면 일부 열차가 지연되거나 심지어 운행을 멈춰 홍보 작업에 많은 불편을 가져왔습니다. 찬바람 속에 서서 차를 기다릴 때, 극장 밖에서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을 기다릴 때, 한밤중의 추위 속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한참 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저도 무척 피곤함을 느낀 적이 있고 심지어 때로는 몸에 불편함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중생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저는 스스로에게 표면적인 어려움에 가로막히지 말고 반드시 이를 꽉 물고 변함없이 매일 극장 앞으로 가야 하며 하루라도 결석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웠습니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걸어 나올 때마다 저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인사하며 션윈 자료를 그들 손에 건넸습니다. 상대방이 받든 안 받든 저는 최선을 다해 선의와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했습니다. 점차 저는 사람을 진정으로 감동시키는 것은 결코 손에 든 자료만이 아니라 수련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한 생각임을 체득했습니다.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션윈 소개 자료를 받았고 광고도 보았다고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극장에 가서 션윈 자료를 배포하는 것 외에도 주말이 되면 또 코펜하겐의 각 시내 구역, 번화가에 가서 거리를 훑었는데 즉 집집마다 각 상점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에게 션윈을 소개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 매우 정교하게 인쇄된 션윈 광고를 상점 쇼윈도나 카운터 앞에 붙였습니다. 저는 종종 수백 장의 광고를 짊어지고 다녔는데 무거운 자료로 인해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여전히 견지하며 가게를 하나하나 찾아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에게 션윈의 아름다움을 소개했습니다.
비록 제가 매일 극장 밖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주말에는 거리를 훑었지만 올해 우리는 중공이 대법과 션윈에 대해 일으킨 또 한 차례의 전 세계적인 초국가적 탄압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뉴욕타임스’가 서구 사회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이용해 션윈에 대한 유언비어와 중상이 담긴 거짓 보도를 발표했고 션윈을 공연하는 각 도시에서 현지의 기만당한 매체들을 조직해 대법과 션윈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코펜하겐의 션윈 홍보도 똑같은 중공의 교란을 겪었고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말에 더욱 쉽게 교란당해 티켓 판매 상황이 예상만큼 빠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표를 산 어떤 사람은 거짓 선전에 의해 환불하기도 했습니다. 티켓 판매 진척이 느린 것을 보고 제 내심에서도 조급함과 초조함이 생겼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을 조급해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안으로 찾은 후 저에게 결과를 추구하는 집착심이 여전히 존재해 성과를 빨리 보기를 바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션윈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생각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 점을 인식한 후 결과를 바라는 집착을 노력해서 내려놓도록 자신에게 요구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내는 데 마음을 두었습니다. 동시에 발정념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바로 이때 회사가 업무 조정으로 저와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수개월 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제가 직장을 잃은 것 때문에 저를 대신해 아쉬워했지만 제 첫 일념은 도리어 감사함이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전업으로 션윈을 홍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남편도 순조롭게 새로운 직장을 구했고 가정의 경제적 압박도 일정 부분 완화되어 제가 더욱 션윈 홍보에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안 좋아 보이는 많은 일들이 반드시 진짜 나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체득하게 했습니다. 자신이 개인적인 득실을 따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저를 위해 안배하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법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졌고 심지어 매일 중국대사관 앞에 가서 발정념을 하는 것에도 참여할 수 있었으며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했고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원망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하지 않고 오로지 수련인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덴마크 수련생들과 다른 국가에서 덴마크로 지원하러 온 수련생들의 공동 노력하에 션윈은 최종적으로 순조롭게 공연을 마쳤습니다. 중생들이 극장에 들어가 션윈의 훌륭한 공연을 보고 션윈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진심으로 극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오히려 관객 중 한 명도 중공과 매체의 부정적인 보도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하시는 크나큰 자비를 깊이 체득했으며 자신이 다행히 션윈 홍보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과정에서 제가 수많은 집착심을 닦아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쉽게 두려워하고 물러서는 감정이 생겼지만 지금 저는 수련 속에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저는 매번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기회를 소중히 여길 것이며 제한된 수련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노력해서 세 가지 일을 잘해내며 자신을 잘 닦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심 어린 제도와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상은 제 현 단계의 작은 수련 체득으로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2026년 유럽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8/51523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8/51523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