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첨평(詹平)
[명혜망] 《서유기(西遊記)》 제53회에는 이런 두 구절이 있다. “덕행(德行)은 8백을 닦아야 하고, 음공(陰功)은 모름지기 3천을 쌓아야 하네. 물아(物我)와 친원(親寃)을 균평(均平)하게 대해야 비로소 서천(西天)의 본래 소원에 부합하리라.” 오승은(吳承恩, 약 1500~1582년)이 쓴 이 두 구절에서 ‘덕행’은 도덕적 수양을 뜻하고, ‘음공’은 남모르게 베푸는 선행을 뜻하며, ‘균평’은 평등하게 대함을 뜻한다. 또한 ‘물아’는 외물(外物)과 자아를 뜻하고, ‘친원’은 친한 이와 원수를 뜻한다.

어떤 이는 이 두 구절이 《서유기》 수행 경로의 핵심을 개괄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 글에서는 물질적 수요의 관점에서 ‘물아와 친원을 평등하게 대함(均平物我與親寃)’이라는 점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현대인들은 타인과 자신, 친한 이와 원수를 평등하게 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중 주관적인 느낌, 정서, 감정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대 사회의 법률과 법규는 눈이 부실 정도로 복잡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대부분 자아와 욕망을 중심으로 구동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타인, 자신, 친한 이, 원수를 ‘균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거의 천방야담(天方夜譚, 아라비안나이트)에 가깝다. 그렇다면 전통문화에서는 사람됨과 사회 상태를 어떻게 가늠했을까?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 기록에 따르면 자공(子貢)이 일찍이 “가난하고 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고 귀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孔子)는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고 천해도 도(道)를 즐기고, 부유하고 귀해도 예(禮)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자공은 가난하고 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고 귀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이미 아주 훌륭하다고 여겼지만, 공자는 자공이 말한 사람됨의 기준이 안 될 것은 없으나 가난하고 천하면서도 수신(修身)을 즐기고, 부유하고 귀하면서도 천지간의 질서를 깍듯이 지키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빈천을 막론하고 모두 천(天), 지(地), 인(人) 사이의 관계를 수호하고 천지간의 질서와 규율을 준수하며 수신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사람됨의 요령이라는 뜻이다.
중국 ‘(현대) 4대 사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첸무(錢穆, 1895~1990)는 《중국역사연구법(中國歷史硏究法)》에서 중국 전통의 경제관은 ‘인문주의’(혹은 ‘도덕주의’, ‘예의주의’라고도 함)를 입장으로 삼지, ‘욕망’을 입장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갖가지 욕망과 물질 경제는 모두 ‘인문 이상(理想)’과 ‘도덕 예의’의 인도와 절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수준’의 필수적인 경제는 인생에 대해 그 긍정적인 가치가 있지만, 불필요한 ‘초수준’ 경제는 인생에 결코 긍정적인 가치가 없으며, 심지어 부작용과 반가치(反價値)를 낳아 사람의 욕망을 조장한다. 만약 물질 경제를 욕망에 따르게 한다면 인생을 무한히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불균형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곧 인생의 고통과 재앙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경제 문제를 언급할 때는 종종 ‘제절근도(制節謹度, 절제하고 한도를 지킴)’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경제는 단지 인생을 보조하는 데 쓰이는 것일 뿐, 인생을 지배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경제 발전이 한도가 있고 절제가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중국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이상적인 수준은 주로 ‘평(平)’, 즉 욕망의 평식(平息, 가라앉음)과 평정에 있다. 욕망이 가라앉고 평정돼야만 비로소 ‘천하태평(天下太平)’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할 수 있다. 청나라 이여진(李汝珍, 약 1763년~1830년)의 《경화연(鏡花緣)》에 나오는 ‘서로 양보하고 다투지 않는 군자국(君子國)’(《산해경(山海經)》에서 유래)은 아마도 이러한 ‘태평’한 정경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오(唐敖)와 다구공(多九公)이 한가로이 군자국을 유람했다. 번화가에 이르러 그들은 물건을 사는 자가 파는 자를 ‘겸양’한다고 여겨 “물건은 좋은데 값이 싸다”라며 마음이 불안해 값을 더 쳐주겠다고 요구하는 것을 보았다. 반면 물건을 파는 자는 사는 자가 ‘극기(克己)’한다며 “물건은 적은데 값이 비싸다”라며 한사코 값을 올리려 하지 않았다. 길가로 두 노인이 지나가다가 공정하게 평가해 가격을 정해주고 나서야 비로소 거래가 성사됐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사는 쪽은 흥정하며 ‘물건은 적은데 값이 비싸다’ 같은 말을 하고 파는 쪽은 ‘물건은 좋은데 값이 싸다’라고 말하는 것이 모두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군자국 사람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정반대여서 전혀 다른 풍조를 보였다. 당오와 다구공은 길을 가면서 군자국에서 ‘밭을 가는 자는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을 가는 자는 길을 양보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선비와 서민 등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행동거지와 언행이 너그럽고 예의 바르지 않은 자가 없었다. 군자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매우 평범하게 여겼다. 당오와 다구공은 ‘군자국’이라는 국명과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好讓不爭)’라는 네 글자가 십중팔구 이웃 나라에서 부여한 평가이자 찬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혜창(明慧之窗) 웹사이트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제목은 ‘고집 센 시어머니의 좋은 며느리’이다. 중국에 사는 위안위안(袁媛, 가명)에게는 성질이 무척 고집스러운 시어머니가 계셨는데, 매우 상대하기 힘들었다. 이 시어머니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시어머니가 종종 “나는 네가 안 무섭다. 목이 떨어져도 목덜미로 들이받아서라도 너를 이겨 먹을 거다!”라는 말을 즐겨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어머니가 화를 낼 때는 왕왕 말을 가리지 않고 어떤 심한 말도 다 내뱉었으며, 남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장기간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으니, 며느리의 나날이 얼마나 억눌리고 견디기 힘들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시어머니는 어딜 가나 자기 며느리가 좋다고 말하며, 위안위안을 ‘얻기 힘든 좋은 며느리’라고 칭찬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알고 보니 며느리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통해 자신에게 ‘평화를 유지하고 계산적인 마음을 내려놓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번은 시어머니가 화가 잔뜩 나서 며느리에게 “너 진짜 멍청하구나! 너 진짜 멍청해!”라며 욕을 퍼부었다. 두 번째 욕을 할 때 며느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위안위안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던 시어머니는 마치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 얼굴이 단번에 활짝 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됐다, 내가 하마!”라고 말했다. 그 순간, 위안위안은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 뭔가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의 묵은 은원이 모두 풀렸다고 느꼈다.
우연의 일치는 또 있다. 서양에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神國論)》이라는 책을 썼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에서 로마의 쇠락은 도덕적 쇠퇴 때문이며, 기독교 교리는 로마 쇠락의 원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덕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독교인들이 귀속되는 곳은 로마 제국이나 지상의 어떤 성곽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했다. 지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 시민들의 공통점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 있고 후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로 인해 생겨난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결합해 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은 서양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욕망’을 가라앉히지 못하면 영혼에 ‘평안’이 없다고 여겼음을 보여준다. 오직 자아와 외물, 친한 자와 원수를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듯 서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승은이 쓴 ‘물아와 친원을 평등하게 대함’은 동서양 문화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태평성대를 창조하며 나아가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즉 동양의 성불성도, 서양의 하나님에게로 회귀함)에 이르는 올바른 경로이다.
이에 반해 중국공산당(중공)은 유물론과 무신론을 선전하고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고 선전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절대적 평균주의’라는 구호는 온갖 극단적인 방식을 초래해 소름 끼치는 빈부격차를 만들어냈다. 반면 ‘빈부를 균등하게 한다(均貧富)’라는 구호는 사람의 불로소득을 유도하고 물질적 욕망과 폭력적 성향을 증가시켜 사회 전체를 ‘물질 숭배주의’, ‘실리 추구’라는 기로로 이끌었다. 《당문화 해체(解體黨文化)》라는 책에 이에 대한 전문적인 논술이 있으니, 본 글에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다.
쑨원(孫中山)은 일찍이 1921년에 ‘심물합일론(心物合一論)’(중성일원론이라고도 함)을 제기해 정신과 물질의 통일을 주장했다. 즉 유물론도 아니고 유심론도 아니며, ‘심(心)’으로써 정신을 지칭해 정신과 물질 두 가지가 공존하고 상호작용함을 강조했다. 이는 중화 전통문화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도덕을 배제한 채 물질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돈을 최고로 여기게 되고, 욕망이 끝없이 팽창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만방자해지고 도덕성이 상실되는 길로 접어들게 될 뿐이다. 반면 정신이 완전히 결여된 물질은 오직 ‘걸어 다니는 송장(行屍走肉)’으로밖에 형용할 수 없으니, 그것은 태평성대의 정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고 돌아 다시 《서유기》로 돌아와서 “물아와 친원을 평등하게 대해야 비로소 서천의 본래 소원에 부합하리라”라는 이 구절을 다시 보면, 훨씬 더 생생하게 와닿고 옛사람들의 오성(悟性)이 남다르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지 않는가?
원문발표: 2026년 10월 5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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