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먀오윈한(邈雲漢)
[명혜망] 아주 오래전 한 미국 청년과 건축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이것들(길가의 현대 건축물을 바라보며)은 좀 지루해요. 그냥 네모난 상자일 뿐이죠. 저는 그래도 신고전주의가 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땅히 반항기에 있어야 할 청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당시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필자는 과거에 적지 않은 현대 건축물을 설계했지만, 그때부터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건축이 모두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끝에 다다른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현대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대중을 위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각양각색의 이론과 언설은 갈수록 탁상공론에 불과해졌고,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엘리트 지식에 갈수록 관심이 적어지거나 아예 묻지도 않는다. 대중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그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비판했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부터 의도한 바가 그러했으며 ‘대중을 위한다’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명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유럽 르네상스 이후 조각, 회화, 건축은 3대 주요 예술 장르로 갈수록 널리 인식되었다. 하지만 회화나 조각과 달리 건축에는 실용적인 측면이 존재해,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건축물을 사용하고 볼 수 있으며, 건축을 감상하는 데는 특정한 공간이나 훈련이 필요하지 않고, 더욱이 특정 신분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의 예술이 알게 모르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건축이 사람에게 미치는 이러한 영향은 회화나 조각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광범위하다. 이러한 영향은 긍정적인 교화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타락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인류의 도덕 수준이 비교적 높을 때 예술은 신을 찬송하고 찬양하는 것을 위주로 하며, 인간성 속의 선념을 일깨우고 사람의 품행을 향상하며 도덕을 함양할 수 있다. 세태가 날로 악화하고 예악(禮樂)이 붕괴할 때, 문화예술 형식 또한 필연적으로 타락을 따르며 인성 속의 마성을 더욱 증폭시켜 사람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 모든 것이 끝에 다다라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가 바로 결산할 때이다. 결산은 동시에 사람에게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시비, 선악,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자 신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자비이다. 신께서 사람에게 남겨준 변치 않는 가치 기준을 지침으로 삼아 사람의 이러한 판단 및 분별 능력을 잘 활용해 진정한 좋고 나쁨, 선과 악을 점차 식별해 낸다면, 사람은 갈수록 신과 가까워지고 신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신 역시 다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그저 사람의 후천적인 관념과 변이된 사상에 따라 행동하고, 사람의 매우 제한적인 인식 능력만을 믿고 의지하며, 신께서 사람에게 남겨주신 규범과 계명을 배제하고 무시한다면, 이는 이러한 능력의 근본을 내버리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사람의 표면적 지력을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신을 반대하는 길로 통하기 쉬우며, 이때의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금수(禽獸)와 크게 다를 바 없어져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과거에 현대인들이 흔히 보는 현대 건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몇몇 선언이나 이론에도 흥미가 생겨 가끔 들춰보기도 했지만, 갈수록 이러한 심미관이 신께서 사람에게 남겨주신 정통 심미관에서 벗어났고, 이러한 선언과 이론들 역시 정상적인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식을 왜곡하고 있음을 느꼈다.
현대 건축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 구호와 노선은 무엇인가? 언행이 일치했는가, 아니면 자기모순에 빠졌는가? 그것이 미친 영향과 사람들의 평가는 또 어떠한가? 개인의 현재 인식 수준과 층차에 한계가 있어, 본문은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 먼저 간단한 답변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1. 모더니즘 건축이 시작된 배경
현재 서양인들의 한 가지 관점은 근현대가 르네상스 시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이 시기 이후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의 변혁과 비교할 때 현대 건축의 본격적인 시작은 꽤 늦은 편이다. 19세기에 전통적인 건축 관념은 여전히 강세였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미 기세가 꺾였다. 이 세기의 유럽에서는 신고전주의와 각종 복고 형식이 유행했는데, 나중에는 점차 각 복고 형식 자체의 순수성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여러 복고 요소를 혼합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갈수록 불만을 품게 되었고, 미래의 새로운 건축 형식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첫째, 대략 르네상스 시기부터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중요한 특징 하나는 갈수록 사람 자체에 관심을 두고 강조하며 신성한 사물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거나, 혹은 사람 자체를 신격화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상적 분위기 또한 모더니즘 건축이 탄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이 특징은 더욱 뚜렷해졌다. 로크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했고, 볼테르는 전통적 권위를 비판했으며, 루소는 왕권신수설에 반대하고 정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여겼고, 일부 기독교 철학자들 역시 그들의 철학 체계에서 신을 배제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마침내 이러한 사상들을 서재에서 현실로 끌어냈다. 이후 사람의 이성과 그것이 초래한 재난에 대한 반성으로 인해 19세기 철학 및 문예 분야에서는 낭만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비록 반이성주의적이고 인간의 감정을 강조했지만, 관심을 둔 것은 여전히 인간 자체였다.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중후반에는 인간 중심의 각종 주의가 거의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서의 사실주의 등이다. 이 시기 건축 양식의 혼합은 각종 배신(排神) 주의가 함께 일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건축은 물질적 실체를 지니고 있는데, 18세기의 산업혁명은 현대 건축에 새로운 재료를 제공했다. 런던 만국박람회의 전시 홀, 즉 조지프 팩스턴이 설계한 ‘수정궁(Crystal Palace, 1851)’은 현장에서 철강과 유리로 조립되었으며 새로운 건축의 선례가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개막이 임박해 공사 기간이 빠듯했고 전시 홀 또한 박람회 기간 며칠 동안만 사용할 예정이었기에, 이러한 방식은 애초에 미봉책에 불과했다.

신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작인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

신고전주의의 대표작인 미국 국회의사당

신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작인 프랑스 팡테옹

현대 건축의 선구자인 런던 수정궁

현대 건축의 초기 대표작인 파리 에펠탑(세계 최고층 건물 기록: 1889~1930)

현대 건축의 초기 대표작인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세계 최고층 건물 기록: 1931~1972)
(계속)
원문발표: 2026년 8월 3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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