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아 완고한 집착을 깊이 파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안으로 찾는 것은 수련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기입니다. 지난 1년간의 수련 과정을 총결하면서 저는 안으로 찾고 저의 완고한 사람 마음과 집착을 깊이 파내는 면에서 약간의 수확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근본적인 집착을 찾다: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저는 ‘7·20’ 이전에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열등감이 있었는데 수련 이후에야 서서히 열등감의 그림자를 떨쳐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면서 저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명혜망 교류 문장을 들었는데 작성자가 병업 고비를 겪고 있는 한 수련생을 문안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자신의 수련 길을 돌아보며 스스로 꽤 괜찮다고 여겨 당당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업 고비를 넘던 수련생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그에 대해 안타깝게 느꼈지만 저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한번은 ‘명혜주간’을 보는데 한 문장에서 작성자가 자신이 과거에 강연으로 난법하던 행위를 깊이 분석했습니다. 이 행위는 바로 ‘난 괜찮다’고 여기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왜 또 ‘난 괜찮다’는 내용과 마주쳤는지 생각하며 저 자신을 살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번 살펴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뜻밖에도 저의 근본적인 집착이었습니다! 수련 전의 열등감, 수련 중에 마음은 있으나 힘이 부족했던 상태는 그저 ‘난 괜찮다’는 추구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심리 반응에 불과했습니다.

사부님의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라는 경문을 읽을 때마다 저 자신을 대조해 보며 제가 대법에 들어올 때의 마음이 매우 순수했다고 여겼고 그로 인해 줄곧 저에게는 근본적인 집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난 괜찮다’는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을 때 제가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확실히 법을 얻기 전 저는 이곳저곳을 헤매며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수련하지 않았고 머릿속은 완전히 속인의 관념이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한다고 여겼던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자비로운 제도로 이끌기 위해 정성껏 안배하신 것이었으나, 표면적인 사람의 일면인 저는 이를 분명히 알지 못했고 사람의 일면은 완전히 ‘가장 훌륭한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저 ‘난 괜찮다’는 느낌을 추구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대법에 들어올 때는 ‘가장 훌륭한 내가 되고 싶다’는 ‘인생의 갈망과 소원’을 품고 있었는데, 그토록 여러 해 수련하면서도 스스로 이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품고 수련 과정 속에서 순수하게 대법에 동화하며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한 것이 아니라 ‘나는 꽤 잘 수련했다’고 느끼는 망념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해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납치됐습니다. 구치소에서 심문받을 때 곁에서 악랄한 경찰이 한 남성 수련생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수련생은 맞아서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고 악랄한 경찰은 때리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저를 심문하던 경찰은 그들을 한 번 보고 저를 한 번 보더니 “협조하지 않으면 최소 3개월은 가둔다”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흔들림 없이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감옥 바닥이 뚫어질 때까지 앉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일념이 당시 넘어야 할 심성 고비의 요구에 부합했는지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년 동안 이 장면은 마음속 깊이 남아 줄곧 이것이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굳건한 신념이며 매우 신성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스스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의 근본적인 집착을 깊이 파고들었을 때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그 장면이 사실은 순수하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이 말은 법에 있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라고 하셨지 감옥에 갇혀 있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시니 대법제자는 당연히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합니다. ‘감옥 바닥이 뚫어질 때까지 앉아 있겠다’는 말은 곧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둘째, 이 말에는 중공 악당의 ‘영웅 인물’이라는 깊은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저는 중공 악당 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수련 초기,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나오기 전에는 제 몸에 있는 당문화(黨文化) 독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고 대법에 대한 확고함을 나타낼 때조차 당문화 어휘를 사용했습니다. 한두 명의 속인 친구가 대법에 대한 저의 굳건함을 중공 악당의 영웅으로 묘사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정념을 수련해 내지 못했고 기껏해야 일종의 고집일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당시 상황에서 제 스스로 ‘잘 수련했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것은 늘 돌파하기 힘든 병목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대면 진상에 능숙한 수련생을 따라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수련생은 오후 반나절 만에 20~30명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시켰는데, 저는 혼자 진상을 알리러 나가면 오후 내내 2~3명도 삼퇴시키지 못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요? 그 수련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만나서 몇 마디 나누고는 바로 주제로 들어갔으며, 말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각도를 바꿔서 한 단계 한 단계 상대방의 마음속 맺힌 것을 풀어주며 결국 성공했습니다. 반면 저는 오랫동안 좌우를 살피며 한참을 찾아야 겨우 한 사람을 골라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주제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말하기 힘든 사람을 만나면 종종 상황을 뒤집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의 정념이 다른 공간에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다는 것을 알았고, 저는 정념이 강하지 않아 사람을 구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정념이 강하지 못했을까요? 깊이 파고들어 보니 바로 근본적인 집착이 속에서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멸, 반감 등을 보일 때, ‘난 괜찮다’는 이 녀석이 먹이를 얻지 못하자 즉시 난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조급함을 일으키고 정념을 깎아내렸습니다.

‘난 괜찮다’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저는 나도 모르게 그것에게 먹이를 주며 키우고 있었고 거의 매 순간 그것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수련 전에는 명리정(名利情, 명예·이익·정) 속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것에게 양분을 찾아주었고, 수련 후에는 그것이 숨어들어 ‘안으로 찾기’ 이면에 몸을 감춘 채 여전히 수시로 양분을 얻고 있었습니다.

제가 밖으로 찾는 눈길로 속인을 보면 속인이 아주 낮게 느껴졌습니다. 속인이 질병과 여러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아도 연민의 마음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우월감이 생기며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밖으로 찾는 눈길로 주변 수련생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병업 고비를 넘지 못한 수련생을 보면 저는 그렇지 않기에 ‘난 괜찮다’고 느꼈고, 전향된 수련생을 보면 저는 그렇지 않기에 ‘난 괜찮다’고 느꼈으며, 속인의 마음이 무겁게 섞인 말을 하는 수련생을 보면 그 점에서도 제가 그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발견했을 때조차 ‘역시 내가 수련을 꽤 잘해서 이런 걸 발견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난 괜찮다’고 불리는 이 녀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고 마치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위해 수련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뻔히 알 때도 그것은 완고하게 제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뻔뻔하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깨닫지 못하고 수년 동안 이렇게 심각한 근본적인 집착을 꽉 쥔 채 스스로 진수(眞修) 제자라고 여겼습니다. 이러니 수년 동안 사부님의 법신을 뵙지 못하고 가짜 법신만 여러 번 꿈에서 본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늘 자신이 개인 수련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고 느끼며 우주 정법과 중생의 안위에 대해서는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하는 면에서 늘 힘겹게 느꼈던 것도 당연했습니다.

이제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 근본적인 집착 뒤에는 구세력이 쳐놓은 혼을 빼놓는 거대한 진(陣)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쪽 발을 허공에 디딜 정도로 길을 잃게 만들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사부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제자에게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진작 도태됐을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이 근본적인 집착이 극도로 심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안 된다’는 또 다른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점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이 거대한 진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저는 법을 통해 ‘난 괜찮다’고 여기든 ‘난 안 된다’고 여기든 모조리 ‘가짜 나[假我]’이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사상업력(思想業力)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수련 속에서 가짜 나를 똑똑히 보았을 때 어쨌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비록 그 한 걸음을 내딛기가 매우 힘들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완고한 사람의 마음을 찾다: 뼛속 깊이 믿는 것은 여전히 과학

저는 줄곧 자신이 과학을 맹신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저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실증할 수 없고 인류의 도덕성 향상을 이끌 수 없으며 과학이 초래한 많은 문제는 인류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줄곧 제가 과학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최근 1년의 수련 속에서 제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만큼 명확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주 흐리멍덩한데도 단지 스스로 알지 못했을 뿐임을 발견했습니다.

20년 전 저는 치아를 한 번 때운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이 때운 치아가 가끔 씹을 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치과에 가봐야 하나?’ 하는 한 가지 생각을 움직인 적이 있습니다. 법에 있지 않은 이 한 가지 생각 때문에 일련의 번거로움이 찾아왔습니다. 먼저 입안 반대쪽에 있는 치아가 아프더니 나중에는 아예 반이 떨어져 나가 혀로 치아가 파손되어 남은 깊은 구멍을 건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치과 의사를 찾아가 치아를 때웠습니다.

간호사는 제 파손된 치아를 보고 “이 파손된 곳에 하얀 물질이 한 층 있네요”라고 했고, 치과 의사도 그 치아를 보더니 “다른 곳에서 치아를 때우셨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듣고 아주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문득 시어머니의 치아가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니는 90세이신데 오랜 세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건강이 아주 좋으셨고 치아도 하나도 빠지지 않으셨으며 딱딱한 것을 드시는 데도 문제가 없어 모두가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제가 시어머니의 입안을 살펴보다가 어금니마다 중심에 하얀 땜질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것은 작은 치약 덩어리가 납작하게 눌려 굳어진 것 같았고 어떤 것은 불규칙한 모양의 판자를 대충 박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 입안은 마치 수리한 낡은 집처럼 보기는 안 좋아도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었는데, 저는 시어머니가 치아를 때우신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어머니는 평생 치아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어 치과 의사를 찾아간 적이 아예 없으셨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작년에 처음으로 치과에 가야 할지 마음을 움직였을 때 우연히 시어머니 치아의 신기함을 본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제자를 일깨우시며 사람의 관념으로 이 문제를 대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심성에 문제가 없으면 치아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치아가 아팠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치아가 반이나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깨닫지 못하고 사부님 설법에서 치아를 때워도 된다고 하신 것을 핑계 삼아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심성 제고의 기회를 밀어내고 속인의 기술로 수련 중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과학에 대한 믿음이 대법에 대한 믿음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명혜망 교류 문장을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 수련생이 외과 의사였는데 한번은 병업 고비를 겪던 수련생이 그를 찾아와 간 수술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수련생과 법에서 교류했지만 수련생이 고집스레 수술을 하겠다고 해서 그는 수술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 중 그는 놀랍게도 그 수련생의 간 ‘병소’ 부위에 비정상적으로 단단한 보호막이 덮여 있어 메스로 아주 힘들게 그어야만 절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수련생의 오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탄식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다 깔아놓으셨고 단지 수련생 자신의 심성 제고만 남았는데 그 수련생은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치과 진료를 받은 후 저는 이 명혜망 방송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제 치아의 파손된 곳에 있던 하얀 물질은 분명 사부님께서 조금씩 제 치아를 때워주고 계셨던 것인데, 저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속인 치과 의사를 찾을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제자이며 제 몸이 신체(神體)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어떤 속인의 기술, 어떤 속인의 재료가 이에 걸맞을 수 있겠습니까?

매번 ‘전법륜(轉法輪)’ 제7강의 발치와 관련된 내용을 법공부 할 때마다 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에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서 저는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전법륜’을 공부할 때 어느 정도까지 깨닫는가에 따라 우리 몸도 그 정도까지 변화하며 곧 신체가 고에너지 물질로 어느 정도까지 전환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단락의 법리를 깨닫지 못했기에 치아가 고에너지 물질로 전환되는 것이 가로막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거듭 기회를 주시며 제가 깨닫게 하셨지만 저는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고향 친척이 우리 도시에 진료를 받으러 와서 제가 친척과 함께 병원에 가서 전문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 며칠 동안 법공부가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와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문득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소통할 때 옆에서 듣는 소리가 제 귀에 쏙쏙 들어왔고 의사의 책임감 있는 태도에 저는 아주 감탄했으며, 심지어 그 여의사가 컴퓨터를 보며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조차 아주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연극에 너무 깊이 빠진 것입니다.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교란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저는 선명한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무대 아래에서 션윈 공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보다가 저는 무대로 올라가 무용수들 사이에 섰습니다. 극의 흐름에 따라 저는 무용수들과 함께 높고 큰 복도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고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작은 승합차에 탔고 차가 출발했습니다. 한 검문소에 이르자 차가 멈췄습니다. 저는 혼자 차에서 내리며 차는 거기에 막혀 있지만 사람은 먼저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이 크게 변했고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때 길가에서 한 중년 남성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 차를 타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타지 않겠다고 하고는 고개를 돌려 빠른 걸음으로 좁은 시멘트 배수로로 들어가 비탈길 아래로 걸어갔습니다. 그 남자는 뒤에서 바짝 따라붙었고 제 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꿈에서 깼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뜻을 분명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경고라는 느낌이 들어 즉시 정념을 발했습니다.

다음 날 이 꿈을 곱씹어보며 자신의 심성이 떨어졌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문제인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친척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후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처음 병원에 동행했을 때 이미 꿈으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연극에 너무 깊이 빠지면 길을 잃게 되고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요. 그런데 저는 당시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왜 연극에 너무 깊이 빠졌을까요? 제가 치아를 때울 때 치과 의사의 태도가 아주 좋았고 무척 책임감이 있어서 저는 호감을 느꼈고,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이 아주 이치에 맞다고 여겼습니다. 친척과 병원에 갔을 때도 의사의 태도가 아주 좋았고 역시 무척 책임감이 있어서 저는 똑같이 호감을 느꼈으며 똑같이 그녀가 하는 말이 아주 이치에 맞다고 여겼습니다. 안으로 찾을 때 저는 이 배후에 뭔가 깊은 이치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현대 과학 기술을 장악한 권위 있는 사람(예를 들어 의사)을 우러러보는 것은 사실 현대 과학에 대한 숭배였으며, 이 큰 누락을 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 저를 시험하기 시작했고 제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함정에 빠질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는 큰 병업 고비를 겪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줄곧 병업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아주 중시했고 몸에 나타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아주 경각심을 가지며 저 자신에게 법에서 인식하라고 일깨웠습니다. 하지만 뼛속 깊은 곳에 있는 현대 과학에 대한 집착이 저를 법리에서 명확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치아를 때우는 문제에서 빈틈을 남겼던 것입니다.

법에서 인식이 제고된 이후 법공부가 다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후 한 번은 정념을 발할 때 머리를 빡빡 깎은 한 뒤통수를 보았습니다. 제가 정법 구결을 외우자 그 머리는 처음에 기운 없이 늘어지더니 이어서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제가 다년간 형성한 과학 관념의 껍데기이며, 제가 마침내 안으로 찾은 이후 남김없이 드러났고 또한 제가 정념을 발하는 중에 해체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어떤 여자가 광장 한구석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앞의 텅 빈 것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지만 외부 윤곽은 저와 비슷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가짜 나이며 과학이라는 종교 속에서 맹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명혜망 문장 ‘대법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과학을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보다’를 읽고 인상이 깊었습니다. 글에 인용된 한 단락의 법이 저를 일깨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현재의 모든 사람은, 학교에 다녔다면 곧 과학이 양성한 사람이다.”(미국 서부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과학이 만들어 낸 존재인 이상, 수련 속에서 이 껍데기를 벗겨내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제가 친척과 병원에 동행하던 나날 동안 마음속으로 저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을 닦아내는 데 전념했는데, 문득 사람을 구하는 창문이 열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친척은 저의 이끎에 따라 매일 이어폰을 끼고 진지하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고, 제가 선물한 ‘전법륜’을 받아들였으며, 또 적당한 때에 제가 그녀의 남편에게 주는 진상 자료를 전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병원에서의 치료 과정도 자연히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그녀가 최근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과거 부부가 매일 다투던 일이 없어졌고 그녀는 마작도 치러 가지 않게 됐으며 오히려 선량하고 배려심 깊게 변해 남편을 화나게 하던 모든 요소가 전부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법을 들은 까닭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남편은 아주 기뻐하며 그녀가 법을 듣고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그 자리에서 밝혔습니다.

9년 전 그녀가 처음 발병하여 수술을 받은 후 제가 특별히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그녀에게 법공부와 연공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는 건성으로 대하며 거절했고 건네준 호신부(護身符)도 어디에 흘렸는지 알 수 없었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제 친척으로서 이미 10여 년 전에 저는 그녀가 삼퇴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이토록 여러 해 동안 알려야 할 진상도 모두 알렸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 그녀가 진료받는 것을 돕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조금씩 알렸을 뿐인데, 그녀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과 중생구도가 서로 보완적임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4/50829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4/508295.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