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속에서 정진하며 각종 집착심을 담담하게 내려놓다

글/ 중국 대법제자 항행(恆幸)

[명혜망] 수련해 온 지난 26년의 과정에서 비바람과 여러 차례 넘어지는 교훈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간곡한 가르침 아래 쓰러지지 않고 법 안에서 정진하고 법 안에서 제고하며 걸어왔다. 아래에 수련 상황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뼈를 깎는 아픔으로 이익심을 제거하고 수련생에 대한 정을 내려놓다

현실 사회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누리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피서용 별장을 구입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됐다. 오염된 사회환경 속에서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오염돼, 다년간 동고동락한 수련생과 그녀 남편이 피서용 별장을 분양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속으로 별장을 살 계획을 세웠다. 각지에서 피서 온 사람이 많을 테니 피서용 별장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수련생에게 말하자 그녀는 매우 지지해 주었다.

다음 날 그녀는 남편이 이미 매니저와 이야기를 잘 마쳐서 싼값에 팔기로 했다며, 대략 35제곱미터에 7만 위안만 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당시 속으로 망설이며 수련인으로서 피서용 별장을 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수련생의 좋은 뜻을 고려해 거절하기도 미안해서 승낙했다. 마침 수련생 남편에게 실적을 하나 올려주는 셈이기도 했다. 이렇게 아주 빨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체결일 기준 이듬해 5월에 집을 인도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집을 인도할 때가 되자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고 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집이 없으면 돈을 돌려받으면 되니 그게 더 좋지 않은가?’ 하지만 주택 회사는 돌려줄 돈이 없었고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후, 수련생이 실상을 말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고 그녀 남편이 회사를 위해 나를 속였다며 원망심이 생겼다. 수련생이 분명 내막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 통곡했고, 한동안 그녀와 왕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수련 중에 부딪힌 일이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안으로 찾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내게 무슨 집착이 있기에 이토록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알고 보니 이익심과 수련생에 대한 정에서 비롯돼 원망심이 생긴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빠듯한 가정에서 자라 생활이 비교적 어려웠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생활이 매우 검소했다. 심지어 나중에 형편이 넉넉해졌을 때도 여전했기에 이익을 비교적 중시했고 너무 지나치게 절약했다. 이번에 수련생 남편을 찾아가 집을 산 것은, 피서용 별장을 사면 그곳에서 진상을 알릴 기회가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원인 중 하나이긴 했지만, 싼값을 탐내는 생각과 편안함을 누리려는 안일함도 있었다.

그 수련생과 20여 년간 줄곧 협력해 진상을 알리며 비바람을 뚫고 다녔다. 구불구불 험난한 시골 산길이든 도시의 크고 작은 골목이든 모두 우리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무형 중에 수련생에 대한 의존심이 생겼고, 가혹하고 사악한 박해를 받을 때 수련생이 보여준 확고하고 두려움 없는 정기(正氣)는 무한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내 수련에도 큰 격려가 됐다. 이로 인해 그 수련생에 대한 숭배와 정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수련 중에 부딪히는 그 어떤 일도 아무 까닭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마음을 닦는 과정이 비록 힘들었지만 얻은 것이 있기에 사부님의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2. 모녀의 정을 내려놓다

박해를 받을 당시 직장을 잃었다. 전남편은 비교적 속물적인 사람이라 내가 직장을 잃자 이혼할 생각부터 했다. 딸이 태어난 후 7살 이전까지 그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져본 적이 없고 매일 마작관만 드나들었다. 생활비가 없어지자 퇴직 간부인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부양했다.

우리는 비록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별거 중이었다. 불법적으로 3년반 형을 선고받았을 때 우리는 이혼 수속을 밟았다. 그때부터 딸과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딸이 크는 동안 아버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어머니인 내가 책임을 다하려 했지만 당시엔 자유마저 잃은 상태였다. 딸은 겨우 생후 9개월이었을 때부터 내가 박해받음으로 인해 충격과 고독함을 겪어야 했고, 이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박해를 받을 때마다 가장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바로 딸에 대한 걱정이었고, 딸을 그리는 정이 마음속에 쌓여 매우 고통스러웠다. 납치당할 때 두려움에 떠는 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칼에 찔리는 듯 괴로웠다. 잔혹한 박해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어린아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동안 딸은 자주 고개를 숙인 채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아 마치 바보 같았다. 딸이 걱정되자 내 모정은 갈수록 무거워졌고 심지어 잠조차 이루기 어려웠다. 가장 괴로울 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밖에,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전법륜) 사부님의 법리를 깨달은 후 딸에 대한 진하고 깊은 혈육의 정을 많이 내려놓게 됐고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물질 덩어리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모정을 내려놓는 것은 내게 있어 몹시 힘든 과정이었다.

3. 색욕심과 질투심을 닦아버리다

줄곧 색욕과 남녀의 정을 담담하게 본다고 생각했고, 수련의 장애물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혼해서 혼자인 한 남자 수련생과 대법 일을 조율하며 협력할 때도 남녀 간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남자 수련생이 나와 사귀고 싶다며 가정을 꾸릴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대답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에게 과연 이 방면의 문제가 있는지 안으로 찾았다. 이전에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음이 느껴졌다. 전남편과 이혼한 후 고독하고 쓸쓸했으며, 이혼 후 남들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는 체면심에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망이 싹텄던 것이다. 동시에 속으로 그 수련생의 외모가 괜찮고 문화적 소양도 나쁘지 않으며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기에 내면에 감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약간의 우려도 있었다. 이미 이혼했으니 순수하게 수련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이런 마음이 남아있단 말인가? 사부님 법상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정법이 마지막에 이르렀는데 이런 사람 마음이 있어서는 정말 안 될 일이었다.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한 후, 그 수련생과 만났을 때 나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며 더 이상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수련생은 계속 고집을 부렸다. 압박감을 느꼈고 수련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으며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걱정됐다. 다시 안으로 찾았고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색욕심이었고 남녀의 정이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발정념(發正念)을 강화해 내 자신의 공간장에 있는 색욕과 남녀의 정을 제거하자, 그 수련생의 마음도 많이 평온해졌다.

그 후 수련생들과 조율하며 협력할 때 어떤 일들로 인해 언쟁이 벌어지면 상대 수련생은 몹시 분개했고, 나 역시 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다퉜으며 표정이 사나워졌다. 질투심이 매우 완고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튀어나온다는 것을 의식했다. 질투심을 닦아버리기 위해 수시로 자신을 경계하며 수련생의 장점을 많이 보려 했다. 고비를 넘기기 어려울 때마다 사부님의 법을 반복해서 외웠고, 그러자 천천히 이런 물질이 옅어졌다.

4. 진상을 원하는 세상 사람들

세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이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지만 법공부와 발정념도 늦추지 않고 병행했다. 수련생과 정말로 교류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노년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을 알렸다. 만약 어쩌다 지체하기라도 하면 속으로 자책할 뿐만 아니라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졌다.

1) 올해 4월 24일, 좍좍 쏟아지는 큰비에도 나와 노년 수련생은 여느 때처럼 약속대로 어느 공원에 갔다. 나이 든 아버지와 젊은 딸이 비에 젖은 돌의자에 앉아 우산을 든 채 기운 없이, 또 초조하게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이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기운이 없고 안색이 잿빛인 것을 발견했다. 30세가량 된 딸은 옆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 말했다. “참 효녀네요. 이렇게 큰비가 오는데 아버지를 모시고 놀러 오다니, 정말 너무 착하네요!” 그녀가 말했다. “저와 아버지는 모두 공무원이에요. 아버지는 한 교육위원회 책임자신데 이곳에 안 오신 지 7~8년이나 되셨어요. 어쩌다 오늘 두 분을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기쁘네요! 평소에 저희는 이곳에 놀러 오지 않는데, 오늘 오자마자 두 분을 만난 건 정말 인연이에요.” 그 말을 듣고 기회를 꽉 잡아 진상을 알리자 부녀는 아주 신속히 모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그들에게 호신부(護身符)를 주었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럽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께 바로 이 평안을 지켜주는 게 필요했어요!” 아버지는 호신부를 받아 들고 연신 말했다. “감사합니다!” 내가 말했다. “저희에게 감사하실 것 없어요. 아버님을 구해주신 분은 대법 사부님이시니 저희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부녀는 한목소리로 말했다. “대법 사부님 감사합니다!”

다음 날, 우리는 또 다른 공원에서 마주쳤는데, 그들은 친절하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고 기분이 매우 유쾌해 보였다. 보아하니 그 아버지의 안색이 불그스레해졌고 정신 상태도 많이 좋아져 보였다. 우리는 또 대화를 나눴고, 당시 그 아버지의 생명이 원래 얼마 남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진상을 알고 난 후 생명을 구원받은 것이다!

2) 한번은 외딴곳에서 채소를 가득 멘 70대 노인을 만났다.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싶어 여쭤보았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들어보셨어요?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갑자기 그가 펑펑 울며 말했다. “여태껏 나한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나에게 이리 잘해주오?” 나는 그의 그 일면이 구원받기를 오래도록 고대했기에 이토록 감격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아주 신속히 삼퇴를 했고 길을 걸어가면서 연신 말했다. “너무 좋네! 너무 좋아!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다니!”

3) 농촌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세요. 재난이 와도 목숨을 지킬 수 있어요!” 그녀가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해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꼭 기억할게요! 하지만 오늘 내가 동과 하나 줄 테니 꼭 받아 가요.” 내가 말했다. “감사해요! 전 필요 없어요. 고생하시는데 돈 몇 푼 버시기도 쉽지 않잖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주머니께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셔서 저도 무척 기뻐요. 혹시 당, 단, 대 조직에 가입하셨다면 얼른 탈퇴하세요.” 그녀는 어떤 조직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떠날 때 그녀는 다음에 오면 자기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우리는 또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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