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속인들이 말하는 ‘라오싼제(老三屆,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적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특정 세대)’이자 문화대혁명의 전 과정을 겪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민감한 체제 내에서 공부하고 일했기에 공산당 당문화(黨文化)가 매우 무거웠고 쟁투심이 강해 어떤 환경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으며, 이로 인해 젊은 나이에 온몸이 병투성이가 됐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지옥에서 건져내시어 영혼을 씻어주시고 몸을 정화해주셨습니다! 근 30년의 수련 과정에서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사부님의 가르침과 가지(加持) 속에서 대법을 떠난 적이 없었으며, 법공부와 연공은 매일 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신 이후, 매일(특수한 상황 제외) 오전에는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법공부를 하며 대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밥을 먹거나 요리를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는 명혜방송, 정견방송의 교류 문장을 듣습니다. 외출하는 길에는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며, 매 순간 법 속에 있으니 무척 즐겁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요구와 정진하는 수련생에 비해 격차가 크다는 것을 압니다. 정법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이 기회를 빌려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코로나 사태 전후 몇 년간 수련하며 겪은 상황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코로나 시기에도 사람 구하는 것을 잊지 않다
1999년 대법이 박해받기 시작한 이래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마다 거의 매번 제자들이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자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기에 반드시 마음을 다해 해야 합니다.
2013년 이전에는 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편지를 부치는 것을 위주로 했고, 그해 초부터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사부님의 가지 아래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매일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알렸으며, 자녀 집에 가서 일을 돕거나 다른 지역에 잠시 머물 때도 조건을 만들어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가끔 자녀들을 따라 며칠 여행을 가거나 속인 일로 지체돼 며칠 동안 진상을 알리지 못하면 마음이 매우 불안해졌고 심지어 일종의 죄책감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는 사악의 중심지라 민감한 날도 많고, 감시 카메라도 많고, 보안 인력도 많으며,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사악한 당의 세뇌를 더 깊이 받아 저에게 더욱 큰 사명감을 갖게 했습니다.
3년이나 지속된 코로나 시기에는 오늘은 이곳을 봉쇄하고 내일은 저곳을 봉쇄하거나 아예 전면 봉쇄를 해 진상 알리기에 큰 어려움이 따랐지만, 대법제자로서 아무리 어려워도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두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매일 오전마다 나가서 대면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코로나가 가장 심각할 때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거의 거르지 않았는데, 그 기간에는 밖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가야만 사람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구할 기회가 생기며, 나가서 단 한 사람을 구하더라도 바로 하나의 천체(天體)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기본적으로 매일 인연 있는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진상을 알릴 때 또 하나의 큰 난제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 상대방이 전염될까 두려워해 종종 멀리 떨어지라고 소리치는 것이었고, 저를 모욕하거나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도 자주 만났습니다! 가끔 정념이 약해지면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서지, 아니라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나와서 무얼 하겠어! 예전 같으면 내가 어디서 이런 무시를 당했겠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진상을 듣는 다수의 사람이 여전히 매우 긍정적이고 모두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진상을 깨달은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준 호신부(護身符)를 집에 모셔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멀리 가면서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조금 겁이 나서 그에게 소리를 낮추라고 했는데, 그는 “이미 은퇴했는데 그들이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늘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라고 했고, 언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거나 제 연락처를 묻는 사람 등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은 후 기뻐하는 모습은 모두 저에게 큰 격려가 됐습니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 역시 마음을 닦는 과정입니다. 저도 사부님의 도움으로 겁을 내며 불안해하고 사람 마음이 많았던 상태에서 나중에는 당당하게 중생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기간에 두려움, 안일함, 체면 등 많은 집착을 닦아 없앴습니다. 저는 주로 크고 작은 공원에 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코로나 기간에는 본래 외출하는 사람이 적었는데 어떨 때는 아주 멀리 공원 입구까지 걸어가서야 공원이 봉쇄됐거나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지 못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잘 모르는 큰 공원에 갔는데 멀리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다가가 보면 색깔 있는 쓰레기통이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해가 가고 추위와 더위가 반복돼도 견지했습니다. 특히 매년 여름 극도로 더울 때면 자주 땀이 흘러 눈을 뜰 수 없었고, 제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 모기와 벌레를 많이 끌어들여 자주 사방에 물려 부어올랐는데 옷을 입은 채로도 물렸습니다. 우리의 이깟 고생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겪으신 고통을 우리가 또 얼마나 알 수 있겠습니까?!
코로나 기간에 저는 반년 동안이나 허리에 병업(病業)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천장관절 부위가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파서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걸핏하면 결려서 걷기조차 힘들었으며, 허리를 구부릴 수 없고 잠잘 때 자세를 잘 잡지 못하면 잠들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가상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나가서 사람을 구했으며, 이 기간에도 고통을 참아내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어떨 때는 걷다가 움직일 수 없게 됐는데 외출하려면 버스를 타야 했기에 자주 버스에 타자마자 차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고 내리자마자 또 움직일 수 없어서 오랫동안 조정한 후에야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대법의 지도로 고통을 참으며 업을 제거해 마침내 극복했습니다. 자신의 수련에 누락이 있어 다른 병업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심박동이 빨라지는 부정맥도 거의 1년 가까이 지속됐고 한번은 넘어져서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변형되고 머리가 멍해졌으며, 오른쪽 갈비뼈가 넘어진 충격으로 아파서 감히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고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속에 저는 이러한 박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단 하루도 나가서 사람 구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다쳤을 때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썼기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수용 능력을 보고 이것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얼굴을 보여주며 “보세요, 제 나이에 이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 대법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결과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몇 년간 비록 사람 구하는 일을 좀 하긴 했지만, 2024년까지 1만 5천여 명을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시켰습니다. 올해부터는 삼퇴를 권한 인원수를 더 이상 기록하지 않고 있는데, 여전히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진상을 잘 알리는 수련생들에 비하면 격차가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의 교류 문장에서 수련생들이 매일 수십 명씩 탈퇴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큽니다. 동시에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하든 간에 사람을 구하는 분은 사부님이시며 사부님의 자비라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사부님이 안 계시고 대법이 없다면 우리가 누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 중에서 진상을 비교적 잘 깨달은 이가 있을 때마다 저는 먼저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순조롭지 않을 때는 어떤 마음이 사람 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안으로 찾습니다.
2. 떳떳한 대법제자가 되다
두려움이라는 물질은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제가 닦아야 할 주요 집착심 중 하나였는데, 제가 접했던 수련생들은 모두 저 같지 않은 듯했습니다. 객관적인 원인으로는, 저 본인과 집안의 일부 구성원이 모두 체제 내에 있고 친숙하고 접촉하며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 모두 이익 계층의 현대적 관념과 당문화가 심한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된 원인은 여전히 저 자신의 문제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저 역시 이 방면에서 수련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고, 사부님의 가르침 아래 많이 닦아 없앴습니다. 대면으로 진상을 알릴 때 기본적으로 매우 떳떳해졌고 딱히 두려울 것이 없어졌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담담히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외출하다가 차 안에서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결국 그녀가 저를 고발했습니다. 승무 경찰이 저를 식당칸으로 납치해 다른 사람에게 감시하게 하고 제 여행 가방을 밑바닥까지 다 뒤집어 놓았으며, 제가 사부님의 설법을 듣는 음성 휴대폰도 빼앗아 갔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관련 법을 외웠습니다. 제가 생활용으로 쓰는 휴대폰은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기에 화장실에 가는 틈을 이용해 수련생인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현지 수련생들이 모두 저를 도와 정념을 발해주었습니다. 동시에 자녀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절대 연줄을 찾아 손을 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녀는 놀라서 대성통곡을 하며 “우리 엄마가 이번엔 목숨을 걸었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차가 제가 사는 도시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남녀 경찰이 올라와 저를 납치해 또다시 저를 역 파출소로 넘겼습니다. 기차역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이 총출동해 저를 심문했는데 특히 국보 경찰은 매우 사악했습니다. 기차 안에서부터 역에 이르기까지 저는 줄곧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역에서 정오부터 오후 6시가 넘도록 계속 대치하자 그들의 태도도 서서히 누그러졌습니다. 그들은 저를 심문실에서 아래층 그들의 사무실로 옮겼고, 그 국보는 “할머니, 여기서 연공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제가 대법 진상만 알렸고 우려하는 마음이 있어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수련생들이 정념을 발해 사악이 제거됐고 저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제 두려움이 여전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한번은 제가 어떤 부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 아내는 그런대로 받아들였지만, 그 남편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따금 매서운 눈초리로 저를 쏘아보면서 손으로는 끊임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저는 그가 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는 잠시 후 아내를 불러 신속히 떠났습니다. 그들이 몇 걸음 가지 않아 그 남편이 전화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불안해졌고, 그가 저를 악의적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단정 짓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 당시 신속히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떠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정념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중공 악당의 빅데이터 감시의 사악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감시망을 통해 집으로 찾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더 무서워져 서둘러 그날 입었던 옷을 숨기고, 숨겨야 할 자료들도 다 숨긴 뒤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모셔둔 방을 잠갔습니다. 저는 계속 정념을 발하며 ‘홍음2’의 ‘두려울 것 뭐냐’, ‘위덕(威德)’, ‘정법(正法)’ 등 사부님의 법을 외웠고,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이 두려운 물질을 닦아 없애도록 가지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서서히 제 정념은 갈수록 강해졌고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와 비슷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매번 뼈를 깎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의 그 두려움을 항상 깨끗이 없애지 못해 사악에게 빈틈을 찔렸고 진상을 알린 것 때문에 집에서 납치됐지만 저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자주 괴롭힘을 당했고 현지의 중점 감시 대상으로 감시를 받아 원래의 수련 환경에 변화가 생겼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람을 구하는 데 교란이 형성됐습니다. 그전에는 괴롭힘을 거의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씩 각종 사람 마음이 폭로되어 뼈를 깎는 듯이 두려움을 닦아 없앴습니다. 사부님의 법 ‘두려울 것 뭐냐’, ‘위덕’, ‘정법’ 등을 몇 번이나 외웠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됐는데도 이 두려움은 늘 깨끗이 없어지지 않고 질질 끌면서 때때로 한바탕 쇼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사악에게 그렇게 겁을 먹다니요! 다행히 저는 끊임없이 그것을 닦아 없애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하루빨리 이 고비를 철저히 넘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정에 얽매이지 않다
정(情) 또한 제 수련의 길에서 하나의 큰 고비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곧바로 딸이 병을 앓았고, 딸은 막 회복되자마자 남편(사위)이 외도한 사실을 발견해 연이어 이혼하고 이사하고 집을 구하고 아이 학교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딸은 원래 유명 외국계 기업의 고위 임원이었는데 아이를 가지려고(당시 가정 경제 상황이 괜찮았음) 퇴사했고 오랫동안 집에 머물면서 사회적 자원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혼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본래 어려운데다가 코로나 기간이었고 아이도 돌봐야 했기에 정말 많은 곤경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과정 중 이것이 제거해야 할 집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닦아 없애기가 비교적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법리를 깨달았으면 열심히 닦아야 하는데 그 마음은 여전히 억눌러지지 않았고 이따금 또 튀어나왔습니다. 나중에 그 근원을 깊이 파보니 근본은 여전히 이기심으로 세월이 평온해 안일한 생활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원망심, 질투심 등이 섞여 있었습니다. 대법제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까! ‘닦자! 닦자!’ 법의 지도 아래 점차 이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수련생인 여동생이 또 납치돼 4년형을 억울하게 선고받았습니다. 가족 정과 수련생 정이 뒤엉켜 이 역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오직 법공부를 하며 법 안에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밖에요. 저는 그것을 사람 마음을 없애고 집착을 없애는 좋은 일로 여기며 저 자신을 수련하고 저 자신을 단련해 하루빨리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에 도달하여 합격한 제자가 되겠습니다!
맺음말
저는 닫힌 채로 수련하고 있으며 또한 매우 둔감한 유형에 속해 근 30년의 수련 과정에서 아무런 특별한 느낌이 없었지만, 그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확고하게 사부님을 따라갔습니다. 줄곧 견지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역시 사부님의 합격한 제자가 되려면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첫 번째임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하는 것 외에도 한 번 필사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12번을 외웠습니다. 아쉬운 점은 매번 한 번 다 외운 뒤 곧바로 다음 번을 이어서 외우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심지어 몇 년의 간격을 두었기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부 수련생들처럼 책을 보지 않고 전부 다 외우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련과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저는 상응하는 그 단락의 법이 떠올라 자신을 바로잡곤 합니다. 각지 설법은 매년 적어도 두 번 배웁니다. 저는 아직 깨끗이 없애지 못한 사람 마음이 많고 심지어 넘지 못한 고비도 있으며 수련이 착실하지 않아 사부님의 요구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배로 정진해 얼마 남지 않은 정법 기간에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열심히 잘 해내고, 사람의 것들을 제거하여 깨끗하고 말끔하게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 무릎 꿇고 절을 올립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12/5121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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