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줘저우(涿州)시 파룬궁수련자 가오춘롄(高春蓮)은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발동한 이후, 두 번의 불법적인 강제노동 2년, 두 번의 불법적인 5년형, 두 번의 세뇌반 박해를 겪었고, 공직에서 해고됐으며, 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체벌, 구타, 전기충격, 동사(凍死) 위협,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수면 박탈 등 다양한 고문을 당해 죽을 고비를 겪었다.
신앙의 자유는 헌법이 시민에게 부여한 기본 권리이자 박탈할 수 없는 천부인권이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향하게 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기에 본래 아무런 잘못이 없다. 가오춘롄은 법에 따라 관련 부서에 국가배상을 신청해, 그녀가 12년의 부당한 옥고와 심각한 심신 훼손을 겪게 한 책임 부서에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이하는 가오춘롄의 진술이다.
1. 수련 전 질병에 시달리다가 수련 후 심신에 큰 변화가 일어나다
저는 올해 61세로 본적은 줘저우시 칭량쓰(淸凉寺)구 다사칸(大沙坎)촌이며, 징스(京石) 고속도로 가오베이뎬(高碑店) 요금소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순탄치 않은 삶으로 인해 저는 만성 위염, 만성 신장염, 만성 신경쇠약 등을 앓았고 몸은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었으며 정신이 몽롱해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1996년 의지할 곳이 없었을 때 이웃의 소개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도 안 돼 여러 질병이 모두 사라졌고, 난폭했던 성격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직장에서는 긍지를 갖고 부지런히 일해 상사와 동료들에게 만장일치로 인정받았습니다. 1999년 저는 부서에서 우수 직원으로 선정됐지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부서에서는 감히 상부에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수련 이후 저는 이웃,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고, 가족 간의 오랜 묵은 원한도 저로 인해 모두 풀렸습니다. 원한이 깊었던 시어머니에게도 저는 세심하게 배려했고, 시어머니는 자주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이 이렇게 좋은 제자를 가르치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친척, 친구, 이웃들은 제 심신의 큰 변화를 보고 모두 대법(大法)의 훌륭함에 감탄하고 존경했습니다.
2. 첫 번째 강제노동: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고문을 당하다
1) 2001년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2년에 처해지다
2001년 4월 18일, 저는 다른 수련자와 통화하다 연루돼 납치됐고 불법적으로 2년의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바오딩(保定) 노동수용소에서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자들은 납판 바르기, 무거운 철제 구조물 옮기기 등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고온에서 일하면서도 아무런 방독 조치가 없었고, 손은 마찰로 핏물집이 잡혔으며 대량의 납독을 흡입해 피로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대장 장궈훙(張國紅), 대장 천야쥐안(陳亞娟)은 밤에 저를 강제로 쪼그려 앉게 하고 번갈아 가며 제 무릎을 걷어찼습니다. 그로 인해 왼쪽 다리에 심한 멍이 들었고 걸을 때마다 절뚝거렸으며,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눈에 띄게 가늘어졌습니다.
2) 의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밤새 모기와 벌레에 물리다
2002년 7월 25일, 저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비디오 시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장 류쯔웨이(劉紫薇)에 의해 의자에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밤새 모기와 벌레에 물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웠으나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구역질과 구토가 일어났고 토해낸 오물 냄새를 사흘 밤낮으로 맡아야 했으며,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3) 여러 사람에게 구타당해 아래턱 골절
대장 류쯔웨이와 세 명의 형사범 장훙(張紅), 우샤오리(吳曉麗), 칸춘쥐안(闞春娟)은 저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고 머리채를 잡아 벽에 40여 차례나 부딪히게 했으며, 번갈아 가며 입과 아래턱을 때리고 뺨을 때렸으며 다리와 복부를 발로 찼습니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구타로 저는 다음과 같은 상태가 됐습니다.
· 얼굴이 부어올라 형태가 변함
· 입과 코에서 출혈
· 입이 찢어짐
· 아래턱 골절
· 치아가 흔들림
· 음식을 삼키지 못함
· 바닥에 머리카락과 피가 흥건함
저는 너무 아파 누울 수가 없었고 벌에 쏘인 듯 두통이 심했습니다. 당직 대장 장궈훙은 사람이 죽을까 봐 두려워 죄수들을 시켜 저를 사무실 책상 위로 옮기게 한 뒤 밤새 저를 지켜봤습니다.
4) 장기적인 수면 박탈
경찰들은 매일 밤 당직을 서며 새벽 4시까지 번갈아 가며 저를 불러 대화했고, 낮에는 졸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고문이 3개월간 지속됐으며 그들은 제 의지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3. 세뇌반 박해: 나무에 수갑이 채워지고, 침대에 한 손으로 수갑 채워져 생명이 위독해지다
2003년 5월 강제노동 기간이 만료된 후, 정법위 서기 가오젠(高健), 촌 주임 취쳰밍(屈乾明)은 저를 곧바로 줘저우 세뇌반으로 보냈습니다.
주임 가오쉐페이(高學飛)는 제 양손을 나무를 껴안은 채로 수갑을 채웠고,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주임 리밍(李明)은 두융루(杜勇祿)에게 지시해 24시간 동안 제 한 손을 침대에 수갑으로 채워놓게 했습니다. 가오쉐페이, 자오인주(趙銀玖), 왕레이(王雷), 왕차오(王超)는 번갈아 가며 제 뺨을 때리고 고무봉으로 등을 때렸는데, 지금까지도 등의 멍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박해를 받아 끊임없이 구토했고 얼굴빛은 새파래졌으며, 몸무게가 20여 kg밖에 나가지 않아 생명이 위독해졌습니다. 그제야 부주임 두융루가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보내 응급 처치를 받게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저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4. 아버지는 협박을 받아 사망하고, 아들은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다
세뇌반 박해 기간, 사무소 직원들이 우리집을 여러 차례 괴롭혔습니다. 한번은 정법(政法) 거리에 진상 자료가 가득 붙어 있었는데, 사무소에서는 제가 쓴 것으로 의심하고 아버지에게 저를 찾아오라고 강요하며,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를 잡아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여러 차례 정치 운동을 겪은 아버지는 중공 박해의 잔혹함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날 밤 너무 놀라 소변을 지리셨습니다. 아버지는 2004년 음력 3월 22일, 66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강제노동을 당하는 동안 8살 된 아들은 자주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울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차별하며 벌을 세우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아들의 베개 안은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고 어린 마음은 큰 상처를 받아 성격이 고립되고 위축됐습니다.
5. 첫 번째 부당한 5년형: 구타, 전기충격, 대변 주입, 장시간 수면 박탈
1) 2007년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다
2008년 9월부터 허베이 여자감옥 제10감구는 저에게 강제 ‘전향’을 시도했습니다. 지도원 장리화(張麗華)는 다섯 명의 죄수에게 저를 여러 차례 구타하도록 지시했는데, 매번 2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머리채를 잡고, 귀를 잡아당기며, 입을 때리고, 눈을 후벼 파서 저를 뒤척이지도,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죄수 저우허우링(周候玲)은 대변을 깔창에 발라 제 입에 쑤셔 넣기까지 했습니다.
2) 부감구장 한슈신에게 40분간 전기충격을 당하다
제가 노예 노동을 거부하자 한슈신(韓秀欣)은 저를 구타하고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그녀는 전기몽둥이를 완전히 충전한 뒤 제 얼굴과 목에 40분 동안 연속으로 전기충격을 가해 살갗이 타서 짓물렀습니다.
3) ‘작고 어두운 방’에 1년 9개월간 감금되다
2010년 8월, 저는 제13감구 세뇌반으로 보내져 4제곱미터 넓이에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고 여름에는 선풍기가 없는 작은 방에서 1년 9개월 동안 감금됐습니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기상해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며 강제로 서 있는 벌을 받고 사악한 이론을 주입당했습니다.
저는 두 달 동안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콧줄로 음식물이 주입됐고 비용은 제 카드에서 공제됐습니다. 죄수 리펑친(李鳳琴)은 고의로 음식에 소금을 다량으로 넣고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해,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겨울에는 의자에 앉지 못하게 했고 저는 6개월 동안 매일 18시간씩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엉덩이가 배겨 딱딱한 굳은살이 생겼고 뼈가 손상됐습니다.
감옥경찰 자오구이메이(焦貴梅)는 제가 서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4개월 동안 씻지 못하게 해, 머리카락이 한 덩어리로 엉겨 붙어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6. 두 번째 수감: 18일 밤낮 동안 연속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하다
2015년 8월 18일, 저는 두 번째로 허베이 여자감옥에 보내져 박해를 받았습니다.
제14감구 감구장 왕예(王野), 차오하이옌(曹海燕)은 사악하게 깨달은 자[邪悟者]들을 사주해 저에게 11개월에 걸쳐 강제 ‘전향’을 시도했습니다.
· 첫 번째는 8일 밤낮을 버티게 함
· 두 번째는 6일 밤낮을 버티게 함
· 세 번째는 18일 밤낮을 버티게 함
단 1분 1초도 자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눈도 깜빡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감시 조원인 죄수들은 2시간마다 교대하며 찬물을 얼굴에 뿌리고 저를 흔들어 대서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져 환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차오하이옌은 제 양볼을 꽉 잡고 강제로 약을 주입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단단한 멍울이 남아 있습니다.
쿵샤오페이(孔瀟飛)는 공장에서 저를 창고에 가두고 매일 10시간 넘게 추위에 떨게 했습니다. 창고 안은 실외보다 온도가 낮았고 제 몸은 극도로 허약해져 하루하루가 1년 같았습니다.
수년간의 고문으로 인해 출옥할 당시 저는 정신이 위축되고 기억력이 감퇴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머리카락이 반백이 됐습니다. 또 허리가 굽어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7. 17년 만에 아들과 재회: 모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다
저는 장기간 감금되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2022년이 돼서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고문을 당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이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8. 맺음말: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사람이 죽은 배후에는 신앙 자유에 대한 유린이 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심신이 건강해지고 도덕성이 향상된 것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나 중공과 장쩌민 집단은 국법을 무시하고 천리를 무시하며, 제 가정을 파탄 내고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이래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 수많은 가정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 수많은 아이가 부모가 모두 감옥에 가면서 갈 곳을 잃었습니다.
· 수많은 노인이 자녀가 박해받아 부양해 줄 사람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인권과 생명, 그리고 사회 윤리에 대한 심각한 파괴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11/512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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