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남편의 굳은 신념과 나의 각성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와 남편은 대학 동창입니다. 우리는 졸업 후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와서 각자 한 대형 국영기업 산하 분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남편은 재능이 뛰어나 상사의 인정과 중용을 받아 곧 분공장 공청단 서기로 승진했고 일은 매우 바쁘고 고됐습니다.

1998년 여름 남편은 동료의 권유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편의 권유로 저도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봤지만 무신론 교육의 영향을 깊이 받아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도 어리고 집안과 직장 일도 많아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의 수련을 매우 지지했고 남편을 보며 이 공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보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느꼈으며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정부와 언론의 거짓 선전에 깊이 중독됐고 주위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각종 멸시의 시선에서 오는 압박감과 남편이 박해받으며 생긴 두려움 때문에 저는 그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온한 생활을 원했고 남편이 언제 또 경찰에게 끌려갈지 매일 걱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남편과 자주 다투고 심지어 이혼으로 위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남편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줬습니다. 친척, 친구, 동창, 직장 동료들 모두 우리가 다투는 일을 알 정도였습니다. 2008년 저도 수련에 들어선 후 많은 사람이 제게 “처음엔 그렇게 반대하더니 어떻게 남편과 똑같이 됐어요?”라고 묻곤 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남편과 저의 이 경험을 들려드리고 어떻게 반대하던 사람이 대법 수련에 들어서게 됐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 시절은 우리 인생에서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략 1998년 여름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면서 ‘전법륜’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습니다. 밤에 남편은 매우 열심히 읽었고 저는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자신도 아직 잘 모르겠다며 다 이해한 뒤에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출장을 갔는데 출장 갈 때 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책은 챙겨갔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몹시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밤에 남편은 출장 중에 그 책을 읽고 얻은 수확을 제게 몹시 들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거의 평이한 말로 쓰인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책에서는 우주, 시공, 생명의 근원, 사람과 신의 관계, 인과응보 등 수많은 천기와 오묘함을 모두 명명백백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책에서는 우주에 법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진선인(眞·善·忍)’이며 진선인에 따라 행해야만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고 진정으로 신체의 건강과 경지의 승화를 얻을 수 있고 사람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책을 다 읽은 그날 밤 남편에게 책에서 말한 ‘신체를 정화하는’ 상태가 나타나 온몸이 오싹해지며 심한 감기에 걸린 것 같았고 자신이 먹은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배출하더니 이내 신속히 나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진정으로 병이 없어 몸이 가볍고 어디든 다 편안한 그런 느낌을 체험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저는 지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할 때 매우 감격하고 흥분해 있었던 것은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남편이 마치 딴사람이 된 것처럼 더욱 명랑하고 낙관적이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직장 일은 여전히 바빴지만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매우 친절해져서 동료나 이웃에게 일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왔습니다. 그 시절은 우리 인생에서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박해가 닥치자 두려움이 한계에 달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999년 7월이 됐고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하늘땅을 뒤덮는 사악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대형 국영기업으로서 더욱 정세를 바짝 따랐습니다. 각 부서에는 누가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질문하고 등록하는 전담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부서의 당무 책임자가 명부에 따라 한 사람씩 면담하며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당시 우리 곁의 선량한 파룬궁수련생들은 마치 이질적인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각종 언론매체는 매일 하늘을 덮을 듯한 거짓말로 파룬궁을 모함했고 마치 ‘문화대혁명’이 재현된 것 같았으며 사람들이 파룬궁을 입에 올릴 때면 전부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소위 미신, 무지, 병을 치료하지 않음, 심지어 자살 등 거짓말들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룬궁수련생의 가족인 저마저도 몹시 고통받고 멸시를 당했습니다.

남편도 직장에서 과급 책임자에 속했고 평소 업무 능력이 강했으며 성실하게 책임지고 조심스럽고 부지런히 일하여 공장장과 서기에게 매우 인정받고 칭찬받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직장 상사는 남편이 수련한다는 사실을 안 뒤 관심에서 출발해 남편의 앞길에 영향을 줄까 봐 끊임없이 남편을 찾아와 면담하며 자신의 앞길을 위해 정세를 똑바로 보고 수련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들에게 연공 후 자신의 심신 변화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파룬궁의 수혜자이며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 파룬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이는 단지 개인의 신앙일 뿐 사회와 직장 및 가정에 어떠한 나쁜 영향도 없으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집안 가족들도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그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저는 당시 남편이 받은 압력과 감당이 도대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가 당시 어떻게 그 과정을 걸어왔는지 상상할 수 없으며 오직 제 자신의 압력이 갈수록 커짐을 느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남편을 매우 지지하고 동정하며 이런 탄압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선전을 보고 각 프로그램에서 매일 다른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대법서적을 본 적이 있고 또 곁의 가족이 혜택을 받은 것을 직접 목격한 저마저도 점차 거짓말에 미혹되고 심지어 믿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처음 탄압을 이해하지 못하던 것에서 파룬궁을 오해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더욱 남편에게 일이 생길까 두려웠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저 역시 그에게 압력을 가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남편이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다퉜고 저는 심지어 그에게 “나와 아이를 택할 거야? 아니면 대법을 택할 거야?”라며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한번은 분노한 저를 마주하고 남편이 괴로워하며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난 다 원해. 내게 있어서 당신과 대법은 갈등이 없고 반드시 취사선택할 필요가 없어. 그들은 모른다 쳐도 당신마저 모른단 말이야? 대법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든 게 잘못이야? 우린 양심을 지켜야 해! 당신이 지금 겪는 억울함과 압력을 이해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할 거고 옳은 것은 영원히 옳은 거야.” 서서히 ‘파룬궁’은 우리 대화의 금기 구역이 됐는데 이 화제만 건드리면 제가 억제하지 못하고 화를 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편이 저와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저는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2002년 여름 제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 발생했습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끌려갔고 경찰은 그에게서 집 열쇠를 빼앗은 뒤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가택수색을 했습니다. 밤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저는 엉망진창이 된 집안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그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얼른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친척이 와서 저와 함께 남편 직장으로 찾아갔으나 이미 퇴근했기에 우리는 당직실에 가서 상황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직 직원이 보위과장에게 전화를 걸자 과장은 자신도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며 사람은 공안분국에 끌려갔으니 사건을 처리하는 공안분국에 찾아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공안분국으로 갔지만 정문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며 퇴근했으니 볼일이 있으면 내일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저는 밤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보위과장이 저를 찾아와 제 남편이 이미 구치소로 보내졌다고 말하며 생활비 2000위안을 내라고 해서 저는 서둘러 그에게 돈을 줬습니다(나중에 남편은 이 2000위안을 전혀 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합법적인 증거가 없었기에 남편은 구치소에 두 달 동안 불법적으로 갇혀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남편이 돌아온 후 그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에서 직무를 면직당했고 현장 작업장으로 가서 기술원이 되었습니다. 동료 중에는 그를 위해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가 상실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작업장에 출근했습니다. 그는 매일 여전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일했으며 많은 시간을 들여 전문 지식을 공부해 머지않아 기술적으로 홀로 한 분야를 감당할 수 있게 되어 몰래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을 감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일은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본래 남편의 재능과 직위로 보면 그는 예전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대상이었고 저의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오히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이상하고 동정하는 시선을 느껴 몹시 억눌리고 괴로웠습니다. 가택수색 때 컴퓨터를 빼앗겼는데 저는 남편이 돌아온 후 다시는 컴퓨터를 사지 않을 줄 알았지만 몇 달 뒤 그는 또 새 컴퓨터를 사 왔습니다. 제 기억에 그는 컴퓨터로 대법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움과 분노가 극에 달해 한바탕 격렬하게 다툰 후 스스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제 결연한 태도를 보고 고통스럽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고 단지 당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할 뿐이야. 파룬궁은 잘못이 없고 진선인을 믿는 것도 잘못이 없어.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매하고 무지하지 않아. 내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다 봤잖아.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건 다 거짓말이야. 게다가 나는 파룬궁에서 혜택을 얻었는데 반대로 파룬궁이 비방과 모함을 받을 때 내가 공정한 말을 한마디 하는 건 양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당신이 이혼해야만 이런 고통과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강요하지 않을 테니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게.” 아마 사부님의 보호와 배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민정국에 갔지만 이혼하지 않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상사, 동료, 고객의 신뢰와 찬사를 받다

이후의 날들은 그럭저럭 줄곧 평온했습니다. 남편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기술이 좋은 데다 책임감이 있었으며 기술적으로도 조금도 보수적이지 않아 상사와 동료의 신뢰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내 그는 전기 엔지니어로 초빙돼 많은 대형 신축 및 개조 항목에 참여했고 자주 야근했으며 때로는 한밤중에 설비에 문제가 생겨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달려가면서도 여태껏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우수 과학기술 종사자로 선정됐습니다. 오늘날 중공 악당의 통치하에 있는 사회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납품업체와 시공업체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다른 사람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조차 거의 가지 않았으며 업무 중에는 항목 품질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무고하게 납품업체나 시공업체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2007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밤 한 납품업체 사장과 그의 아내가 우리집에 ‘방문’을 왔습니다. 그 납품업체 사장은 작별 인사를 하고 나갈 때 제 손에 돈뭉치를 쥐여줬고 저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상대방은 억지로 줬습니다.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남편이 제게 받으라는 눈치를 줬습니다. 납품업체 사장이 간 뒤 남편이 세어 보니 정확히 1만 위안이었는데 당시 1만 위안은 우리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제게 말하길 이 납품업체 사장이 물품을 납품할 때 부품 일부를 바꿔치기하려고 공사장에서 남편을 자신의 차로 불러 돈을 꺼내며 융통성을 부려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남편은 그에게 “저도 돈이 필요하지만 이런 돈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사 중에 제 책임 범위 내의 일은 규정에 따라 엄격히 통제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납품업체 사장은 그래도 단념하지 못하고 밤에 다시 집으로 찾아와 돈을 준 것입니다. 몇 달 후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그 납품업체 사장을 찾아가 그 1만 위안을 정중히 그의 손에 놓아주었습니다. 납품업체 사장이 매우 놀라워하자 남편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진작에 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제가 공사 중에 어떻게든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 일이 이미 타당하게 해결됐고 공사도 곧 완공되니 돈을 잘 챙기십시오. 당신도 돈 벌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납품업체 사장이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왜요? 설마 돈을 싫어하십니까?” 제 남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굳이 묻는다면 말씀드리죠.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진선인을 믿기 때문에 이 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납품업체 사장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계속 연락하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몇 번 더 있었는데 모두 우리가 잡담할 때 남편이 무심코 말한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바보 같다고 하면 남편은 늘 웃기만 했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지나가면서 우리의 생활도 점차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 형세는 여전히 매우 심각했지만 남편의 침착하고 낙관적인 모습에 제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고 우리의 관계도 점차 누그러졌습니다. 가끔 제 기분이 좋을 때면 남편은 자신이 깨달은 사람의 도리를 조금씩 이야기해주었고 어지러운 사회 뒤에 숨겨진 원인과 사람의 도덕이 타락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이것이 사회에나 개인에게나 모두 좋은 일이니까.”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이 도리를 거부하겠습니까? 저는 제 마음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10년의 시련 끝에 마침내 경건하게 하늘의 책 ‘전법륜’을 들다!

2007년 여름의 어느 날 밤, 우리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허리가 아프다며 밥도 먹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밤에 저는 그가 끊임없이 몸을 뒤척이며 빈번하게 화장실에 가고 또 참지 못해 작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그가 제 수면을 방해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인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상황이 아주 심각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많이 아프냐고 묻자 그는 “응” 하고 대답했고 제가 집에 진통제가 있다고 하자 그는 “필요 없어. 당신은 자. 난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에서 선전하길 파룬궁은 병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한 것이 생각났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건강했고 병에 걸린 적이 없어서 자연스레 병이 있는데 약을 먹지 않는다는 문제와 얽힌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고 제가 그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출근할 수 있겠어?”라고 묻자 그는 “이따가 휴가 내고 가지 않을게. 집에서 하루 쉬어야겠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나도 휴가 내고 같이 병원에 가볼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걱정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늘 자신이 아이를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제가 출근하기 전에 먼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떠나기 전에 그에게 말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당신 이건 담석이거나 신장결석이야. 병원에 가봤자 작은 수술일 뿐이지. 하지만 당신은 줄곧 내게 연공인은 병에 걸리지 않으니 약을 안 먹는다고 했잖아. 강요하진 않겠어. 병원에 가고 싶으면 내게 전화하고 가기 싫으면 결과는 당신이 책임져.” 남편은 저를 보며 미소 짓고는 말했습니다. “안심해. 내가 알아서 할게.”

저는 직장에 도착한 후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걱정도 되면서 오기도 생겼습니다. 저는 그가 어젯밤에 틀림없이 아주 아팠을 텐데 단지 내 휴식에 영향을 줄까 봐 계속 억지로 참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데 계속 참아낼 수 있을까요? 저는 가끔 휴대폰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가 제게 전화하기를 바랐습니다.

하루가 지났지만 퇴근할 때까지 저는 그의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퇴근 후 저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밥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아침 모습을 떠올리며 눈앞의 상황을 보니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제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왜 그래? 생각지도 못했지!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봐, 멀쩡해졌잖아? 어서 와서 밥 먹을 준비해.” 저는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나은 거야?”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떤 일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수련은 세속을 초월하는 거야. 텔레비전에서는 파룬궁이 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고 선전하는데 그게 아니야. 병증에는 각종 원인이 있고 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니잖아. 고대에는 침, 안마, 추나, 점혈, 약초 치료, 기공 치료 등등도 말하지 않았어? 누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겠어? 정말 병이 있는데 약을 먹지 말라고 해도 해내지 못해!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건 다 사람을 속이는 거야. 파룬궁은 당신이 들은 그런 게 아니야. 일단 밥부터 먹어. 나중에 천천히 말해줄게.”

그 후의 나날 동안 저는 더 이상 그가 수련하는 것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그는 저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늘 저를 피해 연공하고 책을 읽었지만 이제 그는 집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연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어난 한 가지 일은 제게 저 자신의 변화를 더 똑똑히 보게 했습니다.

2007년 말, 제가 고위직 평가를 받을 때 마지막에 전문 지식 및 기능에 관한 답변이 있었는데 당시 심사위원은 성(省)에서 온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고위직 평가는 매우 엄격하고 탈락률이 아주 높으며 경쟁도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를 위해 인맥을 찾고 뒷구멍을 뚫기도 했습니다. 평가에서 답변 과정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저는 답변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앞선 질문에는 그런대로 대답했지만 마지막 문제 하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제게 인상이 좋았는지 예비 답안 두 개를 주며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당시 어찌 된 일인지 제 머릿속에 갑자기 ‘진선인’ 세 글자가 떠올랐고 저는 남편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 심사위원에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정말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고르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니 저는 비록 이 문제에 대답할 기회를 포기했지만 마음은 무척 기쁘고 가뿐했습니다. 심사위원은 저를 보며 웃고는 말했습니다. “참 솔직하시네요!”

답변을 마치고 나오자 남편과 아이가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저는 기뻐하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 오늘 진선인에 따라 행동했어!” 이어서 저는 그에게 답변할 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남편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수년 동안 아마도 이것이 그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을 거라고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저도 파룬궁 진상에 대해 한 걸음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의 나날들 속에서 그는 또 끊임없이 제게 중공이 날조한 분신자살, ‘4·25’ 청원 등 많은 진상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파룬궁에 대한 이 박해와 갖가지 먹칠하는 거짓말을 똑똑히 보게 되었고 알고 보니 파룬궁은 진정으로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2008년 초, 10년의 시련 끝에 마침내 저는 존경심과 경건한 마음을 품고 이 하늘의 책 ‘전법륜’을 들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신성한 반본귀진의 길에 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수련의 인연을 주시어 비할 바 없이 운 좋게도 이 선량하고 굳건한 단체의 일원인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6년 6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5/5103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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