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파룬궁수련자 자오나이첸의 30년 감옥 생활
[명혜망](중국 통신원) 그는 중국의 밑바닥 노동자로 30년 전 2만여 위안의 절도죄를 저질러 사형유예 판결을 받았고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공범은 이미 오래전에 출소했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유를 얻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감옥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서적 몇 권을 읽고 이번 생에 ‘진선인(眞·善·忍)’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확고히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애로운 인생이 위대한 생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자오나이첸(趙乃乾), 남성, 1961년생, 키 180cm, 전 청두시 룽취안이구 쉬광 공장 직원. 30년 전 34세였던 자오나이첸은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청두 쉬광 기기 공장의 튜너를 훔쳐 2만 4800위안을 나눠 가졌고 1995년 6월 청두시 공안국 룽취안이구 분국에 수용 심사를 받았다. 1996년 5월 30일 청두시 중급법원은 자오나이첸에게 사형,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997년 중국 신형법이 실시됐다. 1997년 12월 12일 자오나이첸은 쓰촨성 고급법원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가족들은 누군가 상소했다가 유기징역에서 사형으로 판결이 바뀌었다는 사례를 듣고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워해 결국 자오나이첸을 위해 상소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1. 인생이 절망에 빠졌으나 다행히 대법의 인도를 얻다
판결이 발효된 이후 자오나이첸은 깊은 절망 속에 빠졌으며 자신이 자발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장물을 전액 반환했음에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건 발생 이후 가족은 가산을 탕진하며 장물을 전액 반환했지만 이는 자오나이첸이 가벼운 처벌을 받을 기회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오나이첸 마음속의 불평과 증오는 갈수록 강해졌다. 그는 감옥경찰에게 불복하는 행위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탈옥해 판사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의 마음은 증오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때 자오나이첸의 어머니는 이미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 한번은 면회를 갔을 때 그녀는 아들에게 파룬궁 서적을 가져다주며 아들이 그 속에서 혜택을 얻기를 희망했다.
파룬궁은 파룬따파라고도 부르며 불가의 고덕대법으로 1992년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전하셨으며 우주 최고 특성 ‘진선인’으로 수련자의 심성 제고를 지도한다. 파룬궁은 수련자가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도덕을 회복하게 하며 질병 치료와 건강 증진에 기이한 효과가 있어 광범위한 민중 속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 약 1억 명이 수련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자오나이첸은 어머니가 보내온 파룬궁 서적을 읽고 나서 성품이 정말로 변했다. 어머니가 다시 면회를 갔을 때 그가 온통 평화로워진 것을 발견했는데, 이전의 그 인생에 대한 절망과 사법의 불공정에 대해 생겼던 증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자오나이첸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감탄하며 말했다. “만약 제가 일찍이 신앙이 있었다면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참 운이 좋습니다. 어쨌든 법을 얻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될 겁니다.”
자오나이첸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감옥경찰과 범죄자들도 그의 변화를 보았고 모두가 그가 갈수록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변했으며 주변 사람들을 갈수록 선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그때 그는 감옥의 노동 임무를 마친 이후 남는 시간에 어머니가 보내온 파룬궁 서적을 보았다.
1999년 중반에 이르러 자오나이첸은 짧은 시간 안에 잇달아 세 차례의 표창을 받았고 한 차례 공로도 세웠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세 차례 표창은 한 차례의 공로이고 두 차례 공로면 감형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자오나이첸이 인생길을 계속 이렇게 걸어갔다면 당시의 ‘감형, 가석방 사건 처리 시 법률의 구체적 적용에 관한 최고법원의 약간의 문제 규정’에 따라 그가 무기징역에서 유기징역으로 감형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감옥 문을 나서 새 삶을 살 날도 머지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절도죄를 저지른 공범은 일찍이 2012년에 이미 출소해 자유를 얻었다.
2. 신앙을 견지하며 타협하지 않고 가혹행위 박해에 의지가 더욱 굳어지다
자오나이첸이 감옥에서 노력해 선을 향하고 광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중공)은 짧은 시간 안에 파룬궁수련자 수가 거의 1억 명으로 증가한 것을 두려워해 1999년 7월 전국적인 탄압 운동을 발동했다.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로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하기 시작했고 그가 있는 감옥도 예외 없이 즉각 이른바 ‘조사’를 전개했다. 자오나이첸은 일찍이 자신의 신앙을 공개했기에 즉시 감옥의 중점 심사 대상이 됐다.
감옥경찰의 위협과 회유에 직면해 그는 시종일관 신앙 포기를 거부했다. 범죄자들이 동원돼 CCTV의 ‘파룬궁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 등 헐뜯는 보도를 시청할 때 그는 태연하게 다른 복역 인원들에게 말했다. “나는 파룬궁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진정한 대법제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살생과 자살은 모두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비방하는 겁니다.”
이 말은 그가 이후 잔혹한 박해를 받는 도화선이 됐다.
그가 감옥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공로를 세우고 표창을 받았음에도 그의 무기징역은 시종 감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 고문을 당했다.
1) 모자가 만나지 못하고 가족의 정이 끊어지다: 감옥이 신앙을 이유로 면회권 박탈
자오나이첸의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아들 면회를 금지당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수련하지 않는 다른 친척들이 그를 한 번 만나려 해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여러 부서의 층층이 심사를 거쳐야 했고 감옥이 인정한 ‘민감한 내용’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받았다.
2025년 12월 12일 그의 여동생은 면회 때 감옥 측으로부터 구두 통보를 받았다. 자오나이첸이 현재 ‘엄격한 관리 상태’에 있어 2026년 내내 가족 면회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 6차례 감옥을 이감당하고 7년간 행방불명되다: 강제 세뇌와 가혹행위 병행
이른바 ‘사상 개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자오나이첸은 잇달아 6곳의 감옥으로 이감돼 강제 세뇌, 강제 전향을 당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가혹행위를 겪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장장 7년 동안 그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전혀 모르게 만들었다. 2012년에 이르러서야 가족은 수소문 끝에 쓰촨성 감옥관리국을 찾아 그가 쓰촨성 자저우 감옥으로 보내진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박해받은 것에 관한 많은 소식은 모두 그와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가족의 마음을 칼로 베는 듯하게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3) 생활필수품을 제한받고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다: 그럼에도 남을 돕는 것을 견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는 가족이 입금한 돈의 사용을 제한받아 가장 기본적인 일용품을 구매하는 것조차 극히 어려웠다. 한겨울에 그는 슬리퍼만 신거나 신을 양말조차 없었으며 추운 밤에도 추위를 막을 두꺼운 이불이 없었다.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을 꺼내 다른 복역 인원들에게 일용품을 사주었다. 이 때문에 그는 오히려 감옥 측에 의해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사람과 사람은 본래 서로 관심 가져야 하며 남을 돕는 것은 가장 최소한의 인간성입니다.”
4) 다양한 가혹행위 고문: 암실, 독방, ‘죽음의 침대’, 강제 노동, 불명 약물 주사……
자오나이첸은 오랫동안 사람과 말하는 것이 금지됐고 ‘초밥(秒飯)’(20초만 주고 다 먹게 함)을 강요받았으며 강도 높은 강제 노동을 받았다. 그는 여러 차례 암실에 갇히고 수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됐으며 여러 가지 가혹행위 고문을 당했다.
• ‘시체 침대’: 사지가 벌려져 ‘大’ 자 모양으로 묶여 거의 움직일 수 없으며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 주고 20여 일 만에 한 번씩 배변하게 함
• 불명 약물 주사
• 구타
•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고문
이러한 가혹행위는 그의 신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는 면회하러 온 가족에게 자신은 이제 이미 ‘반 불구자’라고 말했다.
3. 중공의 강권이 법률을 함부로 짓밟다: ‘전향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가둬둘 것’
30년의 감금은 자오나이첸으로 하여금 이미 자유를 되찾는 것에 대해 환상을 품지 않게 했다.
2017년 자오나이첸의 어머니는 쓰촨성 감옥관리국에 ‘형사 상소장’을 제출해 해당 국이 러산시 자저우 감옥에 지시해 하루빨리 법원에 자오나이첸의 석방 승인을 신고하고 그의 면회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쓰촨성 감옥관리국은 자오나이첸이 여전히 무기징역 상태에 있으며 남성 무기징역수는 임시 감외집행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자오나이첸 어머니의 요구를 거부했다. 동시에 쓰촨성 감옥관리국은 답변에서 “만약 범죄자 가족이 면회 시 규정을 위반해 범죄자에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감옥은 면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자오나이첸 자신도 쓰촨성 고급법원에 상소를 제기한 적이 있는데 그 상소에서 그는 자신이 가벼운 죄로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해 법원에 판결 변경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쓰촨성 고급법원은 그의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의적으로 그가 20여 년 전 훔친 튜너의 가치를 6.9만여 위안으로 대폭 상향 조정해 이를 통해 ‘액수가 특별히 거대하다’는 인정이 부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자오나이첸은 사실 자신이 이렇게 무거운 형을 선고받아서는 안 된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해 그가 짧은 시간 안에 표창을 받고 공로를 세운 것은 마음속에서 모든 원망을 내려놓고 하루빨리 감형 기회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그 표창과 공로들은 모두 사실이며 감옥 간부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어 당시의 많은 범죄자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감형 증거들은 이미 오래전에 감옥 측에 의해 문서에서 지워져 저를 위해 나서서 증언하려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금 저는 감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형 역시 그들이 당시에 저에게 가벼운 죄로 무거운 판결을 내린 것이 옳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갇혀 있었기에 당시의 판결에 따르더라도 저는 진작 나갔어야 했습니다.”
자오나이첸은 자신이 분명히 안다며 그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일찍이 감형받아야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길 원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미 자신의 내면을 강대하게 만들었으며 자유가 하늘에서 떨어지길 바라는 헛된 희망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으면 나를 풀어주겠다’는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오나이첸은 자신의 신앙 권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동시에 그는 또 자신의 가족에게 한 마디 소박하고 진실한 말을 남겼다. “원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선량함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생각하십시오.”
감옥 직원은 자오나이첸의 가족에게 이미 그의 사망에 대한 준비를 잘하라고 알려줬다. 여러 소식통으로부터 얻은 공식적인 태도는 ‘만약 자오나이첸이 전향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를 가둬둘 것’이라고 것이었다.
중국 현행 법률에 따르면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전혀 법적 근거가 없지만 박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이미 27년이 됐다. 얼마나 황당한 ‘법치국가’인가!
1961년생인 자오나이첸은 올해 65세가 됐다.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의 그가 신앙을 굳게 지킨다는 이유로 중공 당국에 의해 반드시 종신 감금해야 한다고 규정됐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자오나이첸 및 무수히 많은 파룬궁수련자의 감옥 생활 경험과 받은 박해를 보면 중공의 법률과 중공의 법치는 단지 전 세계인을 우롱하고 중국인을 우롱하는 거짓말일 뿐임을 입증한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4/51101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4/51101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