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2012년, 나는 중국 국내에서 ‘자유문(自由門)’ 우회접속 소프트웨어와 채소를 살 때 받은 진상 지폐를 통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상을 알게 돼 입문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 친구들도 그 덕을 입었다. 제27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해, 내가 어떻게 법을 얻어 수련하고 대법 속에서 수혜를 받았는지 일부 경험을 쓰려 한다.
거짓말을 간파하고 ‘전법륜(轉法輪)’을 읽다
14년 전인 2012년, 나는 ‘자유문’ 우회접속 소프트웨어로 동태망(動態網) 뉴스 제목을 막 훑어보기 시작했을 때, 파룬궁과 관련된 제목이 나오면 그냥 건너뛰곤 했다. 웹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파룬궁 관련 자료가 보일 때마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몰려와 감히 계속 볼 수가 없어 바로 컴퓨터를 꺼버렸다.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기 전까지는 머릿속이 온통 중공 악당이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동안은 매일 장을 보고 거슬러 받는 지폐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 ‘파룬궁이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 널리 전해지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로 평안을 보장받다’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맞부딪혔다. 하나는 중공 악당의 선전에 물들어 파룬궁을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왜 지폐에 파룬궁이 좋다고 쓰여 있는 걸까, 파룬궁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 두 생각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 다음 날, 다시 동태망을 열어 뉴스 제목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강한 힘이 내 손을 밀어 ‘파룬궁 자료’라는 제목을 클릭하게 했다. 호기심을 안고 ‘전법륜’을 펼쳤는데, ‘천목(天目)에 관한 문제’, ‘실(失)과 득(得)’, ‘살생 문제’, ‘육식 문제’, ‘병 치료 문제’ 등의 내용이 특히 흥미로워 골라가며 일부를 읽었다. 당시 파룬궁 사부님 말씀이 매우 이치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후 파룬궁의 진상에 관한 영상을 많이 봤는데, 중공이 파룬궁에 누명을 씌우기 위해 조작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영상 분석도 포함돼 있었다. 중공의 영상에서는 어린 소녀 류쓰잉(劉思影)이 ‘분신’으로 기관절개 수술을 받고 나흘 만에 정상적으로 말을 했다.
나는 간호사였기에 중공이 주장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천안문 분신자살’ 영상을 보자마자 가짜임을 알아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기관절개를 한 중증 환자를 수없이 간호했지만 기관절개 환자가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의 허구를 간파했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것이 전부 거짓이었던 것이다.
2012년 5월 12일, 나는 ‘전법륜’을 인쇄했다. 다시 우회접속해 ‘파룬궁 수련을 어떻게 시작하나’를 검색했더니 한 대법제자가 ‘전법륜’은 건너뛰거나 골라 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 조언에 따라 ‘전법륜’을 단숨에 통독하고, 사부님 설법 녹음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바로 그때 파룬따파의 기적이 내 몸에서 나타났다. 어느 금요일 오후,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신체 정화 반응이 시작됐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콧물이 흘렀으며 온몸의 뼈가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왔지만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그저 잠이 올 뿐이었다. 나는 사부님이 내 몸을 정화해 주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틀 낮밤을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오색찬란한 파룬(法輪)이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당시에는 파룬인 줄 몰랐다). 사부님이 내 몸을 정화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속에 두려움은 조금도 없었다. 사흘째 아침 5시에 일어났을 때 온몸의 통증이 신기하게도 사라져 있었다.
이후 나는 인터넷에서 사부님의 공법교습 영상을 따라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익히고, 당시 인터넷에 있던 모든 대법 서적을 내려받아 인쇄했다. 파룬궁의 모든 진상을 알게 된 후, 나는 초등학생인 두 조카와 함께 탈당 사이트에서 실명으로 전에 가입했던 중공 소년선봉대와 공청단 조직에서 탈퇴하고, 악당과 영원히 절연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볼 때 병을 고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사부님이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많이 말씀해 주셨으니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과 나는 ‘전법륜’을 한 번 읽고 사부님 설법 녹음을 한 번 듣기만 했을 뿐, 연공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대법의 신기함이 이미 우리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큰아들이 한참 동안 아프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10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아랫배 통증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수많은 위장 전문의를 찾아다니고 한약을 그토록 먹어도 낫지 않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부인과 질환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남편을 향해 끊임없이 원망하던 마음과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도 없어졌고, 시어머니 얘기가 나와도 더 이상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이 내 몸을 정화해 나쁜 것들을 없애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이로 인해 사부님이 말씀하신 수련이 진실이고, 신체 정화가 진실이며, 파룬이 실제로 존재하고, 신(神)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더욱 굳게 믿게 됐다.
‘전법륜’을 처음 읽고 난 소감은 사부님이 나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다 읽고 나자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진수(眞修)’ 두 글자였다. 사부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잘 대해야 하며,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잃음과 얻음의 관계를 이해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목적이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 속에서 버둥대는 게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법 속에서 큰아들이 받은 혜택
결혼 후 첫 임신 때 초기에 자연유산을 했다. 둘째(지금의 큰아들)를 임신한 지 한 달여가 됐을 때 절박유산 증상이 나타나 석 달 내내 침대에 누워 조마조마하게 지냈다. 태아보호약을 먹고 직접 황체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버텼다. 큰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뒀다. 생후 6개월쯤 됐을 때, 잘못된 정보를 믿어 6개월이 지나면 모유에 영양이 없다고 생각해 억지로 모유를 끊고 분유로 바꿔버렸다.
모유를 끊은 이후부터 큰아들은 끊임없이 아팠고 우리는 소아과 병원의 단골이 됐다. 큰아들의 기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가슴 어딘가를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약을 먹이려고 주사기로 억지로 입에 넣어 먹이곤 했는데, 남편이 내 방식이 지나치다고 한마디 하면 며칠씩 마음이 힘들었고 밤마다 잠을 못 이루는 일이 다반사였다. 큰아들 문제로 시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큰아들이 다섯 살 남짓 됐을 때 우리 둘은 다행히 대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들과 함께 ‘전법륜’을 읽고 연공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학교에서 몸이 불편할 때면 큰아들은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고 그러면 불편한 증상이 금세 사라졌다. 평소에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다섯 번째 공법인 가부좌를 틀었는데 가부좌를 하는 동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큰아들은 대학교 1학년이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14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주사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대법의 기적이 작은아들에게도 나타나다
득법한 지 1년여 후 작은아들을 임신했다. 당시 중국은 아직 둘째를 허용하지 않았던 터라 남편은 ‘계획생육’ 벌금이 두려워 낳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사부님은 법 속에서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작은 태아도 생명이며 대법과 인연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반드시 낳겠다고 버텼다.
임신 초기에 큰아들을 임신했을 때와 같은 절박유산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사부님을 굳게 믿었고 대법을 굳게 믿어 일반적인 태아보호 치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출근했다. 매일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 저녁에는 법공부를 했다. 임신 검사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임신 3개월이 채워지자 절박유산 증상이 사라졌다.
작은아들이 태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퇴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작은아들의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아 의사가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 측은 서명을 하고 아이를 3일 더 입원시켜 광선치료를 받게 하라고 했다. 남편이 수련하지 않아 설득할 수가 없어 아이를 병원에 남겨 두었다.
다음 날 남편에게 설명하고 문제없을 것이라고 보장했더니 그제야 남편이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나의 강한 요청에 의사는 반드시 서명을 해야만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며, 모든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명했다.
작은아들을 데리고 집에 온 뒤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거르지 않았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틀어줬다. 일반인처럼 산후조리를 하지 않고 일주일 후부터 직접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서서히 황달이 빠지더니 의사가 우려했던 상황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사부님이 작은아들을 지켜주셔서 이렇게 평안한 것이라는 걸 마음속으로 알았다.
작은아들이 한 살 남짓 됐을 때,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떨어졌다. 손목이 골절됐는데, 나는 아이와 함께 바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 손목이 변형된 것을 보고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당직 의사가 작은아들을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이 아이는 왜 안 우나요?” X선을 찍어 진단한 결과 오른쪽 손목 요골 골절로 뼈를 다시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미리 우리에게 말해줬다. “많이 아플 거예요. 아이가 엄청 울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나는 속으로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의사가 뼈를 맞출 때 작은아들이 ‘으앙’ 한 번 울더니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당직 의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오래 일하면서 뼈를 맞출 때 울지 않는 아이는 처음이네.” 중국의 박해가 심해 당시 내가 파룬궁수련생이라고 말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의사가 치료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부님이 아이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치료 후 의사가 아이 오른쪽 손목을 두 개의 나무판으로 고정해 줬고 우리는 작은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날 밤 나무판이 묶인 게 낯설어 조금 칭얼거린 것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한 달 후 나무판을 풀어줬더니 골절 부위가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어느 여름방학 날, 작은아들이 막 끓인 물이 가득 든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렸다. 뜨거운 물과 유리 파편이 바닥에 쏟아졌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황급히 달려가 옷을 벗겼더니 가슴과 배 피부가 한 겹 벗겨져 있었다. 얼굴 외에 온 배와 오른쪽 서혜부까지 광범위하게 화상을 입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며 사부님께 아들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큰 조카가 병원에 데려가자고 해서 함께 갔다. 화상 약을 붙이고 사흘이 지나자 화상 부위에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의사는 최소 1주일 이상 링거와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처방받은 항생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며 아이에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틀어주고 ‘전법륜’을 읽어줬다. 작은아들은 내내 칭얼대지 않았고 항생제도 먹이지 않았다. 1주일 후 화상이 90%나 나았으며 흉터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3도 화상을 입은 한 부위도 2주 만에 완전히 나았다. 파룬따파의 기적이 작은아들에게서 다시 한번 나타난 것이다.
매달 상을 받다
직장에서 나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힘들고 더럽고 고된 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처리하기 특히 까다로운 민원 고객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처리하고 동료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줬다. 동료들은 나를 ‘힘센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못 해낼 일이 없었다.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는 고객도 내가 설득하면 결국 민원을 취하했고, 오히려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내 전화번호를 받아가며 계속 연락하고 싶다고 했다.
채혈 간호사 주임을 맡았을 때는 기술이 숙련돼 업무에 빈틈없이 임했다. 사부님이 수련을 통해 지혜를 열어주신 덕에 무통 정맥 채혈 천자 기술을 터득했고, 거의 매일 환자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하루에 수십 명에게 칭찬을 받는 날도 있었다.
평소에 영어를 꾸준히 독학해 동료들과 외국인 환자들 사이의 소통을 도왔다. 수간호사와 원장의 지시로 외국인 환자 건강검진에 단독으로 동행해 아무런 보수 없이 영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고 수간호사도 나를 매우 아꼈다. 수간호사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줬더니 받아들였고, 진상을 모르는 동료가 나를 신고했을 때 수간호사가 나를 지켜줬다.
입사 후 처음 반 년 동안, 업무가 뛰어나 고객에게 칭찬을 많이 받아 매달 회사에서 가장 많이 칭찬받는 직원이 됐다. 회사는 직원들의 의욕을 높이기 위해 매달 칭찬을 가장 많이 받는 직원에게 우유 한 상자를 선물로 줬다. 회사에서 받은 우유를 나는 한 번도 내 것으로 챙기지 않고 항상 탈의실에 두어 동료들의 아침 식사로 내놨다.
나중에 수간호사는 매번 내가 상을 받는 것을 알고 다른 동료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동료들한테 기회를 좀 주는 건 어때?” 수간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선생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보셨다시피 받은 우유는 항상 직원들이 다 같이 아침으로 먹었어요.”
이듬해 수간호사는 간호사들의 서비스 질 향상을 독려하기 위해 칭찬 한 건당 5위안을 지급하는 규정을 만들었는데, 그달에도 내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 사부님께서 남을 많이 배려하고 이기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수간호사가 준 상금으로 동료들에게 과일을 사서 나누고 나 자신은 한 푼도 취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교통사고에서 무사하다
한 해 10월 초 긴 연휴에 온 가족이 아이들의 조부모님을 뵈러 갔다. 당시 고속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두 아들은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갑자기 작은아들이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큰아들에게 동생을 안아주라고 했다. 큰아들이 막 동생을 안은 그 순간 ‘쾅’하는 굉음과 함께 뒤차가 우리 차 뒤를 들이받아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뒤차가 앞으로 미는 힘으로 우리 차도 앞차를 들이받았다. 뒤차 운전자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브레이크가 안 들었어요.” 사실 그는 액셀을 브레이크로 잘못 밟은 것이었고, 그의 차 앞부분은 완전히 망가졌다.
당시 나와 남편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사실을 깨닫고 나서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 가족의 생명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시어머니가 감동해 눈물을 흘리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집을 두 아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말씀드렸다. “아주버님께 다 드리세요. 우리는 안 받겠습니다.” 시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나와 먼저 상의하셨고, 무엇이 필요하다 하시면 우리는 최대한 들어드렸다. 수련하면서 이 오랜 세월 동안 시부모님은 나를 딸처럼 대해주셨다.
많은 친구가 믿기 어렵다며 이처럼 좋은 고부 관계는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만약 대법 사부님이 어떻게 바른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거야. 어쩌면 평범한 사람만도 못했을 거야.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사부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도 잘 대하고 ‘진선인’에 따라 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어.”
2019년 겨울, 시어머니가 20여 년째 앓아온 좌골신경통이 악화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나와 남편이 시어머니를 우리 곁으로 모셔와 내가 휴가를 내고 함께 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중의학을 더 믿으셔서 큰 병원에서 전신 검사를 마친 뒤 진료비 300위안의 중의학 전문의를 찾아갔다. 한약을 집으로 가져와 직접 달여드리고 집에서 뜸과 침 치료도 도와드렸다. 아울러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시라고 말씀드렸다. 두 달 후 시어머니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셨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그동안 큰며느리와 나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털어놓으시며 많이 미안해하셨다.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이 세월 동안 네 아들을 한 번도 돌봐준 적이 없잖아. 그런데도 넌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내가 가장 필요할 때 와서 돌봐주고 제일 좋은 의사한테 데려가 주고, 침도 놔주고 약도 달여주고 치료비까지 내줬는데,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고요했다.
시어머니가 그동안의 노력과 재력을 모두 큰며느리에게만 쏟아붓고, 아주버니 내외의 딸(손녀)의 대학 진학과 해외 유학까지 지원하려고 돈을 저축해 두셨다는 말씀을 들어도 질투나 원망이 일지 않았다. 나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님, 제게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대법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거의 7년 동안 사부님이 절 지켜보시고 일깨워주셔서 우리 온 가족이 평안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거예요.”
아주버니가 공산당 조직을 탈퇴하다
수련을 시작할 무렵 아주버니에게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를 권유했더니 거절하며 말했다. “너희들의 삼퇴 숫자는 가짜야. 당의 전체 당원이 얼마나 되는데? 너희 사이트에 탈퇴한 숫자가 실제 당원 수를 훨씬 넘잖아.” 내가 말했다. “잘못 이해하신 거예요. 그 숫자에는 소년선봉대원, 공청단원, 당원이 모두 포함돼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중국의 아이들이 얼마나 많나요? 매년 6월 1일,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소년선봉대에 가입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결국 아주버니는 삼퇴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아주버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퇴원 후에도 말이 어눌하고 걸음을 절었으며 후유증이 남았다. 나는 다시 대법 진상을 알려주며 이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이 파룬따파 덕에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었는지 이야기해 줬다. 아주버니를 많이 배려하고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집세를 내줬고 수십만 위안의 빚을 대신 갚아줬으며 설 귀향 전에 직원들 임금을 대신 지급해 줬고 차 한 대도 선물했다.
이번에 아주버니에게 다시 삼퇴를 권유하자 아무 말 없이 바로 승낙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라고 했다. 아주버니가 삼퇴한 지 1주일이 지나 시어머니가 전화하셔서 말씀하셨다. “큰 애가 이번 주에 엄청나게 좋아졌어. 말이 더 이상 어눌하지 않고 발음이 아주 또렷하고 혼자 부엌에 걸어 들어가 요리도 한단다.” 나는 시어머니께 아주버니가 삼퇴해서 대법 사부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반 년 후 아주버니는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됐을 뿐 아니라 경비원 일자리도 구해 차를 몰고 출근할 수 있게 됐으며 노후 사회보험도 모두 갖추게 됐다.
해외 명혜소학교 여름 캠프에서
2022년 온 가족이 해외로 나온 뒤, 나는 빨리 영어 실력을 늘려 서양인들의 생활에 녹아들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영어 공부에 매달렸고 작은아들 교육은 소홀히 했으며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함께 하거나 대법 수련으로 이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재작년 단체 법공부를 마친 후 당시 9살이었던 작은아들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나에게 주먹을 몇 번 날렸고,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니 체면, 이기심,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날 한 수련생이 전화해 진지하게 말했다. “아이를 이렇게 오냐오냐 키우면 안 돼요. 어릴 때 잘 교육시켜야 해요.” 특히 아이를 명혜학교 여름 캠프에 보내도록 권하며 명혜학교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번호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명혜학교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마음이 몹시 설렜고 아들을 명혜학교 여름 캠프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수련생들의 거듭된 선의의 권유 속에 어린 제자를 잘 이끄는 것도 내 수련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고, 이 빠진 부분을 반드시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 작은아들은 명혜학교 가기를 무척 싫어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 데려갔다. 첫날, 아이가 장난칠까봐 줄곧 명혜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드님이 많이 착하네요”라고 한마디 해주셔서 그제야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선생님이 단체 채팅방에 올린 아이들이 함께 정공(靜功)을 하는 사진을 봤는데, 작은아들이 두 다리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세에 깊이 감동받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명혜학교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가부좌를 가르친 적이 없었다. 항상 어리니까 나중에 크면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법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명혜학교 선생님들이 해내셨다. 선생님들은 매일 아이들과 법공부, 연공, 수련을 하고 다양한 야외 활동에 참여시켜 아이들의 방학 생활을 풍요롭게 해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갔고, 마지막에는 아이도 명혜학교를 떠나기 싫어했다. 그 이후 나도 명혜학교 선생님들을 본받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아이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하루에 최소 한 가지 공법을 연공한다. 작은아들의 중국어 실력도 빠르게 늘었고 행동도 좋아졌다. 지난해 여름방학에는 두 아이가 모두 명혜학교 여름 캠프에 참가해 명혜학교에서 즐겁고 알찬 여름방학을 보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2/51043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2/51043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