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이미 수련한 지 30여 년이 된 노수련생입니다. 말하려니 몹시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수련했음에도 여전히 제게 많은 부족함이 존재하고, 착실한 수련 측면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진정으로 수련하는 수많은 대법제자와 비교하면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에야 저는 마침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명백히 알게 됐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어떻게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으며, 이해한 것도 같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은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올해가 돼서야 머리가 마치 갑자기 깬 듯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돌연 매우 투철한 인식이 생겼고, 이전의 그 알 듯 모를 듯한 상태가 없어졌습니다.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셨을 것입니다. 아래에 제가 최근에 체득한 점을 여러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아내와 저는 몇 년 전에야 만났는데 그녀는 대단히 강경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녀는 경제적 조건이 비교적 좋고 자신의 매장이 있으며 수입도 꽤 괜찮아서 집안의 모든 지출을 부담했습니다. 평소 제가 그녀의 요구대로 일하지 않거나 그녀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녀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심할 때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게 이성을 잃고 발광하듯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욕까지 했습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다가 다음 1초에는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저는 안일한 마음이 있어 평소 집안일을 그리 부지런히 하지 않아 그녀보다 적게 했고, 일을 꼼꼼하게 하지 못해 어떤 사소한 일은 자주 덤벙대며 빼먹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더욱 평형을 잃었고 평소 제게 말할 때면 질책이 아니면 원망이었습니다. 저는 수년간 직장에서 관리자 업무를 했기에 예전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아무도 저를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질투심과 체면에 이끌려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못하고 자주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으며 때로는 매우 격렬하게 다퉜습니다. 일이 지난 이후에는 제가 틀렸고 법의 요구대로 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제 제고를 돕고 있고 게다가 그녀가 드러내는 상태는 제게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마치 한 면의 거울처럼 제 부족함을 비춰 줬습니다. 제 마음도 몹시 후회스러워 다음에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번에 갈등이 다시 나타날 때는 여전히 심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안으로 자신을 찾을 때도 통상적으로 먼저 그녀에게 존재하는 각종 문제를 생각한 다음, 제가 어떻게 인내하고 자신을 제고하며 도량을 넓혀야 할지를 생각했을 뿐 진정으로 무조건 안으로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표면적으로 볼 때는 마치 다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인내력이 예전보다 제고된 것 같았지만, 내재된 질투하고 분개하고 억울해하는 이러한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끊임없이 저를 교란했고 실질적인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단지 가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과 사회생활 속에서도 똑같이 존재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으면서 올해에 들어서며 저는 갑자기 뚜렷하게 인식했습니다. 줄곧 제 제고를 엄중하게 가로막고 영향을 준 근본 원인은 주로 이 ‘자아’(후천적으로 사심에 의해 형성된 각종 가짜 자아)였고, 일체의 시련, 번거로움, 교란 및 구세력의 각종 교란은 모두 ‘자아’ 때문에 생겨나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확실하게 인식했습니다. 매 하나의 집착심 배후에는 모두 하나의 ‘자아’가 있는데 명예를 구하는 ‘자아’, 이익을 구하는 ‘자아’, 색을 좋아하는 ‘자아’, 질투하는 ‘자아’, 쟁투하는 ‘자아’가 있으며, 또 ‘자아’의 관념, ‘자아’의 취향 등이 있어 모든 집착심은 전부 배후의 ‘자아’로 인해 생겨나며 매 하나의 집착심 역시 배후의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각종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곧 각종 ‘자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교란을 조성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아’입니다. 반면 구세력과 우리에게 번거로움, 시련을 만들어 주는 각종 사람과 일은 단지 촉발제일 뿐입니다. 각종 사람과 일을 통해 우리가 후천적으로 형성한 각종 ‘자아’를 건드림으로써 이러한 ‘자아’를 가동해 ‘자아’가 우리를 통제하고 교란하게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교란하는 것은 이러한 ‘자아’이지 외적인 요인이 아닙니다. 구세력이 우리를 교란하고 통제하는 주요 수단은 바로 이런 ‘자아’를 촉발함으로써 우리가 그들의 배치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고비를 넘고 매번 시련을 겪으며 매번 소업할 때마다 바로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위로 제고해 올라갈 수 있고,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면 넘어가지 못합니다. 예전에 저는 안으로 찾는 것에 대해 비교적 큰 인식의 편차가 있어 갈등이 나타나면 늘 먼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보고 눈앞의 사실에만 얽매여 논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문제에 부딪히면 자주 밖을 봤고 자신을 찾는 것도 표면에 머물러 자신에게 있는 깊은 차원의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수년간 저는 줄곧 이 ‘자아’에 가로막혀 진지하게 착실한 수련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자주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을 저질러 제고가 더뎠습니다. 특히 수년간 가정 갈등의 고비를 넘는 과정에서 질질 끌며 시원스럽게 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자아’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한 이후 제 자신의 수련에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시 갈등이 나타났을 때 제 상태는 이전과 뚜렷하게 달라졌습니다. 저는 더는 일 표면의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을 원망하거나 마음에 두지도 않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자신을 바라보며 어떤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는지를 봅니다. 더는 밖을 보지 않으며 이러한 ‘자아’가 저 자신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나타난 이후 자주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됐습니다.
현재 매일 저녁 저는 그날 발생한 일을 간단히 돌아보며 그중 어떤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는지 살펴봅니다.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다 ‘자아’와 관련이 있고 수련 중의 모든 고뇌 역시 대부분 이 ‘자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층차를 제고하고 시련에서 걸어 나오며 갈등과 번거로움을 해결하려면 밖을 보거나 밖으로 찾지 말고 ‘자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아’가 사라지면 사악의 교란과 박해는 형체 없이 사라질 것이고 구세력의 기제는 당신에게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핵심이지만 진정으로 이를 해내려면 또 하나의 전제가 있으니, 그것은 반드시 먼저 법공부를 잘해야만 이를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공부에 대해서도 최근에 약간의 체득이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하나의 법공부 팀을 만들어 몇 사람이 매주 단체로 한 번씩 법공부를 했는데, 이번 법공부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법을 읽는 속도를 늦췄습니다. 법이 마음에 더 잘 스며들게 하고 법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록 법공부 분량은 줄었지만 모두 법에 대한 이해가 확연히 제고됐음을 느꼈습니다.
이상은 제 최근의 얕은 인식이며 꺼내어 여러분과 공유하니 부족한 부분은 여러분께서 많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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