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가정주부에서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 대법 수련으로 지혜가 열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중국에 사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생으로, 1998년부터 수련을 시작해 지금까지 28년이 됐다. 직접 98년의 그 성대한 홍법 연공 행사에 참가했고, 이른 아침마다 공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연공하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운율은 끝없이 이어져 지혜를 일깨웠고, 억만 년 동안 마음속 깊이 닫혀 있던 문을 열어주었으며, 생생세세 윤회하며 대법을 기다렸던 그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나는 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으나 약 반년 만에 박해를 받아 일자리를 잃었다. 그 이후 20여 년 동안 여러 사정으로 안정된 직장 하나 없이 많은 업종을 두루 거쳤는데, 어떤 일도 1년을 채우지 못했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은 아예 일을 하지 않았다. 결국 노인과 아이를 전담으로 돌보다 가정주부가 됐다.

지난해 인연이 닿아 한 친구가 대학 강사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친구는 정상적이라면 내가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지금은 먼저 들어가서 부족한 조건을 천천히 채워나갈 기회가 있다고 했다. 나는 기쁘면서도 두려웠고, 솔직하게 그녀에게 대학교사를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학교가 기회를 준다면 배울 수 있고 이 일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이력서 준비를 시작하니 실질적인 어려움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이력서, 컴퓨터와 기초 기술의 도전

우선, 나는 컴퓨터가 없었다. 당시 나는 아이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고, 가족들 중 재학 중인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도시에 있었다. 빌린 방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족이 버린 낡은 컴퓨터를 찾아냈는데, 열자마자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고, 몇몇 키는 이미 깨진 상태였으며, 화면과 키보드 주변 플라스틱 부분은 심하게 노화돼 계속 부서졌다. 그래도 이 컴퓨터는 20년 된 것치고는 주요 부품의 품질은 좋았고, 조심해서 쓰면 그럭저럭 쓸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텔레비전, 휴대폰, 인터넷 같은 것들을 평소에 거의 접하지 못했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대신 설정해준 것만 써왔다. 그래서 친구가 컴퓨터로 플랫폼을 다운받아 이력서와 자료를 입력해서 올려보내라고 했을 때 멍했다.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다운받는지도 몰랐고, 컴퓨터로 그 플랫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다. 몇 분이면 끝낼 일을 오후 내내 붙들고 있다가 학교 퇴근 시간이 돼도 해결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친구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었고, 결국 WPS를 써본 적이 없어 파일 저장도 몰라 서식까지 엉망이 됐는데, 그냥 제출하고 학교 담당 선생님께 완성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업종을 거치면서 여러 자격증을 땄는데, 서랍에 넣어둔 채 별 쓸모가 없었지만 이것저것 보내니 친구가 매우 기뻐했다. 특히 내가 심리학을 많이 공부한 걸 발견하고는 아주 반겼는데, 컴퓨터 실력이 부족한 것을 조금이나마 만회한 셈이었다.

이력서를 보낸 후 학교에 한번 가보니, 대학교사, 그것도 나처럼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첫째, 보통화(표준어)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둘째, 사전 연수에 참가해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셋째, 시범 강의를 하고 통과해야 하며, 넷째, 1년간 강의 후 평가를 통과해야 비로소 고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신청할 수 있고, 그래야 진짜 대학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이 단계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몰라서 두렵지 않았고, 호기심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은, 순서대로 맨 앞에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임을 알 뿐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보통화 시험 정보를 찾으니 정확한 추천 광고가 뜨면서 학원을 소개하고 등록까지 도와주었다. 다른 시험에 비해 비싸지 않게 느껴졌고, 수백 위안으로 문제은행을 받을 수 있어 이렇게 해결하면 좋겠다 싶어 일주일 뒤 시험에 등록했다.

시험장에 가보니 낯익은 곳이었고,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이었는데 저마다 얇은 소책자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직접 접수하고 인터넷에서 연습책 하나를 사면 수십 위안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을 때는 학원 정보들이 필요한 내용을 다 가려버렸던 것이다. 살짝 속은 느낌이 들었지만 스스로에게 말했다. ‘시험을 통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순조롭게 통과하면 이 일은 끝난 거고, 더 이상 따지지 말자. 불합격하면 돈으로 교훈을 산 셈이니 그것도 손해가 아니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따지지 말자.’ 한 달여 후 성적이 나왔고 나는 무사히 합격했다.

내우외환: 연수, 공부와 현실적 압박이 한꺼번에

여름방학이 되자 연수에 참가해야 했다. 총 6과목으로, 2과목은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두 달 후 시험을 봐야 했으며, 4과목은 온라인 강의에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이때 아이가 졸업해 우리는 고향 집으로 이사했는데, 집에 인터넷이 없었다. 노트북을 휴대폰 핫스팟에 연결해 온라인 강의를 들으려 했지만 그 낡은 컴퓨터는 핫스팟에 연결이 아예 안 됐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친구 아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빌렸다.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AI로 글 쓰는 법을 몰랐고 친구도 몰랐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쓰고 싶었다. 선생님 강의를 하나하나 성실하게 들었고, 전혀 모르는 분야인 만큼 강의가 큰 도움이 됐으며, 직접 생각하며 과제를 하면 강의 내용을 소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성장해야 했고, 무조건 하나하나 착실하게 해내야 했다. 며칠 밤을 새운 끝에 온라인 과제 부분을 마쳤다.

이 기간에 여러 일이 있었다. 집의 아이는 대입시험이 끝나고 성적 발표를 기다리며 지원서를 써야 했고, 이것저것 챙길 일들이 많았다. 나는 그 사이사이 시간을 맞춰 연수에 참가했다. 한숨 돌릴 즈음,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친구 몇 명이 경찰에게 집에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 명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이의 대입시험 점수가 평소보다 수십 점이나 높게 나와 좋은 학교에 합격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짓눌렸다. 이때 이미 방학도 많이 지나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룻밤을 쉰 후, 2개 시험 과목 복습을 시작했다. 시험까지는 단 2주가 남아 있었다. 책은 그렇게 두꺼웠고, 선생님이 낸 문제는 그렇게 까다로웠으며, 책을 뒤져봐도 바로 쓸 수 있는 정답은 없었고, 책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했다. 하지만 책을 체계적으로 읽을 시간은 없었다. AI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AI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더니 공식 같은 답만 내놓아 도저히 외울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복습 진도는 너무나 더뎠다. 마음속 조급함이 거의 터질 지경이었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으며, 후회와 포기하고 싶다는 감정이 수시로 스쳐 지나갔다.

자기 돌파: 방법 조정과 마음가짐의 변화

함께 시험을 보는 중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 복습 자료를 정리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방학 내내 복습했는데 외워지지 않는다고, 특히 책만 잡으면 졸음이 쏟아져 진작에 무너졌고 다른 편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자료를 보내주었는데 완전히 AI판이었다. 외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나중에 내가 필기를 정리하고 나서 내 방법을 그녀와 나눴다.

그때 나는 이렇게 가다가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이고,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는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은 생각조차 해선 안 되고, 오픈북 시험이 아닌 이상 반드시 스스로 답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정말 얼마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전체 내용을 다 복습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20점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모든 문제에서 조금씩 덜 외우고, 남은 80점 분량에서 외우기 정말 어려운 것을 빼고, 나머지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기억하기 쉬운 구어체 형식으로 번역해 정해진 답으로 단순하게 정리하고, 또 단순하게 정리해 공책에 베껴 쓰고 전력으로 외우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내용은 여전히 많았고 외우는 게 무척 힘들었으며, 불면이 시작됐다.

며칠을 들여 필기를 정리하니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마음을 늦추고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로 했다. 남편과 통화하는데 그가 말했다. “당신 그렇게 스스로를 너무 긴장하게 만들 필요 없어, 시험을 못 봐도 어쩌겠어?” 나는 순간 멈칫했다. 시험을 못 볼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 않으면 몰라도, 하기로 했으면 전력을 다해 잘해야 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못 보면 재시험이 있지, 별로 영향은 없어. 그냥 좀 창피할 뿐이지.” 그 말을 하고 나니 나도 마음이 풀렸다. 체면에 얽매이지 않으면 훨씬 가볍다.

압박이 겹치다: 집안의 갑작스러운 사건 속에서 버티기

전력 질주 준비를 마친 바로 그때, 집에 일이 생겼다. 밖에서 일하던 아이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와서는 몇 달 후 외국어 시험을 준비해 해외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아이가 가려는 나라는 절대 안 된다며 아이에게 돈을 끊겠다, 자신도 안 주고 나도 못 주게 하겠다고 했다. 이 얽히고설킨 상황 가운데 내가 끼어 정말 곤혹스러웠다. ‘아이가 일주일만 늦게 왔어도 그때는 시험이 끝났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세 끼를 준비하고 빨래에 청소를 해야 하고, 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티격태격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여 이런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집중해 암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감동받았다. ‘수련인으로 산다는 건 정말 좋구나. 바깥의 온갖 시끄러운 일들 속에서도 마음은 물결 하나 일지 않게 할 수 있고, 시시비비를 훤히 꿰뚫고 있는 그 통찰력, 그게 바로 큰 지혜가 아닐까.’

시험 결과: 집중력과 지혜의 발현

어쨌든 2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두 과목 시험지를 보니 출제하신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비한 문제는 거의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문제마다 여러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강의를 잘 듣고 성실하게 복습했다면 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공부와 시험이 나에게는 사실 어려운 것이었고, 함께 시험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고학력의 젊은이들로 교육 전공자가 많아 이런 내용을 어느 정도 배운 적이 있었을 것이다. 성적이 나오니 재시험을 봐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는 두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집중력과 효과적인 방법 덕분이었지만, 수련인으로서 나는 이것이 보통 사람의 집중력이나 영리함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이것은 수련생의 정력(定力)과 지혜다.

허둥지둥 시범 강의 준비

시험이 끝나고 한동안 지나, 어느 날 저녁 학교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형 전공 강의 하나를 가르칠 수 있냐고 물었다. 앞 선생님이 경험이 부족해 교체해야 하는데, 바로 내 전공 분야였다. 나는 다음 날 오후에 학교에서 시범 강의를 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시범 강의 준비를 얼마나 하는지, 무엇을 강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교재는 학교에 있었으므로 당일 찾아가서 가져오기로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너무 멀었지만 택시비를 아끼며 버스를 타고 흔들리며 학교에 가서 수위실에서 교재를 받았다. 친구가 소식을 듣고 특별히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측에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다른 사람들은 최소 일주일을 준비하고 그것도 경험 있는 사람들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강의하겠냐고 했다. 나는 며칠만 미뤄줘도 된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학교 일을 지체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담당자도 내가 다음 날 시범 강의를 하기를 원했으며,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준비할 시간이 그쪽에도 있어야 하니 시간이 촉박하다고 했다.

친구는 나를 자기 사무실로 데려가 긴급으로 가르쳐주려 했지만, 전공이 다르니 그녀도 방법이 없었다. 빌리빌리에서 기성 영상을 찾아 잘 보고 그대로 강의하되, 절대 혼자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빌리빌리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녀는 그 앱을 다운받아주고 핵심을 알려줬다. 시범 강의는 완전한 수업 한 편을 10~15분으로 압축해야 하고, PPT와 도입, 주제, 내용, 정리, 과제가 있어야 하며, 특히 상호작용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빌리빌리에서 기성 영상을 찾으라고, 그러면 실수가 적을 것이라며 거기엔 없는 게 없다고 당부했다.

중간에 택시비로 수십 위안을 썼음에도 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9시였다. 뭔가를 먹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휴대폰을 열어 영상을 찾으려 하니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내가 강의해야 하는 전공 과목 내용은 인터넷에서 쓸 만한 영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책을 휙휙 넘겨보니 목차만 잔뜩이고, 무슨 내용인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치고 온몸의 세포가 떨리는 느낌이었다. 그 막막하고 물러설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처지. 마치 맹렬한 불 위에 올려진 것 같았다.

그래도 인터넷이 완전히 허탕은 아니었다. 시범 강의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었다. 역시 뭔가 안배가 있는 법이다. 영상에서 시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주의사항을 봤는데, 바로 ‘생동감’이 있어야 하고, 딱딱하거나 책을 그냥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수업 준비와 PPT 완성

친구의 방법은 완전히 통하지 않았다. 이미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무조건 방향을 잡아야 했다.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단순해 보이는 제목 하나를 잡고, 낡은 컴퓨터로 PPT를 먼저 만들려 했는데,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 PPT 소프트웨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아이가 집에서 외국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이도 해결을 못 했다. 결국 아이가 자기 공부용 컴퓨터를 가져다주었고, 난 PPT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예쁜 배경색과 패턴을 원한다고 했더니 한참 설명해도 서로 소통이 안 됐다. 아이는 내가 왜 이렇게 반응이 느리냐는 듯 참기 어려워했고, 나는 아이가 컴퓨터에서 하는 동작이 너무 빨라 미처 보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버려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럭저럭 배경을 하나 고르고, 아이에게 빈 페이지 몇 장을 복사해달라고 하고 글자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서야 비로소 강의 내용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자정이었다.

빠르게 머릿속에 구상을 하고 대략적인 방향을 잡아 간단한 PPT 몇 장을 만들었다. 큼직한 글자 몇 개에 불과했다. 새벽 1시가 됐을 때 머리가 조금 아팠다. 조금 자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누웠지만 머릿속은 자동으로 계속 돌아갔다. 이렇게 강의하고 저렇게 강의하고, 어떻게 해도 멈추질 않았다. 나중에는 머리를 최대한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몸은 지쳐있는데 머리는 너무도 맑았다. 결국 생전 처음으로 밤새 한숨도 못 자는 불면을 겪게 됐다.

긴장 속의 시범 강의 준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긴장해서 배탈이 난 것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정신이 팔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에게 세 끼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오전에 나 혼자 전체 강의를 한 번 완전히 해보고, 시간을 조절하며 내용을 줄여야 했다. 휴대폰으로 녹음하면서 계속 줄이고 줄여 10분 안팎으로 맞췄다. 어떻게 해도 시간 초과는 없게끔. 이렇게 몇 번을 하고 나서 짐을 챙겨 출발해야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너무 멀었고 길도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해서도 지각해선 안 됐다.

시범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우리 각자가 강의할 전공 과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박사생들과 같은 자리에서 시범 강의를 하게 됐다. 강의가 끝나면 심사 측 간부들이 질문을 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 있었다. 바로 수업에 어떻게 ‘사상정치교육(思政)’을 접목시킬 것이냐는 것이었다. 당시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사상정치교육’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몰랐다. 앞의 선생님들 대답도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아 잘 이해가 안 됐다. 아마 품성을 가르치고, 덕과 재능을 겸비한 학생을 키우는 것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해나가기로 했다.

현장 발휘: 시범 강의 과정과 솔직한 표현

내 앞의 선생님이 USB를 준비해오지 않아 내가 먼저 올라가게 됐다. 강단에 섰을 때 오히려 평온해졌다. 진실된 말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거짓말은 못 해도 진실된 말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앞 선생님들처럼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았다. 아래는 다 간부들이라 ‘학생’이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간부님들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강단 위아래가 같은 지위가 아니게 되어 괜히 심리적 부담이 생길 것 같았다. 그냥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그런 다음 내 이해대로 몇 장 안 되는 PPT를 보여주며 판서 없이 그냥 강의했다. 10분 동안 진심을 담아 한 수업 분량을 완전히 마쳤다. 강의 과목 내용을 말했고, 역사를 말했고,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말했다. 다들 고개를 들고 내 강의를 듣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다들 생각하고 반응도 했다. 사실 즉흥적으로 한 것들도 많았다. 현장 간부들의 연령대가 있어 보여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사상정치교육 관련 질문에 답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느 기업가가 말하기를, 사업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교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덕이 부족한 사람은 이 길을 오래 걸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니 다들 귀를 기울였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사히 시범 강의를 통과했다. 책 전체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학교 측이 설명해주자 어디서 착오가 생겼는지 바로 이해했다.

정식 교학: 더듬더듬 시작한 실전 수업

며칠 후, 나는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학생이 많은 대형 강의였다. 그 전에 수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수업 외 여러 가지를 처리해야 했으며, 강의 준비도 해야 했다. 수업 계획서라는 것을 난생 처음 봤다. 이번에도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냥 형식에 맞춰 나 나름대로의 이해로 써나갔다. 대학 수업은 학생들이 배움을 얻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하며, 수업이 알차고 내용이 있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학생들이 기꺼이 참여하며, 학생들이 부담 없이 즐겁게 수업에 임해야 출석을 잘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지금 대학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몰랐고, 학교도 그냥 알아서 하라고만 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내 이상대로 수업을 설계했다. 생각보다 쉽다 싶었다. 수업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결과는 내가 이론 과목을 실습 과목으로 설계해서 한 학기를 가르쳤는데 스스로도 몰랐던 것이었다.

첫 수업에는 학교 간부가 와서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과목은 선생님 경험 부족으로 이미 두 분이 교체됐고 이번이 세 번째 선생님인데, 이분은 풍부한 업무 경험과 교수 경험을 갖고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첫 수업 후 나는 수십 개의 질문을 받았다.

이 과목의 특별한 사정 때문인지 학교 측의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 측이 학생들과 면담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매우 기쁜 표정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해주었다. 나도 수업이 매우 즐거웠다. 학생들이 아주 잘 협조해주고, 다들 수업에 나오고, 다들 과제를 냈다. 나도 학생들을 한껏 칭찬했다. 우리 사제간의 사이는 화목했다.

평가와 인정

한동안 지나 학교 측에서 스크린샷 하나를 보내왔다. 학생들에게 어느 선생님이 좋고 왜 좋은지를 묻는 학교 설문 조사의, 나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다정하다는 학생, 재미있고 유머 있다는 학생, 강의 방식이 좋다는 학생 등 다양했다. 나중에 교무 담당 선생님을 만났을 때 학교에 와서 강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 수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학생들 출석률이 매우 높았다. 대형 강의라 학생 수가 많았는데도 결석이 거의 없었다. 수업마다 과제가 있었는데 다들 냈다. 첫 줄부터 꽉 찼고 그다음 줄로 자리를 잡았다. 질문과 상호작용이 많았는데 학생들이 잘 대답해주었다. 이 정도는 대학 수업에서 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정상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게 내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때, 줄곧 첫 줄에 앉던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다 나간 후 조용히 꽃 한 다발을 건넸다. 우리 아이가 말했다. “대단한데, 선생님으로 아주 성공했네요!”

학교 측은 한동안 별다른 반응이 없더니, 학기 말에 계약을 연장하며 다음 학기 과목을 우선 선택하게 해주었다. ‘이중교원형(雙師型)’ 교사 평가 기준을 보여주며 교사의 길에서 더욱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중교원형은 이론 교육과 실습 교육을 모두 할 수 있는 교사이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이론 과목을 실습 과목으로 만들어버린 게,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격이 됐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혜와 수련의 관계

나는 교사의 길에서 끊임없이 더듬더듬 찾아나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강의 내용을 공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업을 설계하고 교수법을 배운다. 나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 학생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학교 출신이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 출신도 아니며 — 오랜 세월 정식 직업이 없었다 — 가정 출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아주 단순하게 살면서 밥도 제대로 못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수련 집단 출신이다. 나의 지혜는 대법에서 왔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는 머릿속에 담긴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제를 보는 시각이 더 통찰력 있고, 맥락이 분명하며, 본질을 직접 꿰뚫어 본다. 그래서 몇 마디 말로도 깊이 있게 알기 쉽게 풀어내 듣는 이가 문득 깨닫게 한다.

또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좋은 장(場)을 형성한다. 평화롭고 안정된 장은 편차를 바로잡아주고, 학생들의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주며, 머물기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학생들이 수업에 기꺼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없애주며, 전체적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좋고 적극적인 방향으로 변하게 해준다. 겉으로 보면 내 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처럼 보인다.

대법 수련인은 선하고 이타적이다. 나는 항상 학생들을 위하고 학교를 위하는 마음을 내보내며, 공부와 교수법 외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잡념에 교란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유지한다.

이제 나는 2천 위안짜리 새 컴퓨터를 장만했다. 돈이 덜 들어간 탓인지 부팅도 느리고 실행도 느리다지만, 나에게는 충분하다. 같은 또래가 하나둘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업무 흐름에 익숙해지면서 나의 직업 생활도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다.

내 인생 계획에서 언젠가 내가 강단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래에 펼쳐진 젊고 아직 방황하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파룬따파의 빛이 그들에게 비추기를 바란다. ‘진선인’이라는 이 보편적 가치가 그들의 삶에 희망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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