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리전(李眞)
[명혜망] 나는 1996년 겨울에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그 이전인 1995년, 혹은 더 이른 1994년에 이미 파룬궁을 접했다. 나는 가전제품 수리업을 했는데, 그 시절 사회에는 온갖 기공이 성행했다. 연공하는 사람들의 음향 기기 등을 자주 점검해줬는데, 파룬궁수련생들의 비디오 재생 장비를 몇 번 조정해준 적도 있었다. 당시 나는 파룬궁을 또 하나의 기공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파룬궁수련생들은 한결같이 자비롭고 온화한 표정에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고, 그들 곁에 있으면 매우 편안했다. 그럼에도 직접 수련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1. 득법
1996년 겨울, 한 노년 파룬궁수련생이 텔레비전을 수리하러 내 가게에 왔다. 그는 막 점심을 먹고 온 참이었는데, 마침 우리 식사 시간과 겹쳤다. 그날 아내와 나는 만두를 먹고 있었고, 그는 웃으며 바라봤다. 우리가 다 먹고 나자 그가 물었다. “드시는 게 영 맛이 없어 보이네요. 안색을 보니 몸이 좋지 않으신가요?” 정말 그의 말이 맞았다.
그 무렵 나는 심한 비염을 앓고 있었고 경미한 신경쇠약도 있었다. 비염이 너무 심해 코가 막히는 탓에 말하고 밥 먹고 잠자는 것 모두 영향을 받았고, 얼굴은 늘 누렇게 떠 있었다. 8년간이나 비염을 앓으며 온갖 약을 먹고 민간요법도 수없이 써봤지만 낫지 않았다. 결국 ‘적비정(滴鼻淨)’이라는 코에 넣는 약물로만 증상을 겨우 완화할 수 있었는데, 밥 먹기 전과 잠들기 전마다 반드시 점약해야 했다. 코가 막혀 밥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자다가도 답답함에 깨기 일쑤였다. 심지어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해야 할 때도 미리 점약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약을 쓰기 시작하면서 의존성이 생겨 옷 주머니나 집에 항상 이 약이 있어야 했고, 항상 넉넉히 사들여 놓곤 했다. 나중에는 이로 인해 신경쇠약까지 생겼다.
내 상황을 얘기하자 그가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그러세요?” 파룬궁이라는 말을 듣자, 사회에서 유행하는 여러 기공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기공도 몇 가지 해봤지만 별 효험이 없었기에, 파룬궁이 내 병을 고쳐줄 수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파룬궁수련생들에게는 관심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꽤 명망 있는 지부 서기도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수련생들과 똑같이 자비롭고 온화하며 전혀 거들먹거림이 없더라고요. 파룬궁이 사람을 그렇게 바꿔놓은 건가요? 파룬궁이 어떻게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건지요?” 그가 온화하게 말했다. “파룬궁에 관심이 있으시다니 제가 설명해 드리지요. 파룬궁은 동작만 연습하면 되는 일반 기공과는 달리 매일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가장 쉬운 수준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부터 시작해, 사람에게 왜 병이 있고 고통과 재난이 있는지의 인과관계, 우주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심오한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꿔줄 수 있지요.” 나는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흥미가 생겼다. “와! 파룬궁이 이렇게 깊고 방대한 학문이었군요! 꼭 책을 봐야겠어요.” 그가 말했다. “책을 보고 싶으시면 제가 며칠 안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아니면 그 지부 서기한테서 빌려봐도 됩니다.” 우리는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눴고, 텔레비전은 결국 수리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그는 “우선 여기 놔두고 제가 책 가져올 때 다시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저녁이 되자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 곧장 지부 서기 집으로 가서 책을 빌리고 싶다고 했더니, 서기는 흔쾌히 응해줬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아내도 배우기를 매우 원했다. 이틀을 함께 공부했지만 나는 일이 바빠 책 읽기를 멈추게 됐고, 아내는 계속 읽어나갔다.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나 지부 서기 집 연공 장소에 가서 연공을 배워올게요. 배우고 나서 당신한테 가르쳐줄게요.” 아내는 매일 연공 장소에 나가 연공을 익히고 돌아와 나를 가르쳐줬다. 이렇게 해서 우리 둘은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2. 수련의 은혜
나는 곧 5가지 공법 동작을 모두 익혔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원인이 과거에 나쁜 일을 해서 쌓인 업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게 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요. 파룬궁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심성을 높이면 업력이 소멸된대요. 그리고 마음이 진실하기만 하면 높은 차원의 생명이 도와줄 것이고, 병도 곧 나을 거래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비교적 첨단 과학 분야에 가까운 일을 해왔기에 과학이 전능하다고 여겼고, 고차원 생명이니 신이니 부처니 하는 것들은 그다지 믿지 않았다. 아내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공할 때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코로 숨을 쉬지 못해 늘 입을 벌리고 있으니 요구에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코가 뚫리면 정말 좋겠다.’ 나는 내 생각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말했다. “그럼 그 약들을 다 태워버려요.” 나는 충동적으로 모든 약을 집어다 화로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려니 코가 꽉 막혀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말했다. “약을 다시 사야겠어, 안 그러면 잠을 못 자겠어.”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 아내가 말했다. “날씨가 이렇게 나쁜데 오늘은 나가지 말고 하루만 더 버텨봐요.” 어쩔 수 없이 아내 말을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다음 날 밤에는 코가 그렇게 답답하지 않아 잠을 잘 수 있었다. ‘정말 효험이 있구나’ 싶었다. 사흘째 되던 날, 코가 완전히 뚫렸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비염은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이 신기한 현상을 겪고 나서 ‘과학이 전능하다’는 완고한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우주에 정말 사람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생명이 있는 것일까?’ 그때부터 파룬궁 책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부하면서 ‘전법륜(轉法輪)’이 얼마나 훌륭한 책인지 알게 됐다. 이전에 이해하고 싶었지만 풀리지 않던 많은 문제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한 번 읽는다고 모두 이해되는 책이 아니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다. 그렇게 이 책은 매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됐다. 지금까지 1,000번 넘게 읽은 것 같은데, 지금 읽어도 여전히 기쁘고 신선한 느낌이 든다.
수련 전에는 매년 여름마다 심한 감기를 앓았고, 배탈도 함께 왔는데 의사는 장염성 감기라고 했다. 매년 여름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며칠씩 고생했다. 득법 이듬해 여름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났고 구역질까지 심하게 났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토하기 시작했는데, 나온 것은 음식물이 아니라 짙은 갈색의 섬유질 같은 고름이었고 비린 냄새도 났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증상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을 정화해주신 것이라 알고 있다. 비염과 장염성 감기 두 가지 병뿐만 아니라 신경쇠약 등 다른 병들도 모두 나았고, 병 하나 없이 몸이 가벼운 느낌이 어떤 건지 진정으로 체험했다. 그 후 거의 30년간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은 적이 없다.
신체적인 은혜 외에도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시고 대법 수련의 신기한 현상들이 내게도 여러 번 나타났는데,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한번은 냉장고를 수리할 때 배관을 끊고 냉매를 빼내야 했다. 그날 바빠서 방금 냉장고 전원을 끊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고압 배관 안에 아직 고압 가스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급하게 산소 용접기로 건조 필터 접합부를 가열해 배관을 끊으려 했다. 그런데 용접 부위가 거의 녹으려는 순간, 건조 필터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폭발했다.
건조 필터는 길이 약 10cm, 굵기 약 2cm의 구리관으로, 안에 건조제(좁쌀보다 약간 크고 모래알처럼 단단한 알갱이)가 가득 차 있었다. 귀를 찌르는 굉음이 들리더니 그 후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약 30초쯤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훑어봤는데, 피가 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눈을 깜빡여봐도 이상한 느낌이 없었다.
그때 마침 남자 수련생 한 명이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는 마당으로 막 들어서다 굉음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는데, 눈동자를 그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왼쪽 눈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살짝 따가웠다. 바로 집으로 달려가 거울로 확인해봤더니, 모래알 하나가 눈알에 박혀 있는데 완전히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절반가량 밖으로 나와 있었다. 수건으로 닦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당 밖에 진료소가 있었는데 외과 의사가 한 분 계셨다. 바로 찾아가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의사가 눈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빨리 병원에 가세요. 저희가 직접 건드리면 절대 안 됩니다. 각막이 손상될 수 있어요. 사람의 눈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모래알을 꺼낼 때 각막이 손상되면 실명할 수도 있어요. 병원에서는 특수 약물로 눈알을 고정시킨 다음에 꺼내야 합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믿고 집으로 돌아가 정념을 발하기로 했다.
수련생 몇 명이 함께 정념을 발하고 있을 때, 마침 여자 수련생 한 명이 볼일이 있어 나를 찾아왔다. 다른 수련생들의 발정념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나는 밖으로 나가 그 수련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왼쪽 눈에 바늘로 지르는 것 같은 통증이 한 번 느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편안해졌고 눈동자를 움직여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여자 수련생을 보내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거울로 확인해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조차 없었다. 눈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그 모래알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또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읍에 볼일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원래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그날은 왠지 헬멧을 쓰게 됐다. 그 읍에 막 들어섰을 때 벽돌을 밟아 오토바이가 튀어 올랐다가 바로 넘어지면서 6~7미터나 미끄러졌다. 마침 초봄이라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지만 왼쪽 바지 무릎 부분이 다 닳아 해졌고, 헬멧 왼쪽도 크게 긁혀나갔다. 정말 아찔했다! 그날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일어서려는데 왼쪽 다리에 힘을 주니 다리가 뒤로 구부러졌다. 다리는 앞으로만 구부러지지 뒤로는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내 다리가 뒤로 구부러진 것이다. 골절이나 탈골이 된 것 같았다. 힘들게 오른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고, 왼쪽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오토바이에 올렸다. 왼손으로 기어를 조작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왼쪽 다리가 아파 반가부좌도 할 수 없어 다리를 뻗은 채로, 오른쪽 다리만 접어 앉았다.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매일 벽에 기대어 동공을 연습하고 왼쪽 다리를 뻗은 채로 정공을 수련하며 하루도 쉬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자 목발을 짚고 밖을 나갈 수 있게 됐고, 20여 일이 지나서는 목발 없이 걸을 수 있게 됐으며, 한 달이 지나자 완전히 회복됐다. ‘뼈와 힘줄이 다치면 100일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병원에 가더라도 3개월은 걸릴 텐데, 연공한 지 한 달 만에 활기차게 걸을 수 있게 됐고, 40~45kg이나 되는 쌀자루도 거뜬히 들고 걸을 수 있었다.
3. 변화
수련 전에는 가게를 운영하며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접했다. 그때의 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는 기준이 없었고, 당시 사람들이 좋고 나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소 우유부단하고 영리하지 못한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쓰는 교묘한 언어 기법이다. ‘우유부단하다’고 하면 상대방 감정을 상하게 하니 ‘착하다’는 말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나더러 착한 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모를 모욕감이 들기도 했다. 반면 교활하게 아첨을 잘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참 유능해’라 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은 ‘사나이답다’라고 했다.
‘유능’하거나 ‘사나이다운’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밤중에 남의 집 닭을 훔쳐와 내 가게에서 삶아 먹기도 하고, 가을이면 밭에서 강낭콩을 훔쳐와 삶아 먹기도 했는데, 당시 나는 그들이 참 유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전제품 수리업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들을 상대하게 된다. 나는 멀쩡한 부품을 분리해 새것으로 교체한 다음 고객에게 높은 금액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업을 쌓았는지 모르겠다. 그 결과 몸이 매우 나빠졌다. 비염 외에도 신경쇠약이 생겼고, 두통과 이명이 잦았으며 목덜미가 항상 뻣뻣하게 뭉쳐 있었다.
한동안은 가게에 들어서기만 하면 두통이 생겨, 밖에서 당구를 치거나 이웃과 카드 게임을 해야 좀 나아졌다. 그러다 보니 매일 카드 게임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밤, 아내와 나는 겨우 4~5살 된 딸을 재워두고 카드 놀이를 하러 나갔다. 밤이 깊어 돌아와 문을 열었더니, 딸이 바닥에 서서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목이 다 쉬어 있었다. 아이를 안아 들고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내 뺨을 치며 괴로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건가?!’ 마치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조각배 같았다.
1996년 겨울, 마침내 동이 텄다. 나는 득법했다! 수련을 시작했다! 파룬따파는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몸이 가볍고 병이 없어진 것뿐 아니라 마음도 매우 밝고 기쁘게 됐다. 아내와 나는 매일 아침 연공 장소로 나갔는데, 마치 드넓은 하늘을 나는 두 마리 자유로운 새처럼 총총 달려갔다. 저녁에는 연공 장소에서 수련을 이끌어주는 소중한 책 ‘전법륜’을 공부하고, 공부를 마친 후에는 수련을 통해 심성이 높아진 체험담을 나눴다.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밝아지니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온화해졌고, 업계의 나쁜 관행도 완전히 고쳤다. 한번은 한 노인 댁에 텔레비전을 수리하러 갔는데, 단번에 고장 원인을 찾지 못해 회로도가 있는 설명서를 찾아봐 달라고 했다. 노인은 꼿꼿하고 소신 있는 은퇴 교사였는데, 말투가 때로는 꽤 직설적이었다. 나더러 설명서를 찾으라 하자 거침없이 말했다. “그런 수법은 안 통해요. 이 바닥 다 알아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금방 고장을 찾아내고 부품 교체비를 청구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내가 지켜볼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굳이 설명서를 찾으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자료에서 비슷한 회로도를 찾아 수리하면서 말했다. “저는 요즘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노인은 놀란 듯이 말했다. “파룬궁이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요? 정말 믿기지 않네요.” 파룬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해 내가 하나하나 답해드렸다.
텔레비전 수리가 끝나고 나는 매우 적은 비용만 받았다. 작별 인사를 하자 노인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한참 멀리까지 배웅해줬다. 그 이후로 90세 가까운 그 노인과 나는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됐고, 노인은 시내에 나올 때마다 내 가게에 들러 앉아 가곤 했다.
내가 변한 것이 알려지자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파룬궁’이라고 불렀다. 가전제품 수리 얘기가 나오면 “그 ‘파룬궁’ 부르면 돼요, 솜씨도 좋고 바가지도 안 씌운다니까요”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나의 성품과 온화한 태도 덕분에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았다.
4. 박해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과 장쩌민(江澤民)이 서로 결탁해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했다. 파룬궁에 대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고, 육체적으로 소멸시킨다’는 방침이었다. 그로부터 자유롭게 연공할 수 없게 됐고, 매일 읽던 소중한 책도 빼앗겼으며, 매일 감시와 괴롭힘을 당하고 ‘회개서’와 ‘보증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
2000년 정월, 우리 읍 대법제자 6명이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가 납치돼 돌아온 후, 읍 정부는 이들과 현지 20여 명의 대법제자를 한 중학교 대형 기숙사에 불법적으로 가뒀다. 기숙사에는 침구도 없이 딱딱한 나무 판자가 깔려 있었고, 화장지 한 롤씩을 베개로 써야 했다. 약 한 달 동안 매일 옥수수 죽 한 그릇, 크지 않은 옥수수 찐빵 하나, 몇 점 안 되는 절인 반찬이 전부였다. 베이징에 갔던 6명의 수련생을 폭행한 것 외에도, 매일 의지가 굳은 대법제자들을 폭행하고, 전기봉으로 지지고, 마보(馬步) 자세를 강요하는 등의 고문을 가했다.
어느 날 읍 간부 한 명이 종이와 펜을 잔뜩 가져와 각자 ‘회개서’를 쓰라고 했다. 다들 쓰지 않았다. 나는 썼는데 꽤 많이 썼다. 수련 전후로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와 수련에 대한 굳은 결심을 담았다. 그 간부가 다시 와서 걷어가려 했는데 아무도 쓰지 않은 것을 보고 화를 냈다. 내가 쓴 것을 보더니 얼굴이 밝아지며 말했다. “봐요, ○○○씨는 잘 썼네요.”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절반도 채 읽지 못하고 나를 향해 고함쳤다. “이게 무슨 글이에요? 이리 와요, 이쪽 방으로 와서 지도자들한테 직접 읽어줘요.”
그는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는데, 방에는 읍장, 서기, 파출소장 그리고 몇 명의 행동대원이 있었다. 그는 내게 원고를 건네며 말했다. “지도자들한테 읽어봐요!” 잠시 머뭇거리며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이 내 진심 어린 체험이니 지도자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굳건하게 원고를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차게 읽어 내려갔다. 읽는 동안 아무도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
다 읽고 나자 파출소장이 고개를 들어 행동대원들에게 눈짓을 했고, 그들이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방을 나서자마자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마구 발로 차고 전기 충격봉으로 지졌다. 한 행동대원은 때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네가 읍장보다 잘났어? 읍장은 길을 걸어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는데, 너는 왜 그렇게 인사를 잘 받는 거야?!”
20여 일 후 석방될 때, 각자 밥값 명목으로 300위안씩 뜯겼다. 아내와 나는 6,000위안을 갈취당했고, 다른 수련생들도 6,000위안, 4,000위안, 2,000위안씩 갈취당했다. 읍 관할 다른 20여 개 마을에서도 각 마을 대법제자들이 불법 구금된 채 벌금을 갈취당했는데, 총액을 합하면 20여만 위안에 달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매일 감시와 괴롭힘을 당하고 신고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2001년 가을과 겨울 사이, 아내는 베이징으로 청원을 가기로 결심했고, 나는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피신하면서 딸을 고모에게 맡겼다. 아내는 베이징에서 납치된 뒤 1년 반 동안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나는 피신 중에 납치돼 구치소에서 11개월간 불법 구금됐다. 피신 중에 공안국이 수배령을 내렸다. 나를 압박해 귀가시키려고 읍장이 학교에 압력을 넣어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을 퇴학시켜 버렸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학교 교사와 학생들, 교장, 그리고 수련생들이 크게 분노했다. 많은 수련생들이 현장과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고, 거리에 진상 자료를 붙여 읍 정부의 사악한 박해 행위를 폭로했다.
현 위원회 서기가 이 사실을 알고 전화로 읍장을 호되게 꾸짖었다. “요즘 9년 의무교육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이 시기에, 초등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냈단 말이오? 당신이 돌려보냈으면 당신이 알아서 데려와요!” 읍장은 부서기를 보내 직접 차를 몰고 가서 딸을 학교로 데려갔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결혼한 딸이 친정에 왔을 때 아내가 딸을 보며 물었다. “그 시절에 너를 고모한테 맡겨두고 갔는데, 아빠 엄마 원망했니?” 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러고는 또 말했다. “엄마, 내 눈이 어떻게 나빠졌는지 알아요? 공부 때문이 아니에요, 울어서 나빠진 거예요. 엄마 아빠가 떠난 후 많이 보고 싶어서 매일 밤 울었는데, 고모한테 보이기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이게 엄마 아빠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정부 잘못이고 공산당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라는 것도요. 나를 돌봐주신 고모 가족분들께도 정말 감사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그리고 저를 늘 걱정해주셨던 담임 선생님께도 감사해요.”
딸한테서야 처음 알게 됐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이 우리집 사정을 알게 된 후 딸을 매우 안쓰럽게 여겨 자주 용돈도 주시고 간식도 주시며 늘 살뜰히 살펴봐 주셨다고 했다. 딸이 서른이 넘은 훗날까지도 그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보시면 딸의 근황을 물어봤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지 27년이 됐고, 나는 수련을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됐다. 이따금 사람들이 묻는다. “당신이 무딘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큰 압력 속에서도 굳건히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나요? 어떤 힘이 그렇게 하게 했나요?” 곰곰이 생각해봤다. 파룬따파에 대한 믿음이 나를 지탱해줬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31/51033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31/51033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