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박해 초기, 한번은 우리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올라가 법을 실증하려 했던 약 20명의 수련생이 정부 청사 안의 세뇌반에 불법으로 수감됐는데, 내 가족도 그중에 있었다. 지역 ‘일인자’는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켜 정치적 자본을 쌓으려 했다. 불법 수감된 수련생들은 스스로 나서서 정부 직원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각 부서를 돌며 청소하거나 마당에서 풀을 뽑는 시간을 이용해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전했다. 각 부서 직원들, 사무직원들, 산책 나온 사람들, 감시 경찰들까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말했다. 진상을 알게 된 이들은 대법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고, 대법제자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이는 수련생들에게 호의로 이렇게 권하기도 했다. “(파룬궁은) 좋은 것이니, 집에서 연공하세요. 계란으로 바위 치지 말고요.”
세뇌반의 ‘전향’ 작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지역 ‘일인자’는 외지의 세뇌 요원을 불러다 강연을 시키고, 상급 기자를 불러 이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전향’했다는 ‘보도’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연출된 사진 찍기는 현장에서 즉각 폭로됐다. 어떤 방법을 써도 수련생들을 ‘전향’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본 ‘일인자’는 격분해 이렇게 선언했다. “당신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곳을 장기 노동수용소로 만들겠다.” 수련생들은 단체 단식을 시작했고 결국 3일 만에 세뇌반을 해체시켰다. 이후 우리 지역에서는 세뇌반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지역 대법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을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일인자’가 세뇌반을 운영하던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 진상 편지를 직접 전달한 적이 있다. 이 편지가 진상을 전파한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날 나는 지역 정부 청사로 가서 경비원에게 ‘일인자’에게 편지를 전달하러 왔다고 말했더니 들여보내 줬다. 위층에 올라간 후 ‘일인자’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그의 생김새를 전혀 몰랐고, 지역 뉴스도 본 적이 없어서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을 만났는데, 나는 공손하게 ‘일인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로 찾으시나요?” “편지를 전달하러 왔습니다.” 그가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그가 바로 ‘일인자’였다.
그의 사무실에서 그는 나를 앉게 하고 나는 편지를 건넸다. 그는 내가 광고 판촉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이 편지에는 제가 당신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담았습니다. 파룬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잘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업무 수행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편지를 펼쳐 대략 훑어본 뒤 내 신분과 직업을 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답했다. 그는 볼 일이 있다며 편지는 자기가 갖고 있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몇 달 후, 그는 이 편지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에 넘겼다. 그때부터 이 편지는 진상을 전하는 여정을 걷기 시작했다.
국보는 우리 기관의 상급 지도자를 찾아가 편지를 건네며 나를 ‘전향’시키도록 요구했다. 우리 기관의 각급 관련 지도자들이 차례로 그 편지를 돌려 읽고는, 저마다 나를 따로 불러 면담했다. 누가 찾아오든,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내가 대법에서 받은 혜택을 이야기했다. 그들도 업무상 그 자리에서 진상을 듣게 됐다. 나는 우리 상급 지도자까지 만나게 됐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자기 부하들이 자기와 함께 제대로 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내 상관들 중에는 사실 정말 좋은 사람이 많았다. 전임 상급 지도자는 대법을 배운 적도 있었고 많은 직원들이 사부님의 전수반에 참여했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하얼빈으로 사부님의 전수반을 찾아간 사람만도 기차 한 칸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친척과 친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대법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후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을 했을 뿐이다.
‘전향’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국보 대장이 경찰차로 직장에서 나를 데려갔다. 국보 대대에서 나는 심문 자리에 앉혀졌고, 경찰들이 나를 둘러싸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말을 쏟아내며 위협했다. 나는 매우 침착했고 그러자 그들도 조용해졌다. 대화가 될 만한 사람과는 진상을 이야기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침묵했다. 그들은 내 집과 부모님 집까지 압수수색하겠다 하고, ‘전향’하지 않으면 구류시키고 자료를 꾸미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국보 대장에게 말했다. “편지 한 통 때문에 저를 구류하시려는 건가요? 위의 지도자들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는데요!” 그가 말했다. “그럼 위의 지도자한테 가보시지요!” 나는 속으로 감이 잡혔다. ‘일인자’를 찾아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이틀의 시간을 주세요. 생각해 볼게요. 월요일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가 알겠다고 하고는 나를 집에 보내줬다.
월요일 아침, 나는 정부 청사 ‘일인자’의 사무실 건물 앞으로 갔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 지인을 만났다. 이번까지 치면 우리가 만난 건 세 번째였는데, 이 지인은 ‘일인자’의 측근이었다. 그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 사정을 설명하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다른 사무실 문을 열자 ‘일인자’가 보였다. 그는 손을 한 번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들어오라고 했다. 지인은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소파에 앉아 방문 목적을 밝혔다. “당신은 이 지역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관리이신데, 서민들이 일이 생기면 당신 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제가 드린 편지는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담은 것이고,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편지를 드린 건, 당신이 제 가족을 이곳(세뇌반)에 가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시멘트 바닥에서 지내야 했고, 매우 추웠습니다. 제 가족은 ‘진선인’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렇게 대우받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 가족도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당신도 침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부하가 저를 구류하려 합니다.”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구류를 시도한 것이 국보냐고 그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또 내 가족 상황을 물었고 수련 포기 ‘보증서’를 쓸 수 없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보증서를 쓰면 신앙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는 또 당원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아마 당내 처분을 내려 일을 마무리하려 했던 것 같은데 난 당원도 아니었다. 그런 다음 ○○(내가 아는 그 지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베이징에 간 적도 없고(실은 갔었지만 잡힌 적이 없었다), 다른 일도 없고, 사람 됨됨이도 괜찮아 보이는데다 ○○도 알고 있으니, ○○의 체면을 봐서 이번은 없었던 일로 하죠. 다만 베이징에는 가지 마세요(나는 약속하지 않았다). 먼저 정치부에 가보세요. 그쪽에서 몇 가지 업무 처리를 할 겁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정치부 주임은 형식적인 말만 했다. 나도 그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들은 집에서 잘 수련하고 베이징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또 내가 ‘일인자’에게 쓴 편지를 자기들도 읽었는데 수준이 높다고도 했다. 이때 정치부 주임이 ‘일인자’에게서 전화를 받고는 나에게 국보로 가라고 했다. 나는 다시 국보로 갔다. 국보 대장이 나를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내가 ‘일인자’를 찾아갈 줄도, ‘일인자’와 일을 원만히 해결해 낼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가 어찌 알겠는가,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이 안배하신 것이고, 사부님께서 하신 일임을!
오후에 국보 대장은 나를 다른 부서로 넘겼다. 그곳 경찰들도 험한 소리를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면담하며 나와 이야기를 나눴고, 편지를 잘 썼다며 논문이라면 상도 받겠다고 칭찬했다. 나도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들 수장은 나에게 기관으로 돌아가 지도자에게 잘 이야기하고 베이징 같은 데는 가지 말라고 했다. 마치 베이징에 가면 정말 그의 감투가 날아갈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 베이징에 올라간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누구의 감투가 날아갔다는 건 본 적이 없다.
나는 다시 기관으로 돌아와 상급 지도자를 만났다. 그는 잘됐다며 기뻐했다. 나는 그에게 내 편지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자기가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며 주지 않았다. 그는 자녀를 위해서라도 몸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후 그 지도자는 더 높은 자리로 승진했고 나중에 우리 기관을 점검하러 왔을 때 나에게 아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진상 편지 한 통이 사부님의 인도 아래 그 여정을 완성했다. 사부님의 안배 덕분에 나는 이 과정에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좋다는 진상을 전할 수 있었고, 몸소 법을 실증할 수 있었다. 자비하고 위대한 사부님의 가호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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