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하란(夏蘭)
[명혜망] 중공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사회보장국이 내 연금을 지급 정지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수령했던 15만 9천여 위안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를 기소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고난에 직면해, 나는 초기의 막막함과 어찌할 바를 모르던 상태에서 벗어나 이를 좋은 일로 바꿨다. 처음에는 연금을 되찾으려 했던 것에서 마지막에는 사람을 구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고, 처음에는 창구 직원들의 냉대를 받다가 나중에는 ‘큰언니, 큰언니’라고 불리며 존중받기에 이르렀다.
나는 가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한 집착 제거의 과정을 겪었다. 아울러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정진요지3-시카고 법회)라는 법리에 대해 더욱 깊은 체득을 하게 됐으며, 서명 하나 하지 않고도 연금 일부를 임시로 되찾았다. 그 과정에는 사부님의 거듭된 일깨움과 자비로운 보호가 있었고, 공의포럼 수련생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타적인 도움이 있었다. 아래에 이 경험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길 바란다.
1. 사존의 거듭된 일깨움
1) “할머니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
연금을 되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이 발생했고, 심지어 신체적으로도 큰 시련이 나타났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나를 일깨워 주셨고 내게 시련을 풀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내심에서부터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집착을 찾는 것도 표면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후 연금을 되찾는 과정에서 사존께서는 나를 위해 조급해하시며, 또다시 여러 번 속인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 주셨다. 기점을 사람을 구하는 데 두고 자비를 닦아내어 타인을 위한 생명이 되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현(縣) 사회보장분국에 가서 국장을 만날 준비를 했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갔었지만 책임자인 국장을 만나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회보장국에 도착하려 했다. 그들은 8시 반에 출근하는데, 나는 7시 조금 넘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에 막 오르니 차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빈자리가 있는지 살펴보려는데, 3~4세쯤 된 남자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하게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뜻이지? 사부님께서 아이의 입을 빌려 내게 무엇을 일깨워 주시는 걸까? 내게 듣기 싫은 소리를 못 견디는 마음이 있는 걸까? 아니면 체면심인가?’ 모두 아닌 것 같았다. 매번 집착을 정확히 찾아냈을 때면 내 몸에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와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서 아이가 앉은 자리로 다가갔다. 막 아이 앞에 이르자, 아이는 내 머리를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할머니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 차 안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때 아이 옆에 있던 할머니(아마 아이의 친할머니인 듯했다)가 내 난처함을 풀어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머리 염색을 안 하셔서 그래. 염색하면 괜찮아진단다.” 나는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로 흰머리를 계속 염색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아이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고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나는 사회보장국에 도착해 국장이 시(市)로 회의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담당 부국장을 만났다. 그에게 온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말했다. “간단합니다. 예전에 수령했던 임금을 반환하시면, 다시 근속연수를 계산해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국장을 찾으러 온 겁니다. 당신들이 내 퇴직금을 공제한 것은 위법이니까요!”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며 말했다. “고소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서 고소하십시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말했다. “좋습니다! 내일 당장 현장(縣長)을 찾아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사회보장국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길 건너편에서 한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내가 보기엔 머리 염색 안 한 게 아주 좋아 보이네요.” 그녀는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이것 봐요. 난 염색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흰머리가 나오잖아요. 내가 보기에 당신의 염색 안 한 머리가 아주 자연스러워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가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가버렸다.
남동생(수련생) 집에 도착하니 마침 알고 지내던 오빠 수련생 한 분도 계셨다. 나는 방금 겪은 일을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말했다. “오늘 두 번이나 겪은 일이 모두 머리카락과 관련이 있는데, 사부님께서 내게 무엇을 일깨워 주시는 걸까요?” 두 사람이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자,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너무 우둔합니다. 사부님, 제자에게 한 번만 더 일깨워 주십시오!’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지역의 한 수련생에게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며 전화가 왔다. 나는 방금 사회보장국에 가서 겪은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듣자마자 말했다. “머리 모양이 안 못생기고 배기겠어요?! 언니는 사회보장국에 뭐 하러 갔어요? 언니 자신을 위해 임금을 찾으러 간 거예요, 아니면 사람을 구하러 간 거예요? 상대방이 위법이라고 했는데, 그럼 언니는 ‘법’에 있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크게 깨달았다. ‘맞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잔뜩 원망을 품고 사회보장국에 갔었지. 그러니 그 부국장이 그렇게 큰 화를 낸 것도 무리가 아니야.’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자비를 닦아내고 타인을 위한 생명이 되어 사람을 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당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좋지 않은 물질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2) “걷는 자세를 보니 몸이 아주 건강하시네요”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예전에 썼던 진상 편지를 모두 찾아냈다. 예전에 쓴 편지들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했다. 퇴직금을 되찾기 위해 나는 법원, 검찰원, 구치소, 은행, 현 정부의 관련 부서들을 찾아다녔고, 어디를 가든 “파룬궁은 천고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해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당당해 보였고 입으로는 퇴직금을 찾는 것을 계기로 삼아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깊이 파고들어 보니 그 목적은 완전히 자신을 실증하기 위함이었고 그 이면에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봐, 어디서든 감히 말하잖아’라는 매우 깊이 숨겨진 과시심이 있었다. 편지 속에 중공 악당 문화가 가득했고 쟁투심이 지극히 강했으며, 자신이 이치에 맞다고 남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 원망심, 질투심, 남을 얕보는 마음, 심지어 남을 깎아내리고 비꼬는 마음 등이 있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당신들 사회보장국과 법원이 결탁한 것은 내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같다’라고까지 썼다. 이로 인해 사악이 빈틈을 타 신체에 커다란 시련이 나타났다. 당시 정말 목숨을 앗아가려 했으나, 마지막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시련을 감당해 주셨기에 비로소 나는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사부님께 얼마나 큰 노고를 끼쳐드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 마음을 품고 퇴직금을 되찾으려 했으니 사악에게 빈틈을 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현장과 관련자들에게 쓴 편지를 새롭게 수정한 후, 남동생 수련생에게 말했다. “내일 나 혼자 청원사무실에 가서 현장을 찾아가 볼게.” 불과 일주일 전, 나는 남동생과 함께 현 정부에 가서 현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현 정부에 막 도착하자 10여 명의 경비원이 우리를 가로막고 들여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판결을 받았으며,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돌아온 후 사회보장국이 내 퇴직금 지급을 중단해 현장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했다. “여기서는 현장님이 아무도 안 만납니다.” 나는 현장에게 편지를 썼으니 전달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남동생이 말했다. “내일 청원하러 가자. 마침 인민대표대회도 열리잖아!” 남동생이 청원하러 가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건물 안에서 또 4~5명의 경비원이 나와 원래 있던 14~15명의 경비원과 함께 우리를 겹겹이 에워쌌다. 어떤 자는 “당신들 청원하러 갈 수 없어, 그건 월권행위야”라고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물었다. “현장도 못 만나게 하고 편지도 안 전해주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이때 또 다른 경비원이 나와 말했다. “수요일이 현장 접견일이고, 장소는 신방국(信訪局, 청원국)입니다.” 다음 날이 마침 수요일이었다.
다음 날, 나는 신방국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신방국에는 이미 청원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접수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현장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현장을 만나 무슨 일을 하려느냐고 묻기에 퇴직금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임금 찾으러 온 사람이 많은데, 현장님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말했다. “제 상황은 특수합니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갔고, 사회보장국이 제 퇴직금 지급을 중단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억울하든 아니든 그건 우리 현의 일이 아닙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맞습니다. 1999년 장쩌민 집단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는 전국 국민을 대법의 반대편으로 몰아넣었고, 정법위원회의 조작하에 공안, 검찰, 법원 직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알면서도 법을 어기고 파룬궁수련생에게 억울한 판결을 내려, 그들 자신도 죄악 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파룬궁이 박해받은 것은 천고의 억울한 일입니다!” 이어서 나는 파룬궁이 불가(佛家) 최상 수련대법이며 이미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때 다른 접수 직원으로 교체됐고, 나는 계속해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조작된 가짜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중에 또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아주머니, 보세요. 벌써 10시가 넘었는데 현장님이 아직 안 오셨고, 오시더라도 오늘 아주머니 차례는 안 옵니다. 이 사람들 모두 현장님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두 달째 대기 중이에요. 일단 돌아가세요.” 나는 할 말도 거의 다 했고, 청원하러 온 사람들과 직원 일부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말했다.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내가 현장에게 쓴 편지가 있는데 전달해 줄 수 있나요?” 그가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현장에게 전달해야 해요!”라고 하자, 그는 “틀림없이 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다음 나에게 접수 대장에 기록하게 했고, 나는 편지를 건넨 뒤 신방국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두 여성이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언니, 걷는 자세를 보니 몸이 아주 건강하시네요.”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3) “아주머니는 선생님이시죠?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이후 나는 다시 사회보장국에 가서 그 담당 부국장을 만나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내게 인력자원사회보장국(인사국)에 가서 아무개 계장(股長)을 찾으라고 했다. 나는 인사국으로 가서 경비원에게 계장을 찾는다고 말했고, 경비원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나라는 말을 듣자마자 지금 백신을 맞고 있고 조금 있다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고 경비원을 통해 전했다. 마침 그녀도 나를 찾으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돌아와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한 남자가 더 있었는데, 그녀가 나를 ○○○라고 소개했다. 그 남자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태도가 금세 매우 불친절하게 변했다. 그 계장이 전화를 걸어 감찰팀 사람 두 명을 불렀는데 한 명은 팀장이었다. 그 직원의 태도 역시 꽤 사나웠다. 또 한 사람이 와서 내 모습을 촬영하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좋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파룬궁을 박해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촬영하러 온 사람은 그냥 가버렸다.
인사국은 내게 이전에 수령한 15만 9천여 위안을 반환하라며 서명을 요구했다. 감찰팀의 그 사람이 말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법원에 고소할 겁니다.”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나를 고소한다면 너무 좋죠. 내가 당신들을 고소할 수고를 덜었으니까요. 파룬궁 박해는 천고의 억울한 일이고, 나는 억울하게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0년 12월 29일, 국무원 신문출판서 제2차 서무(署務) 회의에서 제50호 문건이 통과됐고, 이 문건은 2011년 3월 1일에 서명, 발부돼 공포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이 문건은 161개의 규범성 문건을 폐지했는데 그중 폐지된 제99번째 문건이 1999년 7월 22일에 하달된 《파룬궁 관련 출판물 처리 의견 재심사에 관한 통지》이고, 폐지된 100번째가 1999년 8월 5일에 하달된 《파룬궁 불법 출판물 인쇄 금지 및 출판물 인쇄 관리 강화에 관한 통지》입니다. 이 50호 문건은 현행 관련 법규에 따라 파룬궁 서적과 자료를 소유하는 것이 완전히 합법임을 설명합니다. 파룬궁 서적, 자료를 소유, 복제, 전파하는 것을 파룬궁의 유죄 판결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이 50호 문건은 바이두에 ‘신문출판서 50호령’을 검색하면 바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한번 검색해 보세요.” 그 사람은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그날 나의 불선(不善)함 때문에 사회보장국이 이미 나를 인사국에 고발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웃으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당신들에게 상황을 반영해 공정함을 되찾기 위해 도움을 청하려 한 겁니다. 이제야 알아들었네요. 당신들은 사회보장국을 대신해 나에게 돈을 받아내려 했던 거군요. 여기 편지가 있으니 한번 보세요.” 나는 진상 편지와 공의포럼에서 내려받은 수련생이 제공한, 법률로 박해를 반대하는 법률 조문들을 함께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이 서명하라고 한 조항을 가리키며 “이 조항은 《노동법》을 위반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 조항을 지워버렸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 조항은 중국 《헌법》을 위반했고 저 조항은 《노인 권익 보장법》과 《사회 보험법》 등의 법률을 위반했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하나하나 다 지워버렸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서명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서명하면 당신들도 파룬궁 박해에 가담했다는 뜻이 되고, 그건 당신들을 해치는 일이니까요.” 감찰팀의 그 사람은 내가 인사국을 걸어 나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내게 강하게 반발했던 그 직원은 편지를 다 읽은 후 말했다. “아주머니는 선생님이시죠?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4) “언니, 언니는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루는 시 사회보장국과 인사국에 다녀오는 기차 안이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한 여성이 내게 물었다. “언니, 입술 라인 문신한 거예요?” 내가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말했다. “내가 방금 한 입술 라인 문신도 언니 것만큼 예쁘지 않네요.” 나는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화장품조차 바른 적이 없어요. 파룬궁은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라, 수련인이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기만 하면 몸이 젊은 사람 방향으로 전환된답니다.” 이어서 나는 내가 연공을 이유로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가 돌아온 후 사회보장국에서 내 연금을 삭감했으며, 오늘은 시 사회보장국과 인사국에 임금을 찾으러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동시에 그녀에게 파룬궁 진상도 알렸다. 기차 안에서 두 시간 넘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알아듣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해 헤어질 때쯤, 그녀가 말했다. “언니, 언니는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선량하시니까요.”
2. 사존께서 베푸신 은혜
1) 사존께서 자리를 마련해 주시다
작년 정월, 나는 성 인사청에 갔다. 경비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청장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내게 앞쪽 정문으로 가서 청원실을 찾으라고 했다. 청원실에 도착하니 직원은 중년 남성이었고, 바깥쪽 방에는 외부에서 일을 보러 온 한 할머니가 뭔가를 쓰고 있었다. 직원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판결을 받았고, 연금을 공제당해 청장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즉각 난폭한 태도로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겐 연금을 안 줍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법적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문건이 있다고 했다. 내가 문건을 보여달라고 하자 그는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문건이 있다고 했다. 내가 문건 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나 지금 바쁩니다”라고 했다.
이때 그 할머니가 다가와서 내게 말했다. “당신들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은 공산당에 맞서니까 임금을 안 주는 게 당연하지!”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중공에 너무 심하게 세뇌되셨네요.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이라 누구와도 적대하지 않아요. 1999년 당시 중공 당괴(黨魁) 장쩌민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아져 당시 당원 수를 넘어선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노약자나 병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문가, 학자, 사회 유명인들이 더 많았고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몇 명의 가족까지 수련했어요. 장쩌민이 소인배 같은 질투심에서 중공과 서로 결탁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겁니다. 국민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연출했고, 지금은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연출한 주동자 천멍(陳虻)조차 40대에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절대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마세요.” 그 할머니는 듣고 나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 계속 글을 썼다. 그 직원은 듣고 나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문건 번호를 찾았다며, 노동사회청(2001) 44호 회신이라고 했다. 내가 내용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내게 직접 인터넷으로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노인용 휴대폰을 쓴다고 하자 그는 자식에게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하자 바빠서 찾아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이때 내가 이름을 묻자 그는 그냥 접수 직원으로 기억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조카뻘 되는 양반, 아주머니가 여기 한 번 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나는 ××현 사람이라 집에서 여기까지 직행버스가 없어요.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 기차역으로 가서 여기서 내려 또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에서 내려 이리저리 다니며 여기저기 물어물어 한참을 걸어서야 겨우 도착했어요. 돈도 없고요. 난 위법 행위나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그저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판결을 받은 거예요. 파룬궁이 박해받은 건 천고의 억울한 일이에요!” 그는 말했다. “당신들 기업은 그래도 낫네요. 형을 받고 나와도 계속 임금을 주니까요. 우리 부서는 형을 받으면 출소해도 임금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 기업의 퇴직금은 출근할 때 창출한 잉여 가치이고, 근속연수를 보상받고 나면 또 스스로 납부한 양로 보험이에요. 당신들의 임금은 국민의 피땀 어린 돈이자 납세한 돈이죠.”
이때 그가 자신이 찾아낸 문건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말했다. “이건 규범성 문건이라 시효가 있습니다.” 그가 “우리가 집행하는 것이 바로 정책입니다”라고 하자 나는 말했다. “당의 정책은 달과 같아서 초하루와 보름이 다르다는 말이 있어요. 방금 이름조차 감히 알려주지 못한 것도 책임질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것 아닌가요? 게다가 공무원법은 이미 당신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으니 아주머니가 말하건대 제발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마세요. 파룬궁수련생의 연금을 압류하는 것은 곧 장쩌민 집단의 박해 정책 중 경제를 차단하는 일부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 할머니가 다시 내 앞으로 와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난 아직 볼일이 안 끝났어!” 내가 “미안합니다. 지체하게 했네요. 먼저 보세요”라고 했다. 그녀가 볼일을 마치고 가려 할 때 내가 말했다. “방금도 들으셨겠지만 절대로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마시고 평소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시면, 분명 행복하고 평안하실 겁니다.” 그녀는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가버렸다. 아쉽게도 나는 그녀에게 삼퇴를 시켜주지 못했다.
나는 다시 직원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도 감히 책임지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청장을 만나려 한다는 걸 전해주세요.” 그는 청장이 자리에 없고 성(省)으로 회의하러 갔다고 했다. 내가 “그럼 내가 청장에게 편지를 한 통 썼으니, 번거롭겠지만 전달해 주세요”라고 하자, 그는 전달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떠날 즈음, 나는 그에게 거듭 당부하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다시 경비실로 돌아갔다. 경비원이 마침 대문 입구에 있었다. 내가 말했다. “조카, 아주머니는 파룬궁을 연공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판결을 받고 출소한 후 사회보장국에 연금을 압류당했어요. 내가 청장에게 편지를 한 통 썼으니 번거롭겠지만 전달해 주세요.” 그도 전달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조작된 가짜이고 파룬궁이 박해받는 것은 천고의 억울한 일이랍니다. 조만간 진상이 명백히 밝혀질 날이 올 거예요.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이기 때문에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당신의 업무와 생활에 모두 도움이 될 거예요.” 그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파룬궁 박해는 천고의 억울한 일이라고 말할 때,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관통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게 관정(灌頂)을 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인사청에서 나와 기차역에 도착해 표를 살 때, 정월이라 사람이 많아 입석표를 샀다. 차에 오른 후 보니 차 안에 많은 사람이 자리가 없었는데, 첫 번째 좌석만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내가 “우선 잠시 앉아서 다리 좀 쉬어야겠네”라고 하자, 그 좌석에 있던 다른 사람이 “일단 앉으세요. 주인 오면 그때 비켜주면 되죠”라고 했다. 자리에 앉은 후,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 그녀에게 진상을 알릴까 생각했다. 이때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와 청장을 만났느냐고 물었다. 나는 못 만나게 해서 청원 직원만 만났다고 했다. 옆에 있던 여성이 물었다. “청원하러 갔어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누가 신경이나 쓴대요!” 내가 말했다. “내가 왜 청원하러 갔는지 아세요?” 그러고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나는 그녀에게 당에 입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 철도국에서 노사(勞資) 관리를 했는데, 당원이 아닐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내가 “당을 탈퇴하세요”라고 하자 그녀는 “탈퇴할 수 없어요, 난 은퇴했지만 내 딸이 아직 철도국에 다니는데 걔한테 영향을 줄 순 없죠”라고 했다. 내가 가명으로 탈퇴해도 된다고 하며 성을 묻자, 그녀는 류(劉) 씨라고 했다. 내가 무심코 이름 하나를 말하자, 그녀는 “그 이름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라고 했다. 내가 “그럼 이 이름으로 당을 탈퇴시켜 드릴게요!”라고 하자 그녀는 “좋아요!”라고 했다.
차 안에 사람이 많아 많은 이가 자리가 없었고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다. 나는 마치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에 들어선 듯, 기차가 출발한 후 내내 그렇게 진상을 알렸고 내릴 때까지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계속 이야기했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삼퇴를 시켜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명백히 알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내게 자리를 내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 무료 인터넷 회선
더욱 감사한 일은,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돌아온 후 연금이 압류돼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지 못해 줄곧 친척 수련생 집에 가서 인터넷을 했다는 점이다. 재작년 조카의 아이가 대입 시험을 칠 때 조카가 아이를 돌보며 임시로 우리집에 머물렀고, 그때 조카가 자신의 인터넷 선을 끌어왔다. 아이는 석 달만 머물렀는데 조카는 계속 인터넷 선을 철거하지 않았다. 연말에 내가 조카에게 인터넷 요금을 낼 때가 되지 않았냐고 얼마면 내가 내겠다고 물었다. 조카가 말했다. “셋째 이모, 이 인터넷 그냥 쓰세요. 무료예요. 제가 20년 동안 휴대폰 번호를 안 바꿔서 보너스로 받은 전용선이에요. 우리집에는 따로 인터넷이 있어서 이건 안 써요. 저희 엄마 집에서도 안 쓰고요.” 그렇게 나는 계속 이 인터넷 회선을 사용했다. 사악의 인터넷 봉쇄가 가장 심할 때 다른 사람들은 접속하지 못해도 나는 순조롭게 접속할 수 있었다. 해마다 션윈 공연도 나는 순조롭게 다 시청했다.
3) 글자 하나 서명하지 않고 연금 일부를 되찾다
성 인사청에서 돌아오자, 현 사회보장국 부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돈을 송금해 주겠다며 내게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은행 계좌번호는 알려줄 수 있지만 서명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서명 문제에 있어서 나 역시 한 차례 큰 심성 시험을 겪었다. 이전에 그들은 나를 기소하지 않겠다며, 내게 ‘규정 위반 수령 사회보험 대우 분할 공제 반환 협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들은 이것이 성에서 통일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 협의서에는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국민의 연금을 삭감하고 국민에게 연금 반환을 요구하는 행위는 위법 범죄 행위니까요. 나는 이런 행위를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나오면 문제를 생각할 때 법에 있지 않게 된다. 3년간 임금을 찾으려 애썼으나 성과가 없자, ‘언제쯤 돈을 받을 수 있을까?’라며 사람 마음이 움직였다. 사람 마음이 나오자 사악은 내 집착을 타고 덫을 놓았다. 이후 그들은 내가 퇴직 전 형을 선고받았을 당시 3년간 납부한 돈을 내게 돌려주겠다며, 그렇게 되면 근속연수가 3년 줄어들고 동시에 억울하게 판결받은 기간의 임금과 임금 인상 기준액을 공제한 뒤 다시 내게 서명하라고 했다. 그들은 말했다. “우선 서명을 하세요. 그러면 당분간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청원하러 갈 때 차비라도 생기잖아요!” 나는 우선 그들과 협의서에 서명해 당분간 임금을 받고, 그런 다음 다시 압류당한 임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곧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서명하려는 마음만 먹어도 등 뒤가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나는 공의포럼 수련생에게 편지를 보내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수련생의 답장이 나를 일깨웠다. 나는 수련생의 어투에 질책은 없고 오직 이해와 포용만 있음을 내심 절실히 체득할 수 있었고, 이는 연금을 되찾는 문제에 있어서 반드시 길을 바르게 걸어야겠다는 내 결심을 확고하게 했다. 그날 나는 또한 생생한 꿈을 꾸었다. 탄옌(譚豔)[‘시험을 튕겨냄(彈驗)’과 발음이 같음]이라는 수련생이 죽은 꿈이었다. 내가 그녀의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녀의 아들은 3년 전의 폐(肺)[‘비용(費)’과 발음이 같음]병 때문이라고 했다. 잠에서 깬 후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게 시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깨어난 후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는 절대 사부님 얼굴에 먹칠할 수 없으며 수련생들을 실망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절대 사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일념(一念)을 확고히 하자, 하루 종일 아프던 등이 순식간에 나았다. 그날 한 시간 동안 가부좌를 하는데 내내 입정(入定) 상태에 있었다.
나중에 나는 현 사회보장국 직원에게 말했다. “마땅히 내게 줘야 할 돈이 한 푼도 빠짐없이 들어와야만 서명하겠습니다.” 그들은 서명하지 않으면 이 돈도 내게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건 누구 한 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날, 나는 사회보장국에 가서 은행 계좌번호를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직원이 내게 말했다. “앞으로는 매월 20일에 지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나는 어떤 서명도 하지 않고 임금 일부를 수령했다.
전 과정에서 나는 사부님의 일깨움과 가지(加持)를 받아 매 걸음을 바르게 걷도록 유지하며, 타인을 위하고 사람을 구하는 정념을 닦아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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