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협력해 서약을 실현하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새 경문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를 받은 뒤 반복해서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정진요지3-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수련생들은 교류를 거쳐 반드시 사부님 말씀대로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여 개 마을을 누비며 진상을 전하다

협조를 거쳐 우리는 현지 마을들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현지 수련생들도 세 조로 나누었다. 각 조가 한 부분의 마을을 책임졌는데 각 부분에는 20여 개 마을이 있었다. 우리 지역은 수련생이 적고 마을은 많았기에 우리 부부가 한 조가 돼 그중 한 부분을 맡게 됐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20여 개 마을에 진상 자료를 전달하는 책임을 짊어졌다. 처음에 자료를 배포할 때 이용한 교통수단은 자전거였고 가끔은 농업용 트랙터도 사용했으며, 자료를 배포하는 시간은 낮이었다. 우리가 맡은 마을 중 가장 먼 곳은 30리(1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을이 많아 한 번에 다 돌릴 수 없어서 이 마을들을 여러 큰 구역으로 나눈 뒤 한 번에 한 구역씩 배포했다. 우리는 모든 마을을 다녔고 마을의 모든 큰길과 골목을 누비며 세인들에게 구원받을 희망을 전했다.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고생과 땀이 있었고 번거로움과 어려움도 있었으며, 심지어 언제 신고당할지 모르는 위험도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우리 마음속에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번 나갈 때마다 우리는 발정념을 해, 가는 곳마다 우리가 진상을 전하는 것을 교란하고 세인이 진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했으며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매번 일을 마칠 때마다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하에 기쁨을 안고 평안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마다 불쾌함이나 피곤함은 없었고 오직 기쁨과 홀가분함만이 있었는데, 우리는 서약을 실현하고 있었고 중생을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해 초기 우리 부부는 매우 심한 박해를 당해 한때 가정의 경제가 몹시 어려웠다. 2012년 무렵, 우리는 교란과 박해를 피하고자 집을 떠나 시내로 가서 일하게 됐다. 우리집은 시내에서 60여 리 떨어져 있었는데 우리는 공장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물건을 살 때 외에는 평소에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와 시간 문제로 집에 돌아가는 것도 불편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향 집 근처에서 책임졌던 그 마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상의 끝에 일해서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3천 위안을 들여 새 오토바이 한 대를 샀다. 이렇게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에 가서 자료를 배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낮에는 출근해야 해서 밤에만 배포할 수 있었다. 매번 자료를 배포하러 갈 때면 그날 밤에 공장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고향에 다녀오는 왕복 거리만 약 130리인 데다 자료를 배포하며 이동하는 거리까지 더해져 매번 공장에 돌아오면 이미 아주 늦은 밤이었다. 사실 길이 멀고 어두운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고 주로 추위가 문제였다. 특히 한겨울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자료를 배포할 때 불어오는 찬바람은 정말 매서웠다. 우리 둘은 솜옷 3벌과 솜바지 2~3벌을 크기별로 껴입고 두꺼운 솜신과 솜양말까지 신었지만, 자료를 배포할 때는 장갑을 낄 수 없었다. 장갑을 끼면 자료를 꺼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처음 배포를 시작할 때는 손이 끊어질 듯 아프고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배포하다 보면 손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마치 따뜻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임을 깊이 알 수 있었다.

2014년경, 우리는 전동 4륜차 한 대를 샀다. 그때부터 우리는 전동 4륜차를 몰며 자료를 배포하게 됐고, 겨울의 추위 때문에 얼어붙는 일도 없게 됐다.

2018년 6월,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8년에 걸친 객지 노동 생활을 끝냈다. 집에 돌아온 후 우리는 작은 장사를 시작했는데, 정직하고 성실하며 믿을 수 있게 일했기에 사람들 모두 대단히 인정해 주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자료를 배포하기가 다시 편리해졌고,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마을 한 곳도 빠뜨린 적이 없다. 우리는 이 마을의 세인들이 모두 우리가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몇 년간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했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20여 개 마을의 세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이 세월을 돌이켜보면 비록 고생스러웠고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참으로 남다른 운치가 있었는데, 우리가 걷는 길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70여 개 마을을 누비며 삼퇴를 권유하다

그동안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한 일을 말하자면, 우리는 장사할 때나 외출해서 일을 볼 때를 막론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매우 부족하다고 느꼈고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나오지 못했으며, 잘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격차가 적지 않았고 법의 요구와는 더욱 큰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 수련생들은 교류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세 조로 나뉘어 이렇게 넓은 범위에 자료를 배포하고 있는데, 만약 세인이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하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당신의 평안을 축원합니다’ 전단지에 삼퇴 방법이 적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걸어 나와 삼퇴를 권유하는 것이 낫다고 늘 느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지역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모두 더 잘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기에 작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부터 우리는 여러 경로를 나누어 세 조에 속한 70여 개 마을의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기로 했다.

시간의 제약으로 우리는 오전에는 장사로 바쁘고 오후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다. 나가서 삼퇴를 권유할 때 우리는 길을 가며 줄곧 발정념을 해, 가는 곳마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는 것을 교란하며 세인이 진상을 알고 삼퇴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했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우리가 마주한 사람들은 주로 농약을 치는 사람, 풀을 베는 사람, 나무 그늘에 있는 사람, 마을에 앉아 있는 사람, 길을 걷는 사람 등이었다. 한마디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면 기회가 있는 한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진상을 알린 사람 중 90% 이상이 중공의 악당 조직에서 탈퇴하기를 선택했고, 더욱이 거의 100%가 진짜 이름으로 탈퇴했으며 어떤 사람은 어느 글자인지까지 알려주었다. 물론 탈퇴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매우 적었다.

많은 세인이 삼퇴를 한 후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우리집에 가서 물 한잔 드시고 가세요”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우리집에 묵고 가세요”라고 했다. 우리를 가장 감동하게 한 것은 장애가 약간 있는 한 남자아이였는데, 그는 우리가 건네준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향해 합장하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이 모두 대법을 위해 왔는데”(각지 설법12-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이 남자아이는 마침내 이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렇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분별심이 있었는데 사실 분별심의 이면에는 두려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떨 때는 퇴직 간부처럼 생긴 사람을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았고, 얼굴에 흉악한 기운이 돌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보아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나이 든 여성을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글자를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아마도’라는 생각 하나가 어쩌면 그 사람의 희망을 잃게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에게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젊은 사람은 진상을 알리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사람을 많이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안다. 사실 이런 여러 가지 부족함은 수련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련에서 마땅히 돌파해야 할 장애다. 나는 앞으로의 수련 중에서 반드시 이런 부족함을 극복하고 제고해 올라와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단련돼 더욱 성숙해지고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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