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어느 날 오후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상을 알리러 외출하려고 준비하다가 먼저 식료품 가게를 한 바퀴 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날이 개어 있었다. 그래서 맞은편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막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다. 억지로 참으며 버스 정류장 옆 벤치까지 걸어가 앉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통증이 오지? 틀림없이 구세력이 내가 사람을 구하러 가는 것을 교란하는 거야.’ 나는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다. 구세력 및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흑수(黑手), 난귀(爛鬼)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좀 나아진 후 정류장 주변에서 몇 사람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생각했다. ‘왜 교란을 당한 걸까? 어떤 마음을 구세력에게 빈틈으로 잡힌 걸까?’ 한 시간 더 정념을 발하고 사부님께서 ‘선해(善解)’에 대해 말씀하신 법을 몇 번 암송했다. 다음 날 아침 다리가 아픈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다시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11시가 가까워질 무렵 무릎에 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나의 수련에 큰 허점이 생긴 것이었다. 다리가 아픈 것이 올바른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 기간 동안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며 자신 안에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찾아냈다. 수련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이를 적어 본다.
1. ‘늙었다’는 관념 제거하기
최근 들어 나는 몸이 자주 피곤하고 눈이 침침함을 느꼈다. 수련생들은 정념을 발할 때 손바닥이 기울고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머리도 들지 못한다고 내게 지적해줬다. 나 스스로도 고치려 애썼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왜일까? 바로 내가 나이를 인정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도 모르게 다리가 가끔 아프다고, 젊었을 때 논에 들어가 발이 시려서 그렇다는 말을 하곤 했다.
‘늙었다’는 개념이 형성되면 많은 문제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대법 수련을 30년 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나를 보는 사람마다 실제 나이보다 10여 살은 어려 보인다고 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됐을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수련인은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해야 한다. 다만 나는 아직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생기면 보통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법이 머릿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가는데 사람의 생각이 항상 우세하다면 그것은 영원히 사람이다.
이 두 차례의 다리 통증은 내가 빨리 사람의 관념을 바꾸고 법 안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2.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드러난 질투심과 원망심
여러 해 수련하면서 나는 줄곧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삼퇴 명단을 올리고, 교류 글을 녹음하고,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는 등……겉으로는 바쁘게 보였지만 정말로 진수(眞修)를 한 것인가? 특히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과 관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예를 들어 어떤 수련생의 삼퇴 명단이 그토록 많은 것을 보면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솔직히 말해 그 수련생이 많이 탈퇴시킨다는 것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매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야 할지 계산하다 보니 삼퇴를 권유하는 과정이 단순해지고 빠른 것만 추구해, 진심으로 중생을 위한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렇게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결과는 뻔한 일이다.
또 스스로 진수가 부족하고 명리심이 제거되지 않았으니 자연히 자비심도 생기지 않았다. 욕설을 하거나 신고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곧바로 감정이 동요됐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미 ‘이 사람은 구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원망심도 올라왔다.
20여 년간 진상을 알려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몇 년 전 진상을 알리러 나갔던 것은 정법 노정에 따라가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법은 다른 층차에서 다른 요구를 한다. 지금까지도 그토록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대법제자로서 진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을 생각하니 정말 사부님께 부끄럽고, 나에게 무한한 희망을 걸고 있는 중생들에게도 미안하다.
이것이 바로 매일 법을 공부하고 받아쓰고 암송해도 법을 배우지 못한 이유다. 만약 차츰 스스로를 이완시켜 처음 수련하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구세력에게 박해의 빌미를 잡히게 된다. 설사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수련의 길에서 계속 걸림돌에 부딪힐 것이다. 나는 진수(眞修)와 실수(實修)에 힘써 그 나쁜 사람의 마음들을 빨리 제거하고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3. 보통 사람의 사회 형세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 것
나는 매일 명혜망에 접속해 자료를 내려받고 명단을 올리는 등의 일을 한다. 이런 정당한 일 외에도 어느새 동태망(動態網)의 사회 형세와 생활 상식에 강한 관심을 갖게 됐고, 심지어 명혜망에 접속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거기에 쏟게 됐다. 오래되다 보니 보통 사람의 것들이 많이 채워졌고 연공이나 발정념에서 고요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며칠 자제하다가 다시 또 같은 반복이었다.
이렇게 반복되니 나 스스로도 매우 괴로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휴대폰 중독이랑 뭐가 다른가?’ 안으로 찾아보니 강한 집착심이 하나 있었다.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항상 보고 싶고, 정법이 언제 끝날지 알고 싶어하며 그로 인해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끌려다니면서도 스스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이렇게 경계하셨다.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사람이지, 수련하는 신이 아니다. 수련 중의 사람이라, 많든 적든 교란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면 속인과 같은 것으로, 교란 중의 표현은 속인과 무슨 구별이 없다. 일부 수련생은 결코 무슨 마난(魔難)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정진하지 않게 되었는데, 실제로는 속인 사회의 각종 유혹에 집착이 생겨, 사회 중의 유인(吸引)에 끌려 내려간 것이다.”(각지 설법 9-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 설법)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의 사회 형세의 변화는 모두 정법이라는 이 커다란 천상(天象)의 변화가 가져온 하나의 상태이며 모두 정해진 바가 있다. 이러한 변화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표현이며 인위적으로 수련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한 후 나는 동태망을 열어보려는 생각을 최대한 밀쳐냈다. 그 이후 며칠간 연공과 발정념에서 정말로 고요히 가라앉는 그 아름다운 상태가 나타났다.
맺음말
오늘까지 수련해오면서 나는 정법 수련의 엄숙함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세 가지 일을 잘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며, 생활 속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 하나하나를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올바른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정법 수련의 길은 이미 길지 않다. 마지막 시간 속에서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걸어가며 법을 잘 공부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해, 사부님과 중생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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