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며 자비로 중생을 구하다

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0세로 1994년 음력 10월 21일에 법을 얻었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는 위궤양, 장염, 심장병, 빈혈, 불면증, 부인과 질환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제 오른손 손목에는 메추리알만 한 혹이 났는데 의사는 ‘결절종’이라며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밤이 되면 그 혹이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이 끊임없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고, 간신히 잠들더라도 통증에 자주 깼습니다. 제 키는 156cm인데 체중은 40kg도 되지 않았으며, 중의학이나 서양의학이나 절에 가서 신에게 구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매일 허약한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했으니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제가 출근하자 작업장 동료가 말하기를, 그녀의 친정 올케가 허난성 정저우에서 열린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고 집에 돌아온 후 곧바로 직장에 출근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그녀의 올케는 20km 정도 단거리 차를 타고 친정에 갈 때도 멀미가 심해 도착하면 12시간을 쉬어야 했는데, 이번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우고 돌아올 때는 500여 km나 되는 장거리를 차를 타고 돌아와 바로 출근했다며 참 좋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또 이 공법은 불가(佛家) 공법이라 병이 있으면 병을 제거하고, 병이 없으면 몸을 튼튼히 하며 생생세세 지은 업도 갚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공법이 이렇게 좋다는 말을 듣고 “어디로 가면 그들을 찾을 수 있나요? 저도 연공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소개로 저는 연공장을 찾았고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정공(靜功)을 배울 때 저는 단번에 가부좌를 틀었고, 다섯 가지 공법 동작도 배우자마자 익혔습니다. 어느 날 작업장에서 일할 때 어떤 손이 제 배 왼쪽을 한 움큼 쥐는 느낌이 들면서 매우 편안했습니다. 오른손 손목의 낭종은 점차 흩어지며 이동하더니 한 달도 안 돼 혹이 사라져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법공부와 수련을 함에 따라 제 몸의 모든 병통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리며 저는 반드시 끝까지 굳게 수련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연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30분에서 45분까지 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 번은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을 연공할 때, 막 수인을 마치고 구상(球狀) 가지를 할 무렵 저는 아주 빨리 고요해졌는데, 갑자기 제 정수리에서 3~4촌 높이의 작은 사람이 튀어나왔고 저와 똑같이 생기고 같은 옷을 입은 채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이 공법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번은 수인을 마치고 구상 가지를 할 때도 저는 고요해졌는데, 두 손이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 밧줄처럼 작아졌다가 다시 작아지고 작아져 가는 실처럼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체도 없어졌고 오직 하나의 사유만 정공을 연공하고 있음을 알았는데 맑게 깨어 있으면서도 편안해 극히 오묘했습니다. 또 한 번 가부좌할 때는 마치 “달걀껍질 안에 앉아있는 것과 같이 미묘(美妙)하고”(대원만법-3. 동작설명) 상태와 같았으며, 가부좌하고 입정(入靜)할 때마다 많이 이 미묘한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또 제 몸이 유리처럼 투명한 것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1999년 ‘7·20’ 이전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사부님께서 일부러 제게 보여주신 것으로, 제 신심과 결심을 강화해 제가 나중에 고비와 시련을 넘을 때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시려는 사부님의 고심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1. 험난한 시련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2021년 4월부터 오늘까지 5년여의 시간 동안 아이들도 집에 없는 상황에서 저는 생활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남편을 돌봤습니다. 남편은 올해 여든인데 고혈압, 고지혈증, 고혈당의 이른바 ‘3고’가 있었고 혈당 수치는 26이었습니다. 심각한 변비에 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파 걷지 못했고, 그 와중에 넘어져 골절도 당했습니다. 170cm가 넘는 큰 키의 그를 전적으로 156cm의 작은 체구인 제가 업고 화장실, 거실, 방으로 다녔습니다. 그는 입을 벌려 밥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양치, 세수, 이발, 면도, 머리 감기, 목욕, 옷과 신발, 양말 갈아입히기, 손톱 깎기 등을 모두 제가 그를 위해 해줘야 했습니다.

저는 매일 그에게 그의 병세에 이로운 밥과 반찬을 잘 차려주었고, 쌀밥을 지을 때는 쌀뜨물을 걸러내야 했으며, 조죽, 신선한 채소를 준비하고 과일을 살 때도 너무 달면 안 됐습니다. 대변을 볼 때는 한약(설사약)을 먹는 것에 의지했는데 4~5일에 한 번씩 설사약을 먹어야 했고 심할 때는 주사기로 관장약을 주입해야 했습니다. 그는 대변을 볼 때 한 번에 다 누지 못하고 끊어지듯 누었으며 어떨 때는 침대, 바닥, 바지 속, 의자 위에 누어서 막 깨끗이 씻기고 나면 또 더럽히곤 했습니다. 밤에 잘 때도 그에게 소변을 받아주어야 했는데, 저는 어떨 때 한창 깊이 자다가 그가 소변이 마렵다며 깨우면 재빨리 일어나 소변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침대에 보았습니다. 특히 한겨울 추울 때는 저 자신도 졸려서 비틀거렸고 얼어서 덜덜 떨리는데도 일어나야 했으니 정말 괴롭고 피곤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더러 남의 엉덩이를 닦아주라고 한다면 한 달에 만 위안을 준다 해도 안 할 거예요.” 지금은 제게 돈 한 푼 주지 않아도 벌써 5년째 하고 있습니다.

2023년 저는 승용차에 치여 10여 미터나 날아갔는데 운전자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진상을 알려 그를 구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시니 괜찮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서 구체적인 상처 부위를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제 갈비뼈는 심하게 다쳤고 엉덩이에는 거위알만 한 멍울이 생겼으며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습니다. 저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고 수련생들도 도와서 발정념을 해줬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내장의 어혈을 모두 가슴으로 배출하게 도와주셔서 매일 가슴 앞에 동전 크기만 한 핏덩어리가 열흘 동안 배출됐습니다. 십여 일 만에 저는 1층으로 내려가 채소를 사러 갔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여전히 예전처럼 남편을 돌보며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그를 등에 업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의 딸은 이미 은퇴했고 사는 곳이 우리와 아주 가까웠지만 한번도 와서 돌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제 몸에 병업 고비가 나타나 배가 아프거나 심장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사부님께 향을 올릴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수련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언제쯤 끝이 날까요?” 그날 밤 아주 선명한 꿈을 꾸었는데, 제가 아주 높은 산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었고 산 정상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온몸에서 산사태 토석류 같은 탁한 흙탕물이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으로 제 몸이 아직 매우 더러워 정화해야만 진정한 천국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틀 후 저는 또 꿈을 하나 꾸었는데, 여전히 이 산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었으며 산 정상에 작은 수도꼭지가 하나 있어 아래로 물을 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이 아주 맑고 투명하게 제 머리 위로 흘러내려 저는 아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를 고생스럽게 제도해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매일 밤 9시 반에 동공을 연공하고 11시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12시에 발정념을 마치고 잤습니다.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조죽을 끓이고 씻은 후 정공 1시간 반 연공, 발정념 45분, 법공부 1시간을 하는데 다리를 내리지 않아서 이렇게 하면 3시간 넘게 가부좌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다리를 틀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남편을 일어나 씻게 도와주고 아침을 먹인 후 점심 반찬거리를 씻어놓습니다. 남편을 침대에 눕혀놓고 ‘9평 공산당’을 듣고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듣게 하며 명혜 라디오를 듣게 합니다. 저는 9시에 집을 나서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10시 반에 집에 돌아와 밥을 짓습니다. 오후에는 제가 법을 읽으면 남편도 따라 들으며 그도 혜택을 얻었고, 사부님의 제도 아래 그는 몇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2.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수년간 저는 줄곧 대면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견지했습니다. 이른바 민감한 날이나 현지 박해가 심한 시기에도 저는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렸으며 비바람도 저를 막지 못했고 매번 인연 있는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아래에 제가 진상을 알린 몇 가지 작은 이야기를 수련생들과 나누려 합니다.

어느 날 버스 정류장 근처 50미터 떨어진 인도에서 열두세 살쯤 된 한 남자아이가 희고 통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코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피가 아주 빠르게 흘러 바닥의 핏덩이가 밥그릇만 했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에 서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악당 간부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이 아이를 구하겠다는 일념을 품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가 “얘야, 할머니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렴”이라고 하자 그의 할머니는 아이가 어지러워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줄 테니 얘야 너도 외워라. 나는 큰 소리로 외울 테니 넌 마음속으로 외우렴.” 잠시 외우자 아이의 코피가 멈추고 흐르지 않았으며 아이의 고개가 들렸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언짢아하며 아이의 손을 끌고 “가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동요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걸어가며 말했습니다. “파룬따파는 가장 높은 불가 공법이고 고덕대법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살인, ‘천안문 분신자살’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민중을 속이는 것입니다. 방금 아이의 코피가 멎지 않았을 때 당신들 모두 방법이 없었는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서 나았으니 파룬궁이 이 아이를 구한 것이 아닙니까? 지금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서 평안을 지키고 있는데, 삼퇴란 바로 당, 단, 대를 탈퇴하는 것으로 마음속으로 탈퇴하는 것이니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탈퇴해 악당에게 한 독맹세를 지워버려야 비로소 아름다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얘야, 너는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었지, 그럼 탈퇴한다고 대답하렴.” 아이는 “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내가 네 탈퇴를 도와줄게! 광명(光明)이라고 할까? 앞길이 밝다는 뜻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는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또 아이 할머니에게 물어보자 할머니는 아무것도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시면 좋은 미래가 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미 앞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두 학생을 만났는데 남학생이 캐리어를 안고 몹시 힘겹게 걷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는 잠시 쉬는 것이 아주 피곤해 보였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 그들이 고등학생이며 방학을 맞아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1km 넘게 걸었고 버스 정류장까지 아직도 500m 넘게 걸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힘겹게 걷고 있었습니다. 제가 남학생에게 “가방을 끌 수 없니?”라고 묻자 남학생은 “떨어뜨려 망가져서 닫히질 않아 안고 갈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내가 한 번 봐줄게. 끈으로 묶으면 안 되겠니?”라고 하자 남학생은 “괜찮아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여학생이 상점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고 남학생은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저는 이 틈을 타 그의 가방을 보았는데 가방 양 끝의 걸쇠가 모두 부러져 덮개를 닫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아직 비밀번호 자물쇠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비밀번호 자물쇠 번호를 아니?”라고 묻자 그는 “알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비밀번호 자물쇠를 이용해 중간을 잠그면 끌고 갈 수 있지 않겠니?”라고 하자 아이는 문득 깨닫고 가방을 잘 잠근 후 일어나서 끌어보더니 힘이 훨씬 덜 들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할머니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고마워할 것 없단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데 올해 일흔 살이야.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곳곳에서 남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어. 장쩌민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날조해 파룬궁을 먹칠하고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해 고가에 팔아먹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해로 장애인이 되거나 죽었는지 모른단다. 하늘이 공산 악당을 청산하려 하니 공산당 편에 서는 사람은 누구든 연루될 거야. 지금 다들 삼퇴를 하고 있는데 삼퇴는 바로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이야. 당, 단, 대에 가입한 사람은 바로 그것의 일원이자 구성원이라 평안을 지키려면 반드시 마음속으로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해야 해. 아명이나 가명으로 해도 된단다. 혹시 청년단에 가입했었니?” 그는 “가입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내가 공산주의청년단과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걸 도와줄게. 가명을 지초(智超)라고 지어줄게. 지능지수가 초범적으로 높다는 뜻이야.” 제가 또 “기억하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장차 네가 이상적인 대학에 합격하고 지혜가 초범적이기를 바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할머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여학생이 상점에서 나왔고 마침 파란불이 켜지자 남학생은 저와 손을 흔들며 작별했습니다.

한번은 길가에서 촌 간부 모습의 한 노인이 바닥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보니 그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차가 오는지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셔야겠네요. 그 차는 하루에 한 번밖에 없으니 놓치면 못 돌아가시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일깨워준 것에 아주 감사해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평안한 것이 바로 행복이죠. 자녀가 아무리 효도해도 자기 스스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작은 가정과 사업이 있어 바빠서 다 챙기지 못합니다.” 그는 연신 “맞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평안하고 건강하려면 하늘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마오쩌둥은 사람들에게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게 하며 신을 믿지 않게 해서, 지금 사람들은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돈만 알지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며 도덕이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맞아요. 사람이 어떻게 하늘과 투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늘은 선량한 사람을 보호하니 하늘의 뜻에 순응해 행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에게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음을 알려주자 그는 자신이 당원이라며 탈당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습니다. 그는 진상을 안 후 순조롭게 당, 단, 대에서 탈퇴했고, 저에게 자신의 성명과 고향이 있는 촌과 진을 상세히 알려주며 제게 그의 고향에 가서 삼퇴를 알리고 자기 집에 와서 식사도 하라고 초대했습니다. 제가 떠날 때 노인은 뜻밖에도 지팡이를 짚고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 저를 배웅했습니다.

제가 수련한 지 31년이 됐지만 늘 제 자신이 아직도 신수련생이고 닦아야 할 것이 아주 많다고 느낍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은혜는 크고 끝이 없습니다! 제자는 시간을 다그쳐 정진하고 중생을 많이 구하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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