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제자는 어쨌든 속인사회 속에서 수련하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속인과 접촉하고 상대하며 지낸다. 그렇다면 대법(大法)은 우리에게 최대한 속인 상태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자신을 남들이 이해 못 할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속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수련생들이 큰 측면에서는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지만, 때로는 속인과 대화할 때 부지불식간에 속인의 논리에 빠져들어 그에 동조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우리가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속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이는 자신의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며 나이가 들수록 몸 상태가 해마다 나빠진다고 한다. 눈을 예로 들면 “꽃이 핀 것처럼 어른거리면 47~48세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시력이 안 좋아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늘 휴대폰을 보니 눈에 이런저런 탈이 난다. 수련생이 이를 듣고 공감하는 듯이 자신의 눈도 그렇다거나 예전만 못하다는 둥 맞장구를 친다. 또 어떤 때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인사하며 세월이 참 빠르다, 우리도 다 늙었다고 탄식하면 수련생도 그 속에 섞여서 “그러게 말이야, 정말 그래”라고 대답한다. 얼핏 들으면 속인이 꺼낸 화제에 맞춰 자연스럽게 대꾸하는 것이라 별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에너지가 있어서,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을 고정해 버릴 수 있고, 자칫 자신에게 불필요한 마를 초래하거나 사악에게 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수련생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상대방과 호응하지 않으면 나를 아주 유별나거나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에게 이해받으면서도 속인의 사고 논리에 빠지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 내 사례를 들어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가게를 운영하는데, 손님이 오면 대개 잠시 머물다 가기에 틈틈이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떤 단골손님이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서 몇 살이라고 답했다. 손님은 좀 놀라며 감탄하듯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그렇게 컸어? 그러니 우리가 안 늙을 수 있나.” 나는 말한다. “사람이 다 그렇죠 뭐. 안 늙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생로병사는 사람이 거스를 수 없죠.” 손님은 수긍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속인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수련인임을 알고 있고, 수련인은 속인의 생로병사 속에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콧물이 나서 휴지로 닦는 걸 보고 손님이 묻는다. “감기 걸렸어요?” 물론 나는 곧바로 그렇다고 답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곤란하다. 그들 눈에는 영락없는 감기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콧물이 나네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답변 속에서 이미 그들의 사고를 벗어난 것이다. 내 마음속으로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며, 부패물질을 이런 형식으로 체내에서 제거해주시는 것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묻는다. “아이는 어디서 공부해요?” 나는 어디 어디서 대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손님이 말한다. “아이가 참 훌륭하네요. 그런데 졸업하면 분명 안 돌아올 거예요. 우리 지역은 별 비전이 없잖아요. 나중에 당신들 늙으면 아이 곁으로 가야겠네요.” 나는 대답한다. “가봐야 알죠. 장래에 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런 일은 미리 생각 안 하고 순리대로 살래요.” 일반적인 이치대로라면 나이 들어 자식 곁에 가서 봉양받는 게 속인의 길이다. 하지만 내 수련의 길에서 장차 어떤 단계에 이를지는 내가 계획하고 설계하는 게 아니며 모두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나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정법(正法) 노정을 따라 눈앞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잘 걸어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수년간 내 잠재의식 속에 있던 속인의 관념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가끔 눈이 떨리는데 하필 오른쪽 눈이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간헐적으로 떨리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왼쪽 눈이 떨리면 재물이 들고, 오른쪽 눈이 떨리면 재앙이 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속인들이 오른쪽 눈이 떨리더니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연관 짓게 된다. 한편으로는 수련인으로서 속인의 이런 요소에 이끌려가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그런 생각을 배척하며 정념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상태는 내 천목(天目)이 또 새로운 층차로 돌파한 것일 수도 있어. 아니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정과 사, 선과 악을 분별하는 화안금정(火眼金睛)을 연마해주시는 걸지도 몰라.’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일말의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기억하기로 내가 어릴 때 마을에 자주 오던 시각장애인 점술가가 있었는데, 죽판을 치거나 피리를 불며 골목을 누비면 점을 보려는 사람이 집으로 불러들였고 이웃들도 따라 들어와 구경하곤 했다. 당시 날 임신한 어머니도 그 점술가를 불러 가족 점을 보셨고 내 점도 보셨다. 어머니는 그 점술가가 내게 “복도 크고 명도 크고 조화도 크지만, 태어나서 아빠라 부르면 아빠가 죽고 엄마라 부르면 엄마가 죽을 팔자”라고 했다며, 그래서 내가 태어날 때 신체에 어떤 상태를 가지고 나와서야 액땜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점술가가 말한 그런 신체 상태였다. 심지어 수련하고 몇 년이 지나서도 머릿속에 그런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나는 수련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더는 이런 정보를 남겨두면 안 된다.’ 그 점술가의 말이 맞든 틀리든 그건 그 층차에서 말한 것이고 내 과거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그 정보가 다시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붙잡아 제거한다. 이제 나는 과거의 점괘나 오른쪽 눈 떨림 같은 저층차 속인의 말은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 분명히 인식한다. 엄격히 말해 이것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의 금기를 범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단번에 환해지고 홀가분해졌다.
또 작년 정월에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의 언행이 좀 평소와 달라 마치 내게 유언을 남기시는 것 같아 의아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당신과 아버지가 올해 모두 73세라고 말씀하셔서야 문득 깨달았다. 속인 중에 “73세, 84세는 염라대왕이 안 불러도 제 발로 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어머니의 마음속 응어리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사람 명은 하늘이 정하는 거라 죽고 싶어도 못 죽을 수 있고, 죽기 싫다고 벌벌 떨면 오히려 죽을 수도 있어요. 73세는커녕 37세라도 수명이 다하면 가야 하는 거고요. 사람이 살아있을 때 마음을 편히 가져야지, 그건 사서 고생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놓이신 듯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아주 많지만 여기서는 하나를 들어 열을 알리는 것으로, 수련생들이 이런 문제에 대응할 때 잘 파악해야 함을 일깨워드리고자 한다. 물론 평소 언행에서 지나치게 소심해지라는 뜻은 아니다. 속인과 수련인의 이념이 다른 부분에 관련됐을 때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수련의 표준은 더 높고 엄숙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수련생들 모두 자신의 일사일념을 닦는 데 공을 들이고 있지 않은가? 수련생 여러분이 크고 작은 일에서 모두 전면적이고 누락 없이 닦아, 자신의 수련 길을 안정되고 바르게 걸으며 사람을 많이 구하기를 희망한다.
이상은 개인 수련 층차에서의 약간의 인식이며, 편파적이거나 좁은 소견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린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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