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신공(神功), 질병 제거와 건강에 기적 같은 효험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득법(得法) 전, 저는 관절염, 요통, 인후염, 식중독 후유증 등 여러 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특히 식중독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밥 먹을 때 매우 조심스러웠고 조금이라도 맛이 이상하다 싶으면 단 한 입만 먹어도 2시간 뒤에 두통과 구토가 시작됐습니다. 앉아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되고, 서 있어도 안 되는 등 그저 괴로울 뿐이어서 매번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아야만 진정됐습니다.

제가 득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밤 단체 법공부를 마치고 제5장 공법인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을 연마했습니다. 가부좌한 지 10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토하고 싶어지는 등 식중독 후유증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몇 번이나 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연공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또 토하게 되면 다시 나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수련생들의 연공 입정(入靜)에 방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실외에서 제1, 3, 4장 동공(動功)을 연마했습니다. 연공을 마치자 두통이 사라지고 구토 증세도 멎었습니다. 그날 이후 식중독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괜찮아졌습니다.

2000년 정월 11일, 고모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고모님에 대한 정(情)이 깊었던 탓에 문상을 다녀온 뒤 밤부터 기침하고 머리가 아프며 고열이 났고, 기침할 때마다 소변이 나왔습니다. 이튿날 저는 평소처럼 출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저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저는 생리대 몇 개와 화장지 큰 묶음을 챙겨갔습니다. 20분마다 화장실에 가서 교체해야 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정월 14일, 퇴근 후 침대에 눕자 기운이 하나도 없었고 온몸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조카 둘이 보러 왔으나 너무 힘들어 일어나지도 못한 채 남편에게 수박을 썰어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조카들이 돌아간 뒤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병원도 안 가니, 수박 한 조각이라도 먹고 좀 완화해 봐.” 남편이 애태우는 것이 걱정돼 마지못해 두 조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 먹고 나자 평소 위장병이 전혀 없던 저에게 갑자기 극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말대로 수박을 먹었더니 완화되기는커녕 위만 아주 아프네요. 저는 사람의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요. 신(神)의 방법을 쓰겠어요.” 저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법공부를 했습니다. 1시간여 동안 《전법륜(轉法輪)》 제1강을 다 읽고 나니 복통이 사라졌고 두통도 가라앉았으며 39.3도였던 고열이 37.5도로 내려갔습니다. 정월 대보름 휴일 동안 저는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정월 16일에는 기침이 잦아들었으나 열은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저는 열이 나든 말든 목욕을 하고 내일 출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법공부를 했고, 법공부를 마친 뒤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병업(病業)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정월 17일, 직장에 출근하자 저를 감시하던 동료가 “다 나았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다 나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그저께는 당신 얼굴이 몰라보게 상해서 인사과 사람들과 당신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아픈데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길래 서기에게 보고했더니, 병원에 가라고 권해보라고 하더군요.” 며칠간 거울을 볼 경황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거울을 보니, 양 볼살이 다 빠져 두 개의 구덩이가 돼 있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생사관(生死關)을 넘겼음을 알게 됐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구해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동료들도 대법의 기적 같은 효험과 신기함을 목격하고 대법에 대한 인식을 바꿨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대법서적을 보고 있어도 감시하던 사람은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고, 오히려 “외부 사람이 오면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일러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중간 간부였고 업무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수련 전에는 말이 날카롭고 일을 만나면 쟁투(爭鬪)하기 좋아했으며 동료들에게 양보할 줄 몰랐으나, 득법 후 제 결점을 인식하고 법에서 바로잡아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감시를 받던 기간에도 동료들이 업무 도움을 요청하면 원망 없이 진심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상급 기관에서 인사 기록 정리를 하달했을 때, 상사는 저를 감시하던 동료를 도와 그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기록물이 오래돼 더럽고 어지럽고 엉망이었으나 저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복원하고 정리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기록물은 상부의 칭찬을 받았고 다른 은행에서도 참관하러 왔으며, 상급 은행에서는 자신들의 기록물까지 가져와 정리를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기간이 짧고 양이 많아 꼬박 2주 동안 쉬지도 못했지만, 제때 상급 은행의 기록물 정리를 마쳤습니다.

2000년 초,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중공 감찰 간부)가 저를 감시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태도는 매우 횡포했습니다. 저에게 사직을 강요하고 외출이나 고향 방문 시에도 일일이 보고하게 하는 등 교란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반년 뒤 그가 저를 불러 면담하며 제 이름을 부르며 말했습니다. “당신 정말 수련을 잘했군요. 사람도 온화해졌고 동료들과도 아주 잘 지내네요.” 저의 언행을 통해 그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대법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제 감시를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업무도 안배해 주었습니다. 그 또한 이로 인해 복을 받아 다른 은행의 부행장으로 승진해 갔습니다.

저는 두 차례 골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는 2003년 봄, 타지에서 물건을 들여오다가 계단을 내려가던 중 ‘휙’ 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왼쪽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꺾였습니다. 저는 천천히 발을 바로잡았습니다. 통증 때문에 걸을 수 없었으나 힘껏 발을 구르자 발이 마비됐고 걸을 때 통증이 줄어 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어보니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과 양옆이 검게 변해 있었으며, 슬리퍼를 신으면 발등이 불룩 튀어나왔습니다. 발등뼈가 부러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구두 뒤꿈치가 높아서 뒤축을 밟아 꺾어 신으며 버텼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하며 해야 할 일들을 그대로 해나갔습니다.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설법과 신경문(新經文)을 복사가게에서 복사해 주변 수련생 및 농촌 수련생들에게 제때 보내주었습니다. 한 달 만에 제 발은 완전히 나아 평평한 슬리퍼를 신을 수 있게 됐습니다.

2017년에는 튀어나온 대리석 조각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를 대리석 바닥에 세게 부딪혔습니다. 당시 어깨가 두 동강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어 입도 바닥에 부딪혔고 왼손 바닥에서는 피와 모래가 뒤섞여 흘렀습니다. 이때 노점상이 저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일으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며 스스로 일어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한 큰 손이 힘껏 제 어깨를 합쳐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난(難)을 해소시켜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주저앉아 화장지로 입가의 피를 닦고 지혈한 뒤 일어났습니다. 노점상들이 어깨로 먼저 떨어졌는데 괜찮냐고 재차 물었지만, 저는 괜찮다며 감사를 표하고 가게로 향했습니다. 가게에 도착한 뒤 오른쪽 팔을 위로 들 수 없어 왼손으로 받쳐 들어야 했고 통증도 심했습니다. 저는 큰 난은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해 주셨으니 저도 통증의 일부분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공할 때 왼팔로 오른팔을 받치고 연마했는데, 특히 제2장 공법인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과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끌어당겨 1분을 견디고, 2분을 견디며 수련했습니다. 20일이 지나자 30분 동안 연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손이 제 위치에 가지 못하고 아파서 손이 덜덜 떨렸으나, 최대한 왼손으로 오른손을 제 위치에 올렸습니다. 제 위치에 가자 오히려 손 떨림이 멈췄습니다. 한 달 후 오른쪽 팔은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27년 동안 저는 단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았고 주사 한 대 맞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난을 감당해 주시고 건강한 신체를 주셨으면서도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거대한 자비와 홍대한 은혜에 비길 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제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파룬따파하오’를 염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시다

2009년 정월 17일, 77세이신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엉덩이뼈가 골절되셨습니다. 올케가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고,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엑스레이 검사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시라고 했습니다. 올케는 어머니의 뼈가 툭 튀어나왔으니 분명 부러졌을 것이라고 했으나, CT 검사 결과 뼈가 완전히 부러지지 않고 한 부분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습니다. 제가 수술 후 언제쯤 걸을 수 있냐고 묻자, 의사는 연세가 많으셔서 100일 안에 걸으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수술을 원치 않으셔서 우리는 시내의 한 민간 접골 병원에 가서 고약을 붙이기로 상의했습니다. 그날 밤 바로 시내 병원으로 갔습니다. 저와 어머니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자 어머니는 밤새 통증도 느끼지 않으셨고 정신도 아주 맑으셨습니다.

이모는 의사인데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정신이 아주 좋으시구나. 보통 골절된 사람들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말이야.” 이튿날 뼈를 맞추고 고약을 붙였습니다. 셋째 날은 남동생과 둘째 올케가 간병을 했는데 오전 10시경 남동생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생제 과민반응으로 쇼크가 와서 구급차를 불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택시를 타고 시 중심 병원으로 달려갔고 구급차도 곧 도착했습니다. 저는 들것을 미는 것을 도우며 어머니 귓가에 대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계속 염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병원에서는 위독 통지서를 발부했습니다. 과민반응으로 폐에 물이 차고 심장 등 각종 검사 수치가 정상 범위를 훨씬 벗어났습니다. 임종 직전의 증상들이 나타나고 얼굴의 주름이 펴지는 등 모두가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경, 5시간 동안 혼수상태였던 어머니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어머니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신 덕분에 신체가 빠르게 회복돼 일주일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귀가하신 후 마침 2009년 션윈(神韻) 공연을 보게 됐습니다. 션윈 공연을 보시면서 어머니는 앉으실 수 있게 됐고, 두 달 뒤에는 제 아들에게 부축해달라고 하여 땅을 좀 밟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일반인인 아들은 두 달 만에 외할머니가 걸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해 부축해드리지 않았습니다. 두 달 보름이 됐을 때 어머니의 거듭된 요구에 아들이 어머니를 안아 바닥에 내려놓자, 어머니께서는 침대를 짚고 걸으실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아무것도 짚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숙모님께서 어머니의 상태를 보시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뒷집 사는 장 모 씨는 겨우 마흔 몇 살인데 다리 골절로 고약을 붙이고도 2년째 낫지 않고 있어. 그런데 네 어머니는 두 달여 만에 걸으시니 정말 신기하구나.” 어머니께서 션윈 CD를 보고 나으신 것을 알게 된 숙모님도 자주 저희 집에 와서 션윈을 보셨고, 매년 새로운 션윈 CD가 나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숙모님 또한 이로써 혜택을 입어 병치레가 거의 없으십니다.

대법의 신기한 이야기는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을 따라 천국 세계의 아름다운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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