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5월, 저는 기쁘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었고 올해 70여 세입니다. 병약하던 제 몸을 정화해 병 없이 걸음마다 바람이 이는 듯 가벼운 몸을 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 자료점을 내내 보호해주신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피어난 ‘작은 꽃’
우리의 자료점은 2008년 초 A 수련생의 집에 세워졌습니다. 그때는 진상 자료가 매우 부족해 버스를 타고 비교적 먼 곳에 있는 수련생에게서 받아와야 했는데 수량도 아주 적었습니다. 저는 A와 상의해 그녀의 집에 자료점을 하나 세우자고 했습니다. 그녀의 집은 부부 둘만 살고 있고 둘 다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A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소모품과 완성된 진상 자료는 반드시 제 집에 두고 수련생들이 와서 자료를 가져가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두려운 마음 때문에 저도 망설였습니다. 남편과 가족이 반대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련생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정말 진상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계시고 법(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보통 사람도 산 앞에 이르면 길이 난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는 수련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동의했습니다. 그 후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고 남편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작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A는 저에게 기계 앞에서 인쇄돼 나오는 자료를 받아 정리하는 일만 맡겼습니다. 당시 기계는 단면 인쇄만 가능했고 종이가 자주 겹쳐 들어가 페이지가 뒤섞이기 쉬워서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지켜봐야 실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도 컴퓨터 조작을 배우고 싶었지만 저는 기계 앞에 앉아 자료를 받는 역할만 할 수 있었습니다. A가 컴퓨터를 조작할 때 저는 옆에서 몰래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며 조금씩 머릿속에 기억해두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것을 익히면 나중에 작은 꽃을 피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존께서는 제가 기술을 배우려는 마음을 보시고 한 번의 조작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느 날 A가 역에 볼일을 보러 가야 한다며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렸다가 자료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척 기뻤고 ‘내가 직접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에 의지해 아주 조심스럽게 컴퓨터를 조작해 자료를 인쇄했는데 정말 성공했습니다. 그때의 그 벅찬 마음이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A가 돌아와 보고는 놀라며 “당신도 할 줄 아네요?”라고 말했고 그녀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저희 둘은 함께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등 진상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토너 카트리지에 가루를 채우는 일이 몹시 번거로웠는데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고 수련생 집 벽면이 온통 가루였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 얼굴 가득 토너가 묻어 있었고 심지어 두 콧구멍까지 새까만 가루가 묻었는데도 우리는 유쾌하게 웃곤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작은 꽃을 다시 피우다
2008년 여름, 우리집에 자료를 가지러 왔던 수련생이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경찰에 납치됐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료점을 세워 주었던 수련생은 이 소식을 듣고 A를 데려가 기계 등 모든 물건을 다 옮겨 갔고 우리의 작은 꽃은 잠시 멈추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저라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당시 저는 아직 사람의 관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납치된 수련생이 저와 직접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모두 올라왔고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한 아이처럼 느껴져 ‘나는 누구를 찾아야 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매우 무력할 때 사부님의 법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저는 ‘그렇다, 나에게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생각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A가 돌아온 뒤 저는 그녀와 상의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꽃은 다시 피워야 해요.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진상 자료를 기다리고 있어요.” A는 “나는 한동안 외지에 있는 아들 집에 가서 머물려고 해요. 제가 간 후에 혼자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고 저는 확고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작은 꽃은 다시 피어났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A는 그녀의 아들 집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저는 남편과 상의해서 기계를 우리집으로 옮겨오자고 했고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2009년 우리집에 손자가 태어났고 남편은 더 많이 헌신하며 시간이 나면 아이를 돌봐주며 제가 대법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 수련생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9평》을 대량으로 필요로 해서 저는 시간을 다그쳐 제작했습니다. 때로는 토너를 채우다가 경험이 부족해 몸과 얼굴이 새까맣게 되기도 했고 콧구멍으로 들어가 목구멍까지 흡입돼 기침을 하면 검은 가루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기침해야 겨우 깨끗해지곤 했습니다.
가끔은 토너 가루가 몸에 해롭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즉시 ‘나는 대법제자다. 내 몸은 사부님께서 관리하시니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라며 부정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저는 손자를 안고 《9평》을 등에 지고 수련생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수련생이 농담으로 “정말 힘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약해서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해 몇 걸음만 걸어도 쉬어야 했던 사람이었지만 대법 수련으로 건강한 수련자로 변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힘이 생겼습니다! 수련의 길에는 고됨도 있고 달콤함도 있지만 신맛이든 단맛이든 쓴맛이든 상관없이 제가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저의 책임을 떠올릴 때마다 정말 더없이 자랑스럽고 위안을 느낍니다.
불평을 내려놓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이유로 제가 맡은 자료 제작량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자료를 만들던 B 수련생 한 분이 사악의 괴롭힘을 받아 잠시 일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저를 찾아왔고 저는 ‘수련생에게 어려움이 있으니 내가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진상 자료의 양은 매우 많아 부담도 컸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어쩌면 제 사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중생구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저는 줄곧 혼자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일이 벅찰 때면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자료를 만들 용기가 없단 말인가’하는 다른 수련생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B는 자신이 배포할 자료만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B가 제 일을 일부 도와주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B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으니 지금은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만들게요. B가 시간을 내 나가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2024년 9월, 한 수련생이 “자료를 만드는 C 수련생이 진상 달력을 제작하느라 너무 바빠서 한동안 대신 만들어 달라고 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C가 달력 만드는 일이 정말 바쁘겠다고 생각해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 5월이 될 때까지도 C는 자료 제작 일을 다시 넘겨받지 않았고 오히려 저에게 일부 자료를 더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압박감은 정말로 컸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달력 제작을 끝낸 지가 반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자료 제작을 넘겨받지 않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수련생은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C에게 어려움이 있어요. 외지에 있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 진상 자료를 만드는 것을 볼까 봐 더는 하려고 하지 않고 당신이 대신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자 제 마음에 불평이 올라왔습니다. ‘누구나 어려움이 있다. 어려움이 있으면 방법을 생각해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모두가 어렵다고 하면 다 안 해도 된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 저는 후회했습니다. ‘오랫동안 수련한 대법제자로서 어째서 이렇게 속이 좁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이성적이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지 못할까?’ 저는 마음속으로 앞으로 어떤 일에 부딪혀도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이후 수련생의 사람 구하는 일에 필요하다면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주저 없이 잘 해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연초에 자료 작업을 하던 수련생이 병업(病業)으로 세상을 떠났고 수련생들은 또 제게 일부 자료 제작 임무를 맡겼지만 저는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 자료점이 이미 이사해서 우리집에 있지 않았기에 저는 수련생의 빈집으로 가서 작업해야 했는데 때로는 필요한 물품이 많아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배가 고프면 물 한 모금으로 버텼고 하루가 지나면 정말 기진맥진했습니다. 비록 고되었지만 정성껏 완성된 진상 소책자와 《9평 공산당》, 예쁜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 진상 스티커를 수련생들이 가져가 중생을 구할 수 있을 때 정말 비할 수 없이 기쁘고 위안이 됐으며 그때의 고생과 피로는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자주 농담으로 “당신 대법 일을 할 때는 정말 힘이 넘치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상 자료를 만드는 기계들을 법기(法器)로 삼아 매번 마주할 때마다 인사를 건넸습니다. 명절이 되면 명절 잘 보내라고 인사를 전했고 매번 작업을 마치고 전원을 끌 때면 “모두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10여 년간 진상 자료를 만들며 단련된 과정에서 제가 느낀 것은 몸은 비록 고되지만 마음은 오히려 즐겁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제 수련 과정의 일부입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7/505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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