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이던 나를 선량하게 바꿔준 대법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중국 동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원두막과 콩 넝쿨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도덕이 날로 타락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염색항아리 속에서 저는 어느덧 횡포한 시골 아낙네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외가에서 자란 언니가 한 명 있고,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한 명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성격이 불같으신 데다 중국공산당(중공)의 거짓(假)·악(惡)·투쟁(鬪) 독소에 물들어 관용이나 양보를 모르셨습니다. 두 분은 자주 다투셨고 집안에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밖에서 바람을 피우며 돈을 벌어도 집에 가져다주지 않고 대부분 탕진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근면하고 성실하셨지만 자신의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은 참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실 때 아버지가 알루미늄 국자로 어머니의 눈 아래를 내리쳐 입힌 상처가 지금까지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부모님이 싸우실 때면 우리 형제들은 늘 공포에 떨었습니다. 조금 머리가 커진 뒤에는 싸움이 나면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 편을 들며 어머니를 보호하려 애썼습니다.

1. 전통 도덕의 부재로 이기적이고 횡포하게 변하다

마을에 ‘거우성(狗剩)’이라는 남자아이가 제 남동생과 여동생을 괴롭혔는데 저만은 괴롭히지 않았고 저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제게 막대기를 주며 가서 그를 때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때리지 않자 어머니는 저를 더 혹독하게 매질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그 아이의 머리를 막대기가 부러질 정도로 두 번 세게 내리쳤습니다. 그 후로 그는 다시는 제 동생들을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악으로 악을 제압하는(以惡制惡) 어머니의 이런 교육 방식은 저를 망쳐놓았습니다. 저는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에서 점점 멀어졌고 여성 특유의 온화함이나 정숙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됐습니다. 저도 못된 성격을 고쳐보려고 20여 세 무렵 기독교를 믿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욕할 일이 있으면 욕하고 때릴 일이 있으면 때렸습니다. 집에서는 여동생을 때렸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때렸습니다.

결혼 후 저는 집안일도 농사일도 하기 싫어했습니다. 먹는 것만 밝히고 게으른 데다 이기적이기까지 해서 남편이 무능하다며 무시하고 자주 욕을 퍼부었습니다. 집에 돈이 생기면 아껴 쓸 줄 모르고 함부로 썼습니다.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라면 하나고 ‘둘’이라면 둘인 독선적이고 횡포한 태도로 살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저 혼자 배불리 먹고 남편에게는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설날에 생선 조림을 했는데 남편이 몇 젓가락 먹지도 않고 나가 놀자 제가 그 생선을 혼자 다 먹어치웠습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이 배가 고파 생선을 찾기에 제가 다 먹었다고 하자 남편은 할 수 없이 맨밥으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저는 싸움을 걸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며 때렸습니다. 어느 해 남편이 소 20여 마리를 키울 때였습니다. 싹이 돋아날 무렵 소들이 이웃집 농작물을 먹을까 봐 남편은 매일 소몰이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라 빨래와 요리만으로도 벅찬데 소까지 몰아야 하니 짜증이 났고 돕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남편을 닦달하다 남편이 몇 마디 대꾸하자 저는 소몰이 채찍을 집어 들고 남편의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2. 파룬따파가 날 변화시키다

1999년 초 시누이가 대법을 배우라고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찾아와 “우리 마을까지 대법이 전해졌어”라고 하기에 마을의 한 수련생 집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러 갔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전법륜(轉法輪)’을 봐도 덕(德)과 업력(業力)에 대한 설명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공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마치 몸에 전류가 통하는 듯했습니다.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와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 마음속 번뇌가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졌으며 들으면 들을수록 좋았습니다.

사부님의 시집 ‘홍음(洪吟)’에 있는 불(佛)·도(道)·신(神)의 삽화를 보며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학력이 전부라 모르는 글자는 남편과 딸에게 물어가며 ‘홍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엔 ‘전법륜’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진하지 못했습니다. 법공부 팀에 나가는 것도 사흘 공부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고 진심으로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습관도 여전해서 채찍으로 남편을 때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던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사부님의 ‘전법륜’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욕을 하면 덕을 잃고 사람을 때리면 더 큰 덕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큰 업력을 쌓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남편을 때리고 욕하던 고약한 버릇을 고쳤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며 게으름이 마성(魔性)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부지런해졌습니다. 남편을 도와 돼지를 키우고 소를 몰며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남편을 먼저 챙겼고 더는 무능하다고 무시하지 않으며 동고동락하게 됐습니다.

욕설과 매질을 끊은 것은 물론 이웃과도 갈등을 빚지 않았습니다. 이웃이 우리집 마당에 깨진 유리병이 든 쓰레기를 던져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치웠습니다. 우리집은 나무를 가공해 울타리용 판자를 만들었는데 겨울이면 한 이웃이 아궁이 땔감으로 쓰려고 우리집 판자를 훔쳐 갔습니다. 다른 이웃은 도둑놈이 누구냐며 욕이라도 해주라고 부추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욕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겠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고 나서 욕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것이 덕을 잃는 부끄러운 일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판자를 도둑맞고도 욕하지 않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습니다.

한번은 친언니가 매우 듣기 싫은 말을 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며칠 뒤 언니네 집에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대법을 배우기 전에는 어땠어? 우리 집안에서 내가 누구 봐주는 거 봤어? 내가 17~18세 때 언니 결혼하고 친정 와서 쌀 가져가려니까 내가 못 가져가게 하고 밥도 안 주고 쫓아냈었잖아.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언니도 보고 있지?” 언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더는 대법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경건하게 염하면 평안해질 거야”라고 하자 언니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14~15세 때 아버지가 외도를 해서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그 후로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18세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겉으로는 반기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아버지의 돈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제게 바지 살 돈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후 우리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노년에 후두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대법을 얻은 뒤였고 중공에 의해 1년 동안 불법 구금된 적이 있어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일을 하며 아버지를 제가 있는 곳으로 오시게 했습니다. 여관방을 잡아드리고 숙박비를 내드렸으며 아버지의 옷을 빨아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진심으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제게 진심 어린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네가 효를 다했구나.”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어머니는 의붓아버지와 재혼하셨습니다. 의붓아버지는 자식이 없었지만 제 남동생과 여동생을 정성껏 키워주셨습니다. 이제 의붓아버지는 연로해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저는 의붓아버지를 찾아가 이불과 옷을 빨아드리고 머리를 감겨드리고 손톱을 깎아드립니다. 매년 2000위안을 드렸는데 작년부터는 수백 위안을 더 얹어드렸습니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동생 내외에게 그 돈으로 사 오게 합니다. 의붓아버지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완전히 달라진 제 모습을 보고 감동하셨습니다. 제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가르쳐드리자 저를 따라 외우십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의붓아버지께 매년 이 큰돈을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욕심 채우기도 바쁜 사람이 어떻게 남을 배려할 수 있었겠습니까?

3. 대법이 내려주신 커다란 복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나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렸습니다. 소를 키워도 돼지를 키워도 농사를 지어도 돈이 벌렸습니다.

한번은 구제역에 걸린 소를 저렴한 가격에 샀습니다. 늙은 암퇘지 한 마리를 주고 소 한 마리와 바꾼 셈이었습니다. 이듬해 구제역이 나았고 소값도 올랐습니다. 그 암소는 쌍둥이 송아지까지 낳았습니다. 가장 많을 때는 소를 30여 마리나 키웠습니다. 외양간이 좁아 소를 밖에 매어두고 사방이 뚫린 간이 천막만 쳐주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소 엉덩이에 쌓일 정도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제가 키우는 소들을 보고 ‘무쇠 소’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해 논농사를 마치고 밭농사가 늦어졌을 때 배추를 심으려 했습니다. 밭에 소똥을 뿌리고 기계로 밭갈이를 해놓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배추를 심어도 싹이 고르게 나지 않을까 봐 남편이 애를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슬비가 내려 땅을 흠뻑 적셔주었습니다. 2~3일 뒤 배추를 심자 파릇파릇한 싹들이 일제히 돋아났습니다. 가을에 배추를 팔 때 첫 차는 근당 30여 전을 받았는데 다음 날 바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7무(畝) 땅에서 콩 농사보다 수천 위안 더 많은 1만여 위안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이듬해 이웃들이 배추를 심었지만 팔리지 않아 밭에서 다 얼어 터졌고 많은 돈을 손해 봤습니다. 저는 그때 배추 대신 다른 작물을 심었습니다.

또 한번은 지대가 높아 물을 대기 힘든 논을 빌렸습니다. 아무도 빌리려 하지 않아 임대료가 매우 쌌고 임대료도 가을에 후불로 내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봄에 선불로 냅니다. 그런데 써레질할 때 비가 내려 물을 끌어올 필요가 없었고 연료비도 아꼈습니다. 물이 있어야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해 가을 풍년이 들어 벼를 팔아 17만여 위안을 벌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집이 복을 받았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이것은 파룬따파가 내려주신 커다란 복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횡포하던 시골 아낙네가 관용과 양보를 아는 좋은 사람으로 변한 것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10여 년 전 제가 납치됐을 때 남편이 저를 구하기 위해 마을에서 서명운동을 벌이자 저를 아는 이웃들이 앞다투어 서명하며 남편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교양 없고 횡포하던 시골 아낙네를 끊임없이 도덕을 승화시키는 선량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저를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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