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 한 차례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를 따라 법을 얻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대법에 대해 뚜렷한 인식은 없었고 그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1996년 여름, 나는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품에 안고 친구에게서 500위안을 빌려 홀로 남방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왜 수천 리를 넘어 이 남방 땅에 오게 됐는지 알지 못했지만, 훗날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배치하신 길이며, 내가 이곳에서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걷게 돼 있음을 깨닫게 됐다.
거의 30년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20대 초반의 청년에서 어느덧 50세를 넘기기까지 수많은 풍파 속에서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잘해냈을 때마다 그것은 대법의 위덕이 진실하게 드러난 것이었고, 내가 넘어졌을 때마다 그것은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늘 보호하고 일깨우시며 제자의 손을 이끌어 진흙탕과 험난한 길을 함께 지나오게 하신 결과였다. 그 지난날이 떠오를 때마다 눈시울이 젖어든다. 말법(末法)의 시대에 사존(師尊)과 함께할 수 있고, 사존께서 친히 제도해주시며, 전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영광인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으니 우리는 얼마나 큰 행운을 지닌 존재인가.
아래에 자신의 소소한 수련 체험과 경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1. 일념이 바르자 사부님의 보호로 무사하다
남방에 도착한 후 다행히 몇몇 수련생을 만났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나는 단체 수련의 환경을 갖게 됐다. 1999년 ‘7·20’이 시작된 이후 수련생들은 차례로 법을 실증하러 나섰고 잇따라 납치됐다. 2000년 여름, 수련생들이 다시 모였을 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일어났다. 한 수련생이 내가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갈아입을 옷도 챙기지 않은 것을 보고,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옷을 몇 벌 더 챙기라고 친절히 말해줬다. 나는 순진하게도 “나는 갔다가 바로 돌아올 거예요.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천안문에 도착한 후 동행한 수련생과 함께 한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나서서 행동하는 수련생을 보지 못해 다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에 수련생은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나는 가지 않겠어요. 여기서 끝까지 버티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수련생은 떠났다. 나는 계속 주변을 배회하다가 파출소 앞에 앉아 있는 한 경찰관을 보았다.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어 다가가 “파룬궁(法輪功)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데 알고 계십니까? 저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교적 온화하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다른 경찰을 불러 나를 파출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많은 수련생이 있었다. 그중 한 아주머니는 맞아서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도 굳건하고 평온했다. 그 장면은 나에게 깊은 격려가 됐고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수련생들과 함께 당당히 서게 됐다. 이후 경찰차가 와서 우리를 한 지하 감방으로 끌고 가 감금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분명히 알 수 없다.
며칠째 단식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수련생들이 하나둘씩 끌려나갔다. 어떤 이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됐고, 어떤 이는 원적지로 돌려보내졌다. 어느 날 당직 여경이 내게 짐을 싸라고 하며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 감방 문을 나섰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숙연하고 장엄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시간은 마치 멈춘 듯했다.
지상에 올라서자 오래간만에 태양을 마주했다. 햇빛 아래에는 승용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차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 원적지의 베이징 주재 사무소 직원들이라고 밝히며, 나이가 아직 어려 고향으로 압송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대신 기차역까지 데려다줄 테니 서둘러 떠나라고 했다. 전 과정에서 그들은 어떠한 적의도 보이지 않았고 모두 온화한 태도로 말해줬다. 그렇게 나는 기차역으로 보내졌고 무사히 남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의 그 순수한 일념이 있었기에 사부님의 보호를 받아 사악한 세력에 의해 계속 구금·박해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나를 놓아주었던 그 두 사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이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했던 그 행동이 이미 그들 스스로에게 구원의 인연을 마련해줬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훗날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머니는 사부님께서 여러 제자를 이끌고 상서로운 구름 위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비틀거리며 그 위에 올라섰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생활하던 지역의 공안국에 이름이 올라가게 됐고, 그때부터 십여 년에 걸친 지속적인 감시와 괴롭힘, 박해를 겪게 됐다. 나는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실천하며 법 속에서 자신을 단련했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해 나가면서 법리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렇게 사부님을 따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나는 참으로 행운이라고 느낀다.
2. 정념 속에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
2010년에 나는 납치돼 현지에서 악명 높은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노동수용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마치 먹구름이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했고, 경찰은 누구도 나와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내 마음은 짙은 암울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느 날, 창가에 서서 방 뒤편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법을 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법을 외워야 한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단번에 밝아졌고,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때부터 나는 줄곧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해왔다.
나는 한때 감시카메라로 가득 찬, 면적이 8제곱미터도 안 되는 방에 단독으로 감금된 적이 있었다. 유일한 창문마저 신문지로 막혀 있었다. 경찰은 다른 방 사람들이 들을까 봐, 이른바 ‘바오자(包夾, 수감된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는 죄수)’들에게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바오자들은 모두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감금됐고, 매 길들이기(熬鷹, 수면 박탈 고문)를 당했으며, 8명의 마약사범이 번갈아 가며 나를 감시해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또 사오(邪悟, 비뚤어진 깨달음)한 자들에게 밤낮없이 공격을 받았다. 한번은 죄수가 내 몸 위에 올라타 바닥을 닦는 걸레를 내 입에 쑤셔 넣었는데, 내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칠까 봐서였다.
나는 ‘전법륜’의 대부분과 사부님의 다른 경문들도 암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매일 마음속으로 법을 외웠다. 먼저 ‘전법륜’ 두 강을 외우고, 이어서 사부님의 다른 설법과 경문들을 떠오르는 대로 쉬지 않고 외우고 또 외웠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 만약 대법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헤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대법은 나에게 힘과 정념을 줬고,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위덕을 드러내어 중생들을 감화시켰다.
1) 여경의 태도가 달라지다
어느 날, 당번 경찰이 또다시 날 찾아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하나 가져와 내 맞은편에 앉아 대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을 그녀에게 외워 들려줬다. “나는 예수가 아니고, 석가모니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진리의 길을 걷고, 과감히 진리를 위해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감히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몸을 바치는 무수한 예수, 석가모니를 창조해 냈다.”(각지 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그 여경이 크게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녀가 떠난 뒤 방 안에는 오후 4시의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함께 있던 두 명의 바오자가 내 손을 잡고 기뻐하며 뛰면서 말했다.
“사장님, 이제야 원만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그 순간 내 마음은 기쁨과 신성함으로 가득 찼고, 중생을 위해 진심으로 위안과 감동을 느꼈다.
그 후 나는 그 여경의 인상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사람 자체도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그녀는 몰래 나를 한 사무실로 불러 대화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사부님의 한 편의 새 경문에 대해(구체적으로 어느 경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녀가 법을 얻었고 조용히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은 정말로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의 안전을 생각해 나는 담담하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고, 이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 경찰이 진상 문장을 읽다
어느 한동안 노동수용소에서는 매일 나에게 사악한, 이른바 ‘비판·폭로’ 영상을 보게 한 뒤 종이와 펜을 주고 과제를 쓰라고 했다. 나는 문득 이것이 바로 법을 실증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펜을 들어 나 자신의 수련 경험을 쓰기 시작했고, 대법이 얼마나 좋은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면 평안하다’는 진실을 알리며 여러 각도에서 진상을 밝혔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썼고,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으며 온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나의 정념을 가지(加持)해주고 계심을 느꼈다. 글을 다 쓴 뒤, 나는 바오자를 통해 그 글을 경찰에게 전달하게 했다. 그 이후로 경찰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떤 ‘과제’도 쓰라고 하지 않았다.
얼마 뒤, 한 여경이 방에 들어와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마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밖에 나가면 작가가 돼도 되겠어요. 문장이 정말 뛰어나네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대법이 부여해준 지혜 덕분이지, 세속의 문화 수준이나 학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 속에서 나는 중생들이 대법제자에게 품는 존경과 인정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분명 내가 쓴 글을 읽었음을 알았다.
3)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나를 감시하던 바오자 중에는 비교적 특수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절도 혐의로 노동교양 처분을 받은 사람이었다. 특별하다고 한 이유는, 노동수용소에서는 보통 마약사범을 시켜 파룬궁수련생들을 감시하게 하는데, 경찰의 눈에는 마약사범들이 대체로 성정이 사납고 통제하기 쉽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바오자는 내가 A라고 부르겠다. A는 비교적 연약하고 선한 성품을 지녔으며, 다른 바오자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늘 가능한 한 그녀를 위로하고 타이르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내가 독방에 갇혀 있을 때는 목욕을 할 때조차 경찰이 감시했고 시간도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 겹쳐, 감시실에 드물게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감방 안의 시멘트 침상에 앉아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크게 웃으며 뒤로 벌렁 누워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만약 파룬궁을 수련한다면 꼭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정말 잘 참거든.” 나 역시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고 그녀의 말을 긍정해줬다.
불법 구금이 끝나기 얼마 전,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제 인생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씻고 새사람이 돼 선하게 살라고 격려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출소하면 저를 신고한 그 사람에게 반드시 보복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당신 때문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보복하고 싶지 않아요.”
내 마음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밀려왔다. 오직 대법만이 중생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그들을 선하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깊이 느꼈다.
4)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다
한동안 노동수용소는 8명의 바오자를 붙여 번갈아 나를 감시하며 독방에 가두고, 사오한 자를 불러와 나를 ‘전향’시키려 했다. 그들은 늘 하던 수법을 되풀이하며, 거짓 선전 영상을 본 뒤 반드시 ‘과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첫날 밤, 바오자들이 자기들 말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조용히 법을 외웠다. 이후 경찰은 종이와 펜을 내주었다. 그 순간, 사부님의 ‘정진요지2-건의’ 중 말씀 “나는 강제로 전화한 모든 수련생(전화를 위해 잡혀간 적이 없는 사람은 제외)들은 전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동시에 그들에게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인과(因果)관계를 말해 주기를 건의한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악이지 대법제자가 아니다”가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펜을 들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인용해 진상을 알리고, 수련의 의미를 전했으며, 이어 사오한 자가 어떤 집착 때문에 수련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짚어줬다. 글을 마치는 순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대법의 자비로운 에너지장이 온몸을 감싸는 듯해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신성함을 느꼈다. 독방에 갇힌 이후 마음을 짓누르던 먹구름은 말끔히 걷혔다. 그 이후 경찰은 종이와 펜을 거두어 갔고, 더는 이른바 ‘과제’를 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5) 위기 속에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
2019년, 나는 다시 납치돼 그날 밤 곧바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치소에 들어간 뒤에도 나는 그들의 어떠한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았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다. 이후 그들은 나를 작은 방 하나에 따로 가두었다. 나를 감시하던 여경은 이미 진상을 이해하고 있었는데(파출소로 끌려갔을 때 그녀에게 따로 조용히 진상을 전한 적이 있었다),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여경이 나에게 말했다. “언니, 사람들이 언니의 옷을 벗겨 몸수색을 한 다음 구치소 수용복을 입히려 해요.”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나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이지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곳의 옷도 입지 않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내 옷을 강제로 벗기겠다고 소리쳤고, 여러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위급한 순간 나는 사부님을 떠올렸다.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오른쪽 뒤 허공에서 날 지켜보고 계신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다. 순간 정념이 크게 일어나며 나는 스스로가 매우 거대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문을 열고 그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내 앞에 이르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안 벗어도 됩니다. 일단 다시 방으로 돌아가세요.” 이렇게 해서 사부님의 보호 속에 한 차례의 사악한 박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 대법이 기적을 이루어, 남편이 절망의 끝에서 새 삶을 얻다
2016년 여름, 남편은 정기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그날 오후, 그는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며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단일 병변이었다면 그나마 상황이 나았겠지만, 그는 갑상선암과 림프암을 동시에 진단받은 상태였다.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에 짓눌렸다. 점심 휴식 시간, 방에 혼자 앉아 있다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러다 마음을 가다듬고 법을 조금이라도 배우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무심코 책장을 펼친 순간, 사부님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정념으로 문제를 보라”(각지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그 문장은 마치 황금빛을 띠고 있는 듯 또렷하게 나타났다. 나는 순간 크게 놀랐고, 따뜻한 기운이 밀려오며 마음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씻겨 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의 일깨움이며, 나에게 정념정행하라고 격려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남편은 무사히 입원했고 수술을 앞두고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수많은 검사 결과와 함께 의사와 교수들의 부정적인 진단, 경고가 날마다 귀에 들려왔다. 나는 사악한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부정하며 거듭 정념을 굳게 세웠다. 예를 들어 주치의는 남편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며 수술 후 말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분명히 생각했다. ‘그럴 리 없다. 그는 사부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반드시 순조롭게 회복될 것이다.’ 또 의사는 수술 후 통증으로 인해 장기간 불면에 시달릴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렇지 않다, 그의 결과는 반드시 가장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또 한쪽 림프를 모두 제거하고, 한쪽 갑상선을 전부 절제해야 하며, 그로 인해 신체 기능이 크게 저하돼 정상적인 업무를 영영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나는 흔들림 없이 생각했다. ‘이건 당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길이야말로 반드시 가장 좋은 안배다.’
또한 주변 수련생들이 함께 정념을 발해 나를 도와 이 난을 넘길 수 있게 해줬다. 이렇게 정(正)과 사(邪)의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남편은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어떠한 합병증도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이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병으로 쓰러지면서 사업의 모든 부담이 한순간에 내 어깨로 쏠렸다. 나는 휴대폰 두 대를 들고 하루 종일 각종 업무에 시달리며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해야 했고, 병원을 오가며 남편을 간병하고 돌보는 일도 병행해야 했다. 한 번은 친분이 있던 한 거래처 관계자가 회사를 방문했는데, 두 시간 넘게 함께 앉아 있었음에도 나는 끊임없이 전화를 받고 고객에게 답하느라 제대로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그는 감탄 섞인 말투로 “정말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어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남편이 자리에 없었기에 내가 혼자 두 사람 몫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시기는 내 수련의 길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역경 속에서 대법은 나에게 힘을 줬고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생들의 정념의 지지, 그리고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나는 결국 이겨내고 지나올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버틸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법공부하고 수련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하루빨리 회복해 다시 일터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석 달여가 지난 뒤 남편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목소리가 다소 쉬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은 후유증마저도 완전히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막대한 감당으로 남편을 구해주셨고, 동시에 제자의 난도 대신 감당해주셨다. 남편이 절망의 고비에서 새 삶을 얻게 된 이후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오직 사부님에 대한 깊은 감사만이 남아 있다.
4. 세 가지 일을 잘해 중생을 구하다 –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대법을 증명하다
남편과 결혼한 뒤 우리는 사업을 시작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무일푼에서 출발해 현재는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하며 수천만 자산을 보유하게 됐고, 업계에서도 비교적 높은 인정과 평가를 받고 있다. 이 20년은 경영의 시간이자 동시에 나의 수련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법은 나를 조금씩 정화해줬고, 사부님께서는 하나하나의 난을 넘도록 이끌어 주셨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무지와 혼란에서 벗어나 점차 성숙한 수련인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1) 마음을 다해 법을 배우다
2005년부터 나는 ‘전법륜’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한 번씩 다시 암송하려고 노력해왔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아미타불’의 매 한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법을 외울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머릿속에 또렷이 떠오르도록 하며, 정신을 흩뜨리지 않고 집중했다. 만약 어느 부분이 잘되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가 재차 암송했다. 사부님의 다른 경문들도 많이 암송해왔다. 법을 암송하는 과정은 나를 법 속에 온전히 녹아들게 했고, 머릿속에는 늘 사부님의 법이 맴돌았다. 그 덕분에 난관을 만날 때마다 첫 생각이 자연스럽게 대법으로 향하게 됐다. 그렇게 나의 심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승화되어 갔다.
또한 이 여러 해 동안 나는 ‘전법륜’, ‘홍음’, ‘홍음2’, ‘홍음3’, ‘홍음6’, ‘정진요지’, ‘정진요지2’ 그리고 사부님의 기타 경문들을 손으로 필사해왔다. 법을 필사할 때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요구를 했다. 결가부좌를 하고, 입술을 다물며 혀를 입천장에 대고, 온 정신을 집중해 필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사심과 잡념의 방해가 나타났다. 어떤 때는 그 생각을 따라가며 근원을 찾아냈고, 찾아내자마자 그것을 제거했다. 또 어떤 때는 강한 생각이 나를 이끌어 무엇인가를 반드시 하게 하려 했지만, 나는 그 생각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아니라 사악한 교란임을 분명히 알고 단호히 배척하며 계속해서 법을 필사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잡념은 저절로 사라졌다. 법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아파도 내려놓지 않고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견디자고 격려하며 계속 결가부좌를 유지했다. 필사를 하는 동안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법리를 나에게 펼쳐 보여주셨다. 때로는 필사하다가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정(灌頂)해주고 계신 것임을 알았다.
나는 주변 수련생들과도 자주 함께 법을 배웠다. 가부좌로 자리를 잡은 뒤에는 가능한 한 몸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강을 끝까지 배우는 것을 견지했다. 머릿속에 방해가 나타날 때면 그것을 따라가지 않도록 힘써 배척했고, 의념 속에서 참된 나를 법과 연결해 자신을 법 속에 녹여 공부하려 했다. 법공부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아름다운 체험이 있었다. 특히 법공부를 마친 뒤 수련생들과 함께 정념을 발할 때는, 때로는 에너지장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고 마음속에 자비가 가득 차며 정신이 맑고 또렷해졌다. 또 어떤 때에는 법을 배운 후 온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생각 속에 잡념이 전혀 없어 투명하고 청정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2) 사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서 사업을 하도록 배치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중생과 인연을 맺기 위함이며, 서로 얼굴을 트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인연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과 교류하거나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성을 바르게 놓고, 사사로움과 ‘나’를 위하는 각종 마음을 끊임없이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 자체가 곧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주 공간 체계 속의 중생들을 바로잡는 일이다.
(1) “역시 당신을 잘못 보지 않았군요”
나에게 실력이 있는 한 고객이 있다. 그들은 장비를 구매할 때 항상 수입 브랜드를 선택한다. 어느 날, 구매 담당자가 발주서를 작성하고 양측이 계약을 체결했으며, 총금액이 40여만 위안을 넘었고, 계약금도 지불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주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조사로부터 제품 가격이 하향 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곧 내 이익이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몇 분간 망설였지만 나는 결국 이 소식을 그에게 알리기로 결정했고, 동시에 제품 판매가를 1만 위안 낮췄다.
그는 전화를 받고 매우 놀랐고 동시에 기뻐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역시 당신을 잘못 보지 않았군요. 저는 늘 당신을 신뢰해왔습니다. 우리 회사 대표님이 이 일을 듣고 특별히 좋아하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신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정당하게 얻을 수 있는 만큼만 벌고, 그 이상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가 전년도에 퇴직한 뒤 새로운 구매 담당자가 부임했지만 우리는 계속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 나는 그들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2) “앞으로 제 모든 거래는 당신과만 하겠습니다”
한 고객이 3천 위안의 계약금을 지불한 뒤, 친구의 중고 장비를 마음에 들어 하게 되자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계약금을 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즉시 반환해줬다.
일주일 후, 그는 다시 찾아와 친구의 장비가 적합하지 않다며 결국 우리에게 구매하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계약금을 받고 장비 한 대를 주문해줬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그는 전화를 걸어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당분간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며 구매를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도 불만 없이 그 요청을 받아줬다. 그러나 한동안 그가 회사에 나타나지 않아 내가 먼저 연락을 취했다. “왜 계약금을 찾아가지 않으시나요? 혹은 송금 계좌를 알려주시면 환불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번복하다 보니 어떻게 말을 꺼내 환불을 요청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가 주문한 장비는 일반 제품이라 다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계약금을 돌려주고 대략적으로 그에게 진상을 알려줬다.
1년이 지나 나는 이미 이 일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와 나에게 곧장 다가오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이번에는 정말로 장비 두 대를 주문하겠습니다. 앞으로 제 모든 거래는 반드시 여러분과 하겠습니다. 다른 곳은 절대 찾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한 뒤 계약금을 받고 그를 출입문까지 배웅했다. 그의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것이 느껴졌다. 그 후 그의 회사는 모든 유지보수 업무를 우리와 연계하게 됐고, 중고 장비 또한 우리에게 판매했다.
(3) “이런 것도 환불이 가능합니까”
어느 해 내가 회사에 없던 동안 한 고객이 우리 회사 다른 영업사원과 장비 한 대를 주문하고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새 장비가 도착했을 때 납품이 불가능해졌다. 그들은 합작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내부에서 분쟁이 발생하여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이 장비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오래 지난 뒤, 내가 다시 회사에 출근하게 됐다. 장부를 정리하던 중 이 문제를 발견하고 나는 먼저 고객에게 연락하여 계약금을 돌려줬다. 그는 전화 속에서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것도 환불이 가능합니까?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나는 답했다. “가능합니다. 주문하신 장비는 특별한 제품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다시 판매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전화상으로는 그에게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지만,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나는 일을 처리할 때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약서 약정에 따라 고객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위반했으므로 계약금은 반환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많았다. 매번 자신의 실질적인 이익이 걸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최대한 대법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수련인의 선함과 관용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수련 속에 있으며, 업무와 생활 환경 자체가 우리의 참된 수련과 실제 수련의 도장이다. 수련이 점점 깊어지면서 나는 점차 깨달았다. 내 모든 것은 대법에 속해 있으며, 이 세상에서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이러한 물질적 환경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나는 단지 인간 세계의 겉으로 드러난 재화를 잠시 소유하고 있을 뿐이며, 이를 선하게 활용하고 선하게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지불식간 나는 대법 속에서 풍파를 겪으며 30년 가까이 걸어왔다. 그동안 한순간도 스승님의 자비로운 깨우침과 보호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부님의 은혜는 크고도 광대한데 제자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다만 스스로를 경계하며 더욱 정진할 뿐이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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