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교육의 변천과 변질

[명혜망] 중화 전통 교육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역대 왕조는 덕을 중시하고 이치를 밝히며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북돋는 전통을 따라왔다. 스승은 ‘도를 전하고 가르침을 전수하며 의문을 풀어주었고’ 제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스승을 뛰어넘었다. 수천 년에 걸쳐 전통 교육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국민의 마음과 도덕을 함양해 왔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교(敎)는 위에서 베풀고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육(育)은 자식을 길러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해 아이를 양육해 선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교육’이라는 두 글자의 옛 의미는 사람의 훌륭한 품성과 도덕을 길러내는 데 있다.

교육의 기원

일찍이 하(夏)나라 때 이미 학교가 있어 ‘교(校)’라 불렀고, 상(商)나라는 ‘서(序)’, 주(周)나라는 ‘상(庠)’이라 했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교육은 이미 크게 성행해 중앙의 태학(太學)과 지방의 학교 등 관학(官學)과 사학(私學) 모두 규모가 비교적 컸다. 당(唐)나라 때는 국자감이 관학으로 설치돼 그 아래에 국자학과 태학 등이 운영됐고, 송(宋)나라 때는 태학이 최고 학부로 자리 잡았다. 청(淸)나라 때는 국자감이 국가의 유일한 최고 학부가 됐다. 관학 외에도 송·원·명·청 시기를 거치며 사숙(私塾, 글방)이 점차 보급돼 민간의 주요 교육 형태로 자리 잡았다.

중화 전통 교육관은 ‘유교무류(有敎無類)’와 ‘인재시교(因材施敎)’로 요약된다. ‘유교무류’는 귀천과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책을 읽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인재시교’는 서로 다른 자질을 지닌 학생에게 각기 다른 교육 방식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고대 교육은 이미 ‘사람마다 타고난 바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 인간이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학생 각자의 조건에 맞춰 목적성 있게 가르치는 것을 중시했다. 이는 사람들이 TV 드라마 속에서 과거 시험을 대비하며 고개를 흔들고 기계적으로 문장을 암기하던 옛 학생의 모습으로 떠올리는 인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학생이 사고하는 법을 배우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였는가? 그렇지 않다.

한번은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나와 자로 중 누가 더 어질다고 보느냐?”라고 물었다. 이는 학생이 스승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게 한 사례였다. 자공은 잠시 생각한 뒤 “선생님께서는 사람을 이끄는 데 능하시고 자로는 실천에 능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아부도 아니었고 어느 한쪽을 절대화한 것도 아니었다. 공자는 기쁘게 웃으며 “그 차이를 말해낼 수 있다면 네가 관찰에 능한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학생이 독립적으로 사고하도록 이끄는 데 능했다. 오직 스스로 진정으로 사고해야만 이치가 마음에 스며들 수 있으며, 이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는 만년에 학생들에게 자주 ‘내 글을 평가하라’고 했다. 한유는 자신의 글을 학생들에게 읽게 하며 “무릇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너희가 반드시 말해야 한다”라고 했다. 유종원(柳宗元)과 이고(李翱)는 모두 한유의 일부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직접 지적한 바 있다. 한유는 이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주 공개적으로 채택했다. 대문호로서 한유는 이러한 방식으로 학생들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이끌었으며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게 했다.

서양 문화에도 이와 같은 전통이 존재했다.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이 면전에서 자신을 ‘격파’하도록 독려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를 반박해 보라”라고 권했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학생들이 논리적으로 자신에게 도전하도록 유도하며 자신의 논증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게 했다. 『변명』과 『국가』에서 그는 여러 차례 학생들이 자신의 전제를 직접 부정하도록 했다. 소크라테스는 서양 교육사와 철학사에서 계몽자로 평가된다.

서구 문물의 유입

근현대에 이르러 서풍이 동쪽으로 불어오며 ‘양무학당(洋務學堂)’으로 불린 신식 교육이 등장했다. 민국 시기에는 구미 지역에 유학했던 이들이 대거 귀국해 비판적 토론 중심의 수업 방식을 도입했다. 대학 자치와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 학교는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거부할 수 있었고, 학생은 교사와 교장을 비판할 수 있었으며, 교수들 사이에서도 공개적인 논쟁이 가능해 ‘통일된 입장’을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민국 사회 전반에는 지식과 교수를 존중하는 풍토가 형성됐고 이 시기는 ‘대사(大師)가 잇따라 배출된 시대’로 불렸다.

베이징대학에서 후스(胡適)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자주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믿지 말고 ‘후스의 말이 옳은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편지로 자신을 비판하게 했고 수업 중 질문을 제기하도록 했으며, 강연이 끝난 뒤에도 이의를 제기하도록 요구했다. 나아가 학생들의 비판을 책에 수록하기도 했다. 저우빙린(周炳琳)이라는 한 학생은 면전에서 후스의 『백화문학사』 가운데 한 대목의 논증이 지나치게 단순화됐다고 지적했고, 후스는 이에 대해 “이 부분은 학생의 지적이 확실히 더 낫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20세기 초 동서양의 사회 형식은 모두 큰 변화를 겪었지만, 사람들의 가치관과 도덕관은 여전히 비교적 전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서구 문물의 유입’은 교육 자체 차원에서 볼 때 사상의 충돌이자 교류였으며 상호 소통 속에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미혼탕’식 주입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정권을 찬탈하면서 무신론과 진화론을 앞세운 사상 체계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교육 역시 이데올로기 도구로 전락했다. 7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긴 시간은 모든 것을 습관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강력한 사상 개조 속에서 이런 현실에 익숙해졌다. 전통 속의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전통 교육은 어떠했는지 이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당(黨)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 민국 시기에 존재하던 교육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교실에서 사용되는 겉보기에는 생동감 있고 구체적인 어휘들 역시 실상은 꿀을 섞은 독물에 불과하다.

교과서에는 『금색 낚싯바늘(金色的魚鉤)』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은 홍군의 대장정 도중 한 노반장(老班長, 분대장)이 전사들에게 물고기를 먹이기 위해 자신은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물고기를 모두 젊은 전사들에게 양보하고 결국 굶주리고 쇠약해져 사망했다. 낚싯바늘이 ‘금색’이 된 것은 희생정신을 상징한다. 이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는 단 하나의 표준 답안만을 허용한다. 바로 공산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라는 것이다.

『랑야산 오장사(狼牙山五壯士)』라는 교과서 글에서는 항일전쟁 시기 팔로군 전사 5명이 군중과 부대의 철수를 엄호한 뒤 끝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생들이 작성한 독후감에는 흔히 “매우 감동받았고 그들을 본받고 싶다”라는 문장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2013년 역사학자 훙전콰이(洪振快)는 재경망(財經網)에 「초등학교 교과서 ‘랑야산 오장사’에는 여러 곳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역사 고증의 관점에서 관련 세부 사항을 검토하며 오장사가 적을 산으로 유인한 것이 아니라 적군이 본래 이미 그 산에 있었고, 살아남은 두 명 역시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절벽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다 나뭇가지에 걸려 구조됐다고 봤다.

사실 1994년 7월 이미 『창장일보(長江日報)』는 관련 글을 통해 ‘랑야산 오장사’의 역사에는 여러 의문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당시 6반은 5명이 아니라 6명이었고 부반장 한 명이 더 있었으며 그 인물은 적에게 투항한 뒤 살해됐다.

오늘날 중국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중공 이데올로기의 세뇌와 주입 대상이 돼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상상해 보라. 한 사람이 어려서부터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성인이 된 뒤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모든 일에서 표준 답안을 찾고 모든 판단을 상급의 지시에 맡기며,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으며 옳고 그름조차 가리지 않는다. 문화대혁명 시기 자기 교사를 구타해 죽인 학생들, 코로나 시기 주민 건물의 출입문을 봉쇄한 사람들, 각급 공안·검찰·법원이 파룬궁수련자에게 근거 없는 증오를 품고 폭력을 행사한 이들 모두 이런 ‘기계적 도구’가 아니겠는가?

영국 공영방송 BBC는 ‘랑야산 오장사’를 중공 선전의 ‘홍색 경전’으로 지적했다. 국민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항일전쟁 기간 국민정부 군대의 사상자는 약 323만 명, 전사자는 약 133만 명에 달했다. 반면 중공은 항일전쟁 기간 자신들이 이끈 군대의 사상자가 45만 명, 전사자가 16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중공 스스로 내세운 수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군대 사상자 수는 국민정부 군대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실제 수치는 중공에게 있어 영원히 햇빛을 볼 수 없는 절대 기밀로 남아 있다.

보도는 외부에서 중공의 ‘랑야산’에 대해 제기되는 광범위한 의문이 중국 인민들이 역사적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반영하는 동시에 중공 선전에 대한 민의의 불신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거짓을 고전으로 삼아 수십 년간 교실에서 ‘정신적 본보기’로 떠받들었고 밤낮없이 수억 명의 중국 어린이들이 이를 읽고 외우게 했다. 그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사람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미혼탕(迷魂湯)’에 길든 채 성장해 왔다. 그 결과 영혼은 공허해졌고 정신은 메말라 갔다.

사라져 간 생명

중공은 내용 자체를 사상 통일을 훈련하는 도구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배분과 정신적 공간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율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따분한 교과서를 혐오하고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사유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여전히 길든 양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악마의 사악함은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베이징대학의 중국가족추적조사(CFP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 고등학생의 주간 학습 시간은 59.7시간으로 직장인보다 약 11시간 많았고, 중학생은 55.2시간, 초등학생은 46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아이들의 ‘작업 시간’이 단계적으로 늘어나 결국 대다수 성인의 근무 시간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신화망은 2017년 한 보도에서 “생명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중학생 5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전했다.

『생명시보』는 2025년 보도에서 “북의(北醫) 아동발전센터가 발표한 『중국 아동 자살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약 10만 명의 청소년이 자살로 숨진다”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청소년 자살자 중 중학생이 약 51%를 차지해 해마다 5만 명이 넘는 중학생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교육과 과학연구 컴퓨터망』은 2015년 한 글 「자살이 이미 중국 청소년의 제1 사망 원인이 되다. 비극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서 관련 분석을 제시했다. 해당 글은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학생 자살의 대부분이 학업 압박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고 분석했다.

2025년 초 장쑤성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손을 잡고 집단으로 자살한 사건이 모두 5건 발생해 총 37명이 숨졌다. 장쑤성 교육청은 긴급 명령을 내려 관련 소식의 확산을 엄격히 차단하고 성 전역의 교육 시스템에 3일간 휴교 조처를 내렸다. 중공의 언론 봉쇄와 각종 금지령으로 인해 전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비극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의 본래 의미는 사람을 기르고 마음을 기르며 덕을 기르는 데 있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스스로 분별하는 소양을 형성하는 데 있다. 성장한 뒤 모든 사람이 과학자나 사업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며 중국 전통문화에는 ‘360가지 직업, 직업마다 장원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 사람마다 타고난 천명(天命)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순응해야지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중공이 교육을 훼손하고 생명을 독살해 온 범죄는 하나하나 분명히 드러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중국 시민이 깨어나고 있다. 사악함은 간신히 연명하고 있을 뿐 이미 기운이 다해 가고 있다. 붉은 마귀가 사라지는 그때가 바로 중화 전통 교육이 회귀할 때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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