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20여 년간 연로한 수련생들과 함께 수련을 견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5년 가을에 법을 얻은 연로한 대법제자로, 올해 일흔여섯 살이며 은퇴한 교사입니다. 은퇴할 때 저는 ‘내가 가진 약간의 지식으로 법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수련생들을 돕고, ‘늙고’, ‘둔한’ 수련생들을 배척하지 말아야겠다. 그들이 모두 법공부를 하고 법을 더 잘 이해하며 법에서 빨리 제고하도록 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우리는 법공부팀을 결성했는데, 처음에는 다섯 명이었지만 나중에는 일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몇몇 연로한 수련생들은 나이가 다 저보다 많았고, 그녀들에게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어떤 이는 초등학교 2, 3학년, 어떤 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다녔으며, 세 명의 수련생은 아예 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모두 ‘이 법은 정말 좋고 너무나 소중하니, 나는 배워야겠다’는 똑같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제게 수련생을 돕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우리가 이 성스러운 인연을 맺도록 안배해주셨습니다. 아래에 저는 그중 세 분의 수련생 언니와 함께 수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A 언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는데, 그녀는 우리팀이 연로한 사람들이 모인 법공부팀이라는 말을 수련생에게서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녀를 데려온 수련생이 그녀의 상황을 소개했고, 저는 ‘기왕 수련생이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고 싶어 하니 환영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은 쉬웠지만 막상 하려니 정말 어려웠습니다. A 언니는 그때 70대(현재 아흔한 살)였고, 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않았으며, 게다가 귀가 아주 어두워(거의 귀가 먹어) 법공부에 어려움이 더했습니다. 그녀는 단체 법공부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전법륜(轉法輪)’은 비록 읽을 수는 있었지만 틀리게 읽는 곳이 아주 많았습니다. 때로는 한 문장에 두세 개의 오류가 있었고, 고쳐주려 해도 그녀는 잘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제 곁에 앉혔습니다. 그녀가 틀리게 읽으면 저는 그녀를 툭 쳐서 다시 읽게 했습니다. 만약 A 언니가 스스로 고칠 수 있으면 좋았지만, 고치지 못하면 제가 책의 글자를 가리키며 가르쳐주고 고쳐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짧은 한 문단도 3~4분이 걸렸고, 긴 문단을 만나면 더욱 인내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법을 읽을 때도 그녀는 잘 듣지 못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매번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는 그녀를 툭 치고 책장 넘기는 동작을 해야 그녀가 비로소 책장을 넘겼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이러다 발목 잡히는 거 아닐까? 원래 우리 팀 법공부가 느린데, 이러면 더 느려지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좀 조급해졌고 다른 수련생들도 좀 싫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제때에 제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팀 수련생들에게 말했습니다. “A 언니는 우리 연로한 팀을 보고 온 거고, 법공부하러 온 거예요. 다른 팀이 어떻게 하든 우리는 상관 말고 대법의 요구대로 해야 해요. 수련생을 싫어하면 안 돼요.”

우리 팀은 오전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 법공부를 했습니다. 법공부 전에, 모두가 제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하나하나 알려주면, 제가 일괄적으로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A 언니도 제게 그녀의 삼퇴 명단을 알려줬는데, A 언니는 글을 쓸 줄 몰랐지만 모든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고 탈퇴 내용도 모두 분명했습니다. 때로는 서너 명의 이름을 말할 때도 있었는데, 우리 모두는 그녀를 보며 기뻐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청력은 더 나빠졌고 여든한 살 되던 해에 그녀는 이 법공부팀을 떠나 집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수련생들이 법을 읽는 것을 전혀 들을 수 없었고, 가족들도 그녀가 길을 건너는 것을 위험하다고 걱정했습니다. A 언니는 비록 팀 법공부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번 사부님의 새 경문이 나올 때마다 저와 수련생들은 제때에 그녀에게 가져다주었고, 그녀도 가끔 팀에 들러 모두를 보곤 했습니다.

2015년 5월, 사부님께서 새로운 ‘논어’를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즉시 A 언니에게 ‘전법륜’을 가져와 ‘논어’를 교체하라고 알렸습니다. 교체할 때, 저는 수련생들의 책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거나 낱장으로 흩어지거나, 직접 실로 다시 묶었지만 책장이 가지런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A 언니의 책은 보관 상태가 더 나빴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상의해 제가 관련 수련생을 찾아 책을 다시 제본해 오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매우 기뻐했고, 총 다섯 권의 책을 제본해야 했습니다. 책을 다시 가져왔을 때 모두들 책이 흩어지지 않고 가지런해졌으며, 어떤 낡은 표지는 새것으로 바뀐 것을 보고 매우 만족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자신의 책을 알아봤지만, A 언니는 자기 책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것보다 더 깨끗하게 보관된 책 한 권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이 책은 다른 언니의 것이며, 그 언니가 오늘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책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A 언니는 그제야 마지못해 자기 책을 가져갔습니다.

이틀 후, A 언니가 또 와서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꼭 그 책을 가져야겠어요. 내 책을 줘요.” 저는 그녀에게 그 책은 절대 당신 것이 아니라 다른 언니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도 그녀에게 “당신이 가져간 책이 당신 거예요, 당신이 잘못 기억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뜻밖에도 셋째 날, A 언니가 또 와서 만나자마자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꼭 그 책을 가져야겠어요.” 저는 화가 ‘욱’ 하고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래도 수련인인가? 자기 책은 누렇고 더럽게 만들어 놓고, 남의 책이 자기 것보다 깨끗한 걸 보니 갖고 싶은 건가? 다들 그녀가 가져간 게 자기 책이라고 말해줘도 믿지 않으니, 정말 말도 안 돼!’ 저는 A 언니에게 큰 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게 화가 나고,그렇게 큰 소리로 점점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A 언니는 제 상태에 놀라 중얼거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내 책을 돌려받고 싶었을 뿐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를 내요?” 그러고는 그녀는 떠났습니다.

이틀이 지나 저는 냉정을 되찾고 A 언니가 평소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에 제가 농촌에 새해 달력을 보내러 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15일간 불법 구금된 적이 있습니다. A 언니는 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숨을 헐떡이며 법공부팀으로 달려왔습니다. 방에 들어와 저를 보더니 바로 사부님의 법상 앞으로 가서 엎드려 세 번 절을 했습니다. 저와 팀 수련생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모두 눈물을 흘렸고, 그녀가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음을 모두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A 언니는 왜 그랬을까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순이 생길 때 갑자기 나타나지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직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은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이 일이 나타난 것은 제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며,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보거나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보고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됐습니다. 평소 이 연로한 수련생들이 저를 매우 존중한다고 느꼈는데, 이번 A 언니의 표현은 저를 불신하는 것이어서 억울하고 마음이 불균형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안으로 찾았고, 제가 인(忍)을 실천하지 못하고 연로한 수련생에게 큰 소리로 쏘아붙였으며, 더욱이 선(善)을 실천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사심을 보았습니다. 본래 제 헌신은 조건 없는 것이라 여겼지만, 사실 제가 이 연로한 수련생들에게 보인 인내심과 선한 마음은 모두 조건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흥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와 흥정하는가? 수련생과? 사부님과?’ 연로한 수련생들을 잘 이끌고,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은 바로 저의 역사적인 서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수(同修)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깨달은 후 저는 서둘러 연로한 수련생의 집으로 찾아가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다음은 B 언니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올해 여든다섯 살이며 팀의 가장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입니다. 따져보니 저와 B 언니는 알게 된 지 21년이 됐습니다. B 언니는 성실하고 매사에 진지하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녀 역시 귀가 어두웠는데, A 언니보다는 조금 나아서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조금은 알아들었지만 전부는 아니었고, 뜻을 잘못 이해하기 쉬워 늘 대화에 끼어들어 불필요한 오해를 사곤 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과 함께 살았기에 말수가 적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형성돼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닥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늘 그녀를 위로했고 팀에서도 자주 “대법이 우리를 알게 했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니,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고 이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07년경으로 기억합니다. B 언니가 며칠 동안 법공부에 나오지 않아 제가 다른 수련생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상황을 몰랐습니다. 그날 법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우연히 B 언니를 만나, 왜 며칠간 법공부에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울면서 말했습니다. “집에 큰일이 났어요.” 알고 보니 B 언니의 딸과 사위가 실직한 후 오락실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공상국에서 돈을 요구하러 왔는데 돈을 내지 못하자 게임기 몇 대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사위가 홧김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B 언니 가족에게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매일 딸 곁에서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저는 당시 그녀를 몇 마디 위로하고, 다음 날 과일을 사들고 B 언니의 집으로 가서 그녀와 법에 입각해 교류했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운명에 달려 있으니 우리 수련인은 그것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빨리 그늘에서 벗어나 법공부팀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생활에서는 딸과 외손자를 도와 그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B 언니는 다시 팀 법공부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착실한 분과 저 사이에도 심성을 단련하는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2019년경, B 언니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때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파룬궁이라는 말을 듣자 B 언니에게 “당신네 파룬궁의 우두머리가 돈을 다 미국으로 빼돌렸지” 등 비방하는 말을 했습니다. B 언니는 놀랍게도 이 거짓말들을 다 곧이들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이 말을 다른 두 수련생에게 전하면서 그녀들에게 이 말을 제게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에는 제가 이 지역 책임자 중 한 명이었기에 바로 ‘돈을 빼돌린 그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수련생이 농담처럼 이 말을 제게 전했고 저는 당시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모르는가? 돈 문제에 있어서 남의 돈 한 푼 탐한 적 없고 늘 내놓기만 했어. 우리집의 작은 자료점도 다 내 돈으로 소모품을 사고 자료를 만들어 우리 팀 수련생들에게 사용하게 했지. 매일 밤 10시까지 바쁘게 일하고 다음 날 모두에게 나눠주면서도 한 번도 돈을 요구한 적 없고, 이 자료를 내가 만들었다고 말한 적도 없이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어.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차례 수련인은 돈을 모으거나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모금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 정말 B 언니에게 묻고 싶네. 당신은 날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지?’ 저는 겉으로는 참았지만 며칠 동안 그녀와 말도 섞기 싫었고, 말을 걸어도 퉁명스럽게 대하며 이전의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서야 저는 B 언니가 유언비어를 믿은 것이고, 저 역시 사악의 계략에 빠져 수련생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세히 안으로 찾으며 제게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매우 중시하는 명예욕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당연하게도 ‘내가 당신에게 잘해주니 당신도 나에게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산당 당문화의 쟁투심,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마음, 질투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찾다 보니, 제 마음속 원망의 얼음이 녹아내렸고 B 언니가 예전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즉시 B 언니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해서는 안 됐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그녀에게 사회의 악의적인 사람들이 퍼뜨리는 유언비어를 믿지 말라고, 우리 사부님께서는 한 번도 수련생에게 돈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팀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 함께 법에 입각해 교류하며 공동으로 제고해 각자의 수련에 불필요한 교란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수이기 때문입니다. B 언니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C 언니 이야기입니다. C 언니는 올해 여든한 살로, 제가 가장 일찍 알게 됐고 가장 많이 협력한 수련생입니다. ‘7·20’ 이전에, 우리는 같은 연공장에서 아침에는 연공하고 저녁에는 법공부를 했습니다. 비록 그때는 서로 이름도 모르고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지만, 서로가 대법 수련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악이 하늘을 뒤덮을 듯한 탄압을 시작한 후, 저와 C 언니,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수련생이 법공부팀을 결성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매주 일요일을 이용해 법공부를 했는데, 하루에 서너 강씩 법공부를 하고 법리에 대해 교류했으며, 저녁에는 밖에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거나 진상 스티커를 붙였고, 때로는 현수막도 걸었습니다. 그 몇 년간, 우리는 이렇게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촉진하면서 그 암울했던 시기를 헤쳐 나왔습니다. 제가 은퇴한 후 연로한 사람들을 위한 법공부팀을 만들면서, 우리 몇 사람은 헤어지게 됐습니다.

2010년경, C 언니도 우리 연로한 법공부팀에 왔습니다. 그 몇 년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자주 차를 타고 농촌에 가서 진상 자료와 새해 달력을 배포했는데, 저와 C 언니도 참여해 집집마다 달력을 나눠주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주로 읍내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두 사람의 발길은 읍내의 크고 작은 거리와 골목, 그리고 외곽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특히 매년 진상 달력을 배포할 때면 우리는 달력 두 보따리와 진상 자료, 장식품, 호신부(護身符)를 제 자전거에 싣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보통 걸으면서 말했는데, 주로 제가 말하고 C 언니가 정념을 발하며 모든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전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C 언니는 늘 다리가 아프다고 했고 많이 걸으면 발바닥도 아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달력을 배포할 때가 되면, 제가 C 언니에게 갈 수 있냐고 물었고 C 언니는 늘 단호하게 “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전거를 밀고 길을 걸을 때 자전거가 무겁게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C 언니가 뒷좌석을 손으로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그녀는 좀 더 가볍게 느꼈겠지만 저는 길을 걷는 내내 조금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 동행하는 것이 매우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길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 힘을 좀 아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그녀를 뒤에 남겨두게 돼, 저는 하는 수 없이 인내심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C 언니를 귀찮아하고 있잖아?’ 읍내에는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많다고 생각해 외곽으로 나갔는데, C 언니는 거의 여든 살 노인임에도 저와 오전에 함께 법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10km가 넘는 길을 왕복했습니다. 때로는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비틀거리며 밭으로 들어가 달력을 전해주었는데, 그녀는 힘들다거나 피곤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수련생입니까! 이것이 바로 수련인이고 속인이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귀찮아할 수 있겠습니까? 이후 저는 C 언니에게 “자전거 잡으세요, 제가 끌어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때로 시골의 작은 길을 걸으며 곁에 있는 C 언니를 보면 제 마음이 훨씬 든든해졌고, 수련생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둘은 때로 걸으면서 대법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쳐, 주위의 생명들이 듣게 했습니다.

C 언니는 방향 감각이 없고 길을 몰라서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나가거나 진상을 알리러 나갈 때면 어디가 어딘지 몰랐습니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저는 C 언니를 그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데려다주고, 그녀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어느 쪽으로 가야 집이 나오는지 알려주고, 그녀가 문제없이 갈 수 있음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나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절대로 수련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설이 지난 후, C 언니가 우리집에 와서 그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수련생이 자기와 법공부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집에 오는 것보다 노정의 3분의 2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집은 읍내 동쪽에, C 언니 집은 읍내 서쪽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C 언니가 다른 수련생에게 가는 것을 생각하니, 비록 좀 아쉬웠지만 그녀가 확실히 많은 수고를 덜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설이 지난 후, 수련생으로부터 C 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주 ‘죽음’ 등 부정적인 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그녀와 법공부를 하던 수련생의 가족이 그 말을 듣고 책임을 지게 될까 봐 C 언니가 법공부하러 오는 것을 막았고, C 언니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게 됐습니다. 최근 제가 그녀를 보러 갔는데 그녀의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매일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 그녀는 법공부하고 정념을 발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C 언니가 제게 정념을 어떻게 발하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매일 정념을 발하시잖아요? 그런데 왜 또 저한테 물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병업 난 속에 있는 연로한 수련생이 법공부 환경이 없고 수련생 간의 교류가 없으면, 구세력이 바로 그녀를 끌어내려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난 모른 체해서는 안 되며, 내가 수련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내가 닦아 없애야 할 사람 마음이 있고,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 C 언니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8층 높이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70대가 넘은 저도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여름에는 문을 열자마자 찜통 같은 열기가 훅 끼쳐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인이고 수련인에게는 나이 제한이 없으며, 수련 환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생이고 마땅히 서로 돕고 함께 제고하며, 수련의 기연(機緣)을 붙잡아 함께 역사적 대원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수련해야 마음이 한곳에 있을 수 있으니 공동정진 서로 도우면서 신이 알려준 목적지로 걸어가세나”(홍음4-같은 길).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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