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고문으로 장애 입은 충칭 74세 류판친, 또 부당한 재판 받아

[명혜망](충칭시 통신원) 충칭시 파룬궁수련자 류판친(劉范欽)은 2025년 4월 27일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에 납치, 가택수색을 당하고 베이베이 구치소에 감금됐다. 류판친은 5월 12일 불법적으로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6월 22일 베이베이구 검찰원에 의해 충칭시 장베이구 검찰원으로 이송돼 기소됐으며, 9월 11일 장베이구 검찰원에 의해 장베이구 법원으로 기소됐다. 11월 12일, 그녀는 충칭시 장베이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충칭 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사법국은 류판친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의 무죄 변론을 불허했다. 류판친이 박해받는 상황에 대해 외부의 관심을 바란다.

류판친은 1951년생으로 전 충칭시 베이베이구 광학기기 공장 간부였다. 그녀는 심각한 비염, 인후염, 편도선염, 심각한 피부 건조증 등 여러 고질병을 앓았지만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1994년 류판친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온갖 고질병이 치료 없이 나았으며, 이후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됐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수련했고, 직장에서 성실했으며, 이익을 다투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면 안으로 찾았으니, 그녀는 동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좋은 간부였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 수가 많아지자 중공은 몹시 두려워했고, 장쩌민 범죄 집단은 1999년 7월 파룬궁에 대한 광란적인 박해를 감행했다. 류판친은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불법 감금, 강제노동,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한때 혹형으로 중상을 입고 장애를 갖게 됐다. 다행히 출소 후 그녀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신성한 위력을 실증했다.

류판친이 중공에 박해받은 사실 개요

1999년 8월, 류판친은 베이베이 공안분국 경찰에 납치돼 만 하루 동안 불법 구금됐다. 경찰은 그녀에게 진선인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0년 1월, 류판친은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 국무원 신방판공실로 청원하러 갔다가 충칭시 공안국 베이징 주재 사무소 경찰에 납치돼 충칭으로 끌려가 베이베이 구치소에 감금됐다. 이후 그녀는 불법적으로 1년간 강제노동을 당했다.

충칭시 마오자산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류판친은 신앙 포기를 거부해 9개월간 초과 감금됐다. 매일 10여 시간 동안 강제 노역이나 강제 세뇌, 초고강도 체벌, 햇볕에 노출되는 고문 등을 당해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다. 중공 요원들은 또 경제적 박해를 가해, 경찰이 베이징으로 류판친을 납치하러 간 왕복 항공권과 베이징에서의 모든 경비 수천 위안을 류판친의 월 연금에서 공제했는데, 몇 년간 공제했다.

2001년 11월, 류판친이 노동수용소 문을 막 나섰을 때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요원들에게 강제로 납치돼 베이베이구 당교 세뇌반에 불법 감금돼 9일간 강제 세뇌를 당했다.

2002년 9월, 류판친은 장기간 미행, 감시, 괴롭힘을 당해 집에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유리하는 신세가 됐다.

2003년 6월 21일 밤, 다두커우구 공안분국 경찰이 문을 부수고 침입해 임대주택에 있던 류판친 등 3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하고, 1만 위안이 넘는 현금과 컴퓨터, 프린터, CD 등 총 2만여 위안 상당의 금품을 약탈했으며, 3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다두커우구 구치소에 감금했다.

6월 27일경, 다두커우 공안분국 부국장 천보(陳波) 등의 기획하에 경찰은 류판친을 승용차에 태워 비밀 장소로 데려갔다. 공안분국 주임 화융(華勇),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지대장 원팡훠(文方火)가 현장 지휘를 맡았고, 경찰 리커(李軻), 탄쉬(譚旭), 후빈(胡彬), 황샤오웨(黃小月) 등은 두 조로 나뉘어 돌아가며 류판친에게 혹형을 가해 자백을 강요했다. 그들은 잔인한 댜오카오(吊铐, 수갑을 채워 매다는 형벌) 혹형을 사용해 류판친의 두 손을 뒤로해 쇠창살에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그녀의 허리와 등은 창문 벽 가장자리에 부딪혀 다쳤고, 졸거나 대소변을 보는 것도 금지됐다. 이렇게 몸이 변형되고 뒤틀리는 고강도 댜오카오는 30여 시간 동안 계속됐고, 류판친은 살을 에는 듯한 고통에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다. 류판친의 두 팔은 그 자리에서 장애를 입었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으며, 두 손은 완전히 불구가 됐다.

酷刑演示:吊铐在铁窗上
고문 재연: 쇠창살에 수갑을 채워 매단 모습

류판친이 구치소에 감금된 2년여 동안, 경찰은 사실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류판친이 법에 따라 가족을 만날 권리를 박탈했고, 가족들도 류판친의 실제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충칭시 정법위 서기 겸 공안국장 주밍궈(朱明國)의 지시하에 충칭시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부문은 법을 유린하며 혹형으로 장애를 입은 류판친에게 불법적으로 9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는 긴 형기와 감옥의 폐쇄적인 사악한 환경을 이용해 류판친을 감옥에서 사망에 이르게 해, 입막음하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였다. 2004년 6월부터 12월까지 반년 남짓 기간에 경찰은 세 차례나 류판친을 융촨 여자 감옥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그녀의 장애가 심각해 모두 수감 거부됐다. 2005년 8월, 죄악의 거래를 통해 융촨 여자 감옥은 돈을 받고 류판친을 불법 수감했다.

류판친은 여자 감옥으로 이송된 후에도 줄곧 신앙을 견지하며 ‘전향’을 거부해 더욱 심한 박해를 받았다. 매일 10여 시간씩 작은 의자에 앉아 강제 세뇌를 당했고, 생필품 구매를 제한받았으며, 가족과의 통화도 취소됐다. 감옥경찰은 또 수십 명의 재소자들을 선동해 류판친에 대한 증오심을 갖도록 열악한 환경을 조성했고, 류판친이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해 온갖 압력을 가했으며, 류판친에게 매일 10여 시간의 노역을 강요해 그녀를 극심한 고통 속에 버티기 힘들게 했다. 감옥경찰은 심지어 “죽어봤자 정부가 80위안(화장비) 보상해주고 태워버리면 그만인데, 어쩔 거냐?”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20일, 류판친은 심각한 장애를 안고 감옥 문을 나섰다. 충칭시 여러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그녀는 양팔의 상완 신경총 손상, 양어깨 관절 인대 손상, 그리고 신경과 인대 손상으로 인한 양어깨 관절 탈골, 그 외에도 허리와 꼬리뼈 부분 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에 대해 진료한 병원의 의사들은 모두 속수무책이었고, 의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할 뿐 그녀의 상지 기능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류판친은 대법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다. 연공할 때, 두 손을 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연공 음악의 리듬에 맞춰 약간 흔들기만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두 손으로 연공하는 표준 동작을 생각했다. 가부좌를 할 때 그녀는 한쪽 다리만 올릴 수 있었고, 1분 1분 고통을 참아내다 나중에는 양쪽 다리를 올릴 수 있게 됐다. 1년 후, 류판친은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그녀는 연공 동작이 완전히 표준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할 수 있게 됐고, 당시 80세가 넘어 몸이 아픈 노모를 돌볼 수도 있게 됐다. 멀리 천 리 밖에 있던 이모 가족이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합니다!”

(류판친이 중공에 박해당한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기사 ‘나는 30여 시간 댜오카오를 당해 두 팔이 불구가 된 이후…’를 참조)

 

원문발표: 2025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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