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7년 됐고 올해 72세입니다. 대법(大法) 수련은 제 신체와 정신을 환골탈태하게 했습니다. 고희(古稀)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저는 얼굴색이 불그스레하고 머릿결이 깨끗하며 걸음이 가볍고 늘 웃으며 표정이 맑아 20대 때의 상태보다 좋습니다.
대법 수련으로 새 생명을 얻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했을 때 폐결핵에 걸려 치료를 위해 반년 동안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으셨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식욕이 없고 식사량이 적어 저는 선천적으로 허약하고 심장 발육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반생 동안 한약을 장기 복용해 약병을 들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동료들은 저를 ‘특별식을 먹는 사람’이라며 자주 놀렸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기공(氣功) 열풍이 불어 저도 병을 고치기 위해 참가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내장 곳곳에 문제가 생겨 몸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타지에서 일해 저는 집안일이 바쁘고 직장 업무량이 많아 힘들었으며, 틈틈이 주식 투자까지 하며 돈을 좀 벌려 했습니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저는 자리에 눕게 됐습니다.
1998년에 저는 신부전증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온몸이 붓고 호흡이 곤란해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고 정말 하루하루가 일 년 같았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부모님과 형제들의 저축까지 모두 써버렸습니다. 보름 후 퇴원해 집에서 요양했습니다. 그때 직장이 어려워져 월급이 나오지 않아 저는 한약도 마실 수 없게 됐습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저는 다행히 파룬따파를 만났고 그때부터 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친구가 제게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주고 침대에서 가부좌[동공(動功)은 서서 할 수 없었음]를 가르쳐주었습니다. 3일 만에 전법륜을 다 읽고 나니 생각이 확 트였습니다. 저는 인생의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임을 알게 됐고, 병통은 업력(業力)으로 인한 것이며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신체를 정화해주신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는 의미를 깨닫고 삶의 희망을 느꼈으며 비할 바 없이 감격스럽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겠다’라는 생각이 솟아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찍 일어나 아침 연공(煉功)에 참가했고 저녁에는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으며 일요일에는 홍법(洪法)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충실하고 즐거웠습니다. 반년 후 제 몸은 완전히 회복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강하고 편안한, 진정으로 병 없이 몸이 가벼운 상태를 체험했습니다. 직장 동료, 친척, 친구들 모두 파룬따파의 기적을 목격했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평화로운 마음, 넓은 흉금
수련 전 저는 남과 다투지는 않았지만 이득과 손해, 이익,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늘 속으로 화를 냈고 자주 식욕을 잃어 위가 늘 빵빵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대법 수련 후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며 저는 많은 법리(法理)를 깨닫고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생활 속에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고,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으며 남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딸이 아들을 낳았을 때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버스를 1시간 타고 가서 외손자를 돌보는 것을 돕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내다 보니 사돈 댁은 유능하고 부지런했지만 매우 고집이 셌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고, 그녀 뜻에 맞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며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수련인의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하며 화내지 않고 말다툼을 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그것을 보고 불만스러워하며 시어머니가 저를 괴롭힌다고 생각해 저를 위해 따지려 했습니다. 저는 딸을 타일렀습니다. “손님은 주인의 뜻을 따르고 그곳의 풍속을 따라야지. 네 시어머니가 생활 속의 일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경험이 있으니 내가 잘 모르는 건 좀 배워야 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 따지지 말고 너도 화내지 말거라.” 저는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그들을 포용해 고부간의 갈등을 풀었습니다.
한번은 설날 저녁에 딸이 온 가족을 식당에 초대해 많은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식당에 사람이 많아 요리가 매우 늦게 나왔습니다. 잠시 후 어린 외손자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나가서 놀자고 보채는 바람에 딸과 사위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식탁에는 사돈 부부와 저, 그리고 제 남편만 남았습니다. 요리가 다 나오고 우리도 식사를 마쳤지만 음식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돈이 음식을 싸 가려고 비닐봉지 몇 개를 준비했습니다. 음식을 담을 때 저는 그녀 혼자 하기 불편해 보여 무심코 젓가락을 들어 도왔는데, 갑자기 그녀가 얼굴이 어두워지며 “치워요!”라고 소리치더니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제 젓가락을 쳤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나가버렸고 저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제게 “당신은 너무 물러터졌어. 그 여자는 정말 지독하군!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잖아”라며 마구 욕을 했습니다. 이 일로 원망이 생겨 남편은 몇 년간 사돈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생각해본 끝에 마침내 문제를 찾았습니다. 사돈이 제가 먹던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을 보고 더럽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매우 꼼꼼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세심하지 못했고 공용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아 생긴 일로 제게 주요 책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 비교적 격식 없이 행동해 좋은 위생 습관을 들이지 못했는데 이번 일은 교훈이 됐습니다.
제 잘못을 찾은 후 사돈에게 사과하자 그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당신 체면을 깎아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해요”라고 멋쩍어하며 말했습니다. 그 후 그녀의 태도는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저는 사돈과의 교류를 통해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마치 거울처럼 제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아와 고집 센 모습을 비춰주었습니다. 평소 집에서는 제 말대로 했고 남편은 늘 “당신만 옳고 당신만 맞지”라고 불평하곤 했습니다. 이 일은 제 집착을 보게 해 수련 속에서 그것을 제거하고 심성(心性)을 제고하게 했습니다.
지금 사돈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마음이 넓고 어울리기 편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수련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입니다. 사돈은 이미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사부님께서 일반인을 위해 쓰신 경문을 본 후 “정말 잘 쓰셨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도덕이 승화하고 심성이 제고되다
2000년 말, 저는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경찰에 불법적으로 잡혀 돌아와 현지 구치소에 9개월간 갇혔습니다. 그 기간에 제가 일하던 직장이 파산해 정부에서 직원들의 대우 수속을 처리했는데 저는 퇴직 처리 후 바로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법적으로 감금돼 수속을 밟을 수 없었고 정책상 반드시 전 직원(單位)이 일괄적으로 한 번에 처리해야 하며 기한이 지나면 추가로 처리해주지 않았습니다.
직장 상사는 몹시 초조해하며 구치소로 저를 찾아와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면 내보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상사는 제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퇴직금이 없는데 수십 년을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잘 생각해보고 이틀 후에 어떻게 할지 답을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이것은 정말 실제적인 문제이자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 평정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하룻밤을 생각한 끝에 저는 ‘보증서’를 절대로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저 역시 직장 동료들의 전체 이익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저는 즉시 펜과 종이를 들어 상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보증서’는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제 일은 일단 제쳐두고 나중에 퇴직금이 없더라도 직장이나 상사를 원망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파산한 직장이 많아 수속 처리에 시간제한이 있었기에) 서둘러 직원들의 수속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편지를 쓴 것은 상사가 일을 처리할 때 문자 기록을 근거로 삼아 수월하게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총 4년 반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2004년 4월 집으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2003년에 제 퇴직금이 처리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동료는 제 편지를 직장에 전달했을 때 상사와 동료들이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저를 매우 동정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들은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한 직원들을 조직해 상급 기관에 네 차례나 청원했고, 동시에 직원들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한 끝에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동료들의 관심과 도움에 마음속 깊이 감사했고 이것이 그들의 파룬따파에 대한 동정심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제가 파룬따파 수련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량한 그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를 알아보기를 바라며 세상의 인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내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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