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약석(若石)
[명혜망] 20여 년의 정법수련에서 무수한 득실을 경험했습니다. 잃은 것은 모두 나쁜 것들, 즉 생생세세 지은 업력과 각종 좋지 않은 사람 마음, 갖가지 집착들이었고, 얻은 것은 신체의 정화, 심성의 제고, 경지의 승화, 그리고 우주대법의 층층 법과 동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72살이고 대법을 수련한 지 이미 20여 년이 됐습니다. 저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었으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와 인연을 맺은 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법이 악당의 잔혹한 탄압을 받은 이래 저는 현지 수련생들과 협력해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으며 저의 먼 옛날 서약을 이행하고 사부님께서 닦아주신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신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의 20여 년 수련 과정을 간략히 서술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기쁘게 법연을 맺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다
젊었을 때 저는 동년배 중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이 넘어 국(局)의 중간 간부가 됐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듯 심각한 교통사고는 저를 고난의 심연으로 내던졌습니다. 경추, 대퇴부, 오른발에 광범위한 분쇄성 골절을 입었고 오른발이 틀어졌습니다. 7차례의 큰 수술 끝에 결국 중증 마비가 됐습니다. 비록 양쪽 목발을 짚고 겨우 걸음을 옮길 수는 있었지만 평생 장애는 이미 확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일과 생활 능력을 상실하고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는 몇 년은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았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경추의 신경 압박으로 생긴 신경성 경련은 약으로 고칠 수 없었습니다. 뇌가 1분도 편히 쉴 수 없었고 끝없는 경련은 저를 초조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경련 때문에 매일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고통 속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날이 새면 날이 저물기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끝없는 고통과 참기 힘든 괴로움은 저를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죽어야 고통을 줄이고 가족에게 끼치는 폐를 줄일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신의 구원을 바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스침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악당에게 ‘무신론’을 주입받았기에 신(神)의 존재는 그저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 위안일 뿐이라고 느꼈고 정말 신이 있으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부처님과 신이 있어 저를 이 끝없는 고해에서 구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동안 가족이 밖에 나가 관상쟁이를 찾아가 제 운명을 봐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전생에 나쁜 짓을 해 금생에 채권자가 찾아와 제 목숨을 거두려 세 번 채찍질해 세 군데를 다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조상 중에 불법(佛法) 수련을 한 분이 계셔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돌아와 제게 이 말을 전하자 저는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전생의 원수가 저를 세 번 채찍질해 세 군데를 다치게 했다는 점은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확실히 경추, 대퇴부 골절, 오른발 변형과 틀어짐 이렇게 세 군데를 다쳤습니다. 조상이 수련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집 몇 대 조상 중에 출가해 승려나 비구니가 된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대법을 배우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생생세세 곁에서 저를 보살펴주시고 보호해주셨음을 알게 됐습니다. 금생만 해도 저는 어릴 때 여러 차례 큰 재난에도 죽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부님께서 남몰래 보호해주셔서 제가 장성해 대법을 수련할 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번 심각한 교통사고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였습니다. 구세력은 원수가 빚을 받는 것을 이용해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 계책을 이용해 제가 빚을 갚게 하시면서도 목숨을 잃지 않게 해 대법 수련으로 나아갈 길을 닦아주셨습니다. 만약 교통사고로 인한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면 공산당 당문화가 머릿속에 가득 찼던 저는 반본귀진이라는 이 신의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정을 아는 사람에 따르면, 교통사고가 난 그 도로는 전후로 여러 차례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피해자 중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저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사지가 모두 온전했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가 연공 조건을 갖추어 대법에 동화하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1995년 하반기에 파룬따파가 우리 시에 전해졌습니다. 대학 시절 여학생 동창이 보도소 소장이 돼 제게 연공을 권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저는 당문화에 너무 깊이 중독됐고 홍진(紅塵) 속에서 너무 오래 미혹돼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반년 후 어느 날, 저는 거리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그 동창을 다시 만났는데 보자마자 크게 놀랐습니다. 이전에 그녀는 병약해 얼굴이 누렇고 수척했으며 걸을 때 기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그녀는 마치 10여 년은 젊어진 듯했고 살도 올랐으며 얼굴은 희고 불그스레했습니다. 말과 행동 사이에는 낙관과 상서로움이 넘쳐났습니다. 만약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저는 전혀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짜 신을 만났구나, 내 운명이 바뀌겠구나, 나도 살아갈 희망이 생겼구나!’ 동창은 이 기회에 다시 제게 수련을 권했고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저를 연공장으로 데려갔는데 안면이 있는 듯한 수련생들이 잇달아 제게 인사를 건넸고 자비롭고 상서로웠습니다. 그날 밤 저는 4장 동공 동작을 다 배웠습니다. 이튿날 마침 새로운 9일 법공부 반이 시작돼 저는 참가했습니다. 그날 밤 침대에 눕자마자 저는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잘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놀랍고 기뻤습니다. ‘대법이 이렇게 신기하다니!’ 법공부 반에 참가한 둘째 날 법을 듣는 교실에 막 들어서는데 이마가 갑자기 모였다 오므라들며 순간적으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기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상태와 똑같았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외력으로 진수제자에게 천목(天目)을 열어주시는 상태였습니다.
수련한 이후 제 삶의 질은 개선됐습니다. 경련이 비록 여전히 때때로 발생했지만 정도는 갈수록 가벼워졌습니다(지금은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연공한 지 얼마 안 돼 몇 년간 앓던 고혈압이 정상 수치로 떨어졌고 목 통증 고질병도 신기하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여섯 살 때부터 목 통증을 앓아 꼬박 40년간 저를 괴롭혔고 저는 줄곧 그것이 암으로 변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수련 후 10여 년간 목이 몇 차례 정화되고 조정됐는데 모두 금방 나았고, 이후 다시는 목 통증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을 듣지 않던 두 다리(경추 신경 압박으로 걸음이 불안정해 자주 넘어졌음)도 수련 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정상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저도 할 수 있었고 아주 힘든 육체노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소중한 것은 대법과 인연을 맺은 후 매일 좋은 사람이 되는 행복을 체험하고 대법수련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 암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고통을 참고 연공하다
대법 서적 ‘전법륜(轉法輪)’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연공장의 수련생들은 사부님께서 일찍이 법회에서 창춘(長春) 수련생들이 법 암기 열풍을 일으켰던 일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며, 우리도 사부님 말씀을 듣고 우주대법을 외워야 매사에 법과 대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법을 외우려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법륜’ 앞의 ‘논어’를 외웠는데 아랫글을 외우면 윗글을 잊어버려 겨우 두 쪽짜리 ‘논어’를 며칠이 지나도 다 외우지 못했습니다. 이때 저는 속으로 덜컥 두려웠습니다. ‘300여 쪽의 거작을 어느 세월에 다 외운담?’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대법은 초범적이고 법 암기 과정 역시 초범적일 것이며 굳은 마음으로 외우고 법 암기 과정을 수련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가 시간을 모두 법 암기에 사용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외웠으며 걸을 때도 외웠고, 심지어 깊이 잠든 속에서도 법을 외웠습니다. 외운 뒤에는 저녁에 책을 덮고 순서대로 외우고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외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전날 외운 것을 복습했습니다. 한 강을 다 외운 후에는 반복해서 외웠고 책을 덮고 한 강을 다 외워 기억한 후에야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법은 지혜를 열어줍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쪽도 다 외우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하루하루 점차 늘어나 제3강을 외울 때는 하루에 7~8쪽을 외울 수 있었고 기본적으로 하루에 소제목 하나씩을 외웠습니다. 반년 남짓한 시간에 한 번을 다 외웠습니다. 이어서 다시 두 번째 외웠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 외울 때는 이미 거의 다 잊어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한 번을 다 외웠고 저도 피안(彼岸)에 도달했으며 비록 최종 목표와는 아직 거리가 멀었지만 이미 성공적으로 한 번을 다 외웠기 때문입니다.
법 암기 과정에서 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점차 깊어졌고 저도 모르게 각 방면에서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사부님께서는 줄곧 저를 위로 밀어주셨고 끊임없이 신체를 정화해주셨으며 끊임없이 심성 고비를 넘기게 해주셨습니다. 신체는 점차 젊은이의 방향으로 되돌아가 주름이 줄고 피부가 고와졌으며 허리가 꼿꼿해지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다 보니 제 심성은 끊임없이 승화했고 속인 속에서 꿈에도 그리던 명(名), 리(利), 정(情)과 저항할 수 없었던 유혹, 내려놓지 못했던 욕망들을 점차 법공부 속에서 담담하게 보고 내려놓게 됐습니다.
법 암기의 재미를 맛본 저는 계속 외웠습니다. 두 번째 외울 때는 석 달이 걸려 다 외웠습니다. 이어서 세 번, 네 번 외웠고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2009년 납치될 무렵 저는 기본적으로 책을 떼고 ‘전법륜’을 통째로 외울 수 있었습니다.
2009년 저는 3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전 2~3년간 저는 현지 조율인 중 한 명으로 정체(整體)를 형성하고 진상 자료를 시 주변 농촌에 빈틈없이 전면적으로 배포하며 NTD TV를 보급하는 등 방면에서 일부 유익한 일을 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칭찬 속에서 머리가 점차 부풀어 올라 자아중심적인 마음, 과시심,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질투심, 쟁투심 등이 모두 드러났고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혀 감옥에 갇혀 박해받았습니다. 막 암흑 감옥에 도착했을 때는 사악이 충만한 환경에 처해 정념이 부족해 한때 사악에게 세뇌당해 양심에 어긋나게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썼습니다. 대법을 벗어난 후 다시 망망하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돌아가니 마음속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밤이 깊어 고요할 때 저는 스스로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렸는가?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틀렸는가? 내 몸은 대법을 수련하고서야 장애에서 정상이 된 것이 아닌가?’ 냉정하게 생각한 후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법은 바르고 좋으며 중국공산당(중공)은 사악하고 악하다. 거짓말을 간파하고 사부님과 법을 믿으며 확고부동하게 사부님을 따라가야 한다.’ 감옥에 갇힌 각지의 수련생들 대다수는 결코 진정으로 ‘전향’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만나면 눈빛 하나, 미소 하나로 대법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전달했습니다. 나중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교류하기 시작했고 사부님 경문을 전달했습니다. 저는 매일 ‘홍음’을 수없이 외웠고 ‘전법륜’도 외우려 시도했지만 이미 외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을 후회했고 사부님께 죄송했습니다. 일단 나가면 반드시 법공부와 법 암기를 잘해 허비한 시간을 보충하고 대법과 중생에게 조성한 손실을 만회하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수련생들이 제때에 대법 서적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매분 매초 시간을 다잡아 ‘전법륜’을 외웠고 다시 ‘전법륜’을 익숙하게 외워 확실히 기억했습니다. 동시에 사부님 각지 설법과 모든 대법 서적을 공부했습니다. 오랜만에 대법 서적을 받들자 눈물이 샘솟듯 했습니다.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아 머리가 둔해져 법 암기에 어려움이 더해졌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저는 기본적으로 ‘전법륜’을 다시 익숙하게 외웠지만 아직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고, 여전히 글자를 빼먹거나 더하거나 틀리게 외우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한 강을 통독하고 한 강을 외우는 방식을 채택해 이렇게 연속적으로 번갈아 가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몇 번을 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법공부와 법 암기는 법공부의 질을 높여주었고 법의 매 구절이 사상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으며, 말과 행동에 법의 구현이 있었고 저의 온몸 모든 분자 세포가 법 속에 녹아들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은 연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시려 성명쌍수 공법을 전해주셨고 제자들이 심성 수련과 동작 연마를 통해 본체(本體)를 전화(轉化)하고 우주 특성에 동화해 최종적으로 원만회승(圓滿回升)에 도달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매번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연공할 때마다 마치 사부님께서 바로 앞에서 지켜보시는 듯했고 매 순간 사부님의 드넓은 불은(佛恩)을 입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연공 과정에서 저는 일반 수련생들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중증 마비로 처음 대법에 들어설 때 저는 양쪽 목발을 짚고 걷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4장 공법인 ‘파룬주천법(法輪周天法)’을 연마할 때는 전혀 쪼그려 앉을 수 없었고 계단을 붙잡고서야 겨우 천천히 쪼그려 앉을 수 있었는데 아파서 온 머리에 땀이 났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고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연마했고 금방 연공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연공을 마치면 몸이 매우 편안했고 다리도 말을 잘 들었으며 걷는 것도 가벼워졌습니다(다만 다리를 약간 저는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10여 리(약 5km) 길을 걸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가부좌였습니다. 장애를 입은 후 온몸의 관절이 굳어 구부릴 수 없었습니다. 앉을 때도 누군가 부축해야 겨우 앉을 수 있었습니다. 다리를 틀 때 책상다리(散盤)도 견딜 수 없었고 아파서 입을 씰룩거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잠깐 가부좌를 하지 말고 몸이 회복된 후에 다리를 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금방 이 생각을 부정했습니다. ‘이것은 교란이다, 배제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성명쌍수 공법을 연마하며 최종 목적은 도(道)를 얻어 원만하는 것인데 이 정도 고통도 참지 못하면서 무슨 수련을 한단 말인가? 나는 여러 차례 저승 문턱에서 돌아왔고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고통이 두렵겠는가?!’
저는 앉아서 힘껏 두 다리를 눌렀는데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흔들렸습니다(신경성 경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을 연공 음악에 집중해 음표 하나하나를 숨죽여 따라가며 1초 1초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어떤 때는 숨이 넘어올 것 같고 곧 기절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께서 반드시 저를 지켜보시며 제가 진수하는지, 대인(大忍)의 마음이 있는지를 시험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 마음은 에너지로 가득 찼고 용기가 배가 됐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진수제자가 될 것이다. 이 숨이 붙어 있는 한 견뎌낼 것이다.’ 줄곧 정공(靜功) 음악이 끝날 때까지 버텼고 저는 성공했습니다!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련생들이 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고 모두들 저를 위해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견디고 하루하루 제고하며 천천히 저는 반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통증이 멎지 않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가부좌 통증이 가장 극심할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언제나 다른 수련생들처럼 가부좌가 아프지 않고 달걀 껍데기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그날 밤 잠을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비몽사몽간에 큰 손이 제 왼쪽 엉덩이를 가볍게 미는 동시에 따뜻한 전류가 몸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는 힘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가볍게 저를 밀어 깨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누가 나를 밀지? 이 방에는 아내와 나 둘뿐인데 옆의 아내는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다. 깊은 밤중에 누가 민단 말인가?’ 아,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신 것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경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때 저를 깨우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쨌든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 정공을 연마하자.’ 다리를 틀고(반가부좌) 앉으니 평소와 다름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다리가 아프지도 떨리지도 않았고 금방 입정 상태에 도달해 정말 편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거 정말 좋구나, 나도 드디어 가부좌가 아프지 않게 됐고 입정할 수 있게 됐구나.’ 아, 이것은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깨우쳐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4시경에 정공을 연마하면 가장 좋은 상태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문득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 제자 때문에 마음 쓰시게 했습니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저를 제자로 이끌어주시니 저는 반드시 정진실수(精進實修)하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1999년 ‘7·20’ 이후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 환경이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파괴됐고 곳곳은 고압적인 공포와 피비린내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불법(佛法) 진리는 이미 제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고 대법수련의 결심은 반석처럼 굳건해 아무도 흔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법공부 후에 5장 공법을 꾸준히 연마하며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저는 결가부좌를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30분이었습니다. 이어서 매일 5분, 10분씩 늘려나갔고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다리를 풀지 않고 견뎠습니다.
그동안 저는 세 차례 구치소에 납치됐고 마지막에는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저는 연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쇠창살 안에서도 매일 다리를 틀었습니다. 한 감옥경찰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매일 연공하는 것을 제가 감시카메라로 다 보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저는 마비 환자에 절름발이가 됐는데 연공한 후 목발을 버리고 정상이 됐습니다. 파룬궁은 제 생명과 함께합니다. 대법의 구원이 없었다면 저의 모든 것은 없었을 텐데 어찌 포기하고 연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루를 살아도 하루는 연마해야 합니다.” 감옥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을 되찾아 함께 정진하다
박해 초기 몇 년간 저도 두 차례 구치소에 납치됐는데 누적 기간이 1년이 넘었습니다. 두 번째는 2003년이었는데 자유를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공포스러운 고압하에 주변 수련생들 중 여전히 수련을 견지하는 사람이 이미 손에 꼽을 정도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 파룬따파의 수혜자이고 또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세인을 일깨워야 할 신성한 사명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에게는 매분 매초가 비할 데 없이 소중합니다. 제게는 그 옛 수련생들을 되찾아와 그들이 나서서 정법 노정을 따라잡게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80에 가까운 한 노수련생은 젊었을 때 잘못된 길로 빠져 악당의 팔로군에 가담했습니다. 중공이 정권을 세운 후 수십 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사람을 해치는 운동 속에서 노인은 정신과 육체가 모두 심한 고통을 받아 여러 가지 완고한 질병을 앓았고 오래도록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사계절 내내 온몸이 얼음장 같아 삼복더위에도 솜옷을 입고 화로를 끼고 지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노인은 모든 병이 사라졌고 걸음걸이가 바람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중공이 대법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노인은 이 운동의 기세가 매우 크다는 것을 감지하고 또 얼마나 많은 인간 비극이 상연되고 얼마나 많은 원혼이 떠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보신하기 위해 그는 과거 정치 운동에 대응하던 방식을 따라 집에 숨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거리에서 마주쳐도 말할 때 그는 두 눈으로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제가 불법 감금된 후 그는 더욱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며 암암리에 풍향을 살피고 대책을 생각했습니다.
저와 그는 약속대로 만났고 서로 매우 감개무량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우리 두 사람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했습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우린 벌써 화장터에 들어가 재가 됐을 겁니다. 우리 둘이 이렇게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행운입니다!” 우리는 정법 형세, 대법제자의 사명,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긴박함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교류에 노인의 미간이 펴지고 허리가 꼿꼿해졌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제 목숨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세 가지 일을 잘해야 비로소 사부님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이후 노인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9평 공산당’이 나온 후 노인은 더욱 물 만난 고기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악당의 추악한 역사를 폭로하고 대법의 아름답고 신기함을 실증하며, 인연 있는 사람에게 중공 사교 조직을 탈퇴해 수인(獸印)을 지우고 평안을 보전하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와 교외에서 알렸습니다. 나중에는 전기 삼륜차를 사서 집에서 좀 더 먼 교외 농촌으로 가서 매일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는데, 매년 2천 명 가까이 삼퇴시켰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반경 30리 이내의 마을은 노인이 모두 가봤습니다. 그는 또한 명혜망에 투고해 중공이 당년 옌안(延安)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폭리를 취했던(그는 직접 참여자로 한 지역의 아편 판매를 책임졌음) 죄악적인 뒷거래와, 팔로군이 항일전쟁을 파괴하고 안후이(安徽) 화이난(淮南)에서 항일 국군 1개 여단(이 여단은 400km를 급히 행군해 성내에 주둔한 일본군을 기습할 준비를 했으나 막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중공의 야간 기습을 받아 전멸당함)을 기습해 섬멸했던 추악한 역사를 폭로했습니다. 이런 문장들은 세인이 ‘9평’을 이해하고 정의와 악을 명확히 인식하고 분별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퇴직 전 간부 직무를 맡았던 한 수련생은 대법이 탄압받은 후 역시 이것저것 두려워하며 낙오됐습니다. 제가 그를 찾아가 교류할 때 그는 줄곧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당신 생명 깊은 곳에서 우는 것입니다. 당신의 주의식(主意識)이 깨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세로 내려오기 전에 서로 만약 누가 속인 속에서 미혹되면 상대방이 반드시 그를 일깨워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정법은 만나기 어려우니 천당으로 돌아가려면 오직 대법을 수련하고 확고부동하게 사부님을 따라가야만 원만공성(圓滿功成)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 수련생은 집을 나와 사람을 구하고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공원에서 몇몇 젊은이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말하는 사람은 열중하고 듣는 사람은 진지했습니다. 마지막에 다 말했을 때 그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르신, 저희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아십니까? 저희는 모두 경찰입니다. 오늘 쉬는 날이라 여기 놀러 왔는데 어르신 말씀을 듣고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수련생 중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노병이 있었는데 노부부가 모두 수련했습니다. 정치 운동을 겪었기에 중공 악당의 잔인함과 음험함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비록 아들이 모 현(縣) 공안국장으로 있었지만 그도 조금의 안전감도 느끼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집에 숨어 언젠가 큰 재앙이 닥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법공부도 감히 못 하고 연공도 감히 못 하며 수련생도 감히 만나지 못했습니다. 수련생과 마주치면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돌려 가버렸습니다. 제가 그의 집에 갔습니다. 제가 간 것을 보고 부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당년 대법을 수련하던 아름다운 시간을 회상하고 대법에 대한 인식을 교류했습니다. 수련 전 그와 아내는 모두 온몸이 병이었고 크고 작은 병원을 다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연공 후 부부는 병 없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들은 수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단지 압력이 너무 컸습니다. 교류를 통해 그는 걱정을 풀었고 자주 나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한번은 노수련생이 갑자기 넘어져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치료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두개골 분쇄 골절로 개두(開頭) 수술을 했습니다. 병실에서 혼미한 중에 그는 곁에 선 사람들이 모두 제복을 입고 챙 달린 모자를 쓴 것(아들과 동료들이 그를 보러 옴)을 보고 한 무리 경찰이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혼수상태에서 노수련생이 이렇게 몇 마디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두 달 후 저희가 노수련생을 보러 갔을 때 그는 이미 예전처럼 회복됐고 머리가 맑았으며 행동이 자유로웠습니다. 만약 대법의 보호와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없었다면 분쇄성 골절이 어찌 두 달 만에 나았겠으며 또한 조금의 후유증도 남기지 않았겠습니까. 노수련생은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으려는 정념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수련생들을 일깨우는 과정에서 저는 환희심과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감지한 후 그것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알고 즉시 정념으로 제거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하늘의 공을 탐해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이었습니다. 잡념과 교란을 제거한 후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미혹 속에 빠진 수련생과 교류하니 왕왕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이뤄졌습니다.
제게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원래 현(縣)에서 국장으로 있었습니다. 수련 전 그는 간경화를 앓아 오래도록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연공 후 신체는 금방 회복됐습니다. 대법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후 그는 국장이었고 또한 그 현 파룬궁 보조소 부소장을 맡았었기에 그 현 악당 조직에 의해 중점 인물로 박해받았습니다. 2000년 어느 날 밤 공안국은 5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두 갈래(한 갈래는 현에 있는 그의 집으로, 한 갈래는 농촌 고향집으로)로 나뉘어 그를 불법 체포해 밀실에 가두고 일주일 동안 양손을 의자에 수갑으로 채운 채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쓰라고 핍박했습니다. 고압하에 그는 타협했고 관직도 그만두었으며 공도 다시는 연마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구차하게 안일을 도모했습니다. 아내는 눈을 부릅뜨고 문을 막아서며 다른 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수련을 포기한 결과 공안은 잠시 그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병마가 다시 기승을 부렸습니다. 1년여 후 간경화가 재발해 사방에 의원을 찾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병세는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황천길이 가까워짐을 보며 친구는 의욕을 잃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저는 특별히 친구를 우리집에 청해 머물게 했습니다. 그는 제가 매일 단정히 앉아 법공부하고 음악에 따라 5장 공법을 연마하며 활력이 넘치고 충실하며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사부님 새 경문을 배우고 체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깨어났고 정념을 되찾았습니다. 금방 사부님께서 다시 그의 신체를 조정해주셔서 병세가 곧 사라졌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으며 걸음걸이가 바람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친구는 학습하고 연마해 컴퓨터, 프린터 수리 기술을 익혔고 본 현과 이웃 현 자료점의 수련생들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도왔으며 부르면 즉시 달려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의 일부 수련생들이 가정 자료점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돈이 부족했습니다. 친구는 아껴 쓰고 절약해 자신이 다년간 모은 저축을 모두 꺼내 설비와 소모품을 구매하고 그 농촌 수련생들이 가정 자료점을 세우는 것을 도와 한 송이 한 송이 작은 꽃들이 시골에 차례로 피어나게 해 그 향기가 사계절에 흩날려 만가(萬家)에 복을 가져다주게 했습니다.
제가 수련생들을 되찾을 때 주변의 일부 수련생들도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국면이 바뀌었고 법공부 팀이 하나둘 세워졌으며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에게 적합한 항목을 선택해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고 전체를 형성해 위력이 배가 됐습니다. 현지에서 대법을 박해하던 악인들은 크게 수그러들었고 진상을 명백히 아는 세인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으며 붓을 놓지 않다
대법이 까닭 없이 탄압받은 20여 년 동안 저는 저의 항목, 즉 명혜망 통신원 역할을 잘해 손에 쥔 붓으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제 문장 실력은 아주 평범했지만 늘 어떤 무형의 힘이 저를 격려해 붓을 들어 글을 쓰게 함을 느꼈습니다. 연속으로 몇 편의 투고가 발표되지 않거나 글쓰기가 병목에 부딪혀 머리가 아프고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여러 차례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멈춘 지 얼마 안 돼 그 무형의 힘이 또다시 재촉해 저를 그만둘 수 없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이고 제가 이런 방식으로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과거에 주입된 당문화 독소를 씻어내게 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이 박해받기 시작할 무렵 붉은 마귀의 조종하에 현지 일부 악당 관리, 공검법(공안·검찰·법원) 인원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악을 도와 나쁜 짓을 하며 잔혹하게 대법제자를 박해했습니다. 박해를 제지하기 위해 저는 앞잡이 노릇을 하는 그 행악자들에게 일일이 권선(勸善) 편지를 써서 자필로 부쳤습니다. 편지에는 그들의 범죄 사실을 열거하고 선량함을 박해하고 신과 부처를 해치는 처참한 결과를 엄숙히 지적하며 시무(時務)를 명확히 보고 절박한 순간에 돌이켜 공으로 잘못을 메우고 자신과 가족에게 뒷길을 남기라고 권했는데, 정의롭고 엄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선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읽은 후 감동하는 바가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나중에 경고와 권선의 힘을 더하기 위해 저는 여전히 제멋대로 구는 당 관료, 610 우두머리에게 공개 서한을 써서 명혜망에 발송했습니다. 게재된 후 자료점에서 전단을 제작했고 수련생들이 분담해 협력하며 시내 및 각 현에 널리 배포했습니다.
본 시에 박해에 참여한 한 악당 관리가 있었는데 전단이 그의 고향집까지 배포돼 모든 친척과 친구들이 권선 편지를 받았습니다. 현지 마을 사람들이 분분히 의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권선 편지를 들고 시내로 달려와 그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너에 대해 의논하느냐?” 이 관리는 퇴직 전 고위직을 맡았던 한 파룬궁수련생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오셔서 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선배님께서 연공하는 분들께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이후 저는 다시는 이 일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저를 괴롭히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저는 ‘명혜망 통신원’이라는 이 칭호를 매우 소중히 여겼고 합격된 현지 통신원이 되기 위해 힘썼으며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상황, 악당 불법 인원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범죄 사실, 대법제자가 구치소와 감옥에서 겪은 잔혹한 박해, 그리고 간수장, 감옥경찰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범죄 사례를 제때에 보도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세 차례 납치 감금됐는데 그중 세 번째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매번 감옥에 갇힌 기간 저는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항상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매번 높은 담장을 나온 후에는 붓을 들어 글을 써서 암흑 소굴 속의 추악한 내막을 폭로하고 악당이 대법제자에 대해 소위 ‘봄바람이 비를 내리듯’ 한다던 후안무치한 거짓말을 폭로했습니다.
말법(末法) 시기 도덕이 타락하고 인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진선인(眞·善·忍)을 준칙으로 하는 대법제자들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다방면에서 수련인의 풍모를 구현하고 있으니 혼탁한 세상 속 한 줄기 밝은 풍경입니다. 저는 듣고 본 생생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명혜망에 투고했습니다. 그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 교외 농촌의 한 흙길이 울퉁불퉁해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길 때문에 고통받았습니다. 인근에 사는 몇몇 파룬궁수련생이 돈과 힘을 내어 많은 벽돌 찌꺼기, 흙, 폐시멘트 덩어리, 자갈 등을 실어 와 땀을 뻘뻘 흘리며 한바탕 노력해 길을 평평하게 다졌습니다. 혜택을 본 마을 사람들은 매우 감동해 이 시골 작은 길을 친절하게 ‘파룬궁의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은 비록 작았지만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외에도 대법제자가 모욕을 당해도 변명하지 않고 속인일 때 받았던 부당한 사례금을 돌려주며, 사심 없이 원망 없이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옷을 샀다가 돌아온 후 한 벌을 더 받은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백 리(50km) 길을 왕복해 돌려준 이런 진실한 이야기들을 명혜망에 투고해 세상에 전파하니 ‘흐린 세상 속 깨끗한 연꽃’의 한 줄기 맑은 향기가 하늘 끝까지 흩날렸습니다.
명혜망의 매년 한 차례 있는 중국 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5·13 파룬따파의 날 경축 원고 모집에 주변 수련생들이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 글을 쓸 줄 몰라 조급해하고 걱정했습니다. 수련생의 일은 바로 저의 일이었기에 수련생의 투고를 돕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고 동시에 저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투고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감사드리는 것이며 대법 사이트와 원융하는 데 협조하는 것이고, 또한 수련생들과 배움과 수련을 비기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법회에 참여하는 과정은 바로 심성을 수련하고 자신을 승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수련생들의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련생들의 정념정행(正念正行)에 거듭 감동했고, 수련생들이 대법을 실증한 경험과 체득에서 많은 계시를 얻었으며, 저와 수련생의 격차를 찾아내 저 자신이 정진실수하고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촉진했습니다.
다년간 글을 써서 투고하며 글을 쓰는 과정, 그리고 원고의 게재 여부는 모두 수련의 과정이었습니다. 글쓰기 중에는 신체 방면, 환경 방면, 날씨 방면의 갖가지 교란이 있을 것이고 또한 잔여한 당문화가 암암리에 준동해 사건의 서술, 단어 사용, 호칭과 어기 등에서 드러나 문장이 순정하지 못하고 신뢰도가 떨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교란을 배제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당문화의 준동은 식별 난도가 비교적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수련 전에 보고 들은 것이 모두 그런 나쁜 것들이라 이미 습관이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9평’과 ‘당문화 해체’를 많이 보고 명혜망의 수련생들 문장을 많이 보려 노력했습니다. 점차 글에서 가짜, 과장, 공허함이 줄었고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으며, 근거 없이 추단하지 않고, 써낸 글이 진실하고 정확하며 깨끗하게 도달하도록 힘썼습니다(지금도 여전히 일정한 거리가 있습니다).
맺음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생생세세 보살펴주시고 시시각각 보호해주셔서 제가 금생금세에 대법과 다시 성스러운 인연을 맺고 속세로 내려오기 전의 큰 서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홍진 속에서 미혹된 천국 중생을 일깨워 큰 재난이 오기 전에 사부님께서 제도하시는 법선(法船)에 오르게 해, 무한히 아름다운 신기원의 피안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환생해 동쪽 땅에 태어나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것을 만나 대법과 기쁘게 성스러운 인연을 맺고, 사부님의 제자가 된 것은 더없는 복이고 더없는 행운입니다! 오직 정진실수하고 분발해 따라잡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의 두터운 기대에 부응하고 드넓은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따름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2/4336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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