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 속인의 텔레비전은 독이다
작년 여름 타지에 있는 어머니 댁에 있을 때 동생네 세 식구가 함께 있어서 나는 거실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 뒤에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다. 어머니는 매일 텔레비전을 보셨고 나도 때때로 그 드라마를 함께 보곤 했다.
2024년 9월 18일 정오 12시 발정념을 마친 뒤, 머릿속에 드라마를 보고 싶다거나 컴퓨터로 드라마 줄거리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그 생각을 계속 물리쳤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부님께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허락하셨니?’ 이 말이 떠오르자 그 그릇된 생각은 즉시 사라졌고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음 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내 뒤편에 뱀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아직 내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고, 자신이 요즘 드라마를 본 탓에 사악한 것들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발정념을 하며 내 공간장 속의 모든 사령·난귀(邪靈·爛鬼)를 제거했다. 그 드라마의 영상, 정보, 소리 등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졌다.
2024년 9월 30일, 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면 안 돼. 단 한 순간도 안 돼. 그것은 독이야. 독은 조금이라도 닿으면 끝장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문득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수증기처럼 희미한 것들과 검은 점, 검은 형체들이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여전히 있었다.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보니 있었고,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보니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지? 방금 내가 뭘 했지? 무슨 생각을 했지? 텔레비전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그 ‘텔레비전을 보겠다’는 그것이 죽기 직전에 몸부림치는 건 아닐까? 텔레비전을 보면 정말 눈이 오염되는가?’ 나는 눈앞의 것들을 마주하고 생각했다. ‘이건 모두 가상(假相)이야. 진짜 내가 아니야. 인정하지 않는다, 부정한다, 제거한다.’
내가 이전에 혼자 살 때는 집안 환경이 매우 깨끗했다. 그러나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외지로 가서 함께 살게 됐다. 그들은 속인이라 매일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보셨다. 특히 어머니는 연세가 많고 귀가 어두워서 텔레비전과 휴대폰 소리를 항상 크게 틀어놓으셨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셔서 나에게는 실제적인 교란이 됐다. 나는 주의식(主意識)을 더욱 강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스스로 이를 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이끌려버린 걸까?
나는 안으로 찾았다.
1) 안일을 추구하고, 편안해지려고 하며, 향락을 추구하고, 고생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2) 호기심이 많고, 늘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기억하기로 처음 드라마를 본 것은 2022년 여름, 방역 봉쇄 기간이었다. 내용은 중국 역사상 이름 높은 한 황태후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잠시 보기 시작했다가 결국 멈추지 못했다. 그 후 스스로 깊이 후회해 오랫동안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에 이르러 역사 속 몇몇 인물에 대한 흥미 때문에 나는 또다시 띄엄띄엄 몇 편의 드라마를 보게 됐다.
3) 갈등과 고통을 회피했다. 자신이 항상 갈등을 만나 마음이 불편할 때면 텔레비전의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 마음을 풀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매번 보고 난 후에는 스스로 깊이 후회했다.
4) 수련에 대해 그다지 엄숙하지 못했고,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스스로를 주재하지 못했다.
드라마에는 정(情), 색(色), 폭력, 살육이 가득하며, 배우들은 모두 속인이라 업력이 크다. 어떤 배우는 도덕성이 낮아 그 배후에 정마(情魔), 색마(色魔)가 붙어 있고, 어떤 배우는 이것저것 신앙해 그 뒤에는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와 난잡한 것들이 있다. 어떤 배우는 중공 악당의 당·단·대원으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지 않아 그 배후에 사령이 붙어 있다. 그런 것을 본다면 그대로 자기 안에 담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이법문(二法門)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어떻게 밖으로 배출하겠는가?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제거되지 않겠는가?
대법제자의 신체는 사부님께서 이미 정화해주셨으며, 고(高)에너지 물질로 구성된 몸이다. 우리는 그것에 감사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텔레비전을 보아 다시 몸을 오염시키는 것은 사부님께 대한 불경이며, 사부님의 감당과 헌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으로, 이는 큰 죄다.
텔레비전을 보는 해악은 곧 세 가지 일을 하는 시간을 빼앗아 수련을 느슨하게 만들고 해이하게 한다. 발정념과 연공, 법공부할 때 사상이 깨끗하지 못하고 요동치게 한다.
그날 법을 배울 때 ‘과시심(顯示心)’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는가? 왜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가? 이는 무슨 뜻인가?’ 나는 왜 교란을 받았는가? 바로 추구하는 마음이 있고, 호기심이 있으며, 많이 알수록 좋다고 여기고, 또 일종의 과시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법문에서 아는 것이 많은 것은 수련을 통해 얻은 것이지만, 그 밖의 것과 속인의 것들은 아는 것이 적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무엇을 집어넣으면 바로 그것이 되기 때문이다. 수련은 간단함을 말하고 간단할수록 좋다. 그러므로 법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많이 알고 많이 집어넣는 것은 수련에 대한 일종의 교란이고, 집어넣기만 하면 떨어지게 된다.
나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었고 해야 할 일을 그대로 했다. 법을 배울 때 그 검은 그림자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겼다. 주의력을 집중해 법의 글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읽는 대법책의 모든 글자는 파룬이고 모두 불도신(佛·道·神)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파룬이기에 그것들을 소멸하고 있고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 검은 그림자들은 사라져 완전히 없어졌다. 나는 알았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변변치 못한 제자가 또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교훈을 얻었다. 매일 어머니께서 텔레비전을 보실 때 내가 곁을 지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보지 말자, 듣지 말자. 그것은 독이니, 한 점이라도 닿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했다. 비록 그 뒤로 몇 차례의 반복이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 고비를 넘었다.
둥타이왕(動態網)을 생각하게 됐다. 비록 그것이 대법제자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라 해도 다루는 내용은 모두 속인의 것이다. 속인의 것들을 많이 보다 보면 결국 속인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의 부처, 예를 들어 당신들이 알고 있는 여래, 보살은 사실 모두 하나가 아니다. 대략 10년 혹은 10년을 초과하지 않고 하나씩 바꿔야 했다. 지금의 아미타불도 가장 초기의 그가 아니고, 관음보살 역시 가장 초기의 그가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인류 삼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그들은 또 삼계와 너무 가깝게 있어 아래의 좋지 못한 것들이 그들을 직접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 보살이 사람을 제도하는데, 사람은 부처와 보살에게 영향을 주기가 쉽다. 만약 그들이 장기간 제도한다면 그들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이 공간은 대략 10년을 전후하여 그들을 하나씩 바꾼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세계에서는 아주 긴 시간이다.”[각지 설법1-베이징(北京)국제교류회 설법] 부처님과 보살님도 사람에 의해 교란받아 떨어질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랴. 게다가 지금은 십악독세(十惡毒世)가 아닌가.
2. 안일심은 마귀다
올해 8월 초, 집에서 장 볼 때 쓰는 손수레의 왼쪽 바퀴가 자꾸 빠졌다. 8월 4일에 수레를 수리하러 갔더니, 그 사람이 바퀴의 철사를 좀 만지고 바퀴를 끼워 넣으니 바로 고쳐졌다. 나는 생각했다. ‘바퀴의 철사는 축을 고정시키는 용도였구나. 바퀴 축에는 움푹 들어간 홈이 있었고, 철사가 그 홈 안으로 들어가면 바퀴가 절대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었구나.’
그 후에 나는 생각했다. ‘손수레 바퀴가 자꾸 빠진 것은 철사가 걸리지 않아 축을 꽉 잡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느슨해진’ 것 아닌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는 걸까? 아, 그것은 내가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고, 단단히 붙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디를 단단히 붙잡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요즘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했고 법공부하는 시간이 적었다. 교류문을 보는 시간이 법공부 시간보다 많았고,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으며, 지름길을 찾았고, 변형된 방식으로 안일함을 추구했다. 아침에 정시에 일어나 연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고 2, 3일에 연공을 한번 하는 식이었다. 자료 배포나 포스터 붙이기도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서 있을 때도 자세가 반듯하지 않고, 앉을 때도 흐트러져 항상 기대거나 눕는 식으로 편안함만 찾았다. 고통받기 싫고 오직 편안하기만 원했다. 또 아침에 다시 잠을 자려고 했고 언제나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노동수용소에서 사악한 세력에게 ‘전향’됐던 것도 바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피하려 하며, 편히 지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도 ‘법이 좋고 수련해서 고통 없이 영원히 행복하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대법을 이용해 자신의 안일심을 충족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요즘 한동안 바닥 청소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것은 게으름이고 지저분한 상태이며, 공산당 당(黨)문화가 아직 작용하는 것이다. 집안 환경이 깨끗하지 않으면 다른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좋지 않은 생명체가 존재하겠는가? 환경을 이런 식으로 내버려 두는 것도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다! 그래서 부엌 바닥을 철 수세미로 문질러 닦고, 방도 정성껏 쓸고 닦았다. 식사 후에는 물걸레질까지 마무리했다.
나는 생각이 조금만 느슨해져도 곧바로 게으르고 해이해지며 안일심이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그로 인해 일들이 지체되고 이것저것에 영향을 미치게 됨을 느낀다. 몇 년 전, 다섯 세트의 공법을 아홉 번 완전히 연공하려 했을 때가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일곱 번째 세트를 마칠 무렵, 잠시 앉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잠들어 버렸다. 깨어보니 새벽 2시가 다 됐다. 자정 발정념 시간을 놓쳤고, 아홉 번 연공도 마치지 못했다. 시간이 모자랐고 한순간의 방심으로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 속에서 단 한 순간도 방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안일심은 바로 구세력과 사악한 것들이 대법제자를 교란하고 박해하는 것이다.
전에도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상 속에서 그리 중시하지 않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으며, 이를 겨냥해 발정념하는 일도 드물었다. 이번에는 경각심이 생겨 결인(結印)하고 이 마음을 겨냥해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다.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공간장에 배치해 둔, 안일심을 유발하는 모든 기제와 반(盤)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거시에서 미시까지 층층이 소멸시켜 완전히 없애 버렸다. 발정념을 할 때, 다리와 팔이 뜨겁고 붓고 저렸는데, 보아하니 이 물질을 내가 그동안 적잖이 기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올해 6월 29일이 생각났다.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뒤 잠시 누워 쉬고 싶었지만 ‘다시 잠들면 안 되지, 일어나자’고 생각했다. 그때 왼쪽 다리에서 무엇인가가 덜덜 떨며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그건 내가 아니다, 멸(滅)!”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것이 왼쪽 다리를 따라 발끝으로 내려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바로 안일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물질의 존재이며 내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 아님을 명확히 구분할 수만 있다면 일념으로 멸할 수 있다.
6월 30일, 자정 발정념을 마친 뒤 잠을 자지 않고 법을 외우고 연공했다.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뒤 잠시 누워 쉬면서 마음속으로 아침에 외운 법을 복습하고 있었다. 그때 왼쪽 다리에서 무엇인가가 덜덜 떨며 내려가고, 오른쪽 다리에서도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나는 계속 법을 외웠고 그것들은 곧 사라졌다. 나는 역시 안일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따라 다시 잠들지 않고 법을 외워 그것을 소멸했더니 그것이 죽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8월 21일 아침 연공 중, 문득 이 두 가지 일이 생각났고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안일함은 마귀다.’ 안일함을 구한다는 것은 고통을 싫어하고 업을 갚기 싫다는 것인데 어떻게 수련해서 되돌아갈 수 있는가? 이것은 수련과 정반대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곧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안일심도 생명체이고 그것은 바로 마귀다. 안일함을 추구하면 마귀가 몸에 달라붙는다. 매번 다시 잠들면 나쁜 꿈을 꾸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안일함을 구하는 순간, 이미 속인이 돼 떨어졌고, 그 좋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게 돼 사악한 것들이 틈을 타 박해하게 된다.
정법의 이치로 문제를 본다면 고통을 겪는 것은 좋은 일이고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안일하면 업을 소멸할 수 없고 향상할 수도 없다. 안일함에는 복이 없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절대로 안일함을 구하지 말자고 늘 일깨워 주어야 한다. 매사에 일사일념을 주의하고 안일심이 나오면 즉시 붙잡아 철저히 제거하고 해체해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맺음말
텔레비전 시청과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사부님의 정법 관점에서 보면 사부님께서 온갖 고생을 하며 정법을 하시는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천체 우주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사악을 보호하고 사악에게 생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며,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하는 것이다. 정법에 죄를 짓고 사부님과 법을 불경하게 하는 것이며, 사악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관점에서 보면,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다. 자신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체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며, 정체를 교란한다.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 역시 정체를 오염시키는 것이며, 큰 잘못을 행하는 것이다.
중생구도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은 자신의 천체 안에 있는 중생을 훼멸하는 것이며, 시간을 허비하고, 법공부, 연공, 발정념 시 사상이 깨끗하지 못해 세 가지 일에 영향을 미쳐 결국 중생을 훼멸하는 것이다.
내가 자신한테 ‘사부님께서 텔레비전 보는 것을 허락하실까?’라고 물었을 때, 그 옳지 않은 생각이 즉시 사라졌을까? 나는 깨달았다. 어떤 일을 하든, 사부님의 정법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정법, 대법 실증, 중생구도에 이익이 되는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직 사부님, 대법, 중생에게 책임을 지고 사부님께서 생각하는 바를 생각하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 바로 정념이다!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 우리가 하세(下世)한 초심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며 서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서약을 세웠기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때문에 이는 우리가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이며, 반드시 잘 수행해야 하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과 헌신으로 우리에게 연장해 주신 시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바로 우리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하고 사명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노력하고 정진해야 한다!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께 맡기고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고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안일함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것으로, 기점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일으킨 작용은 우리의 초심과 마침 정반대다. 이렇게 하면 누가 기뻐할까? 사부님은 기뻐하지 않으시고 사악만 기뻐한다. 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니 반드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텔레비전 시청과 안일심이 우리의 수련 의지를 소모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이로써 자신을 망치고 이 천고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자신을 일깨웠다. 법공부를 강화하고 노력하며 정진해야 한다. 앞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말하든, 먼저 사부님과 대법을 최우선에 놓고 자신에게 물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법에 부합하는가? 사부님께서 허락하실까?’ 사부님의 정법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고, 법 실증과 중생구도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면, 올바른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착오를 줄이고 굽은 길을 적게 걸으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현재 단계에서의 나의 체험이며 층차가 유한합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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