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는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어릴 적 제 꿈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부상자를 돕는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법을 얻어 수련한 후, 대법의 진선인 표준에 따라 심성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며, 의료계에서 진선인을 실천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1. 20년간의 의사 생활, 뇌물과 리베이트를 거절하다
오늘날 사회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순수해야 할 의료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는 생명을 구하는 것을 신념으로 삼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혼란한 현실을 마주하며 저 또한 한때 방황했습니다.
의사가 존중받는 이유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은 감사의 표시로 금품을 건네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의사에게 뇌물을 주는 사회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사는 환자의 감사 여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감사하든 안 하든, 우리는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려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의 환자가 악화되길 바라는 의사는 없으며, 눈앞에서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싶은 의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 통치하에서 사람들의 신앙심은 사라지고 이익만 추구하는 세태가 만연해졌습니다. 현재 의료계의 혼란은 의사가 뇌물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뇌물을 주도록 부추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진심으로 감사하기보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넵니다. 많은 환자가 의사 앞에서는 뇌물을 주고 뒤돌아서는 파렴치한이라고 욕합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전법륜)는 법리를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만약 환자의 뇌물을 받는다면 그 부당한 재물을 얻는 대가로 얼마나 많은 덕을 그에게 줘야 하겠습니까? 지난 20년 가까운 의사 생활 동안, 저는 환자에게서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약품 리베이트를 제안하러 오는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에게는 제가 수련생이기에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의 일이 고되다는 것을 알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처방할 뿐 리베이트를 받을 권리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통해 평안을 지키도록 권합니다. 대부분의 영업사원은 제가 리베이트를 거절하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나중에는 “저한테만 조용히 말씀하세요”라며 제 안전을 걱정해주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의 선의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만약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법리 가르침이 없었다면, 저 역시 이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휩쓸려 작은 이익을 탐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남과 자신을 해치며 살았다면 제 생명에 미래가 있었을까요? 이 기회를 빌려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나에게 민원을 제기한 환자를 자비롭게 대하다
의사 생활 초기에 저는 수련생으로서 오직 환자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검사나 지출은 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번은 ‘간단한 검사 몇 가지만 처방했다’는 이유로 저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다른 동료 앞에서 저를 무시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정말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착하게 살기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나는 수련생인데 착하게 사는 건 기본이지. 서운해할 게 뭐람?’ 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얼마 전, 한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를 보기도 전에 미리 검사 처방을 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음 날 바로 검사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사는 환자를 직접 진찰한 후에 필요한 검사를 처방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와 저에게 민원을 제기하려 했습니다. 자신은 골절이라 번거로움을 덜고 싶었을 뿐인데, 왜 굳이 본인을 봐야 하냐며 따졌습니다. 그 환자는 먼저 저희 과 주임에게 불만을 제기했고, 병원 전체에 문제를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사도 환자에게 민원이 제기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설령 잘못이 없더라도 명예로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러는 걸까? 환자를 보지 않고 검사를 처방하지 않은 게 잘못인가? 골절 상태인 걸 몰라준 건가? 하지만 보호자는 골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건가? 스스로 골절됐다고까지 말하며 나에게 민원을 제기하려는 걸까?’ 순간 그 환자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마음대로 하라지. 하늘이 알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세상 인심이 각박하다며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로잡았습니다. ‘아니지, 나는 수련인이니 안으로 찾아야 해. 법에 따라 나 자신을 진실하게 수련해야지.’
법은 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그 환자는 내 수련을 돕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데 어찌 원망할 수 있겠는가?’ 동시에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내가 환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구나. 왜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 보호자와 자세히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오만했구나.’ 만약 그 환자가 다시 찾아온다면 진심으로 대화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녀가 더는 민원을 제기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 체면 때문이 아니라, 대법제자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그녀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즉시 평온해지고 자비심이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과 주임이 민원을 원만히 해결했고, 환자도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3. 대법 진상을 알리며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비방한 지 26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중공의 거짓 선전에 속아 진상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하면 때로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저는 평소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모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며 의사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대법 진상을 전하려 노력합니다.
한번은 의사가 뇌물을 암시하고 요구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진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며, 세상에는 여전히 선량한 사람들이 많으니 사회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녀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기회를 봐서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마지막 진료를 마친 날,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아직 좋은 의사가 있다는 걸 믿게 됐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저를 좋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저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말을 기억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녀는 “알겠습니다. 선생님을 보니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말이 와 닿네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저는 고난 속에서 무력감과 혼란을 겪기도 했고, 잘못을 저지른 후에는 자책감에 시달렸으며, 고비를 넘겼을 때는 큰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주변 동료나 친구들은 제가 바람처럼 가볍게 걷는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기에 저는 병 없이 몸이 가벼우며, 업보가 들끓는 이 혼탁한 세상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법 수련을 통해 저는 이 세상에 온 목적과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르침과 보살핌, 그리고 제자를 위한 거대한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천만 마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의 고해 속에서 저를 구원의 법선에 오르게 해주셨으니, 제자는 더욱 정진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따름입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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