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병업 고비를 겪으며 미세한 사람의 생각을 알아차리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법공부를 통해 저는 몸이 불편한 증상은 모두 업력(業力)이 작용하는 것이고, 발생할 때 부합하는 세상의 이치는 가짜 모습이지 진정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치료 방법으로는 업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수련 전, 몸이 좋지 않아 늘 병원에 가고 약을 먹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약을 먹는 것은 단지 일시적으로 병을 억누를 뿐 몸이 진정으로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기가 나으면 저기가 아프고 병이 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치료 방법은 단지 병을 뒤로 미루거나 전환시킬 뿐이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련 후 몸에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 저는 늘 대법에서 알게 된 인식을 견지했고 사람의 치료 방법으로 완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수련인의 심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했고,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업력을 없애고 진정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대법 수련의 환경에 들어와 저는 초기의 인식 과정을 거쳐 천천히 알게 됐습니다. 대법은 사람을 제도하러 온 것이지 사람의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도 점차 분명해졌습니다. 제가 대법 수련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좋은 몸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즉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명이 온 곳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에서 배운 법리를 종합해 저는 발정념할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부님의 신체 정화만 받아들이고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교란은 받아들이지 않으며, 내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한다.’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 발정념으로 부정하는 것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심성상에서 제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심성을 높여야만 저의 각 층차에 놓인 난을 없앨 수 있고, 구세력의 교란이 존재할 구실이 없어집니다. 올해 몸에 일부 증상이 나타났는데, 저는 그 과정에서 미세한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생각이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래는 몇 가지 방면의 수련 체득입니다.

1. 사람의 생각으로 증상 변화를 예상하지 말고, 구세력의 시험을 위해 수련하지 말라

1월에 제 목 정면 가운데 부근에 사마귀 같은 것이 생겼는데 점점 커져서 길이 약 1cm, 너비 0.8cm, 높이 0.5cm 정도가 됐고 농포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놀라서 ‘이게 커지지 않을까? 어떤 수련생 목처럼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곧 이성을 회복하고 법에서 사고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움직인 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사람의 병리로 증상의 변화를 예상한 것입니다.

그 후 사람의 방법으로 의사를 찾아 잘라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알아차렸습니다. 이 속에는 단순히 ‘의사가 치료할 수 없을 거야’라고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어떤 위험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숨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여전히 그것을 병으로 여기는 사람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상적으로 진정 이것이 신체를 정화하는 반응이라고 여기면 나아야 할 때 나을 것입니다. 제 마음은 안정됐습니다.

며칠 지나자 농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음엔 딱지가 생기고 나으려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이것 역시 사람의 생각으로 증상의 변화를 추측하는 것임을 의식했습니다. 게다가 잠재의식에서 여전히 그것을 병으로 여기기에 ‘병이 곧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 병이 없고, 오직 신체를 정화하는 반응만 있을 뿐입니다. 신체를 정화할 때 어떻게 돼야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다. 눈앞의 증상이 비록 약간 호전됐지만, 신체를 정화하고 업력을 밀어내느라 또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나았다’는 사람의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과정에서 발견했습니다. 일부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마음을 제거한 후 몸 상태가 좀 호전되면, 자각하지 못한 채 한 가지 생각이 형성됐습니다. 증상 변화와 자신의 정념을 한 가지 관계로 연결시켜 자신이 제고하면 증상이 좋게 변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사실상 구세력의 시험을 위해 수련하는 것임을 의식했습니다. 증상의 변화를 위해 수련하고 심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는 변질된 사상으로, 구세력의 수련 안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심성을 높여야 이 층차에 놓인 난을 없애고 구세력의 안배를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표면의 변화에 집착해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2. 육체 표면 변화에 집착하지 말되, 구세력의 교란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신체 정화 증상이 좋아지는 것에 대해 비록 이미 평정심으로 대할 수 있고 그것을 병으로 여겨 나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지만, 이 속에 은연중에 환희심이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은연중에 실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전히 육체 표면이 좋아지는 것에 집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두기 때문에 육체 정화 시 나타나는 몸 증상의 좋고 나쁜 상황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입니다.

농과 피가 흘러나오면서 목의 사마귀 같은 것이 점점 작아졌는데, 어느 정도 작아지자 변하지 않고 유지됐습니다. 저는 그것이 좀 더 작아지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하면 외관상 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이 적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법을 실증하는 데 주로 심성이 좋아야 하고 육체 표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깨닫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속으로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돼야 하면 어떻게 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의식했습니다. 육체 표면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에 몸에 나타난 증상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구세력의 교란에서 온 것이라면 저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무감각하게 사실상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구세력의 교란에 대해 마땅히 맑은 정신으로 정념으로 저항하고 발정념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발정념의 상태를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 생각이 구세력이 신체 표면에 대한 교란을 제거하는 데 착안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육체 표면이 좋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체 증상에 대해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라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합니다. 만약 이 상황이 자신의 업력이 밀려 나온 반응이고 제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면 제가 감당하지 않으면 설마 사부님께서 감당하시란 말인가요? 그래서 저는 발정념의 사상 기점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부님의 신체 정화 안배만 받아들이고 구세력이 저의 법 실증과 사람 구하기에 강제로 가한 교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증상을 병으로 키우지 말고, 사람의 정으로 가족과 신체 증상이 호전됐다는 것을 나누려 하지 말라

최근 몇 년 동안 제 등 뒤 중심 위치에 언제부터인지 직경 약 1.5cm의 혹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가끔 발견하면 병원에 가라고 재촉했지만, 저는 늘 그를 안심시키며 천천히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혹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놀라며 “없어졌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또 나타났고 커졌습니다. 남편이 발견했을 때 또 병원에 가라고 재촉했지만 저는 똑같이 그를 안심시키며 천천히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활 중에서 저는 줄곧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이 혹이 악취를 내기 시작했고 외출할 때마다 시간을 들여 닦아야 했습니다. 혹이 직경 약 2cm, 높이 1cm로 커졌고, 그 주변에 4~5cm 정도의 부은 구역이 있었습니다. 등을 펴는 동작을 하면 아팠고, 손으로 만지면 농포처럼 튀어나온 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때 농포를 누르지 않으려고 몸을 약간 옆으로 누웠습니다. 하루 이틀 후 저녁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증상 표면에 맞춰 그것을 누를까 봐 두려워하고 심해질까 봐 두려워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병을 키우는 개념이 아닌가? 병이 아닌 이상 그것을 눌러서 심해질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똑바로 눕혔더니 이 순간 등이 아팠습니다. 결과적으로 농포가 터져 피가 흘러나왔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어떻게 자야 하면 어떻게 잤습니다. 그 밤을 지나고 혹과 농포가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외출해서 차를 탈 때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의자에 앉을 때 등을 자연스럽게 의자 등받이에 기댔더니 순간 등이 아팠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옷에 흘러나온 농과 피가 묻어 있었고 혹이 좀 작아졌습니다.

저는 이전처럼 ‘나았다’는 이런 생각은 없었지만, 남편과 이 혹이 작아진 것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의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체를 정화하는 것이므로 혹이 나중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체 정화로 인해 다시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 맥이 빠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남편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해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환희심과 남편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의 정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중에 혹이 점점 작아지고 농과 피, 그리고 조직액이 흘러나왔으며, 마지막에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지만 저는 여전히 참고 심성을 지켜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신체 증상이 호전돼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평소 심성을 좀 좋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법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제가 부엌에서 요리하는데, 남편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관심 있게 제 등을 만져봤습니다. 그는 원래의 혹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놀랐을 거로 생각합니다!

4. 기본 인식에 만족하지 말고, 사람의 사상으로 대하도록 방임하지 말며, 끊임없이 심성과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최근 팔에 발진 같은 것이 생겼는데, 몇 곳은 가려워서 긁어 피부가 벗겨지고 작은 반점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신체를 정화하고 업력을 밀어내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팔에 보습제를 바를 때 사람의 생각이 튀어나와 사람의 병리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피해서 자극하지 말아야 더 심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보습제는 업력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그래서 그것에 발라줬더니 다음 날 발진 증상이 호전되고 범위가 작아졌습니다. 그 후 보습제를 바를 때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자 발진 같은 것의 범위가 더 확대됐고, 어떤 부위는 매우 가려워서 피부를 긁어 벗겼습니다. 이 표상을 보며 마음이 그리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보습제를 바를 때 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것을 피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저는 ‘이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개인이 법을 실증하는 형상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보습제와 업력은 정말 관계가 없다. 발라서 증상이 나빠지고 발진이 더 심해져도 보습제와는 무관하다.’ 그것이 심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아무 걱정 없이 팔에 발랐습니다. 몇 번 반복을 거쳐 인식이 더욱 명확해지고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나중에 증상이 호전됐지만, 제 마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저 평정하게 대했을 뿐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업에 대해 이미 기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의 치료 방법으로 처리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수련이 잘된 부분은 단절됐고 남은 것은 또 수련이 잘 안 된 사람의 사상이므로, 때로는 여전히 사람의 생각, 사람의 마음, 사람의 정이 튀어나옵니다.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만약 사람 일면의 사상을 방임하고 그것을 직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깨닫지 않으면 쉽게 한 가지 상태에 머뭅니다. 자신이 이미 사람의 치료 방법으로 그것을 처리하지 않은 것에 만족해, 자신의 심성이 돌파하지 못하고 위로 승화하지 못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신체의 증상이 자신의 심성이 높아지지 않아 느리게 없어질 수 있는데, 이와 동시에 또 쉽게 한 가지 오류에 빠집니다. ‘이 제거되지 않는 증상은 나의 확고함을 시험하는 것이다’라고 여기고 여전히 계속 단순하게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의 치료 방법으로 대하지 않는’ 상태를 고수해, 자신이 여전히 일정한 층차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과정에서 한층 더 맑은 정신으로 의식해야 합니다. 이 속에는 저에게 심성을 높이고 인식을 높이게 하는 곳이 있으므로 진지하게 자신에게 또 어떤 부족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상황이 아마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법은 각 층차의 수련자에게 각기 다른 요구 표준이 있고, 원만 전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과 오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개인이 있는 층차의 체득이며 부족한 곳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7/48067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7/480678.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