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고비를 넘는 중에 행동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이 몇 년간 수련 중에서, 저는 병업 고비를 넘는 수련생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접했는데, 넘은 사람도 있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외지 수련생 옌(艷) 언니가 고비를 넘은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며 잊을 수 없습니다. 고비를 넘고 있는 수련생을 만날 때마다 그녀가 생각나곤 합니다. 오늘 써내는 것은 지금 병업 고비를 넘고 있는 수련생들이 참고하고, 더 좋은 교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수련생 J에게 들으니 옌 언니는 고난이 많았고, 박해를 받기 전후로 남편과 아들이 모두 잇따라 세상을 떠나 그녀에게 타격이 매우 컸다고 합니다. 나중에 옌 언니는 한 남자 수련생과 새로 가정을 꾸려 생활이 매우 충실했고, 수련도 정진했습니다.

어느 날 J가 우리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옌 누나를 위해 조마조마해요.” 이유는 그가 어제 옌 언니 집에 갔는데 옌 언니의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대출혈이 이미 20여 일 동안 지속돼 얼굴이 창백하고 핏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화장실에 갈 때도 땅에서 기어가야 했습니다. 남편 수련생은 아침 일찍 현 소재지에 일하러 가서 밤늦게야 돌아왔습니다. 옌 언니는 집에서 낮에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스스로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밤에 남편이 돌아와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도 없어서 정말 목이 마르면 찬물을 좀 마실 수밖에 없다며 J는 매우 걱정했습니다. 저는 듣고 나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걱정됐습니다. 동시에 옌 언니의 남편이 옌 언니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해 매우 화가 났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서 J가 또 한 번 다녀와서 말했습니다. 옌 언니가 대출혈 40여 일 만에 마침내 고비를 넘겼으며, 정말 목숨을 건졌고 사부님께서 보살펴 주시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옌 언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비를 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한숨을 돌렸습니다.

또 몇 년이 지나서 옌 언니 집이 현 소재지로 이사 왔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J의 아내가 병업 고비를 넘어 우리 몇 명 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옌 언니 부부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법공부를 끝내고 교류할 때 옌 언니의 남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해 아내가 병업 고비를 넘을 때 40여 일 동안 나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모두 아내 혼자 힘으로 넘어왔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그에 대한 원망심이 솟구쳤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즉시 얼굴을 굳히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언니가 고비를 넘은 것은 언니의 심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지, 당신이 한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지간인데 이 정도의 도움도 주지 못하다니 당신이 있어서 뭘 합니까? 제가 집에서 몸이 안 좋을 때 우리 남편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주고 저를 돌봐주는데 당신은 오히려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제가 당신 집과 멀어서 그렇지, 만약 가까웠다면 분명히 옌 언니에게 당신과 이혼하라고 하거나, 언니를 도와 당신과 싸웠을 겁니다.” 저는 매우 많은 보통 사람식의 불평을 하며 몇 년간 참았던 화를 모두 쏟아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수련생들, 옌 언니 부부와 J 수련생 부부를 포함해 모두 7~8명이 있었는데 당시 모두 멍해졌고, 누구도 제가 이런 말을 할 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옌 언니 부부와 몇 번 만났을 뿐이고, 일반인의 말로 하자면 그리 친분이 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J가 바로 말했습니다. “식사합시다, 식사합시다.” 우리는 모두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잠시 후 옌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현재 언니 집 집안일은 누가 하나요?” 옌 언니는 “현재 빨래하고 밥하는 것은 모두 남편이 하고 있어 나는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바로 말했습니다. “그럼 괜찮네요.”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아 이어서 그녀의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언니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 당신은 집에서 언니에게 제대로 밥을 지어주고 며칠 동안 돌봐주기는커녕, 오히려 마화(麻花, 중국식 꽈배기)와 빵을 사서 언니가 대충 때우게 했죠. 어려움 속에서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다니 당신이 있어서 뭘 합니까?” 이 말을 할 때 옌 언니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거의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J가 말했습니다. “더 화나는 말을 해줄게요. 내가 갔을 때 보니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 마화와 빵은 내가 가게에 가서 산 거예요.” 말을 마치자 모두 웃었고, 당시 저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때 옌 언니가 말했습니다. “당신을 화나게 할 일을 더 알려줄게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대출혈한다는 것을 듣고 피를 보충하라고 나에게 홍당(紅糖, 비정제 갈색 설탕) 두 근을 사주셨어요. 그날 남편이 일하러 가지 않아서 아침에 홍당물 두 그릇을 타서 우리 둘이 한 그릇씩 마셨어요. 남편은 ‘이 물 꽤 맛있네!’라고 하면서 한 그릇, 한 그릇 마시더니 다 마셔버렸어요. 나에게 ‘다 마시면 내가 또 사줄게!’라고 했는데 오늘까지도 사주지 않았어요.”

옌 언니는 웃으면서 저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보기에 조금도 화나지 않았고,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언니가 고비를 넘는 기간에 남편이 조금도 상관하지 않은 일에 대해 전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날 내내 옌 언니를 위해 불평했습니다.

나중에 우리 현지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옌 언니가 이 고비를 넘을 때 남편의 태도를 언급했습니다. 그때 현지 수련생이 한 말이 저를 매우 놀라게 했는데 수련생은 말했습니다. “바로 옌 언니가 생사의 큰 관을 넘을 때 어떠한 의존심, 원망심, 병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홍당물을 모두 그녀 남편이 마셔버린 것도 어쩌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옌 언니가 그 조금의 홍당물로 피를 보충하는 요행심리도 가질 수 없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비를 넘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표현은 모두 일반인의 불의에 대한 분노, 사람의 정(情), 사람의 이치였습니다. 만약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옌 언니에게 모든 것을 편하게 해주고, 마치 병을 요양하듯이 한다면 되겠습니까? 사람 중의 이치는 모두 반대 이치입니다. 게다가 제가 그녀 남편에게 거듭 무례한 말을 할 때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변명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으며 묵묵히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적어도 그의 심성이 저보다 훨씬 높았으며, 저의 비난과 원망에도 그는 저와 똑같이 따지지 않고 정말 저를 포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옌 언니의 병업 가상(假相)에 전혀 이끌리지 않았고,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이것 역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깨닫고 나서야 원래 법에 있지 않은 것이 바로 저였음을 발견했습니다! 전반 과정에서 저는 일의 표면에 빠져 있었고, 속인의 이치로 문제를 바라봤으며 쟁투심, 원망심, 사람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나왔고, 가장 심각한 것은 수련생의 정(情)이었습니다. 원래 고비를 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저였고, 이 교훈은 저에게 너무나 인상이 깊었습니다.

한 독거노인 여성 수련생이 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녀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뇌졸중 상태가 돼 반쪽 몸을 쓰지 못했는데 겨울이어서 단층집에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옷 입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고 또 스스로 화로를 피워야 했습니다. 장작과 석탄이 모두 집 밖에 있어서, 화로를 피우지 않으면 집안이 매우 추워서 사람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밥을 하지 않으면 먹을 밥이 없었고, 연공할 때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어서 수련생에게 부탁해 벽에 못을 박고 줄을 묶어서 쓸 수 있는 손으로 다른 팔을 줄에 걸어 포륜(抱輪)을 견지해 연마했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의지할 수 없었고 오직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자신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보름 만에 고비를 넘었습니다.

저 자신도 몇 년 전에 거의 반년 동안 계속 출혈했는데 비록 양이 많지 않았지만 계속 나왔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일반인이 자궁근종을 앓고 있는데 바로 이런 상태였습니다. 저도 한때 이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했고, 밤에 잠을 잘 때마다 배에 딱딱한 것이 없는지 자꾸 만져 보았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저는 번뜩 깨달았습니다. 일반인도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근종이 사라질 수 있는데, 저 같은 수련인이 근종이 없는데 어떻게 수련하다가 근종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가상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가상입니다. 일반인의 병소는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 일념이 마음속에서 확고해지자 다음 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시는 그런 상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입니다.

맺음말

병업 고비를 넘는 많은 수련생들과 접하면서 순조롭게 넘어간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수련생들임을 발견했습니다. 몸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자신을 환자로 여기지 않고, 모두 자신을 찾고 심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며,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수련생들입니다. 반면에, 힘들면 병을 요양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입으로는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병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특히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옷을 입히면 손을 내밀고 밥을 먹이면 입을 벌리는 이런 수련생들이 넘기 어렵고, 특히 생사의 큰 관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악한 박해를 부정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하며, 오직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해야만 고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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