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두려움을 버리며 고생 속에서 바른 믿음을 굳건히 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만고의 기연(機緣)으로 생생의 윤회 속에서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났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29년을 걸어왔고 이제 환갑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끝없이 넓고 큰 부처의 은혜 속에 저는 수련할 줄 몰랐던 상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숙해 가는 길로 나아갔고, 믿음에서 굳은 믿음으로, 다시 의지를 굳혔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위대한 불법(佛法) 수련을 행동으로 실증했고,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사부님과 파룬따파에 대한 저의 확고한 신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9년부터 2000년 초까지 저는 세 차례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를 수호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두 차례 당하고, 몇 차례 잔혹한 고문을 겪으면서 제 인생에서 회상하기도 어려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스스로 걸어 나가 파룬따파를 실증하는 것이 생사를 내려놓은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박해가 심각한 상황이 되니 또다시 두려워하는 마음, 박해당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중공 악당이 맹위를 떨쳤지만 저는 시종일관 파룬따파가 좋은 것이며 사부님께서 가장 바르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스스로 아주 확고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법공부를 하면서 이 확고함의 이면에 근본적인 집착이 가려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고할 기회를 놓칠 수 없고, 파룬따파를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하며, 혹은 사부님께 보여 드리기 위해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므로 사심과 사념이 조금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심한 박해를 받고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초래한 재앙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면 그건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두려움은 곧 추구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사악한 세력이 우리의 빈틈을 기다리고 있다가 박해할 구실을 찾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왜 우리를 보살펴 주시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깨끗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돌보실까요? 사부님께서 돌보시는 것은 수련하는 사람이지 속인이 아닙니다.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에서 저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고 마음속에 두려움을 품지 않을 때 사악한 것은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우주의 법이 담겨 있고, 본래 한 가지 바른 것이 백 가지 삿된 것을 제압하기 때문입니다!

난(難) 속에서, 압력 앞에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또한 말로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주재해주실 것이고, 사악한 것은 자멸할 것입니다.

2005년, 사람들이 노동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을 때 악랄한 경찰이 거짓 선전을 하며 사부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제가 사악한 세력에 협조하지 않고 노동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거짓말을 퍼뜨리고 중생을 해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도마 밑에 숨겨 두었던 연필심으로 종이에 크게 써 내려갔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고, 사부님께서는 결백하시며, 대법제자는 박해를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상이다!’

당시 그 인간 지옥에서 두려움의 물질이 여전히 몹시 무거웠지만,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죄를 짓고 중생을 해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일어서서 다시 천천히 강단 위로 걸어 올라가 써 놓은 것을 악랄한 경찰 앞에 놓았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히스테릭하게 저의 이름을 외치며 돌아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으며 마음은 이미 아주 평온했습니다. 그녀는 재빨리 짐을 챙겨 달아나듯이 걸어가며 말했습니다. “다음에 두고 보자.” 결과적으로 다음에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2007년이었습니다. 주거단지의 당서기가 저의 남편을 속여 저에게 연락을 하게 했습니다. 무슨 실업증을 만든다고 했지만 사실은 현지에서 세뇌반을 운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절하자 그는 직장으로 찾아오겠다고 떠들었고 다시 저희 집으로 오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이후 정법위원회 직원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성(省)에서 내려온 명단이라며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신앙이 자유인데 당신은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태도를 알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해 아직 건물 아래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 저는 멀리서 커다란 110 경찰차가 저희 집 건물 아래에 주차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여전히 박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몹시 무거워 도피하고 싶었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래층의 잡화점으로 가서 유선전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은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사장 아들이 저에게 5마오를 받았는데, 그의 아버지(사장)가 뒤쪽 주방에서 밥을 만들다가 와서 말했습니다. “아니야. 2마오야.”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젊은이가 “기계에 5마오라고 표시돼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사장은 기어이 2마오만 받으려 했습니다. 돌아서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나를 깨우쳐주는 거잖아!’ 저는 깨달았습니다. 또다시 가상에 이끌려 사악한 세력을 너무 크게 본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과 호법(護法)이 계시는데 누가 감히 저를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에게 오늘 발생한 일을 말했고 저희 둘은 함께 30분 동안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때 남편도 퇴근해 돌아왔고 저는 그 일에 대해 한번 설명하면서 그들의 거짓말을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아들의 진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저를 납치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만, 남편은 그들에게 크게 화를 내며 “영향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모두 그 일을 통해 인식을 제고했고, 사부님께서는 저를 위해 관여해주셨으며 사악한 박해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저는 이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적지 않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거웠을 때는 두려움 때문에 사부님의 가르침도 떠올릴 수 없었고, 두려움 때문에 당당하게 대법제자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어 사부님께 면목을 잃게 되었고, 대법제자의 이름에 먹칠을 했습니다.

거듭거듭 ‘안으로 찾다’는 인고의 과정 속에서 저는 마침내 누가 두려워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고, 그것이 제가 아님을 분별해 내 더는 그것에 좌우되지 않게 됐습니다.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거나 자료를 배포할 때,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하거나 법을 외웁니다. 수련인은 곧 사람 속에서, 낡은 법리 속에서, 집착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폭력에 직면하고, 강권에 직면하고, 사악함에 직면해 파룬따파 속에서 수련해낸 지혜로 파룬따파를 실증하고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고생길

법을 얻은 초기에는 매일 행복한 기쁨에 잠겨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고, 온몸과 마음을 수련에 투입해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법을 외우고, 법과 동화하였습니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사악한 세력이 천지를 뒤덮어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인 언니와 함께 주저없이 아들과 조카딸을 데리고 세 차례 베이징에 청원을 하러 갔고, 불법 구류와 강제노동을 두 차례 당했지만 파룬따파에 대한 반석 같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2015년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한 후 사악한 세력은 악인과 악랄한 경찰을 이용해 명단에 따라 사람을 잡아들였습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리던 수련생들이 잡혀가고, 자료를 만들던 수련생들이 납치됐으며, 자료점은 파괴됐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저에게 자료를 만들 것을 건의했지만 저희 집에는 자료를 만들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홀로 사는 한 수련생과 그녀의 집에서 만들 수 있을지 상의했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의 도움과 수련생들의 협력 속에 자료점이 설립되었습니다. 주로 크고 작은 책자와 진상 지폐를 만들며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이행했습니다. 그 기간이 비록 바빴지만 법공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릴 때도 법 한 단락을 외울 수 있었고, 정(定)할 수도 있었으므로 몸이 번화가에 있어도 마치 세속 밖에 있는 것처럼 청정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현지에서 진상 알리기에 협력하던 자매 수련생 중 한 명이 외출하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와 협력하여 자료를 만들던 수련생도 외지의 아들 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에는 또 다른 수련생과 외출하여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는 서둘러 자료를 만들러 갔습니다. 여름이라 무더웠는데, 저 혼자 인쇄하고 재단하고 제본하고 봉투에 넣으며 시간까지 맞추려니 몹시 바빴고 해가 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똑똑히 보이지 않아 시계를 올려다보니 이미 저녁 7시가 넘어 있었고, 그제서야 배가 고픈 것도 느꼈습니다.

한번은 막 일을 마치고 정돈한 뒤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데, 보온병에 물이 한 방울도 없고 부엌 물통에도 물이 한 방울도 없었습니다. 다시 화장실에 가니 물탱크에도 물이 한 방울도 없었고,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볼일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무거운 자료 보따리를 등에 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막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 언제부터인지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자료는 젖지 않았지만 심정은 이미 극도로 침울해졌고 마음속의 괴로움이 폭발할 듯이 커졌습니다. “너무 힘들다, 너무 고통스럽다!” 눈물과 빗물이 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저의 귓가에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이 행한 것을 하늘이 안다.” 저는 그것이 사부님의 격려임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많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수련생이 협력하지 않는 것은 저에게 수련생을 깔보는 마음이 있어 초래된 것이며, 그래서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성취시키시고 저의 죄업을 소멸시켜 주셨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시는 분은 사부님이시며 저는 다만 제가 해야 할 바를 할 뿐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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