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허난성 통신원) 허난성 쉬창(許昌)시 파룬궁수련자 바이훙민(白鴻敏)이 정저우(鄭州)시 신정(新鄭)시 법원에서 부당하게 8년형을 선고받고 벌금 2만 위안을 강탈당했다. 그는 정저우시 중급법원에 항소했으나 부당한 판결은 유지됐다.
2024년 6월 19일, 바이훙민은 정저우시의 한 임대주택에서 정저우시 진수이(金水)구 징바루(經八路) 파출소에 미행당해 납치됐다. 그는 허비(鶴壁)의 한 세뇌반에 불법 구금돼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그의 친족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괴롭힘과 협박을 당해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2024년 11월, 바이훙민이 허비 세뇌반에서 정저우시 제3 구치소로 이송돼 불법 구금되고 모함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2월 26일, 신정시 법원에서 불법 재판이 열렸다.
바이훙민(白鴻敏)은 남성으로 61세이며 대학 본과를 졸업했고 쉬창시 농업국 직원이다. 그는 소박하고 선량하며 남을 돕기 좋아해 직장이나 가정, 이웃 사이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다. 부인 타오즈리(陶智麗)는 쉬창 제9중학교의 우수한 화학 교사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 악당 집단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한 이래, 바이훙민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에 대한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불법 구금됐다.
1999년 10월, 그가 파룬궁수련자의 집에 갔을 때 쉬창시 웨이두(魏都)구 분국 정경과 경찰 원젠웨이(文建偉) 등이 그를 쉬창시 구치소 사형수 감방에 납치했고, 그곳에서 바이훙민은 미친 듯한 구타를 당했다. 한 달 후 경찰이 심문할 때 그는 감방에 들어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경찰에게 조서에 구치소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한 것을 명시하고 만약 사고가 나면 그들이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사고가 나서 책임질까 두려워 그를 15일간 구류로 전환하고 벌금 2천 위안을 받은 후에야 석방했다.
2000년 2월, 바이훙민이 직장에서 회의 중일 때 웨이두구 여경찰 류쑤핑(劉蘇萍)이 수련자로 가장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속여서 데려간 후 ‘연락’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구금했다. 구치소에 한 달 구금된 후 다시 구류소에 3개월 구금됐고 생활비 900위안을 내고 나서야 석방됐다.
2000년 7월, 바이훙민은 합법적으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됐다. 웨이두구 경찰은 그의 직장에 협박해 함께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서 그를 데려오게 했다. 오가는 길에 폭음폭식하며 쓴 6천 위안을 직장에서 내게 했고, 직장은 다시 이 비용을 바이훙민에게 전가했다. 그는 한 달간 불법 구금됐다.
2000년 10월, 쉬창시에서 누군가 진상 전단을 뿌렸는데 경찰이 사람을 잡지 못하자, 누군가 제보했다고 거짓말하며 바이훙민을 집에서 납치해 갔다. 이어서 어떤 영장도 없이 가택수색했으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를 한 달간 구금하고 300위안을 내고 나서야 석방했다.
허난성 제3 노동수용소에서 ‘통구이’ 고문 겪어
2001년 1월, 그가 고향에 돌아가 명절을 보낼 때 쉬창 웨이두구 경찰이 그를 집에서 다시 강제로 납치했고,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3년 강제노동형으로 허난성 제3 노동수용소에 직접 끌고 갔다.
노동수용소에서 바이훙민은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독방 구금, 잠을 재우지 않기, 매달아 수갑 채우기, 고무봉으로 구타, 전기봉 전기고문, 연속으로 여러 차례 밧줄 묶기, 초과 체력노동 강요 등으로 심신이 파괴됐다. 노동수용소는 폭력적인 ‘전향’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에게 ‘통구이’ 고문을 가했다. 그의 두 손과 두 발을 단단히 묶고 막대기 하나를 손발 사이로 꿰어 사지를 하늘로 향하게 오랫동안 매달았고, 이어서 여러 개의 전기봉, 경찰봉 및 주먹과 발길질을 더해 번갈아가며 고문했다. 그는 이 고문으로 죽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고 두 손이 거의 폐인이 돼 몇 달이 지나도 물건을 잡을 수 없었다. 2004년 1월, 3년 강제노동 기간이 끝났는데도 악인들이 부당하게 1년을 추가했다.

한때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아 신미 감옥에서 독방 구금 등 박해당해
2011년 6월 28일, 바이훙민과 부인 타오즈리가 집에서 쉬창시 공안국의 쉬옌리(許燕麗)를 우두머리로 한 경찰,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난관(南關) 파출소 약 8~9명의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이것은 사전 계획된 납치였다. 아침 6시에 경찰이 와서 문을 두드렸는데 바이훙민 부부가 문 열기를 거부했다. 경찰은 자물쇠 따는 회사 사람을 불러 방문을 따고 가택수색을 해 노트북 컴퓨터 1대, 가정용 소형 프린터 1대와 대법 서적 등을 강탈했다. 바이훙민은 박해를 저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다!” 악인들은 바이훙민 부부를 납치했고 또 그들이 거주하는 집에 부당하게 봉인을 붙여 외지에서 학교 다니는 바이훙민의 아들이 여름방학에 돌아와 집에 갈 수 없게 만들었다.
타오즈리는 구치소에서 한 달간 불법 구금됐고, 바이훙민은 구치소에서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다가 악인들의 야만적인 강제 주입을 당했다. 경찰은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위증을 조작했다.
2011년 11월 22일 오전, 허난 쉬창시 법원은 부당하게 옌안루(延安路) 중급법원의 한 작은 방에서 파룬궁수련자 바이훙민에 대한 비밀 재판을 열었다. 바이훙민의 부인과 아들은 당일 오전에 재판이 열릴 때가 돼서야 소식을 알고 급히 법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재판이 한참 진행된 뒤였다. 바이훙민은 법정에서 바른 기운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자신의 무죄를 변호했다. 불법 재판은 급히 마쳤다.
바이훙민은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했으나 쉬창시 중급법원이 원판을 유지했다. 12월 하순,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바이훙민은 허난 신미(新密) 감옥에 투옥됐다. 신미 감옥에서 바이훙민은 독방 구금 등의 박해를 당했다.
명혜망의 보도 통계에 따르면 2024년에 알려진 바로는 허난 파룬궁수련자들이 진선인에 대한 신앙 때문에 적어도 57명이 중국공산당(중공) 당국의 박해를 받았다. 그중 적어도 4명이 박해로 세상을 떠났고 9명이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았으며 31명이 납치됐고 12명이 괴롭힘을 당했으며 1명이 세뇌반 박해를 당했다. 중공의 진상 봉쇄, 가족의 면회 불허, 은밀한 박해 등의 이유로 아직 보도되지 않은 박해 사실이 많이 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30/50038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9/30/500389.html